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의생애
하인리히하이네(HeinrichHeine)는1797년12월독일뒤셀도르프의유태인집안에서태어났다.선량하고명랑한부친(삼손하이네)이늘사업의부진에서헤어나지못해,하이네는일찍부터직업전선에뛰어들어야만했다.은행의견습원이되기도하고,숙부(살로몬하이네)의도움으로장사를하기도하였으나번번이실패했다.함부르크의부호(富豪)인숙부는생활능력이없는하이네를천대하면서도꽤귀여워했던듯하다.1819년이후하이네가본대학,괴팅엔대학,베를린대학등에서공부할수있었던것은숙부의재정적인도움덕분이었다.그뿐아니라파리망명후의하이네에게상당한생활비를보낸사람도바로이숙부였다.하이네는평생특권층이나부유층에대해경멸과비난을퍼부었으면서도,부유층의일원인숙부로부터의경제적지원에는전혀구애받지않았다.
1816년그는이경제적은인의딸인,당시16세소녀아말리에(Amalie)를처음으로대하게된다.그녀에게반해넋을잃은하이네를자기마음대로기쁘게도만들고슬프게도만들던그녀는돌연지주의아들후리르렌다와결혼해버렸다.1823년에하이네는그녀의동생테레제(Therese)가언니아말리에와꼭닮은것을보고는이제그쪽으로큐피트의화살을겨냥했다.테레제는하이네의시인적기질을좋아하여언니보다는다정하게대해주었으나,결국이들의관계역시더이상진전되지못한채,그녀또한다른남자와약혼함으로써종말을고하고말았다.
실연으로끝난두자매와의사랑체험은이후줄곧자조적(自嘲的)인시풍(詩風)으로그를따라다닌다.
첫사랑그대는
아무런보람없을지라도하나의신(神)
허나보람없이두번째사랑하는이는
정말멍청이.
또다시보람없는사랑하는
나야말로그런멍청이
해,달,별웃으면나역시웃을수밖에
―그리고죽어버릴수밖에.
―〈첫사랑그대는〉
그를변호사로만들기위해숙부가학비를대주었는데도,하이네는법률학보다는문학과철학에심취하여낭만파의대가A.W.슐레겔(AugustWilhelmSchlegel)과철학자헤겔로부터큰영향을받는다.1825년대학졸업직전엔,기독교인이아니면유럽사회에서지위를얻기힘들다는생각때문에,단순한처세방편으로기독교(신교)로개종하게된다.
대학졸업과동시에그는법학박사시험에합격했으나,적당한취직자리가없어영국·이탈리아등지를여행하였다.1827년에발표한《노래책(BuchderLieder)》은그에게일약시인으로서의명성을안겨주었다.프랑스대혁명의정신을받아들인하이네는1830년7월혁명이일어난다음해질식할듯한독일에서탈출,파리를생활터전으로삼는다.
그후10년동안그는《낭만파(DieRomantischeSchule)》,《독일의종교와철학의역사(ZurGeschichtederReligionundPhilosophieinDeutschland)》등의저술을통해독일의정신을비판적으로프랑스에소개하고,또한프랑스의정치적·사회적상황을독일의《알게마이네자이퉁(AlgemeineZeitung)》지(誌)에연재하는등,프랑스와독일의문화적교류를위한교량역할을수행하였다.
그동안그는‘자유를위한전사(戰士)’로서의자각을더욱더강하게지니게되는데,단지독일내의국수적인애국자들뿐만아니라동지였던유태인망명사상가뵈르네(LudwigB꿹ne)까지도서슴지않고공격하여일반인들의비난을받기도했다.하이네는항상학대받는자,가난한자의편에서서싸워왔지만,아름답고풍요로운것,싸구려나가짜가아닌고급품을좋아하고시와음악을아끼고사랑하는기질을지녔기때문에,이데올리기만신봉(信奉)하는혁명가에게는감각적으로반발을느꼈다.노동자계급의투사봐이토링이무례한태도로옥중(獄中)이야기를했을때,하이네가무의식적으로두서너걸음뒤로물러섰다는일화(逸話)는그의일면을시사해준다하겠다.반면에21세연하인마르크스는“시인을보통사람과똑같이취급할수는없다”고하여,하이네에게깊은이해와존경을표하였다.그는또하이네의〈루드비히뵈르네에대하여〉를지지하며서로친분관계를지속하였다.
하이네는사촌들과의사랑을모두실연으로끝났지만,그의열정은결코식지않았다.1834년그는외제니미라(Eug럑ieMirat)라는본명을지닌구둣가게판매원을마틸드(Mathilde)라부르며열렬히사랑하게된다.하이네의이무렵연애시가없는것이이상하지만,처음부터열렬한관능적인연애로이전과같은정신적인고뇌나동경을경험할틈이없었기때문이아닌가추측된다.문학이나시를별로이해하지못했던마틸드는하이네를유명한시인으로서보다는한인간으로서사랑한,매력적이며야성적인여성이었다.오랜교제끝에둘은드디어1841년결혼을하였다.하이네는그녀의모든점이마음에들었지만,변덕과낭비벽만은참지못하여몹시괴로워하고서로다투기도하였다고한다.게다가그때부터두통,마비증세,시력장애등이일어나1856년사망할때까지하이네를괴롭혔다.1848년하이네는마지막외출을하여루브르박물관에서미로의비너스발밑에쓰러져울었다고하는데,그후로는일어나지도못한채병고와싸우면서살아가게된다.
1848년의2월혁명은하이네에게커다란충격을주었다.그토록사회변혁을바랐던그였지만,만약프롤레타리아계급이정권을잡게되면예술따위는말살되어버리지않을까하는불안에항상떨고있었다.그러나그러한두려움을지니고있었으면서도최후의희망은역시공산주의에두었던듯하다.
병고에시달려꼼짝못하고누워있으면서도하이네는부자유스러운눈과손을사용하여커다란종이에큰글씨로계속시를썼다.《로만체로(Romanzero)》(1851)를비롯한만년의시작품들은모두이렇게씌어진것이다.고통스러운현실로돌아가는것을두려워한하이네는,마치아이들에게이야기를해주듯이역사나일화에대한시를길고도자세하게엮어갔다.그사이사이엔짧은풍자시와침통한고백시도섞여있었다.그리고죽기직전엔까밀레셀당이라는여인의방문을받고연애적인서정시도지었다.
1856년2월19일오전5시,마틸드를깨우지말라는부탁과함께하이네는숨을거두었다.
◎하이네의사상
하이네의작품을읽어보면그천진난만함과재기넘침에압도되고만다.하이네의어느작품을펼쳐보든지그의번득이는기지와날카로운비꼼을만나지않을수없다.그럼에도불구하고하이네의신랄함에는어딘지여유가있고인간적인유머가풍부하게존재한다.
하이네는진실을추구하는인간으로서자신을끊임없이의식하고비판해야했다.공격의화살은상대방에게뿐아니라자신에게도향해져야했다.젊은시절에씌어진서정시에서도아이러니가나타나는것은바로이때문이다.아름다운말과아름다운표현으로한편의시를만드는것만큼하이네에게쉬운일은없었다.그러나아름다운말만늘어놓는것은진실과는거리가멀다는의식이그에게는붙어다녔다.그렇다,이러한의식,끊임없는자기비판이순수한서정시의성립을방해하고있었던것이다.그것이괴테와다른점이며시대의차이이기도했다.
1824년하르츠지방의여행도중갑자기괴테를만나고싶은생각이든하이네는즉시바이마르로돌아와서그를만났다.당시하이네는너덜너덜한여행복차림의학생이었고괴테는75세의대문호였다.하이네가유명해지기전이어서그런지그때까지그가보내준시집을괴테는전혀읽지않고있었다.두사람사이는매우서먹서먹했다.그무렵하이네가친구에게보낸편지에“바이마르에갔더니썩좋은맥주가있더군”하고만씌어있을뿐괴테에대해서는전혀언급되지않은걸로봐서도그가의식적으로괴테를무시하고있었음을알수있다.이듬해5월의편지에서는,그때괴테가매우노쇠했으며눈동자만밝게빛나고있었다고쓰고있다.
당시,아름다운몽상에젖어인생을향락하는타고난정열과그러한자신을비판하며극복하려는이성이그의내부에서대립하고있음을그는생생하게인식할수있었다.그런데자신의그러한갈등을전혀이해하려들지않는괴테에게그는분함과환멸을느꼈던것이리라.하이네에게서보여지는이‘감정과이성’의대립은20세기의토마스만에이르러선문학의출발점으로삼아지기까지한다.
하이네역시한편으로는‘그리스적감각주의’,다른한편으로는‘기독교적정신주의’사이를오가며방황하게된다.파리로옮겨간후로하이네는생시몽주의(Saint-Simonisme)사상가앙팡탱(Barth럏emyProsperEnfantin)을만나‘범신론적(汎神論的)감각주의’에열중한다.〈신은존재하는모든것속에〉란시에서그는물질과감각의존엄성을노래하고있다.
신은존재하는모든것속에,
바로우리의입맞춤속에있는것이다.
하이네는“괴테의시대는지났다”고하여예술의새로운시대를선언했다.인간은역사적이고사회적인존재이며,모든인간이인간답게살기위해선혁명을해야한다는강한신념이그로하여금예술의새시대를선언하게끔만들었다.하지만귀족계급은이인간해방을방해하고있다.하이네는그러한귀족계급이막강한세력으로존재했던프로이센을신랄히비판했다.거기에서는또한유태인에대한차별대우가심했기때문이기도했다.
비록하이네가태어나기전이었지만1789년의프랑스대혁명은프랑스뿐만아니라유럽전체를뒤흔들었다.뒤셀도르프는혁명군에의해1795년부터1801년까지,그리고나폴레옹황제군에의해1806년부터1813년까지지배되었으므로하이네는어렸을때부터프랑스적인자유로운사상이몸에배어있었다.
독일연방은각기통일에의강렬한소망을품고있었지만맹주(盟主)를프로이센으로할것인가,오스트리아로할것인가등여러구시대적인생각에서헤어나지못해혼란만더해갔다.그러한혼란의와중에서자유스런비판마저금하는독일의분위기에견디다못해하이네는드디어파리로자발적인망명의길을떠났으나,자유로운사회의성립을기다려독일로귀국하려는그의소망은이루어지지않은채결국망명지파리에서사망하고만다.이러한그를두고조국을배반하였다고말하는사람도있지만,타국에서조국을그리워하는그의노래를읽은사람은,“애국을싫어해서가아니다.그러나독일에서의애국주의는바로배타주의다”라고한하이네의참뜻을이해할수있을것이다.
◎하이네의시
그러면이제하이네의시에대해서알아보자.하이네하면순정,가련하고감미로운감상적연애시인으로만생각하는사람들이많은데,그것은아마도지금까지우리나라에서아름답고우아한,낭만적인연애찬미의시인으로서그를소개하고있고,또한그의시도순전히그런쪽으로소개되고이해되었기때문일것이다.
필자가하이네의시에관심을가지고탐독한것은해방직후의격동과혼란기에,모순투성이인그의격정적시에서묘한공감을발견했기때문이었다.하이네는두말할필요도없이순수하고격한감정을지닌서정시인이다.그러나서정시의전형적인청렬(淸冽)한감정고백은그에게서별로찾아볼수가없다.오히려하이네에게서느끼게되는것은격한자신의감정을언제나스스로자신의시속에서의식하고멋쩍게생각한다는것이다.그것은두번이나거듭된실연의체험때문이었을지도모른다.아말리에에대한덧없는사랑은《노래책》에서노래되었으며,〈귀향〉에서도그추억을되새김질하고있다.테레제에대한감정은〈귀향〉,〈북해〉등에서찾아볼수있다.《노래책》에비해〈귀향〉이후의작품에자조와풍자가짙게깔려있는것도당연하다하겠다.
또한우리가주의해야할것은,아말리에와테레제뿐만아니라뮌헨에서알게된포토마백작부인,그리고그외의직업적인여성들과의저급한연애의시가의식적으로섞여있다는점이다.기품있는아가씨나부인들에대한앙갚음으로,그리고가난한자와가련한자에대한공감에서,또한―아마도이것이가장큰이유일지모르겠지만―일찍부터하이네의내부에잠재하던건강하고관능적인인생향수의욕구에서이러한정사(情事)에깊이빠져그것을노래한것으로생각된다.
하이네는순수하고진지한기분으로노래하다가,시의마지막한줄에서애써쌓아올린감흥을송두리째부숴버리듯이냉소적인언어를사용하곤한다.몰입된자신을냉정한자신으로되돌리려는욕구때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