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이여, 안녕

한밤이여, 안녕

$16.80
Description
“사물을 왜곡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울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 그게 바로 진실이다.”

어둠 속에 고립된 한 여자의 시선으로
세계의 이면을 밝힌 진 리스의 대표작
시대를 앞선 문제 의식과 스타일을 선보인 진 리스의 대표작 『한밤이여, 안녕』이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한밤이여, 안녕』은 진 리스가 1939년 발표한 소설로 1958년 BBC 방송에서 극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점, 분열된 자아의 중첩된 목소리,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법 등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진 리스는 가장 주목받는 영국 작가로 떠올랐다.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이자 소설가인 데보라 아이젠버그는 『한밤이여, 안녕』을 두고 “깨진 수정 조각처럼 날카롭고 투명하며 놀랍다.”라고 평했다.
『한밤이여, 안녕』은 193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술에 의지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여성 사샤의 삶을 그린다. 남편과 연인들에게 버림받고 허름한 호텔로 흘러들어온 마흔 살 여인 사샤, 세상의 냉대와 가난에 지친 그녀의 바람은 오직 술에 취해 세상을 떠나는 것뿐이다. 그런 사샤를 부유한 여인으로 착각한 청년 르네가 그녀에게 접근하며 함께 밤을 보내길 청하지만, 남자를 불신하는 사샤는 르네에게 그간 받아온 모욕을 분풀이하려 한다.
소설은 죽음을 향해 가는 한 여자와 삶의 열망에 이끌리는 젊은 남자의 열흘 간의 만남을 그린다. 고요히 침잠하고자 하는 사샤와 상승 욕구로 충만한 르네. 두 사람은 하락과 상승, 닫힘과 열림, 원숙함과 젊음의 대비를 보여주며 소설의 긴장감을 형성한다. 『한밤이여, 안녕』은 사샤의 분열된 자아와 복잡하고 모순된 심리, 그녀가 접하는 일그러진 세계의 이면을 예리하고 탁월하게 그려낸다.
저자

진리스

JeanRhys
1890년,당시영국령이었던도미니카연방의수도로조에서태어났다.아버지는웨일스태생의의사였고,어머니는스코틀랜드계크리올상속녀였다.어머니에게서물려받은크리올문화와어린시절을보낸도미니카연방의문화적유산은그녀의작품세계에깊은영향을미친다.데뷔후『왼쪽둑』,『매켄지씨를떠난후』,『어둠속의항해』,『한밤이여,안녕』등을펴내며시대를앞선스타일을선보였다.여성의성과심리,꿈과현실이한데섞인몽롱한분위기,인상주의문체의도입,다자관점을통한표현,의식의흐름기법들은탁월한모더니스트작가로서의면모를보여준다.
그러나1939년『한밤이여,안녕』을발표한뒤진리스는홀연히사라졌고작품들은절판되었다.1958년『한밤이여,안녕』이극화되어BBC방송전파를탔을때,사망했다고전해졌던진리스의행방이알려진다.그녀는소설집필중이었으며,그소설이1966년출판되어세상을놀라게한『광막한사르가소바다』다.
1978년대영제국훈장(CBE)을받았으며,1979년사망했다.

목차

한밤이여,안녕
작품해설
옮긴이주

출판사 서평

“이세기의가장뛰어난영국작가”
-A.알바레즈(시인,평론가)

“깨진수정조각처럼날카롭고투명하며놀랍다.”
-데보라아이젠버그(소설가,컬럼비아대학교교수)

세상에서도망쳐
파리의어둠속으로숨은
한여자의이야기

사샤는지속된상실과좌절로삶의의지를잃은마흔살여인이다.절망과가난,냉대와불행에지친그녀가원하는것은오로지술에취해세상에서사라지는것뿐이다.고용주프랭크에게하는상상속발화에서그녀는자신의삶을어두운배경,우는사람,희생자라고말한다.“밝은색깔이더욱선명하게두드러지기위해선배경이어두워야하지않겠어요?우는사람이있어야껄껄대는사람이있듯이.희생자는반드시필요불가결한것이겠지요.”여기서그녀가말하는것은비대칭적인세상이아니라삶에느끼는고립감과모욕감이다.“블랭크씨가제다리를잘라버릴수있는신비한권한을가졌다고해서절름발이가된저를보고웃을권리도있을까요?”그녀가인지하는자신의삶은‘정말어두운강과같은인생’이며,그인생은‘물속으로가라앉아가는데도주위사람들은그걸보고박장대소’하는공포심과고립감으로점철되어있다.

나는잘해보려고애를쓰지만,그들은항상내능력을속속들이알게되고,내가가는길은결코다른길로연결되지못한다.항상막다른골목이다.문들은늘닫혀있다.
-47쪽

그녀에게거리는닫힌문이다.자신을반기지않는곳,나쁜기억이깃든곳이며,그녀를차갑게내치고비웃는곳이다.그녀는‘검은집들이마치괴물처럼나를내려다보는’밤거리를걸으며,집들이‘눈살을찌푸리고밟아죽이기라도할듯’자신을위협한다고생각한다.그녀는왜곡된시선으로세상을인식하지만,굴절된렌즈에비친추악함이야말로세계의진실이라고여긴다.
사샤는자신에게친절한카페,술집을찾아술을마시는것으로하루를소일한다.사샤에게저렴한호텔방은두려운세상을피해숨을수있는공간이며,자신에게맞춰진관이자죽음의중앙부이다.그리고누구도자신을들여다보지않고내버려두기를,세상에서사라지기를꿈꾼다.위로하겠다고집적거리는남자들을성가셔하고,그녀를불쌍하게여기는타인의얕은관심도경계한다.

나는자존심이없다.자존심도없고,이름도없고,얼굴도없고,국적도없다.나는어디에도속하지않았다.너무도슬프다,너무도.괜찮아.나는여기그냥사는거야.마치지푸라기가소용돌이의가장자리에서빙빙돌며떠다니다점차소용돌이의한복판으로빨려들어가듯.그죽음의중앙부,그곳에서모든것은정지상태가되지.모든것은평온을찾게돼.일주일에2파운드10실링,그레이스인가의옆골목에자리잡은내방하나…….
-68쪽

그녀는버려진고양이에자신의삶을투영한다.학대받은고양이의눈속에서그녀는열등감과,비참한과거,자신의운명에대한체념을읽는다.수고양이들에게만만하게여겨지며고통을당하던고양이는어느날길로뛰어들어죽음을맞는다.사샤는‘거울에비친내눈이꼭고양이의눈과같다’라고생각하며,고양이의운명에감응한다.

죽음을향해가는여자와
삶의열망에이끌리는남자의
열흘간의만남

무기력하게삶을소진하는사샤에게어느날젊고잘생긴르네가접근한다.사샤를부유한여자로착각한르네는그녀를유혹하고,사샤는그간받아온모욕에복수하겠다는짓궂은마음으로르네를만난다.르네를제비로단정지은사샤는그의모든말을돈을노린언행으로해석하지만,르네와의만남은그녀의무감각한일상에작은파문을일으킨다.

르네를만나는것때문에내가했던모든불안과흥분의움직임들은결국은피상적인것일뿐이다.나의마음저밑에서나는무감각하다.마음저깊은곳에있는물은고여서정체되어있고,조용하며,무관심하다.다시말하면죽음에근접한,그리고증오와매우흡사한씁쓸한평화가있을뿐이다.
-225~226쪽

그녀는르네로인한불안과흥분은피상적이라고말하며,죽음에근접한무감각이본감정이라인식한다.그러나르네를경박한제비라고멸시하면서도그의유혹이자신의죽은감각을일깨울까두려워한다.그녀에게관계는상처로만남았으며,상실과배신에감각의죽음으로대응해왔다.그녀는르네의유혹이삶을흔들까봐,‘젊은시절’,‘남자와육체를공유했던사랑’,‘고통과춤과죽음을두려워하지않았던무모함’을연상케하고,그리하여‘인간의고통’을다시겪게할까봐두려워한다.그렇게르네를거부한사샤는그가떠나고나서야그에대한진심을확인하고,머릿속에울리는분열된목소리에서벗어나진짜자아를마주한다.

그가가버리자나는옆으로몸을돌려내몸이가능한한작아지도록무릎을거의턱에닿게몸을웅크린다.나는마치몸이아플때처럼,가슴이아프고배가아플때처럼,그렇게눈물을흘리며운다.울고있는이사람은누구인가?층계위에서웃으며키스를하고행복해하던바로그사람이다.지금울고있는사람,이건나다,나자신이다.그러면또다른사람은?그게누구인지내가어찌알랴?그녀는내가아닌걸.
-274~275쪽

날카로운통찰로드러낸
세계의추악한이면

사샤는진리스작품속여주인공들의궁극적모습이며실망과모욕으로점철된인생을살아온리스자신의모습이기도하다.단순히술에의지해살아가는한여인의이야기가아니라,지나치게관습적이고상상력이결핍된세상에서인정받지못하고희생되는가엾은영혼의이야기다.사샤는타자로규정되는모든것들을대표한다.

우리는조심스럽게곁가지가다듬어지고모습이아름답게정리되어우리앞에펼쳐지는것이사실이라고믿는경향이있다.그렇지만바로그런것이사실이아닐수가있다.…(생략)…사물을왜곡시킨다고생각하는거울속에서우리가발견하는것,그게바로진실이다.
-118~119쪽

『한밤이여,안녕』의분위기는음울하지만,소설에담긴통찰은놀랍도록날카롭고,문학적이며,아름답다.과거와현재를넘나드는시점,분열된자아의중첩된목소리,의식의흐름을따라가는기법은소설을쉽게이해하기어렵게만든다.부서진거울조각들에비친하나의상과같다.그러나이노이즈야말로소설의백미이며,사샤라는인물과그녀가감각하는세계를온전히드러내는장치다.
사샤가가장경멸해온것을선택하는『한밤이여,안녕』의결말은많은독자를충격에빠뜨렸으며,다양한방향의해석을낳았다.사샤는소망대로사라진것일까.희생된것일까.아니면진짜자아를확인하고새롭게태어나게될까.해석은오로지독자의몫으로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