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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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을 만난 뒤 시를 알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류시화의 시에는 그리운 길 몇 번이고 돌아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시 한 편 한 편이 생생하고 실존을 흔들고 번개처럼 마음에 꽂힌다. 시를 통해 언어가 가진 힘을 실감하는 드문 경험이다. 그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을 펴낸 그는 인화지에 빛을 정착시키듯 단어들에 생의 감각을 담아낸다.
첫 문장은 시인이 쓰지만 그 뒤의 문장은 읽는 이들이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것이 시라고 그가 말하듯이, 시는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에서 오래 이야기한다. 꽃이라든가 새라든가 가시나무라든가, 때로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감성이 있는 문장이란 이렇게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슬픔의 음조로 존재의 시련과 작별을 질문할 때조차 아름답다. ‘백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를 쓰라’는 말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시들. 한 권의 좋은 시집을 삶에 들여놓는 일은 불안과 절망의 언저리에 한 송이 고요의 꽃을 피우는 일이다. 사랑과 고독, 삶과 죽음, 희망과 상실, 시간과 운명에 대한 경이감을 그려낸 순도 높은 93편의 시.

저자

류시화

저자:류시화
시인류시화는충북옥천에서태어나,경희대학교국문과재학중인1980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문단에나왔다.시집『그대가곁에있어도나는그대가그립다』『외눈박이물고기의사랑』『나의상처는돌너의상처는꽃』『꽃샘바람에흔들린다면너는꽃』을냈으며,잠언시집『지금알고있는걸그때도알았더라면』『사랑하라한번도상처받지않은것처럼』『마음챙김의시』를엮었다.인도여행기『하늘호수로떠난여행』『지구별여행자』를썼으며,하이쿠모음집『한줄도너무길다』『백만광년의고독속에서한줄의시를읽다』『바쇼하이쿠선집』과인디언연설문집『나는왜너가아니고나인가』를엮었다.번역서로는『인생수업』『술취한코끼리길들이기』『마음을열어주는101가지이야기』『달라이라마의행복론』『삶으로다시떠오르기』『나는나』『기탄잘리』『예언자』등이있다.우화집『인생우화』와인도우화집『신이쉼표를넣은곳에마침표를찍지말라』,인생학교에서시읽기『시로납치하다』를썼으며,산문집으로『새는날아가면서뒤돌아보지않는다』『좋은지나쁜지누가아는가』『내가생각한인생이아니야』가있다.

목차


살아있다는것
패랭이꽃피어있는언덕
당신을알기전에는시없이도잘지냈습니다
가시나무의자서전
그리움의모순어법
나의사랑이되고싶어하지않는사랑
모든꽃은작은밤
희망은가볍게잡아야한다
그렇다해도
한사람을위한시
엉겅퀴꽃나비문양상자
흰독말풀의노래
나의나무
너는이름없이오면좋겠다
모란앞에서반성할일이있다
나보다오래살내옷에게
함께,혼자
자면서웃는다
아프지않은,아픔
나는낙타였나보다
귀울음
반딧불이
노래
저항
나의전기작가에게
낭아초꼬투리가있는풍경
내가말하는기차역은언제나바닷가그기차역이지
날개를주웠다,내날개였다
추분
붙박이별에서떠돌이별로
달팽이시인
박수
슬픔의무인등대에서
시가써지지않을때면
제목이없을수도
눈의영광
세상의그대들
신이숨겨놓은것
붓꽃의생
새의화석
우리가두개의강이라고당신은말하지만
기러기행성에서
너를바라보는내눈은
고향
생일기도
같은별아래
생각해보았는가

그것은사랑이아니었는지도모른다
흉터에대한그녀의답변
탱자
곤충의임종을지키다
이름없는새
지빠귀의별에서부르는노래
세상의구원자들
얼굴
사랑한다는것
나의마음
여행지의벽에적은시
오늘의바다
달에게서배운다
당신은나를안다고말한다
꽃명상
새벽,국경에서
무엇이우리를구원하는가
자신의날개를믿지않으면
비의새
눈물의말
전생의인연이라고한이가떠난날의목련
당신이라는날씨
물음표
히말라야싱잉볼
민들레유서
새에대한기억
눈깜박거리지않기
나의언어
가시연꽃
새에게구원받다
이별후의안부
라다크,고개를넘자설산이보였다
산다는것
행복의주문
가시엉겅퀴
전염병시대의사랑
나의소년
문신
자주달개비의시-초고
세계가그대를고독하게만들때
이세상떠나면
낮달맞이꽃피어있는곳까지
이제는안녕
그렇게해
나는작별이서툴다

해설_우리에게세편의시가필요한이유_이문재(시인)

출판사 서평

‘당신을만난뒤시를알았네’라고
말할수있는대상이있는가?

‘백사람이한번읽는시보다한사람이백번읽는시를쓰라’는말처럼,읽을때마다다르게마음에다가오는시가있다.남에게말할수없는감정을시로쓰면,남에게말할수없는감정을안고사는사람들과연결된다.산다는것은물음표와느낌표사이를오가는것이고,시를읽는것은마음속파도하나를일깨우는일이다.‘당신을만난뒤시를알았네’라고말할수있는대상이있는가?류시화의시에는그리운길을몇번이고돌아가게만드는마력이있다.

밤늦게까지시를읽었습니다
당신이그이유인것같아요
고독의최소단위는혼자가아니라
둘이라는것을
이제야깨닫습니다
사랑을만난후의그리움에비하면
이전의감정들은아무것도아니었다는말도

시아니면당신에대해얘기할곳이없어
내안에서당신은은유가되고
한번도밑줄긋지않았던문장이되고
불면의행바꿈이됩니다
당신을알기전에는
시없이도잘지냈습니다
당신을알기전에는
당신없이도잘지냈습니다
-「당신을알기전에는시없이도잘지냈습니다」전문

백사람이한번읽는시보다
한사람이백번읽는시

읽을수록좋아하는시가늘어나는매혹적인신작시집.어디에서읽기시작하든감성에호소해오는시들.시한편한편이생생하고,색채풍부하고,그리운감각이있다.그중몇편은실존을흔들고번개처럼마음에꽂힌다.시를통해언어가가진힘을실감하는드문경험이다.꽃이라든가새라든가가시나무라든가,때로삶과죽음이라는근본주제를이야기하면서도감성이있는문장이란이렇게아름다운가하는생각이들게한다.슬픔의음조로존재의시련과작별을질문할때조차아름답다.

육체속에서살아야만하는,죽음을피할수없는삶,아프면서도경이로움으로가득찬생을담은시적자기고백이울림을준다.마치시인이직접독자옆에다가와시를읽어주는것같다.소리내어운율을밟고있는자신을발견하는것도즐겁다.한권의좋은시집을삶에들여놓는일은불안과절망의언저리에한송이고요의꽃을피우는일이다.사랑과고독,희망과상실,시간과운명에대한경이감을그려낸순도높은93편의시.

뭍에잡혀올라온물고기가
온몸을던져
바닥을치듯이
그렇게절망이온몸으로
바닥을친적있는지
그물에걸린새가
부리가부러지도록
그물눈을찢듯이
그렇게슬픔이온존재의
눈금을찢은적은있는지
살아있다는것은
그렇게온생애를거는일이다
실패해도온몸을내던져
실패하는일이다
그렇게되돌릴겨를도없이
두렵게절실한일이다
-「살아있다는것」전문

섬세하고통찰력있는시로
수많은독자에게감동을준류시화시인의신작시집

류시화시의특징은인간의깊은곳에있는다양한감정을시로표현하는능력이다.시집의해설을쓴이문재시인은“고백하건대나는‘당신을알기전에는시없이도잘지냈습니다’라는문장앞에서꼼짝을못했다.고압전류에감전된것같았다.한동안다른시가눈에들어오지않았다”고말한다.덧붙여“이때‘당신’은연인이나벗일수도있고절대자일수도있으며,갑작스럽게닥친병마나불행일수도있다.그가누구고또무엇이건,우리에게는일상적삶에결정적변화를가져오는‘사건과같은당신’이있다”고설명한다.

인생에서한번쯤은시집을가까이하는날들이있다.시인의이름도시의제목도기억하지못한채말의울림에감동하고공감할때가있다.그렇게,자기만의‘당신’은우리를시로돌아오게한다.‘너는너자신을떠나는문이며/너자신으로돌아오는문’이라는시구처럼우리는자신에게서떠났다가다시자신에게로돌아온다.그곁에류시화시인이쓰거나옮긴시집이놓여있을때가많다.그가발표하는매시집마다깊이를더하며새로운깨달음을선사한다.시인은삶의다른시기에는쓸수없었던작품을지금쓴다는사실을실감하게한다.그는독자에게갑자기말한다.“이제알아야만해/정말로이삶을사랑하는지/한순간도심장을떠나지않는것이무엇인지/그것을위해고독을견딜수있는지”.새로운시집이발표될때마다늘읽고싶어지는,자신만의존재감을지닌몇안되는시인중한사람이다.

새는왜돌속에서날갯짓을하고있었을까

날개뼈에붙은깃이다떨어져나갈만큼
필사적으로
어디를향해날고있었을까

아직도고개가위로쳐들려진채로

아름답다
나는피부가뼈에달라붙을만큼이토록
온존재를다해
날갯짓한적없다
반드시날기위해내장까지텅비우고
비상의몸부림으로
깨뜨리고깨뜨리고또깨뜨린적없다

나는그냥돌속에갇혀
상상속에서만날았을뿐

몇만년동안날갯짓을해
마침내돌을반으로쪼개고
세상밖으로나온

-「새의화석」전문

자신안에가시가아니라
시가있는사람

자신안에가시가아니라시가있는사람,아니가시가있어도시가있는사람이좋다.그시에찔리는것이좋다.그때자신안에있는지도몰랐던감정이되살아난다.슬픔과상실로인한잔가시들은누군가를,그리고삶을사랑했다는증거이다.

장미는그많은가시속에꽃을피우면서도
저의가시로저의꽃찌른적없다

탱자는그많은가시한가운데열리면서도
저의가시로저의심장찌른적없다

나를보듯가시나무를본다
세상을찌르려고했나,나를찌르려고했나

가까이가도아프고가까이와도아픈
나는왜가시를키웠나
-「가시나무의자서전」전문

생애한번쯤,
시를쓰고싶게만드는시인

류시화는생애한번은시를쓰고싶게만드는시인이다.그의긴다리와걸음걸이는평평한길인데도마치생의언덕을오르는듯한인상을준다.시인이며소설가인찰스부코스키의말처럼,시는아무나쓰는것도아니지만아무나읽는것도아니다.감성이맞는시를만나는것이시읽는기쁨이다.시는말문이막힌인간영혼에게다가간다고했다.그간『그대가곁에있어도나는그대가그립다』,『외눈박이물고기의사랑』,『나의상처는돌너의상처는꽃』,『꽃샘바람에흔들린다면너는꽃』을펴낸그는인화지에빛을정착시키듯단어들에생의감각을담아낸다.그럼으로써평범한일상어였던한국어가특별한시적언어로탈바꿈한다.첫문장은시인이쓰지만그뒤의문장은읽는이들이마음으로써내려가듯이,시는쓰는이와읽는이사이에서오래이야기한다.소리내어읽으면그시는하늘로날아간다.그러고보면,바람이많이부는날이시읽기에좋았다.

나의사랑이되고싶어하지않는사랑이여
나의마음이되고싶어하지않는마음이여
내가가진것은부서진음표밖에없는데
나의노래가되고싶어하지않는노래여
불이었다가얼음이었다가
나의삶이되고싶어하지않는나의삶이여
절반은사랑하고절반은미워하며
긍정이었다가부정이었다가
나의꿈이되기를거부하는나의꿈
나의것이되고싶어하지않는
나의모든것이여
나의얼굴이되고싶어하지않는나의낯선얼굴
나의사랑이되고싶어하지않는나의서툰사랑이여
-「나의사랑이되고싶어하지않는사랑」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