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바보 의사 선생님 - 웅진 인물 그림책 2

선생님 바보 의사 선생님 - 웅진 인물 그림책 2

$11.92
저자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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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줄거리

한평생무소유의삶을살며어려운이웃들에게참사랑의인술을펼친의사장기려.이책은그의아름다운삶을한아이의눈을통해바라본이야기이다.기오는다리가많이아프지만치료비가없어병원에갈수없다.어느날엄마는돈없는사람들에게치료비를아주조금만받는다는복음병원의소문을듣고기오를데리고간다.거기서기오는장기려박사를만난다.기오는수술전에자신의손을잡고기도를하며,수술후에도병실에찾아와자신을따뜻하게어루만져주는장박사에게호기심과동시에깊은정을느낀다.장박사는어려운환자들이북적거리는병원에서늘따뜻한마음으로최선을다해그들을돌보고,돈이없는사람은몰래퇴원시키기도하며희생과봉사의삶을실천하며산다.사람들은그런그를바보의사라고한다.어느날장박사의집앞을기웃거리던기오는무의촌진료를다녀온박사를만나북에두고온가족을사무치게그리워하는장박사의안타까운사연을듣고,가난한이들을위해의료보험을만들고싶다는장박사의꿈도듣게된다.그렇게장박사의삶에큰감명을받은기오는훗날박사의뜻을이어받아어려운이웃을위해참사랑의의술을펼치는의사가된다.

▶시간이지날수록잊히는인물이있는가하면시간이갈수록빛을발하며그를기리는사람이많아지는인물이있다.‘웅진큰인물그림책’시리즈가발견한인물장기려가바로그렇다.그림책으로는처음으로소개되는의사장기려.그를가리킬때흔히‘아시아의슈바이처’라는말을쓴다.하지만이말이그다지탐탁치는않다.그들에게슈바이처가있다면우리에게는장기려가있다.그누구와도비교할수없는장기려의아름다운삶은시간이갈수록우리에게더큰감동을전해준다.

“당신은성인(聖人)이아니면바보일거요.”
장기려가척추결핵으로입원한춘원이광수의주치의가된적이있었다.이때장기려를곁에서지켜본이광수가장기려에게한말이다.장기려는환자의신분이나빈부를가리지않고오직정성으로돌보며,환자의마음까지위로하는다정한의사였다.최고의의사라명성이자자했지만수술하기전에는다아는내용이라도꼭다시공부하며,환자의손을잡고기도하는것으로수술을시작했다.이광수는아프고어려운사람들을늘한결같은모습으로돌보는장기려를진정성실하고진실한사람이라생각했다.후에이광수가발표한소설의남자주인공안빈의모델이장기려일것이라추측하는사람이많다.장기려자신은그렇지않다고부인했지만이상적인인간상을그려내고싶었던이광수에게장기려는그모델로넘치도록충분한사람이었을것이다.실제로장기려에관한일화들중에는보통사람의상식으로는납득하기어려운것들이많다.가난한환자들의치료비를대신내주는것은장기려에게별특별한일도아니었다.길에서거지를보면집으로데려다밥을먹였고,넉넉하지못한살림에그런날은그의부인은밥을굶기가일쑤였다.이름난의사였지만벌이는모두가난한환자나어려운이웃들에게들어가정작장기려의부인은삯바느질을하며살림을꾸려나가야했다.부산으로피난을내려와서는길에서죽어가는행려병자들을끌어모아밤낮으로보살폈고,복음병원의모태가된복음진료소를연것도난리통에돈없고아픈사람들이죽어가는모습을보며무료병원을세우고싶다는간절한바람으로시작된것이었다.복음병원시절에도그의적자(赤字)의사,바보의사의삶은계속된다.돈이없어퇴원하지못하는환자를차비까지주어서사무장몰래뒷문으로내보낸일,거지에게월급으로받은수표를통째로내어준일도있다.강의와진료때문에서울과부산을오가는바쁘고고단한생활중에서도시간이날때마다무의촌을찾아가진료를했다.자신을위해서는아무것도갖지않는무소유의삶을살았던장기려.그에대한함석헌의말은어려운이웃을보살피는데평생을바친바보의사장기려를잘보여준다.
“나는감히누구를내친구라고마음놓고부를수없습니다.그러나장기려박사만은내가마음놓고내좋은친구라고감히부를수있는지극히적은수의친구중의한분입니다.내가보기엔돈의욕심도,권세의욕심도,명예의욕심도,사업의욕심도없습니다.욕심이있다면하나,어떻게든지남에게좋은일을하자는욕심일것입니다.”

위대한의학자,선각자의사장기려
한평생박애와봉사의삶을살았던장기려,그는한국외과의기술적인발전,선진적인제도의창안과실행으로한국의료계에사회봉사못지않은탁월한업적을남겼다.그는국내최초로간에서암세포를잘라내는수술에성공했으며이후간대량절제수술에도최초로성공했다.대한간학회는이날을기념해10월20일을‘간의날’로정했다.우리나라의료보험의모태가된청십자의료보험의실현은가난한환자들이돈걱정없이치료받게해주고싶다는그의고민의결과였다.이러한헌신적이고실제적인사회봉사의노력과사랑의실천이인정을받아장기려는1979년동양의노벨상이라불리는‘라몬막사이사이사회봉사상’을수상했다.
서거10주기인2005년,과학기술부와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장기려를‘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헌정대상자에선정했다.이것은과학기술기본법에따라탁월한과학기술업적으로국가발전과국민복지향상에기여한과학기술인을기리는상이다.지금까지19명이선정되었는데,오는4월이후에는장기려의공적과유물등관련자료들을국립서울과학관명예의전당에서관람할수있다고한다.

“내가베풀면북에있는우리가족도누군가가도와줄거라믿는다.”
그의삶에버팀목이되었던두기둥은깊은신앙심그리고가족에대한그리움과사랑이었다.장기려는누가삶의목적을묻는다면서슴지않고‘기독교이상주의’로사는것이라고답했다.진학을결정할당시장기려는어려워진가정형편때문에의과대학을선택할수밖에없었다.의과대학이다른대학보다학비가쌌기때문이다.하지만고등학교시절의방황때문에성적이훨씬못미쳤다.장기려는무릎을꿇고기도했다.“의사만되게해주신다면,의사한번못보고죽어가는사람들을위해평생을바치겠습니다.”그는젊은시절하나님앞에서의이약속을조금의어긋남도없이한평생성실히지키며살았다.그의삶을지배했던유일무이한기본원칙은기독교적가치관이었다.
그는한국전쟁중에둘째아들만데리고피난을내려온다.얼마후만날수있을것이라는바람은40년이지나도록이루어지지않았고결국은일생을북의가족을그리워하며혼자지내다1995년크리스마스에숨을거둔다.그는집안의가장없이힘들게지낼가족들을생각하면항상마음이저렸고,그래서병원에오는어려운환자들을보면모두가족같이느껴진다고했다.장박사는자신이그환자들을잘돌보면누군가자신의가족도잘돌보아줄것이라는믿음이있었다.이산가족상봉이추진될당시정부에서사회문화계인사들에게특별히가족상봉을주선하며장기려에게도제안을했다.그렇게애타게그리워하던가족을만날수있는기회였지만그는함께기다리는다른사람들에게도리가아니라고,다른이산가족들과떳떳이고향을찾겠다며마다했다.그러다결국은평생그리던아내의얼굴을한번보지도못하고세상을떠났다.가슴아픈가족사이지만장기려에게는그것이환자들을더욱헌신적으로돌볼수있는원동력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