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

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

$18.19
Description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융합한 윤이상의 음악적 시원始元
뜨거운 인간애와 민족애에 대한 깊은 고찰
끝없는 우주를 담은 음악, 치열한 생의 기록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중 한 사람, 유럽평론가들이 꼽은 ‘20세기 주요 작곡가 56인’등 윤이상을 평가하는 수사는 엄청나다. 하지만 그런 명성에 비해서 한국 내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한 ‘통영국제음악제’ 보도 등을 통해서 그 이름을 접해본 적이 있을 수도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의 주요 인물로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의 음악이나 그 가치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동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그의 음악, 그 원천이 되었던 뜨거운 인간애와 민족애에 대해서는 지금껏 그에게 덧씌워진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간 『윤이상, 상처 입은 용』은 윤이상의 음악적 시원이 된 모든 것, 그리고 그가 평생 동안 가슴에 품었던 ‘민족주의 운동가’로서의 굳건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1977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도 윤이상에 관한 텍스로는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 책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이 펴냈다. 윤이상이 직접 자신의 생애 전반, 질곡의 시대를 넘어오며 겪었던 겪어야 했던 고초와 그 과정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원천에 대해 담담하지만 담대하게 들려준다.

음악가의 자서전을 넘어선 역사의 기록
이 책은 윤이상의 어린 시절부터 대담자이자 공저자인 루이제 린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시점까지 윤이상의 일대기를 그 자신의 목소리로 연대순으로 풀어낸다. 거기에 르포작가의 역할을 자처한 루이제 린저가 윤이상의 작품, 그리고 그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촘촘하게 정리해 넣었다.책의 구성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어린 윤이상이 어떻게 음악을 만났는지, 청춘의 윤이상이 왜 항일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유학과 본격적인 음악활동의 시기, 마지막으로 동베를린 사건과 그 후이다. 이들 각각의 구분은 사실,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시 음악가로서의 원천, 민족주의 운동가로서의 시발점, 음악가로의 성숙기,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민족주의 운동가로서의 성숙기로 고찰해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윤이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문헌보다 귀중한 자료이다. 동시에 현대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들려주는 텍스트이자, 한국 현대사를 고증하는 텍스트로 단순히 한 음악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넘어선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윤이상

저자윤이상은‘한국이낳은최고의작곡가’,‘현대음악의거장’으로불리는윤이상은1917년경남산청에서태어났다.어린시절통영에서자란그는바닷소리에귀기울였고,그것은소년의마음을평온하게만들어주었다.어린윤이상은그영감으로14세무렵독학으로작곡을시작했으며,1935
년일본으로건너가오사카음악학교에서음악이론과첼로를배웠다.
일제의식민지배가극악했던1944년그는항일지하운동에가담했다는이유로투옥되어2년간옥살이를하였고,해방후1952년까지통영과부산에서음악교사로아이들을가르쳤다.1953년서울로올라와경희대,숙명여대,덕성여대등에서후진을양성했으며,마흔살이되던1956년본격적으로유럽음악을공부하기위해프랑스로건너갔다.1957년까지파리국립고등음악원ParisConservatoire에서작곡과음악이론을공부하였고,다시독일로가서베를린음악대학BerlinHochschule에서보리스블라허를사사했다.졸업과동시에독일다름슈타트현대음악제에서쇤베르크의12음계기법에한국의정악正樂색채를담은[일곱악기를위한음악]이초연되어호평을받았으며,1966년독일도나우에싱겐현대음악제에서대편성관현악곡[예악]을발표하여세계적인작곡가로주목받게되었다.
음악적위업에앞서그는시대의질곡에눈감지않은예술인이었다.어쩌면그가정치활동을하게된것은운명과도같았다.일제식민지하에서항일저항운동,군사독재시대에맞선지식인으로서활동은오로지민족을생각한것이었다.
1967년정권이조작한이른바‘동백림(동베를린)사건’으로강제송환되어2년간복역을하였는데,당시그의구명을위해전세계예술인들이뜻을모으기도했다.1969년다시독일로돌아가1970년까지하노버음악대학HanoverHochschulefulMusik에서작곡을가르쳤고,1972년뮌헨올림픽문화행사의일환으로위촉받은오페라[심청]의대성공으로거장의반열에올랐다.
이후베를린음악대학교수를역임하였으며,킬문화상,독일연방공화국대공로훈장을수여받았다.
유럽평론가들에의해‘20세기의중요작곡가56인’,‘유럽에현존하는5대작곡가’로선정되기도했으며,서양현대음악기법을통한동아시아적이미지의표현’,‘한국음악의연주기법과서양악기의결합’이라는평을받았다.독일자아르브뤼켄방송은그를‘20세기100년을통틀어가장중요한작곡가30인’의한사람으로선정하기도하였다.
[류퉁의꿈],[나비의미망인],[요정의사랑],[심청]4편의오페라를비롯해,[바라],[무악],[광주여영원히!]등20여편의관현악곡,오보에와첼로를위한[동서의단편]등40여편의실내악곡,교가에서가곡에이르기까지150여편의작품을남겼다.

목차

윤이상탄생100주년기념출간에부쳐
서문
한국에서의유년시절
한국과일본에서의청춘기
천직과자기발견
유학,그리고첫성공
납치
석방과새출발
내가만난윤이상과루이제린저
윤이상연보
윤이상작품목록

출판사 서평

바닷소리를들으며음악을그리던아이
윤이상은1917년경남산청에서태어났다.어린시절통영에서자란그는바닷소리에귀를기울였다.어부들의뱃노래부터파도소리까지모든것은음악적영감을주었다.그가어린시절통영에서보고들은모든것들이그러했다.무당의노래는그의작품<나모>의모티브가되었고,친척집에서처음들은합주단의연주에서자기마음의울림을들었다.그리고신식학교에서처음들은오르간소리는어린소년을흥분시켰다.그모든것이음악의주제이자노래가되었다.13살무렵도쿄에유학을다녀온젊은남자에게서처음바이올린을배운이래독학으로작곡을시작했던이야기,완고했던아버지의반대에도불구하고음악으로향해나아가던열정등이생생하게전해진다.

항일지하운동,민족주의자로서의시작
일제의식민지배가극악했던시절그는민족이처한참담한현실을목도했고,이에눈감지않는다.당시유학중이던윤이상은재일조선인유학생들과지하조직을결성해무장투쟁을준비했다.생명을존중하고모든폭력행위에반대해왔던그는조선민족이자기의존엄성을되돌리기위해선무력밖에는다른방법이없었다고생각했다.그것은절망의순간유일한희망이었기때문이었다.하지만거사는실행되지못한채그는체포,투옥되어심한고초를겪는다.통나무로몸을짓이기는고문은고통을넘어선두려움으로다가왔지만그는지지않겠다는신념으로스스로를더욱호되게괴롭히며정신을깨웠다.이후신원보증으로석방되었지만,한기관에징용되어계속감시를받았다.그런상황에서도그는다시지하조직을결성했다.꺾을수없는의지였다.결국도망자신세가되고만그는서울로향했는데,계속되는추격에도자신옆에첼로를포기하지않았다.윤이상은당시를이렇게말한다.“첼로가없었다면난너무고독했을겁니다.첼로는내친구이고,짝이었어요.”그리고마침내병든몸으로병실에서해방을맞았다.
나이마흔에오른유학길,그리고음악
해방이후그는교편을잡아음악을가르쳤고,아내이수자여사를만나결혼하여아이들도얻었다.조국재건에투신하겠다마음먹었었지만한국전쟁이후정치활동은전혀하지않았다.분단상황에서벌어진민족끼리의싸움에휘말리고싶지않았기때문이다.그에게는민주주의,사회주의의이념갈등보다민족에대한사랑이더중요한가치였다.동시에그는음악에대한갈증,채우지못한것들에대한갈급함이있었다.나이마흔,이미두아이의아버지였던그는파리로날아가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처음제대로유럽음악을배웠다.여전히더많은것이배우고싶었던그는마침내베를린으로가서보리스블라허를만났다.보리스블라허는윤이상의동양적인음의이미지를좀더분명하게표현하도록그를이끌었다.그외에도요제프루퍼,라인하르트슈바르츠-쉴링을사사하며빈악파의기법을철저하게익혔고,마침내쇤베르크의12음계기법에한국의정악(正樂)색채를담은<일곱악기를위한음악>을작곡하기에이른다.이음악은세상에그를알린첫작품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이음악을시작으로그는유럽각지의음악제,콩쿠르에서동서양의경계를넘나드는음악으로세계음악계를사로잡았다.동양의사상과음악기법을서양음악어법과결합하여완벽하게표현한최초의작곡가라는평가도얻었다.이부분에서윤이상은자신의세계관동양적인심미주의의탐색,서양악기와동양음의조화등그음악의모든것을세세하게소개했다.

납치,동베를린간첩단사건
음악적성취를이뤄가던시기그는정치적인활동을전혀하지않았다.그렇다고해도언제나민족의운명에대해걱정했던그였다.하지만박정희가쿠데타로정권을잡은이후는상황이달랐다.그는독일에서한국인협회를설립하고한국의민주주의회복의필요성과가능성에대해토론했다.신문지상보도와다른일들이고국에서벌어지고있다는것을알게된윤이상은정권에대한비판적자세를유지했다.그러던중어릴적고향친구를만나기위해북한에다녀왔는데그일은여러모로눈엣가시였던그에게간첩혐의를씌우는빌미가되었다.그리고1967년6월17일그는베를린에서박정희대통령의비서라는자의연락을받고집을나섰다가그길로납치되어한국으로강제송환되었다.서울로옮겨진그는중앙정보부(KCIA)로끌려가모진고문을겪는다.정권이조작한이른바‘동백림(동베를린)사건’의시작이었다.이책에서윤이상은동베를린사건과관련된자신의경험을매우담담하게인간적인관점에서고백한다.고뇌와갈등,옥중에서도꺾을수없었던음악에대한열정이고스란히드러난다.
한편이부분에관한이야기에서는루이제린저의르포를집중해보아야한다.루이제린저는당시의신문,정부문서등방대한문헌자료를기반으로‘동베를린사건’의전모를속속들이파헤쳤다.평범한유학생,학자,예술가,이민자들이어떻게한순간간첩단으로조작되었는지,그과정에공모한외부세력은없었는지,독일정부와미국의개입과묵인에대한조명,한국정부와의협상과정까지면밀하게짚어낸다.이기록은그자체로한국현대사의본모습을확인하게해주는사료로서역할을한다.

다시돌아보아야할우리의음악가윤이상의위업
그의재평가에공헌하기를바라며
이책은이처럼일제치하,한국전쟁,박정희의군부독재시절까지한국근현대사의질곡을온몸으로겪어낸한예술가의생의기록인동시에세계가아끼고인정하는한음악가의작품에대한음악적평론이며,한국역사의민낯을면면히보여주는르포르타쥬이다.다만이책에서는석방이후윤이상의활발한음악적활동까지에서끝을맺고,모든문제의근원이민족의분단에서비롯됐다는생각에기반한민족주의운동가로서의면모까지는다루지못하였다.하지만이것만으로도그를다시돌아보고재평가하는데는충분한자료가될수있을것이다.
『생의한가운데』로우리에게도친숙한독일의여류작가루이제린저는철학,음악,역사,심리학,문화인류학등을넘나드는막강한지식과방대한자료를기반으로윤이상의마음을편안히어루만지기도하고,심리적기저를파고들기도하면서뼈대를만든다.여기에윤이상의진솔하면서도강인한면모가더해지면서생명력이생겨난다.현대음악사와동양철학,한국역사와세계사적비전에대한윤이상의종횡무진한답을듣고있노라면그의예술가적위업보다더위대한인류애와민족애가고스란히느껴질것이라확신한다.
마지막으로이책의가치는루이제린저가서문에서밝힌내용을통해갈음한다.
“유럽화된윤이상은이전기가나오길간절히바랐지만,그안에담긴동양적기질은거기에강하게저항했다…그런윤이상에게계속이야기하도록할수있었던유일한논리는정치적?인도적인것이었다.우리들의절박한목적은작고가윤이상에대해쓰는것이아니고,독제체제에의해자유를빼앗긴한예술가,그리고그런운명으로인해많은사람들과운명을함께한하나의모델이자증인이며고발자인한예술가에쓰는것이라는말이었다.”

[책속으로추가]
“당신이저지른일을쓰시오.”나는또
똑같은것을썼습니다.그러면그들은또그종이를가져가고새로운종
이를가져와서“당신이저지른범죄에대해쓰시오”라고했습니다.나는
또썼습니다.“이건사실이아니야!”라고그들은말했습니다.이렇게만
하루가지났습니다.오후가되자그들은나를발로차기시작했는데그때그들은“넌북조선의거물간첩이야.공산주의자라고.당원이지.넌독일에서간첩조직을만들어서한국정부를무너뜨리려고한거야.넌그조직의두목이야”라고했습니다.나는“전부거짓말이다”라고말했습니다.그러자두꺼운각목을든제3의남자가다가와그각목으로내대퇴부를후려쳤고나는쓰러졌습니다.나는며칠동안아무것도먹지못하고,잠도못자고게다가이런고문은밤까지계속되었습니다.6월이었고아주더워서그들은한밤중이되어서야슬슬본격적인고문에착수했습니다.그들은내손발을묶어통나무에매달았습니다.땅에서1미터반정도높이입니다.그리고그들은내얼굴위에흠뻑젖은천을놓고그위에물뿌리개로물을뿌립니다.그러면천이입과코위에딱달라붙어질식할것같습니다.내가정신을잃으면그들은묶은것을풀고의사를불러왔습니다.의사는나에게주사를놓고내가숨을돌리면또물고문을계속했습니다.그들은언제나주사를놓으면서고문을했습니다.죄수가바로죽어서는안되고죄를자백시켜야했기때문입니다.다시통나무에매달리자어린시절에본,송아지나돼지를잡을때이렇게매달았던장면이기억이났습니다.
고문은계속되었습니다.나는견뎌내야겠다고생각했습니다.이제너의범행을자백하겠느냐고물어볼때마다“아니야.난아무런범행도저지르지않았어”라고말했습니다.이렇게밤새도록계속되었습니다.얼굴위에물,주사,심문,물,주사…….여섯번인가그이상주사를맞았을때나는죽음을예감했습니다.(pp.168~169)

오늘날독재와그에대한저항의역사에드러난많은사례가,정말로다양하고,동시에유사성을가지고있다면세부까지알리고,증언하고,기록한하나의사례를만들어낼필요가있다.이것은많은사례를명백하게하기위한하나의본보기다.그렇다면이책은더욱그광범위한정
치적배경속에서이해되어야할것이다.그무렵독일연방공화국에서납치된것은한국인뿐만이아니라일련의유사한사건이있었다.따라서한국의사건은연쇄의한고리에지나지않고그런까닭에더욱모델사례로서의미가있다.(p.181)

납치된사람이윤이상이라는것이밝혀지자마자그의친구들은바로국내외에서활동을벌이기시작했다.그들은여러곳에행동위원회를결성하고구체적인정보를입수해잘못된정보를수정했고,본에서,워싱턴에서,도쿄에서정부에항의했다.음악가들은유명무명을불문하고무상으로연주회를열었고,많은교회단체가기부금을모았다.1967년10월에는윤이상을위원으로뽑은함부르크예술아카데미의회장빌헬름말러가박정희대통령에게항의서한을썼는데,거기에는161명의국제적인문화인이서명을했다.그중에는볼프강포르트너,마우리치오카겔,롤프리버만,칼하인슈토크하우젠,한스베르너헨체,죄르지리게티,에른스트크레네크,얼브라운,에드워드스템플리,헤르베르트폰카라얀,오토클렘페러가포함되어있었다.(p.198)

루이제린저_당신은아프고,투옥되어있는상태에서그것도사형이구형될것을알면서대체어떻게작업을할수있었습니까?
윤이상_나는그전에이미오페라의3분의1을쓴상태였고,그때는기본적인이미지를가지고있었기때문에그뒤를어떻게이어써야하는지잘알고있었습니다.
루이제린저그렇습니까?벌써그렇게까지요?하지만당신도아시겠지만,나도옥중에있었고나치의국민재판소재판을앞두고사형을각오해야했습니다.나는이러한조건하에서는도저히일을할수없었습니다.(…)자기자신과이렇게거리를둘수있다니…….게다가희곡오페라를쓰다니요.그것은도교의승리입니다.인생을한낱꿈이라고보는의식,모든존재와일체화하고그런까닭에더욱힘든시련도견딜수있는의식입니다.그것은또당신의일을방해한모든불쾌한것에대한당신창조력의승리이기도합니다.당신의창조적인잠재력이다시활동하기시작하는데는고작숨한번크게쉬는정도로이미충분했던겁니다.(pp.22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