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중인들 정조의 르네상스를 만든 건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이었다

조선의 중인들 정조의 르네상스를 만든 건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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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방위 재능으로 조선의 문예부흥과 근대화를 주도한 중인!
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에 있는 중간 계층으로 사대부에 훨씬 미치지 못하면서 평민이나 천민에게 존중받지 못한 경계인이었다. 비록 왕실과 사대부 양반을 보좌하거나 나라의 한직을 채우는 인물로 취급받았지만 그들의 일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조선의 중인들』은 저자 허경진 교수가 조선 후기 위항문학을 연구하면서 수집한 수많은 중인 관련 기록과 문헌을 토대로 조선의 문예부흥과 근대화를 주도한 중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중인들이 모여 만든 문학동인 ‘송석원시사’는 조선 후기 서민문학을 이끌었으며 역관시인 홍세태와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은 일본에 한류열풍을 일으킨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중인의 전방위 재능과 비범함은 예술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중인은 열린 사고로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문화 메신저의 역할, 과학적 사고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온몸으로 실천한 신지식인의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성리학의 탁상공론에 빠져 정쟁만을 일삼던 사대부도 실천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인 계층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몇몇 왕과 사대부는 중인의 재능과 실천적 사고를 높게 평가하며 측근에 두고 교류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로 중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등이 있지만 중인에 재능에 대한 신뢰는 양반뿐 아니라 왕이나 왕족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조이다. 정조는 서얼 출신 지식인을 등용하여 그들과 함께 신학문을 연구하며 문예부흥의 초석을 쌓았다.
중인과 친분을 두텁게 쌓아온 왕족 중엔 의외의 인물이 숨어있다. 바로 ‘흥선대원군’이다. 대원군은 안동 김씨를 비롯한 권력층 경제를 위해 아전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아전정치’를 펼쳤다. 중인을 정치적 야욕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이는 중인 출신 관리들의 탁월한 행정 능력을 인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

허경진

저자허경진은피난시절목포에서태어났다.돌도되기전에인천으로올라와학교를다녔지만,기억에도없는목포를고향으로생각하며살았다.고교시절부터대학을졸업할때까지시를썼고‘요나서’라는시로연세문학상을받기도했다.그러던어느날도서관고서실에쌓인한시문집들을우연히읽게되면서한시의매력에빠지게되었다.결국대학원전공도한문학으로바꾸면서,한시를읽고외우고해석하는일로이십대를보냈다.한시의매력에빠지면서그가자연스럽게하게된일은,한시를우리말로쉽게풀어내는것이다.당시창작과비평사나문학과지성사에서현대시인선집을총서로출간하는것을보고,‘한국의한시’라는시리즈를기획·집필하였다.1986년에시작된‘한국의한시’시리즈는최치원에서황현에이르기까지50권이나왔다.앞으로100권을채우겠다는것이그의꿈이다.
요즘그는한시연구외에도고전문학전반에걸쳐선조들의삶과문학활동을연결하는공부에한창이다.이미대전과충남지역의누정문학연구서를냈고,『한국의읍성』이란사진집도냈다.또조선시대사대부의문학인생을다룬『사대부소대헌호연재부부의한평생』과당시문인들의어린시절글공부를소재로재미있게쓴『한시이야기』라는책을내기도했다.그외『손암정약전시문집』『조선평민열전』『허균평전』『서유견문』『삼국유사』『청소년을위한연암박지원소설집』『주해천자문』등의책을냈으며,이밖에도외국도서관에소장된우리나라고서를다룬『하버드대학옌칭도서관의한국고서들』과『시경』에나오는식물을고증·해설한『시명다식』(공역)은인문탐서가의필독서로꼽힌다.요즘은조선통신사관련기록을세계기록유산으로등재하기위해활동중이다.목원대학교국어교육과교수를거쳐,지금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우리가살고있는지금이바로중인이꿈꾸던시대
1.인왕산굽이진기슭에서시처럼산문학동인
중인들의터전,한양인왕산
인왕산을노래한시문학동인‘송석원시사’
겸재정선이즐겨그리던필운대와육각현
검서관유득공부자의필운대풍월
인생을함께한‘벽오사’동인
김홍도그림으로표지를꾸민중인들의시화집
가난한중인들의시선집을펴낸홍세태
180년에걸쳐출판된중인들의시선집
조선후기최고의출판편집인장혼
장혼이한평생설계한행복한집‘이이엄’
별나게살았던중인들의전기집《호산외기》
명필마성린의자서전에담긴중인의한평생유흥
중인지식인이꿈꾼인왕산공동체
2.세상의우여곡절을그리고노래한예술인
신필(神筆)의화원김명국(1)
신필(神筆)의화원김명국(2)
왕실의광대가되기를거부한최북
이용후생의화가변박
직업적인화가이기를거부한조희룡
조선최고의골동서화수집가오경석
우리나라서화를집대성한오세창
인왕산호걸지사의맹주,가객박효관
한양의유흥가를누빈군악대용호영의리더이패두
3.계급의질곡에맞서시대를끌어안은전문지식인
침술의대가허임
신의(神醫)라불린백광현
고약처방으로종6품까지오른피재길
전염병마마로부터왕실을구한유상
새로운해시계를만든천문인김영
우리나라최초의신문기자오세창
중인통청운동에앞장선율관장지완
청렴강직한호조아전김수팽
진정한호인(好人)임준원
신분의벽을넘지못한천재국수(國手)유찬홍
예배장소를제공한첫번째순교자김범우
천주교의지도층으로활약한중인들
4.대륙과바다를넘나들며신세계를꿈꾼역관
17·18세기한류를일으킨역관시인홍세태
요절한천재역관이언진
통신사최고의무예사절마상재
조선장교최천종살인사건
나라의운명을바꾼홍순언
열두차례나중국을오간이상적
양요를경고한오경석
최초의미국대학졸업생변수
136수의시로신세계를묘사한김득련
실용회화책으로일본어를배운왜학역관
개화기의역관양성소,외국어학교
역관의수난사_외국어교육과험난한뱃길
왕비(장희빈)까지배출한역관부자인동장씨
조선최고의갑부변승업과그후손
부록/조선시대중인의수와사회적지위
한양에중인은얼마나살았을까
양반에60년뒤진중인의신분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문·사·철을뛰어넘는전방위재능으로
조선의문예부흥과근대화를주도한중인(中人)다큐멘터리
지금으로말하면의료(의원),법률(율관),금융(계사),외교(역관),천문지리(음양과),미술(화원),음악(악공),문학(시인)등전문지식분야와예술및문화전방위에서활약한중인이없었더라면정조도,조선도없었다.
중인은양반과평민사이에있는중간계층으로알려져있지만,사대부에훨씬미치지못하면서평민이나심지어천민에게도존중받지못한경계인이었다.그럼에도중인가운데는문·사·철을뛰어넘는비범...
문·사·철을뛰어넘는전방위재능으로
조선의문예부흥과근대화를주도한중인(中人)다큐멘터리
지금으로말하면의료(의원),법률(율관),금융(계사),외교(역관),천문지리(음양과),미술(화원),음악(악공),문학(시인)등전문지식분야와예술및문화전방위에서활약한중인이없었더라면정조도,조선도없었다.
중인은양반과평민사이에있는중간계층으로알려져있지만,사대부에훨씬미치지못하면서평민이나심지어천민에게도존중받지못한경계인이었다.그럼에도중인가운데는문·사·철을뛰어넘는비범함으로문예부흥과근대화를주도했던지식인이여럿있었다.
중인들이모여만든문학동인‘송석원시사’는조선후기서민문학을이끌었고역관시인홍세태와「달마도」를그린김명국은일본에한류열풍을일으킨예술가였다.
출판에평생을바친장혼은중국의『천자문』을대신할교과서『아희원람』,『계몽편』을편찬하였고,고약전문가피재길은부스럼으로잠못이루던정조를사흘만에완치시켜종6품까지올랐다.의원허임과백광현은신기에가까운침술로수많은백성을살렸고,역관변수는조선인최초로미국에서대학을졸업한학사였다.바둑천재유찬홍은대적할자없던불패의국수國手였으며,민족신문‘만세보’를발행한오세창은조선의1세대신문기자였다.
계층의벽을디딤돌삼아
조선의르네상스를만든사람들
실학자이중환은인문지리서《택리지》의서론인‘사민총론’에서백성을사(士)·농(農)·공(工)·상(商)으로나누어다음과같이논하였다.
옛날에는사대부가따로없었고,모두백성(民)이었다.백성에는네가지가있는데,선비가어질고덕이있으면임금이벼슬을시켰고,벼슬하지못한자는농사를짓거나장인(匠人)이되거나장사꾼이되었다.
즉,이중환은사·농·공·상을신분으로보지않고직업으로보면서,“사대부라고하여농·공·상을업신여기거나농·공·상이되었다고사대부를부러워한다면,이는모두근본을모르는자들이다”라고하였다.그러나이중환의이러한논지는당시신분차별이매우심각했음을방증하는대목이기도하다.특히사·농·공·상으로나눈이중환의분류어디에도중인이속할수있는곳은없었다.
흔히‘반쪽양반’이라불리는서얼은육조(六曹)와삼사(三司)등의중앙관직으로진출하는것이제도적으로금지되었기에,대부분역관·의원·율관·산관·화원등의기술직관원이나하급행정관리인경아전과서리에종사했다.서얼출신이기술직관원이나하급행정관리가되면그후손들도대를이어하급관리에진출하는것이하나의관례였다.서얼출신의관리가나라에큰공을세워고관으로승진하여양반신분을얻기란흔치않은일이었기에,하급관리로라도가계를이어가야했기때문이다.그런가운데이들도자연스럽게하나의신분층을형성하게되면서중인계급을이루게된것이다.
중인은왕의주치의인어의,도화서화원,외국에파견되는사신을통역하는역관,호조와형조에근무하는서리와율관등왕실및조정과밀접한관련을맺고있는직업적특성때문에,생활터전도궁궐근처에있어야했다.따라서많은중인들이궁궐뒤인왕산기슭굽이진골짜기나청개천일대의좁은골목에마을을이루고살았다.중인을위항인(委巷人)이라부르게된것은,‘마을가운데꼬불꼬불한(委)작은길가(巷)에사는사람(人)'이라는뜻으로,그들의거처에따른것이다.
정조의르네상스를만든건
사대부가아니라중인이었다
중인은비록왕실과사대부양반을보좌하거나나라의한직을채우는인물로취급받았지만,그들의일과예술에대한열정은실로대단했다.중인은특히자신들이살았던인왕산을배경으로시를쓰고그림을그리는등다양한예술적활동을꽃피웠다.수려한경관으로한양최고의명승지로꼽히던인왕산은신분차별과격무에지친중인들의유일한안식처였다.
중인은인왕산기슭에그들만의서재를꾸미고그곳에서문학동인이자문화공동체인시사(詩社)를결성하여,시를지으며한평생풍류를즐기며살았다.문학이중인을문화공동체로결집시킨과외활동이었다면,그림과음악은그들의대표적인직업가운데하나였다.특히화원은국내보다도일본에서의활약이대단했는데,‘달마도’로유명한신필(神筆)김명국은역관시인홍세태와함께일본에한류열풍을일으킨장본인이었다.당시일본인은조선의문장가나화원의시와그림에광적으로매료되었는데,조선통신사사절단으로방문한문장가와화원은가는곳마다최고의인기를누리며국빈대접을받았다.당시의화원가운데는돈과권력에휘둘리지않고붓끝을곧추세웠던최북같은인물도있었다.그는그림을강요하는양반고관에맞서스스로자신의눈을찔러가며권력과타협하지않은대쪽같은예술가였다.
중인의전방위재능과비범함은예술분야에만국한하지않았다.그들은탁월한외국어실력과열린사고로서양의새로운문물을소개하는문화메신저였고,자신의목숨을걸고전염병에걸린수많은사람을구해낸용기있는히포크라테스였으며,과학적사고로실사구시와이용후생을온몸으로실천한신지식인이었다.성리학의탁상공론에빠져정쟁만을일삼던사대부도실천적지식으로무장하여사회적영향력이커져가는중인계층을경계하지않을수없었다.실제로몇몇왕과사대부는중인의비범한재능과실천적사고를높게여기며측근에두고교류하기도하였다.
조선최고의명필추사김정희는중인과교류가깊었던양반선각자이다.서얼출신검서관박제가의제자이기도한추사는,송석원시사의좌장천수경의부탁으로1미터가넘는화폭에예서체로‘松石園’석자를써주기도했다.추사는또한역관오경석,이상적,화원조희룡을제자로삼으며친하게지냈는데,1840년경제주도유배지에찾아온이상적에게그의최고걸작‘세한도’를그려주기도했다.
연암박지원역시중인과친분이두터웠던양반실학자가운데한사람이다.실제로연암의소설에는중인이자주등장하는데,‘허생전’에서가난한양반허생에게밑천을대준변씨는중인출신갑부변승업의조부를모델로한인물이다.연암은요절한천재역관이언적의전기‘우상전’을짓기도했다.
중인의재능에대한신뢰는양반뿐아니라왕이나왕족에게서도엿볼수있는데,그대표적인인물이정조이다.정조는당시서얼금고법으로인해중인이벼슬에오르지못하는것을안타깝게여겨,규장각에서서적을검토하고필사하는일을하는검서관직을신설하여서얼출신지식인을등용하였다.1779년에임명된초대검서관이바로유득공·이덕무·박제가·서이수네사람이다.당대에가장명망있는중인출신인이네명의학자를‘4검서’라불렀는데,정조는이들과함께신학문을연구하면서문예부흥의초석을쌓았다.
중인과친분이두터웠던왕족가운데는뜻밖에도흥선대원군이있다.대원군은안동김씨를비롯한권력층을견제하기위해아전들에게많은권한을주면서수많은중인서리를사조직으로흡수하는,이른바‘아전정치’를폈다.대원군은중인을정치적야욕에이용했다는비판을받기도했지만,그만큼중인출신관리들의탁월한행정능력을인정했던것이다.대원군은중인출신서리말고도박효관,안민영등의음악인과도가깝게지냈는데,인왕산필운대에‘운애산방’이라는공간을마련해주며가객들의든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