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부터파키스탄까지,열국열차를타고달궈진지구를돌아보는듯한충격”
폭주하는더위의참상을미리목도한기후저널리스트의폭염대탐사
2024년5월,멕시코남부연안에서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83마리가높은나무에서사과처럼우수수떨어져죽은채로발견됐다.사인은심각한탈수와고열증세였다.2021년미국태평양북서부연안에서는아직날줄도모르는새끼독수리수십마리가불구덩이처럼달궈진둥지위에서투신했다.묵시록의한장면같은죽음은인간도피할수없었다.2019년전세계폭염사망자는50만명에육박했다.그중자신이‘더워서’죽음을맞이할것이라상상한사람이몇이나될까.20년간기후문제를중점적으로다뤄온저널리스트제프구델은폭염이우리가예상했던것보다더쉽고빠르게우리를죽이고있다고토로한다.
『폭염살인(TheHeatWillKillYouFirst)』은관측역사상가장더운해로기록되었던2023년,기후과학자들의예측을벗어나폭주하던더위를예견이라도한듯출간되며미국내화제가되었다.저자는수년간에걸쳐남극부터시카고,파키스탄부터파리등을오가며폭염의생생한현장을취재해왔다.평균기온섭씨45도생존불가지대에살아가는파키스탄시민,야외노동중희생당한멕시코인노동자와미국옥수수농장의농부들,그리고수십명의기후과학자부터서식지를잃은북극곰까지그들의처참한이야기를생생하게전하고있다.
이책은우리일상과정치,경제,사회시스템을극한으로몰아붙이는폭염의기원과실태를정교한필치로그려낸폭염르포르타주다.“추락하는새부터허덕이는물고기,말라버린작물,쓰러지는노동자,졸도하는도시산책자”에관한그생생한묘사는여전히‘폭염불감증’상태인우리에게“영화<설국열차>가얼어버린지구위를돌듯뜨겁게달궈진지구위를‘열국열차’를타고도는듯한충격”(김지수)을안겨줄것이다.
“폭염으로인한사망,전세계모든자연재해로인한사망합계를앞질렀다”
폭염사망자50만시대,‘폭염불감증’에걸린우리를향한강력한최후통첩
사람의몸에서열이빠져나가지못하면열사병에이르듯,지구도열사병을앓는중이다.극한더위를가리키는폭염(heatwave,暴炎)은차가운공기를순환시키는제트기류의흐름이지구온난화로예측불가하게꼬이면서기온이상승하는기후재앙이다.지구온난화가가속될수록폭염의기습은더잦아지며예측하기어려워진다.최근한연구에따르면오늘날폭염이일어날확률은산업화시대초기에비해150배나높아졌고,산불이난듯치솟은바다온도는해마다최고치를경신하고있다(프롤로그).2019년기준48만9000명에달하는전세계폭염사망자는허리케인과태풍,수해등모든자연재해로인한사망자의합계를훨씬웃돈다.
그럼에도설마자신이더위로죽기야하겠냐고생각한다면당신은여전히‘폭염불감증’상태다.질병관리청은2023년한국의온열질환으로인한환자는3.5배증가했고,사망자수는32명에달했다고밝혔다.간접적인영향을고려하면더많았을것으로추산한다.저자는지금우리가겪고있는이‘더위’가여름의낭만이아니라지구를끓어오르게만드는‘열’그자체라는점에주목한다.대기와해류뿐아니라인간을비롯한지구의모든생명체는일종의‘열관리시스템’이며열역학의원칙에따라열은사라지지않고다른형태로변환된다.2022년태평양북서부연안을기습한폭염으로인해하이킹을떠난일가족이단4시간만에죽음을맞이했듯,열을내는유기체인인간의몸은한계치인습구온도35도를넘으면고체온증을겪다가순식간에열경련과열사병으로치닫는다(1장).
열은우리의사회시스템마저붕괴시킨다.통계에따르면지구기온이1도올라갈때마다자살과유산(abortion)이늘어난다.혐오발언과강간사건을비롯한각종강력범죄빈도가높아진다.저자는지구상모든존재의생존뿐아니라우리사회의정치경제적문제가골딜록스존(Goldilockszone),즉생존가능영역밖으로한발짝내딛었다고강조하며우리의폭염불감증에경종을울린다.
“에어컨이우리를지켜줄것이라는착각은버려라”
미국대선판도를바꾼에어컨,서늘한기온은계급과집값을나누는새로운지표다
“더우면에어컨을켜면되지않느냐”는말은우리가폭염불감증에서더욱빠져나올수없게만든다.에너지효율관련비영리단체RMI에따르면전세계에설치된에어컨은10억대이상으로인구7명중1명꼴로에어컨의혜택을누리고있으며2050년이면에어컨은스마트폰보다흔해진다.에어컨의인기는무더운기후로외면받던미국남부로북부인구를대거이주시킬정도였는데,1940~1980년대사이에민주당텃밭이었던선벨트지역에보수성향의은퇴자들이물밀듯몰려들며대선판도를뒤엎었다고저자는밝힌다(11장).문제는에어컨의인기로인해폭발적으로상승한전력수요는대규모정전을야기하는동시에,전력생산과정에서발생되는이산화탄소가폭염을가속한다는사실이다.
에어컨이미국대선판도를바꿨듯,시원한실내온도는폭염시대에계급과집값,인종을나누는새로운지표가된다.저자의증언에따르면포틀랜드최악의빈민가인렌츠의기온이섭씨51.1도를찍었을때나무숲이우거지고평균집값이100만달러에달하는주변부유층주거지의기온은37.2도에불과했다.2003년8월,약2주간파리에급습한폭염으로인해사망한1만5,000명중상당수는함석지붕의열기가고스란히전해지는다락방에홀로거주하던이들이었다.당시시당국은넘쳐나는시체를보관할장소를찾지못해식품창고와냉동트럭까지강제징발해야했다(8장).극한더위속열악한야외노동에내몰리는사람들역시폭염시대의계급론을떠올리게한다.건설현장에서근무하는가족의생존을걱정하는것이일상이되어버린,50도의폭염이덮친인도의도시첸나이의이야기는한국의상황을반추하게만든다(3장).
“대파파동은시작일뿐,식탁위의모든것이씨가마른다”
식탁물가폭등부터GDP증발까지,폭염시대의잔인한나비효과
22대총선의승패를가른대통령의875원대파발언은치솟은물가와민생경제의어려움이누구의잘못인가에대한뜨거운논쟁으로이어졌다.1만원에육박하는사과와양배추,무의가격은치솟는식탁물가를실감하게만든다.탄소발생의주범이자더위에취약한소와돼지,닭등의축산물은제일먼저우리식탁에서사라질것이다.연구에따르면,2023년식량불안정에처한인구는3억4,500만명에달할것이며2050년에이르면인구절반이굶주리게된다.(6장)
저자는한때풍요의땅이었으나이제는죽음의땅으로변모한‘매직밸리(MagicValley)’,리오그란데계곡과수확량이절반으로줄어버린텍사스옥수수경작지를찾아가절망하는농부들의목소리를생생하게전한다.옥수수는동물의사료와휘발유의원료등으로쓰이는옥수수생산량의감소는에너지생산시설과유통망의마비를의미하며,이는곧사회시스템의붕괴로이어진다.옥수수뿐아니라밀,보리,쌀등의식량공황이역사속에서전쟁과내전,혁명을불러왔다는사실을떠올려보면,폭염의극단적인나비효과속에서변하는건우리식탁의모습만이아닐것이다.
우리가받아든폭염이라는청구서에자비는없다.이책에따르면,평균기온1도씩상승할때마다미국의GDP의약1퍼센트인3000억달러(약4조원)가증발한다.폭염아래야외노동은불가능하고,설비의고장역시늘어나기때문이다.2020년미국에서극단적더위로인한노동자의생산성저하는1,000억달러의손실을불러왔고이손실액은2050년5,000억달러까지증가할것으로추산된다.이와같은생산시설과노동생산성의지속적인감소끝에우리가마주하게되는것은생존마저위협하는마트의‘가격표’다.
“폭염을피한기후이주의시작,코로나19는순한맛에불과했다”
야생의대탈출,‘벚꽃모기’와진드기의창궐까지새로쓰는질병알고리즘
더위를피하기위한야생의대탈출도벌어지고있다.육상동물들은현재10년마다약20킬로미터씩북상하고있으며,대서양대구의경우같은기간동안160킬로미터,산호마저도매년약32킬로미터씩북쪽으로이동하고있다.따뜻해진해류로해수면이상승하며해안도시의주민들도집을버리고이주를택한다.남극의붕괴를처음포착한기후학자존머서(JohnMercer)는서남극의빙상이녹아해수면이5미터상승하면플로리다와네덜란드는지도에서사라질것이라이미경고한바있다(9장).인천,부산등한국의해안도시들도전지구적기후이주대열에서자유로울수없다.
코로나19는팬데믹의서막일뿐,폭염은질병알고리즘을새로쓰고있다.전염병매개체들의서식지가북상하며인간서식지에점점더가까워지고있기때문이다.생물학자콜린칼슨(ColinCarlson)은이를‘매혹적인첫만남’이라고일컫는다.WHO는2080년에이르면전세계인구의60퍼센트가대표적인모기매개질병인뎅기열에감염될것이라고전망했다.진드기역시매년48킬로미터씩북상하고있는데,사슴진드기가옮기는라임병환자는따르면1990년대말이래3배증가했다.코로나19를비롯해에볼라바이러스와광견병을옮기는박쥐도마찬가지로인간과조우할확률이높아지고있다.이러한추세를보면코로나19팬데믹은오히려인류에게행운이었다고말할수밖에없다.코로나19는치사율이75퍼센트에이르지도,눈과장기에서피를쏟게하지도않기때문이다(10장).
“구워지든지,도망치든지,아니면행동하든지”
폭염브랜딩과도시리모델링,그리고폭염살인의공범이되지않기위한기후행동
기후위기음모론자들의주장과달리,저자가만난수많은기후과학자들이입을모아말하는것은지구열탕화의원인이‘화석연료사용’에있다는사실이다.화석연료기반발전을멈추면30년뒤의기온을바꿀수있지만전세계화석연료사용비중은2024년현재82%로여전히증가세다.2023년미국의주요석유및가스생산이사상최고치를기록했다는사실은충분히절망적이다.거대석유회사BP는탄소배출량35%감소약속을철회했고,엑손모빌은바이오연료생산지원을중단했다.한국은어떨까?한국은화석연료비중이OECD국가상위권으로,화석연료투자세계2위국가다.에너지비용증가로인해대한민국은1인당43만원의비용(IEEA)을추가지불해야하지만,문제는폭염의청구서가그것으로끝나지않는다는점이다.‘극단적이변원인규명과학’을창시한지구물리학자마일즈앨런(MylesAllen)은말한다.“머지않아기후과학이더발전해폭염살인의직접적인원인을밝힐수있게되면,그에대한법적책임을물수있을것”이라고.(5장)
저자는진화사부터산업구조,질병알고리즘,기후과학을망라하며살인폭염에대처하기위한과학적근거와해결방안을함께고민한다.특히폭염을피할수없다면그위험을적극알리기위해허리케인‘카트리나’처럼폭염에이름을붙이고이미지화하는‘브랜딩’이필요하다는주장은귀기울일만하다.스페인의세비야는폭염에‘소에(Zoe)’라는이름을붙이고적극알린덕분에과거하루14~15명에달했던폭염사망건을막을수있었다.
불과20년뒤면전세계인구70%가살게될도시의모습에도리모델링이필요하다.아스팔트와콘크리트,강철그리고실외기로가득찬도시는열을가두는찜통그자체다.뉴욕시는100만그루의나무를어도시에그늘을만들었고,세비야는지하수로기술을활용해도시를식혔다.전세계국가들이폭염에대비해도시의얼굴을바꾸는이때,천만도시서울은어떠한가?과연‘폭염살인’을잘대비하고있는지물어야할때다.
북극에스키여행을떠났던저자는먹이를찾아인간의거주지로찾아든북극곰과직면하게되었던그순간,‘죽음직전에사형집행이연기된죄인이된것같았다’고소회한다.우리모두가이폭염살인의공범자임을부정할수없었던것.그러나저자는『안네의일기』처럼우울한묵시록에도불구하고절망은이르다고말한다.2023년출간당시저자가가장많이들은질문은“우리는이대로끝장인가요?”였다.그는그때마다이렇게답했다.“지구가살만한별이기를바라는가?그러면팔을걷어붙이고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