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오늘날,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의 대형언어모델이 범하는 일시적인 환각이나 오답을 교정하는 수준에서 팩트체크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은 잠시 착각에 빠진 친구라기보다는, 수백 개의 채널에서 출처와 화자를 알 수 없는 그럴듯한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고장 난 라디오’에 가깝다. 나아가 미래의 위협은 단순한 거짓 정보 유포를 넘어, 인간의 감정을 흔들고 스스로 진화하며 여론을 조작하는 ‘AI 군집(AI 스웜)’의 형태로 정교해지고 있다. 악의적인 거짓 정보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높여 인정받고자 하는 평범한 이들의 욕망까지 더해지면서, 오늘날 정보 생태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 팩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팩트를 검증하고 확정하고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이제 다들 고장 난 라디오를 여러 대씩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논문을 대량 생산하는 ‘논문 공장’의 습격에 직면한 학계부터 언론, 사법,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가장 엄밀한 수준의 팩트체크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양의 정보가 팩트의 지위를 노리며 쏟아지고 있다. 팩트체커들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특집 섹션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겪는 피로감과 과부하 속에서 팩트의 본질을 묻는 일곱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심층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생성되는 팩트란 없으며 사실은 오직 엄격한 제도와 인간의 실천적 관계 안에서만 확립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팩트는 기자가 의심하고 확인할 때에만, 과학자 동료가 검증하고 재현할 때에만, 역사가가 선택하고 엮어낼 때에만, 판사가 맥락을 따지고 판단할 때에만 비로소 팩트가 된다. 즉 모든 팩트는 관계와 제도를 통해 구성되고 확립된다.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모두 팩트체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팩트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관계와 제도를 더 단단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때 어리숙했던 초보자가 팩트를 체크하고 판단하고 확정하는 일을 배우고 반복하면서 비로소 기자가 되고, 과학자가 되고, 역사가가 되고, 판사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울러 이번 호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의 사회적 책무를 돌아보는 에세이도 함께 수록되었다. 2024년 문을 닫은 ‘서울대 팩트체크센터’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팩트를 지키기 위해 펼쳐온 고단한 제도적 분투를 실증하며, “인공지능은 법관의 양심을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전문가만의 고유한 도덕적 책무를 환기한다. 이처럼 소음 속에서 사실을 가려내는 전문성과 이를 세상에 선언하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증거 앞에 기존의 사실도 뒤집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반증 가능성’의 겸허함이야말로 인간 팩트체커들의 미덕이다. 모든 시민이 전업 팩트체커로 살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 고장 난 라디오의 소음을 뚫고 진실의 전선을 지켜내는 진짜 이야기와 구체적인 해법이 궁금하다면 지금 《에피》 36호를 펼쳐야 한다.
문제는 팩트를 검증하고 확정하고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이제 다들 고장 난 라디오를 여러 대씩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논문을 대량 생산하는 ‘논문 공장’의 습격에 직면한 학계부터 언론, 사법,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가장 엄밀한 수준의 팩트체크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양의 정보가 팩트의 지위를 노리며 쏟아지고 있다. 팩트체커들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특집 섹션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겪는 피로감과 과부하 속에서 팩트의 본질을 묻는 일곱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심층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생성되는 팩트란 없으며 사실은 오직 엄격한 제도와 인간의 실천적 관계 안에서만 확립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팩트는 기자가 의심하고 확인할 때에만, 과학자 동료가 검증하고 재현할 때에만, 역사가가 선택하고 엮어낼 때에만, 판사가 맥락을 따지고 판단할 때에만 비로소 팩트가 된다. 즉 모든 팩트는 관계와 제도를 통해 구성되고 확립된다.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모두 팩트체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팩트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관계와 제도를 더 단단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때 어리숙했던 초보자가 팩트를 체크하고 판단하고 확정하는 일을 배우고 반복하면서 비로소 기자가 되고, 과학자가 되고, 역사가가 되고, 판사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울러 이번 호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의 사회적 책무를 돌아보는 에세이도 함께 수록되었다. 2024년 문을 닫은 ‘서울대 팩트체크센터’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팩트를 지키기 위해 펼쳐온 고단한 제도적 분투를 실증하며, “인공지능은 법관의 양심을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전문가만의 고유한 도덕적 책무를 환기한다. 이처럼 소음 속에서 사실을 가려내는 전문성과 이를 세상에 선언하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증거 앞에 기존의 사실도 뒤집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반증 가능성’의 겸허함이야말로 인간 팩트체커들의 미덕이다. 모든 시민이 전업 팩트체커로 살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 고장 난 라디오의 소음을 뚫고 진실의 전선을 지켜내는 진짜 이야기와 구체적인 해법이 궁금하다면 지금 《에피》 36호를 펼쳐야 한다.
과학잡지 에피 36호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