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 2

율리시즈 2

$20.00
저자

제임스 조이스

1882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에 예수회가 경영하는 클롱고우스 우드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 서민적인 예수회 계통 학교인 더블린의 벨비디어 학교로 옮긴다.1898년 열여섯 살 때부터 1902년 스무 살 때까지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다녔고 1902년에 현대어문학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그는 철학과 언어를 공부했으며, 1900년 아직 대학생이었던 무렵,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마지막 연극에 관한 긴 논문을 '포트나이트리 리뷰'지에 발표했다. 당시 그는 서정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나중에 '실내악'이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그 후 의학공부를 하러 파리로 떠났다가 1904년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일시 귀국하지만 그해 노라 바나클이라는 여인과 함께 다시 유럽 대륙으로 떠났다. 그들은 1931년 정식으로 결혼했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그들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함께 살았으며 조이스는 그곳의 벨리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09년과 1912년에 그는 마지막으로 아일랜드를 방문했는데, 이는 '더블린 사람들'의 출판을 주선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품은 1914년 영국에서 마침내 출판되었다. 1915년 한 해 동안 조이스는 그의 유일한 희곡 '망명자들'을 썼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1916년에 출간되었다. 같은 해 조이스와 그의 가족은 스위스의 취리히로 이사했으며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작업하는 동안 그들은 심한 재정적 빈곤을 겪어야 했다. 연재는 1918년에 시작되었으나 작품의 외설로 인한 시비와 고소로 1920년에 중단되었다. '율리시스'는 1922년 파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조이스 가족은 세계 양차대전 기간 동안 그곳에 체류했다. 1939년에 '피네간의 경야'가 출간되었고, 이어 조이스 가족은 스위스로 되돌아갔다. 두 달 뒤, 1941년 1월에 조이스는 장 궤양으로 사망했다. '초상'의 초고의 일부인 '영웅 스티븐'이 1944년 저자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목차

제2부 계속

9. 국립도서관 / 스킬라와 카립디스
10. 거리 / 배회하는 바위들
11. 오먼드 주점 / 세이렌
12. 바니 키어넌 주점 / 키클롭스
13. 샌디마운트 해변 / 나우시카

출판사 서평

"《율리시즈》를 읽지 않고서 20세기를 말하지 말라.\" 세계 굴지의 출판사인 미국의 랜덤 하우스가 [20세기 최고의 영문소설 100위]를 선정,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즈》가 금세 기 최고의 영문소설 1위에 선정되자 최근 독서문화계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말이다. 금세기 최고의 영문 소설로 선정된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율리 시즈》는 1920년대 초 출간후 10여 년간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인해 금서로 분류되어 판금 조치를 당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더니즘의 기원\"이라는 격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