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 시집

김억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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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일제하에 김소월 스승이었던 안서 김억 시인의 창작 시집~
안서 김억(1896~1950?)은 우리 문학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근대시를 발표한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근대적인 시집을 처음 상재한 작가이며 한때 그의 손으로 이루어진 사화집의 수가 가장 많은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엮어낸 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는 1921년 3월에 상재되었다. 《오뇌의 무도》 이후 그는 자작自作과 번역 시집을 합해 모두 20여 권에 이르는 사화집詞華集(1인 또는 다수 작가의 문장을 발췌해 엮은 책)을 보여 주었다. 물론 8·15 이후 본격적으로 활약이 시작된 시인 가운데는 이보다 더 많은 양의 사화집을 상재한 예도 있으나, 일제치하인 시인 가운데 김억처럼 많은 숫자의 사화집을 상재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해외시의 수입과 수용에도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그는 시론을 중심으로 한 해외 문학이론의 수입, 소개에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때 에스페란토의 보급과 교육에 힘쓴 바 있었는가 하면 김소월金素月과 나도향羅稻香을 필두로 몇 사람의 우수한 시인과 작가를 우리 문단에 소개하거나 그 문단활동을 도운 공로자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한국문학사에 끼친 김억의 발자취는 매우 뚜렷하며 다양하다. 김억이 가장 크게 비중을 둔 것은 번역이 아니라 여기에 소개한 창작시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김억외

1896년 본관경주,음력10월30일평안북도정주군관주면관섭리1798번지에서아버지김기범金基範과어머니김준金俊사이에서태어났다.안서는이곳에서10대의중반까지살다가오산학교에진학하면서거주지를옮겼다고전한다.본명은희권熙權인데후에‘억億’으로개명,아호는안서岸曙.
1904년 동향인박진사댁으로불리던양가집규수인16세박씨와결혼하다.
1907년 한문을배우다가집안의반대를무릅쓰고상투를자르고오산학교에입학.오산학교는민족운동의열기에가득한곳이었는데김억은이때부터문학을하기로결심한듯하다.
1913년 오산학교졸업.집안이넉넉한살림이어서동경유학을결심하고준비를한듯보인다.
1914년 일본동경에있는게이오대학(慶應大學)문과에입학,2월《학지광》창간호에창작시발표,이것이활자화된작품으로는최초의것이다.
1915년 《학지광》5월호에시〈야반〉〈나의적은새야〉〈밤과나〉등을발표.이때부터이광수,주요한,김여제등의동경유학생문사와교의를가졌다.
1916년 부친의사망으로게이오대학을중퇴,고향으로돌아와오산학교교사로취임.이때영변의숭덕학교에잠시머물러있었다고하나자세한것은밝혀져있지않다.6세연하인김소월과사제지간의연을맺은것도이때이다.
1918년 《태서문예신보》창간과함께베를렌느를비롯한프랑스상징주의시와러시아문학작품을본격적으로번역소개하는한편창작시발표.이무렵부터문단활동이본격화되었다.
1919년 《태서문예신보》에창작시발표.
1920년 석주명등과함께서울에서에스페란토학회를발기하고주재.황석우,남궁벽등과함께동인을결성하여《폐허》를창간하고창작시를발표했으며중심멤버로활약.이어김동인,주요한이관계한《창조》에참여하여김소월을소개했다.이인연은뒤에창조파가발간한《영대靈臺》에이어졌다.
1921년 3월,우리나라최초의근대적시집이며번역시집《오뇌의무도》를간행.문단안팎의주목을크게받았다.
1922년 천도교에서발행한종합지《개벽》이창간되다.김억은그의문예란을담당,활발하게창작시발표.
1923년 4월,타고르원작《기탄자리》를이문관에서출간.6월우리나라근대시집으로서최초의창작시집《해파리의노래》와《오뇌의무도》개정판을조선도서에서간행.
1924년 가을,《동아일보》문예부장이었던유광열의후임으로취임.8월타고르의《신월新月》《원정》을출판,또한아더시몬즈의《잃어진진주》를문우당에서내어문단의화제를모았다.
1925년 3월,시집《금모래》를조선문단사에서발간,9월시집《봄의노래》를매문사에서발간,새로창간된《가면》의발간에참여그것을주재함.이때소월의작품을많이실었으나지금이잡지가전하지않아자세한작품목록은알수없다.
1927년 3월,1923년출간했던타고르의《기탄자리》를게재한《고통의속박》을동양대학당에서간행.
1929년 차남상칠尙七고향인정주에서출생.4월시집《안서시집》을한성도서출간.
1930년 《매일신보》의문예란을담당,중앙방송국에취임.중앙방송국은8·15직전까지근무하여생활의근거가되었다.
1933년 《모범서한문模範書漢文》을한성도서에서간행.
1934년 9월,역시집《망우초》를한성도서에서간행.
1936년 1월,서울종로구계동54번지에서상숙尙淑출생,부인박씨사망.
1937년 5월,차녀상주尙珠출생.
1939년 12월,김소월사후그의유작을정리한《소월시초》를박문서관에서출간.이때최고상태의소월시몇편이김억의손질로시집에수록되었다.
1941년 7월,시집《안서시초》가박문서관에서간행.
1943년 《동심초同心草》을조선출판사에서간행.
1944년 봄,신인순申仁順과재혼,4월조선여류한시선집으로《꽃다발》을박문도서에서간행,8월《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2권을한성도서에서출간,12월시집《야광주夜光珠》를조선출판사에서간행.
1946년 중앙방송국부국장직에서퇴임,도서출판수선사首善社의편집주간으로취임,여기서백철의《조선신문학사조사朝鮮新文學思潮史》,고정옥高晶玉의《조선민요연구朝鮮民謠硏究》등양서가발간되었다.또한6·25전쟁때까지육군사관학교와공군사관학교강사,한편서울여상고에도출강,8월3녀상란尙蘭출생.
1947년 2월,시집《먼동이틀제》를백민문화사에서출간,4월여류한시를번역한역시집《금잔디》를동방문화사에서출간.
1948년 1월,김소월의작품집《소월민요집》을산호장에서출간,2월시집《민요시집》을한성도서에서출간.《민요시집》은김억이중기이후부터쓴서정민요시들을모은것으로이시인의대표창작시집이다.
1949년 3월,번역시집《옥잠화玉簪花》를이우사에서출간.
1950년 6·25전쟁이일어나자서울종로구계동54번지자택에있다가9·28수복직전북쪽기관원에의해연행되었다.그후조국평화통일위원으로이름이나타났다.지금현재는생사불명.

■단행본
《오뇌懊惱의무도舞蹈》,광익서관,1921.3.
《기탄자리》,이문당,1923.4.
《해파리의노래》,조선도서,1923.6.
《오뇌의무도》(개정판),조선도서,1923.8.
《신월新月》,이문당,1924.4.
《잃어진진주眞珠》,평문관,1924.8.
《원정園丁》,애동서관,1924.12.
《금모래》,조선문단사,1925.3.
《봄의노래》,매문사,1925.9.
《안서시집岸曙詩集》,한성도서,1929.4.
《사상만필沙上漫筆》,백열사,1925.11.
《모범서한문模範書漢文》,한성도서,1933.3.
《망우초忘憂草》,한성도서,1934.9.
《소월시초素月詩抄》,박문서관,1939.12.
《안서시초岸曙詩抄》,박문서관,1941.7.
《동심초同心草》,조선출판사,1943.12.
《꽃다발》,박문서관,1944.4.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백낙천집白樂天集》,한성도서,1944.8.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일본단가번역),1944.8.
《야광주夜光珠》,조선출판사,1944.12.
《먼동이틀제》,백민출판사,1947.2.
《금잔디》,동방문화사,1947.4.
《민요시집》,한성도서,1948.12.
《옥잠화玉簪花》,이우사,1949.3.

목차

■이책을읽는분에게·9

《해파리의노래》에서·13
피리|가을|눈|별낚으기|고적
눈|하품론|입|탄식
새빨간피빛의진달래꽃이질때|황포의바다
참살구|죽음|언제오셔요|삼월에도삼짇날|별후
설은희극|기도|탈춤|실제|사랑의때
때|전원의황혼|북방의따님|나의이상

《안서시집》에서·51
황해의첫봄|여봅소서관아가씨|오다가다
비|물결|눈|별|지는몸|산고개|곽산노을|봄비
야화|거울|포도|무심|해당꽃|봄바람
송경서|어느친우에게|춘향이와이도령
꿈|좁은잠자리|장미꽃

《민요시집》에서·80
명주딸기(1)|명주딸기(2)|물레|세월아네월아
장산곧이|삼수갑산|새라새봄|여름바다|동로방천
넝쿨타령|사공의아내|그래옳소누나님|삼팔선
서관아가씨|꿈길|무심|갈매기|내고향

《오뇌의무도》에서·110
베르렌의시·가을의노래|흰달|작시법|도시에나리는비
구르몽의시·흰눈|낙엽
싸멘의시·반주|가을
뽀드레르의시·죽음의즐거움|구적
이예츠시·낙엽|꿈
모레쓰의시·가을은또다시와서
시몬즈의시·사랑과잠
쁘렉크의시·장미꽃은병들었어라
왓손의시·새

《기탄자리》에서·141

《꽃다발》에서·157
송별|시와술|꿈|반달|고향을돌아보며
가을은깊어가고|봄바람|아기를잃고

■연보·166

출판사 서평

|이책을읽는분에게|

안서김억(1896~1950?)은평안북도정주에서태어났으며그곳고향에서10대중반까지살다가오산학교에진학하면서거주지를옮긴것으로전해진다.그는우리문학사상최초로본격적인근대시를발표한시인이었다.또한그는근대적인시집을처음상재한작가이며한때그의손으로이루어진사화집의수가가장많은시인이기도했다.그가엮어낸역시집《오뇌懊惱의무도舞蹈》는1921년3월에상재되었다.
또한《오뇌의무도》이후그는자작自作과번역시집을합해모두20여권에이르는사화집詞華集(1인또는다수작가의문장을발췌해엮은책)을보여주었다.물론8·15이후본격적으로활약이시작된시인가운데는이보다더많은양의사화집을상재한예도있으나,일제치하인시인가운데김억처럼많은숫자의사화집을상재한예는일찍이없었다.
그는프랑스상징파시인들의작품을중심으로한해외시의수입과수용에도독자적위치를차지하고있다.이와아울러그는시론을중심으로한해외문학이론의수입,소개에도뚜렷한발자취를남긴시인이다.뿐만아니라그는한때에스페란토의보급과교육에힘쓴바있었는가하면김소월金素月과나도향羅稻香을필두로몇사람의우수한시인과작가를우리문단에소개하거나그문단활동을도운공로자이기도하다.
한마디로한국문학사에끼친김억의발자취는매우뚜렷하며다양하다.김억이가장크게비중을둔것은번역이아니라그의창작시였다.우선그는문단진출과함께창작시로그성과를문단안팎에묻고자한사람이다.그가해외시의수입을시도하고그밖에상당수의비평을쓴것역시창작시를위한방편일수있었다.그리하여이분야에서그가기울인노력은여느경우와크게다른것이었다.
김억이최초에발표한작품은1914년도로거슬러올라간다.그러나이것은과도기적인것이었다.그가제모습을갖춘작품을내놓은것이1918년11월《태서문예신보》의〈봄〉〈봄은간다〉부터이다.이제까지우리는한국근대시를최초로본격화한시인으로주요한을들어왔다.그에의해서우리시가육당六堂·고주孤舟등신체시의과도기적허물을벗고본격적인의미의근대시가되었다는판단에서였다.
그러나우리주변의이와같은판단은김억의초기활동이고려되는경우다소간의수정이불가피해진다.즉발표시기로볼때〈봄〉과〈봄은간다〉는적어도주요한의처녀작들인〈샘물이혼자서〉나〈복사꽃〉또는〈불노리〉보다한발앞서있었다.물론여기서작품의질이문제가될수는있을것이다.김억의〈봄은간다〉가아직부분적으로미숙한것이었음에반해서주요한의처녀작들은처음부터그나름의맵시를갖추고있었다고볼수있다.
한편으로한국현대시문학사에등장하는모든시인들이그런것처럼김억의활동에는평가되어야할부분과함께비판이필요한부분도있다.가령해외문학이론을수입·소개한경우그는원전들을음미하고거기서얻은결론으로논지를꾸려나간것이아니라가벼운소개정도의글에의거한자취를더많이드러내고있다.김억이그의번역시에서보인의미와문제점은창작시의경우에도거의비슷하게되풀이됨을알수있다.한국근대시의형성기에보인김억의시는그의시론과다소어긋나는것이었다.시론에서그는한국적인것의추구를필요한것이라고보았다.그러했음에도불구하고실제작품은다분히서구편향의것이되었던것이다.후에그는이에대한성찰도가진듯하다.
가령《조선문단》에연재한〈작시법作詩法〉의한부분에서그는시를형태또는언어의형상화를통한예술화라고보았다.그리하여그가지향하는올바른시,좋은시가‘조선어의성질과조선사람의사상과감정을가장근대적으로표현할때’달성이가능한목표라고믿기에이르렀다.이무렵에김억은그가생각한목표가가능한한고운울림을주도록우리말을다듬어쓴다든가시의형태를정형에가깝도록만드는일,그리고작품의바닥에순박한정서를깔아두는것으로달성될수있으리라고믿은듯하다.
이책은안서김억의창작시를위주로구성했으며뒷부분에번역시를일부덧붙여엮었음을밝힌다.김억의작품을이해하는데좋은문고본도서가되리라확신한다.
-엮은이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