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 시집

하이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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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하이네 하면 순정, 가련하고 감미로운 감상적 연애 시인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낭만적인 연애 찬미의 시인으로서 그를 소개하고 있고, 또한 그의 시도 순전히 그런 쪽으로 소개되고 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네의 시에서는 그의 격정적 시에서 묘한 공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이네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순수하고 격한 감정을 지닌 서정 시인이다. 그러나 서정시의 전형적인 청렬(淸冽)한 감정 고백은 그에게서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하이네에게서 느끼게 되는 것은 격한 자신의 감정을 언제나 스스로 자신의 시 속에서 의식하고 멋쩍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 번이나 거듭된 실연의 체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말리에에 대한 덧없는 사랑은 《노래 책》에서 노래되었으며, 〈귀향〉에서도 그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테레제에 대한 감정은 〈귀향〉, 〈북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래 책》에 비해 〈귀향〉 이후의 작품에 자조와 풍자가 짙게 깔려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저자

하인리히 하이네

저자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856)는 독일의 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출생. 본 대학, 괴팅엔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법학 전공. 1831년에 파리로 망명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함. 저서에 《시집》, 《노래 책》, 《로만체로》, 《하르츠 기행》 등이 있음.

목차

1. 서정적 간주곡

그대의 파란 눈 11
아름다운 오월이 찾아와 12
나의 흐르는 눈물에서 13
오직 그대만이 14
그대 얼굴 15
서로의 뺨을 지그시 맞대면 16
백합꽃 속에 17
연꽃은 18
노래의 날개 위에 19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21
맹세해 주오 22
사랑하는 그대의 맑은 눈 위해 23
세상 사람들은 모두 24
타인의 신부가 된 연인 25
사랑스런 여인 26
원망치 않으리 28
둘이서 함께 괴로워하자 29
천사의 흐느낌 30
그대 잊고 말았는가 31
그 일 32
그럼 안녕 33
숨바꼭질 34
부인 35
기다림에 지쳐 36
시들어 버린 마음 37
세상은 아름답건만 38
그녀와 헤어진 후로는 39
무덤 속에 누워 40
동화의 나라가 42
나의 노래는 43
나를 가장 괴롭힌 사람 44
눈부신 여름 아침 45
그녀가 부르던 노래 46
사랑의 불꽃 47
괴로움이 빚어낸 노래 48
로렐라이 49

2. 귀향초(歸鄕抄)

숲속을 헤매며 53
달 떠오를 때 54
저녁 노을에 55
머나먼 지평선에 57
나의 분신 58
어둔 꿈속에서 59
나는 불행한 아틀라스 60
세월은 61
쓰라린 눈물 62
꿈에 64
하이얀 백합꽃 같은 65
홀딱 반해 버린 66
첫사랑 그대는 67
둘이는 서로 68
내 괴로움 69
참아 주소서 70
마음이여 71
깊은 밤 72
기나긴 겨울 밤 73
밖엔 눈이 쌓이고 74
오직 그대에게만 75
사랑의 괴로움 76
남 몰래 하는 사랑 77
또 다시 사랑을 하게 될 줄은 78
그 밖에 무얼 더 79
쓸쓸한 마음만 80
그대 마음으로 내 마음을 81
지나간 사랑은 잊어버려요 82
정말로 내가 미워졌나 83
내 마음의 깊은 상처 84
맑은 그대 눈동자 86
별들의 속삭임 87
사랑하는 이여 88
환희의 나라 90
헤어질 때면 91
그래도 그대 날 92
내 마누라가 된다면 93
백조 94
행복과 불행 96
눈물이 싫어졌네 97
노래 98
사념(思念) 99
아름다운 어촌 아가씨 101
사랑의 심연(深淵) 102
죽음 103
오월 104
검은 옷차림의 여인 105
어여쁜 아가씨 107
잔잔한 바닷가에 109
하얀 갈매기 110
사랑의 바다 111
그대 마음 112
파렴치한 그대 행동 113
이른 아침 잠 깨어 114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115
반짝이는 사랑 117
그대는 지금 118
꿈에서 나는 119
한밤중 120
나는 꿈꾸었네 121
나의 이 노래가 122
경향(傾向) 123
믿을 수가 없네 125
내가 믿는 건 127
수련(睡蓮) 128
정원 129
비밀 130
황야 131
하늘의 별 132
선실(船室)에서 133

3. 안젤리코

하느님께서 분부하사 137
그대 내 곁을 지날 때 138
그대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139
출렁이는 내 마음 140
불사조(不死鳥) 141
카타리나 143
그날이 오면 145
죽도록 마음이 슬퍼지거든 146
선택된 약혼자들 157
세리메느 151
신이여, 그들을 153
죽음이 다가온다 154

해설/하이네의 생애와 시 155
연보 170

출판사 서평

하이네의 천진난만하고 재기 넘치는 시집 - 118편의 시와 해설수록

하이네 하면 순정, 가련하고 감미로운 감상적 연애 시인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낭만적인 연애 찬미의 시인으로서 그를 소개하고 있고, 또한 그의 시도 순전히 그런 쪽으로 소개되고 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네의 시에서는 그의 격정적 시에서 묘한 공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이네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순수하고 격한 감정을 지닌 서정 시인이다. 그러나 서정시의 전형적인 청렬(淸冽)한 감정 고백은 그에게서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하이네에게서 느끼게 되는 것은 격한 자신의 감정을 언제나 스스로 자신의 시 속에서 의식하고 멋쩍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 번이나 거듭된 실연의 체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말리에에 대한 덧없는 사랑은 《노래 책》에서 노래되었으며, 〈귀향〉에서도 그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테레제에 대한 감정은 〈귀향〉, 〈북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래 책》에 비해 〈귀향〉 이후의 작품에 자조와 풍자가 짙게 깔려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 해설 - 하이네의 생애와 시 |

◎ 하이네의 생애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1797년 12월 독일 뒤셀도르프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량하고 명랑한 부친(삼손 하이네)이 늘 사업의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해, 하이네는 일찍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은행의 견습원이 되기도 하고, 숙부(살로몬 하이네)의 도움으로 장사를 하기도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함부르크의 부호(富豪)인 숙부는 생활 능력이 없는 하이네를 천대하면서도 꽤 귀여워했던 듯하다. 1819년 이후 하이네가 본 대학, 괴팅엔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숙부의 재정적인 도움 덕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파리 망명 후의 하이네에게 상당한 생활비를 보낸 사람도 바로 이 숙부였다. 하이네는 평생 특권층이나 부유층에 대해 경멸과 비난을 퍼부었으면서도, 부유층의 일원인 숙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
1816년 그는 이 경제적 은인의 딸인, 당시 16세 소녀 아말리에(Amalie)를 처음으로 대하게 된다. 그녀에게 반해 넋을 잃은 하이네를 자기 마음대로 기쁘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들던 그녀는 돌연 지주의 아들 후리르렌다와 결혼해 버렸다. 1823년에 하이네는 그녀의 동생 테레제(Therese)가 언니 아말리에와 꼭 닮은 것을 보고는 이제 그쪽으로 큐피트의 화살을 겨냥했다. 테레제는 하이네의 시인적 기질을 좋아하여 언니보다는 다정하게 대해 주었으나, 결국 이들의 관계 역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채, 그녀 또한 다른 남자와 약혼함으로써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실연으로 끝난 두 자매와의 사랑 체험은 이후 줄곧 자조적(自嘲的)인 시풍(詩風)으로 그를 따라다닌다.

첫사랑 그대는
아무런 보람 없을지라도 하나의 신(神)
허나 보람 없이 두 번째 사랑하는 이는
정말 멍청이.

또다시 보람 없는 사랑하는
나야말로 그런 멍청이
해, 달, 별 웃으면 나 역시 웃을 수밖에
―그리고 죽어 버릴 수밖에.
― 〈첫사랑 그대는〉

그를 변호사로 만들기 위해 숙부가 학비를 대주었는데도, 하이네는 법률학보다는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여 낭만파의 대가 A. W. 슐레겔(August Wilhelm Schlegel)과 철학자 헤겔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1825년 대학 졸업 직전엔, 기독교인이 아니면 유럽 사회에서 지위를 얻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단순한 처세 방편으로 기독교(신교)로 개종하게 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는 법학 박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적당한 취직자리가 없어 영국·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였다. 1827년에 발표한 《노래 책(Buch der Lieder)》은 그에게 일약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받아들인 하이네는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난 다음해 질식할 듯한 독일에서 탈출, 파리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낭만파(Die Romantische Schule)》,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Zur Geschichte der Religion und Philosophie in Deutschland)》 등의 저술을 통해 독일의 정신을 비판적으로 프랑스에 소개하고, 또한 프랑스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독일의 《알게마이네 자이퉁(Algemeine Zeitung)》지(誌)에 연재하는 등,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적 교류를 위한 교량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동안 그는 ‘자유를 위한 전사(戰士)’로서의 자각을 더욱더 강하게 지니게 되는데, 단지 독일 내의 국수적인 애국자들뿐만 아니라 동지였던 유태인 망명 사상가 뵈르네(Ludwig B?ne)까지도 서슴지 않고 공격하여 일반인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이네는 항상 학대받는 자,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싸워 왔지만,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 싸구려나 가짜가 아닌 고급품을 좋아하고 시와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기질을 지녔기 때문에, 이데올리기만 신봉(信奉)하는 혁명가에게는 감각적으로 반발을 느꼈다. 노동자 계급의 투사 봐이토링이 무례한 태도로 옥중(獄中) 이야기를 했을 때, 하이네가 무의식적으로 두서너 걸음 뒤로 물러섰다는 일화(逸話)는 그의 일면을 시사해준다 하겠다. 반면에 21세 연하인 마르크스는 “시인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고 하여, 하이네에게 깊은 이해와 존경을 표하였다. 그는 또 하이네의 〈루드비히 뵈르네에 대하여〉를 지지하며 서로 친분 관계를 지속하였다.
하이네는 사촌들과의 사랑을 모두 실연으로 끝났지만, 그의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1834년 그는 외제니 미라(Eug?ie Mirat)라는 본명을 지닌 구둣가게 판매원을 마틸드(Mathilde)라 부르며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하이네의 이무렵 연애시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만, 처음부터 열렬한 관능적인 연애로 이전과 같은 정신적인 고뇌나 동경을 경험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문학이나 시를 별로 이해하지 못했던 마틸드는 하이네를 유명한 시인으로서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사랑한, 매력적이며 야성적인 여성이었다. 오랜 교제 끝에 둘은 드디어 1841년 결혼을 하였다. 하이네는 그녀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변덕과 낭비벽만은 참지 못하여 몹시 괴로워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때부터 두통, 마비 증세, 시력장애 등이 일어나 1856년 사망할 때까지 하이네를 괴롭혔다. 1848년 하이네는 마지막 외출을 하여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로의 비너스 발밑에 쓰러져 울었다고 하는데, 그 후로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병고와 싸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1848년의 2월 혁명은 하이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토록 사회 변혁을 바랐던 그였지만, 만약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정권을 잡게 되면 예술 따위는 말살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항상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최후의 희망은 역시 공산주의에 두었던 듯하다.
병고에 시달려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으면서도 하이네는 부자유스러운 눈과 손을 사용하여 커다란 종이에 큰 글씨로 계속 시를 썼다. 《로만체로(Romanzero)》(1851)를 비롯한 만년의 시 작품들은 모두 이렇게 씌어진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한 하이네는, 마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듯이 역사나 일화에 대한 시를 길고도 자세하게 엮어 갔다. 그 사이사이엔 짧은 풍자시와 침통한 고백시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엔 까밀레 셀당이라는 여인의 방문을 받고 연애적인 서정시도 지었다.
1856년 2월 19일 오전 5시, 마틸드를 깨우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하이네는 숨을 거두었다.

◎ 하이네의 사상
하이네의 작품을 읽어 보면 그 천진난만함과 재기 넘침에 압도되고 만다. 하이네의 어느 작품을 펼쳐 보든지 그의 번득이는 기지와 날카로운 비꼼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네의 신랄함에는 어딘지 여유가 있고 인간적인 유머가 풍부하게 존재한다.
하이네는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비판해야 했다. 공격의 화살은 상대방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해져야 했다. 젊은 시절에 씌어진 서정시에서도 아이러니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표현으로 한 편의 시를 만드는 것만큼 하이네에게 쉬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만 늘어놓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식이 그에게는 붙어 다녔다. 그렇다, 이러한 의식, 끊임없는 자기비판이 순수한 서정시의 성립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괴테와 다른 점이며 시대의 차이이기도 했다.
1824년 하르츠 지방의 여행 도중 갑자기 괴테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 하이네는 즉시 바이마르로 돌아와서 그를 만났다. 당시 하이네는 너덜너덜한 여행복 차림의 학생이었고 괴테는 75세의 대문호였다. 하이네가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그런지 그때까지 그가 보내 준 시집을 괴테는 전혀 읽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는 매우 서먹서먹했다. 그 무렵 하이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바이마르에 갔더니 썩 좋은 맥주가 있더군” 하고만 씌어 있을 뿐 괴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걸로 봐서도 그가 의식적으로 괴테를 무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듬해 5월의 편지에서는, 그때 괴테가 매우 노쇠했으며 눈동자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당시, 아름다운 몽상에 젖어 인생을 향락하는 타고난 정열과 그러한 자신을 비판하며 극복하려는 이성이 그의 내부에서 대립하고 있음을 그는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러한 갈등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 괴테에게 그는 분함과 환멸을 느꼈던 것이리라. 하이네에게서 보여지는 이 ‘감정과 이성’의 대립은 20세기의 토마스 만에 이르러선 문학의 출발점으로 삼아지기까지 한다.
하이네 역시 한편으로는 ‘그리스적 감각주의’, 다른 한편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