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뜨락을 거닐다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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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는 조선 후기 최고의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의 소설 작품 9편을 바탕으로 엮은 창작 소설이다. 박지원은 시대에 뒤떨어진 양반 사대부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신분제와 유교적 틀에 얽매여 뜻을 펼치지 못했던 소외된 민초들의 행적을 소설 속에 담아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저자는 독자들이 연암 선생의 소설을 사회 ㆍ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일석이라는 서얼 신분의 소년이 연암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썼다. 책은 연암의 소설을 전할 뿐 아니라, 연암 선생이 그 소설에 담고자 했던 사회 비판과 개혁 사상을 선생의 목소리를 빌려 전하고 있다.
저자

김봉진

저자 김봉진은 대학에서 공학을,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하였다.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여러 대학에서 글씨기와 국문학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박태원 소설세계』, 『소설 속 풍경 읽기』, 『독서지도 방법론과 실제』, 『나를 찾는 글쓰기 글짓기』, 『볼모가 된 왕들』 등이 있다.

목차

작가의 말

연암 선생을 만나다
1. 선비를 꾸짖은 호랑이 호질 虎叱
2. 양반에 대한 이야기 1 양반전 兩班傳
3. 양반에 대한 이야기 2 허생전 許生傳
4. 정직과 신의를 지킨 거지 광문자전 廣文者傳
5. 오물 속에서도 향기를 발한 사람 예덕선생전 穢德先生傳
6. 벗을 사귀는 도리 마장전 馬?傳
7.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천재 시인 우상전 虞裳傳
8. 세상 속으로 숨은 신선 김신선전 金神仙傳
9. 세상에 당당했던 늙은이 민옹전 閔翁傳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간
연암 선생을 그리며
연암 박지원 선생의 삶과 소설

출판사 서평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바탕으로 풀어낸 창작 소설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는 조선 후기 최고의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의 소설 작품 9편을 바탕으로 엮은 창작 소설이다.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와 가난한 삶 때문에 절망하며 지내던 일석이 아버지의 스승이었던 연암 선생을 만나, 그가 들려주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꿈을 찾아나서는 성장 과정을 액자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 박지원의 삶과 그의 소설 작품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1737년 명망 있는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났다. 42세에 정치적인 이유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황해도의 연암협에 들어가 살았으며 이후 연암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44세에 팔촌형인 박명원을 따라 사행단의 일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북학파를 형성해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는 데 힘썼다.
연암 선생은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이후 학문 연구와 저술에만 전념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하였다. 50세라는 늦은 나이에 선공감 감역을 시작으로 안의 현감, 면천 군수, 양양 부사 등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박지원이 살았던 시대는 10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왔던 당파 싸움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당파 싸움에만 매달린 양반 사대부들은 백성들의 삶을 돌보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조선 사회는 점점 무너져 갔다.
젊은 박지원은 지식인으로서 이러한 세상의 불의와 사회의 부조리를 참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곤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소망을 품고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썼다. 박지원은 시대에 뒤떨어진 양반 사대부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신분제와 유교적 틀에 얽매여 뜻을 펼치지 못했던 소외된 민초들의 행적을 소설 속에 담아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연암 선생은 「호질虎叱」, 「양반전兩班傳」, 「허생전許生傳」, 「광문자전廣文者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마장전馬?傳」, 「우상전虞裳傳」, 「김신선전金神仙傳」, 「민옹전閔翁傳」,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과 현재 전하지 않는 2편을 포함해 모두 12편의 소설을 지었다.
조선 시대에는 소설을 가까이해서는 안 될 자질구레하고 쓸모없는 이야기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세상에 뜻을 펴지 못한 선비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사회 비판이 담겨 있는 박지원의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쌓인 울분을 풀어 갔다.

연암의 뜨락을 거닐며 연암의 목소리로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에서는 연암 박지원이 쓴 9편의 소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었다. 독자들이 연암 선생의 소설을 사회 ㆍ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일석이라는 서얼 신분의 소년이 연암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썼다.
조선 시대에 서얼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원하는 벼슬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생계를 위해 아무 일이나 할 수도 없었다. 일석은 이런 서얼들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세상의 차별과 멸시 속에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방황한다. 그러던 중 옆집에 머물던 연암 선생을 만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다. 이때 연암 선생이 일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연암의 소설들이다.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는 연암의 소설을 전할 뿐 아니라, 연암 선생이 그 소설에 담고자 했던 사회 비판과 개혁 사상을 선생의 목소리를 빌려 전한다. 가슴속 가득 불만을 쌓은 채 방 안에만 숨어 있던 일석의 아픔과 그를 세상으로 불러내는 연암 선생의 따뜻한 가르침이 잘 전해진다.

『연암의 뜨락을 거닐다』에서 다룬 9편의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호질」은 호랑이가 위선을 일삼는 양반을 꾸짖는 이야기이다. 학식과 덕행으로 이름난 북곽 선생이 과부와 간통하다 들켜 도망가다 호랑이를 만나자, 아첨을 떨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호랑이는 그를 꾸짖으며 인간의 잔인함과 겉과 속이 다른 사대부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양반전」은 가난한 양반과 그 양반 신분을 산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예와 절개를 버리고 신분과 문벌을 밑천 삼아 장사치같이 행동하는 양반을 비판하였다. 무능력한 양반과 그런 양반에게 착취당하는 백성들의 생활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허생전」은 선비 허생의 이야기이다. 허생이 빌린 돈으로 매점매석을 하여 큰돈을 벌고, 도적들을 모아 이상국을 건설하려는 이야기를 통해 허약한 조선의 경제 상황과 궁핍한 백성의 삶을 드러내었다. 또 유교 예법에 얽매인 이완 대장을 통해 허울뿐인 북벌 정책을 비판하였다.
「광문자전」은 거지 광문의 이야기이다. 광문은 거지였지만 성실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의 신뢰와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이용만 당하다 늙고 병든다. 광문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신의와 정직함이 결여된 사회를 비판하였다.
「예덕선생전」은 똥을 치우는 엄 행수의 이야기이다. 천한 일을 하지만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는 엄 행수를 통해 분수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추악한 행동을 비판하였다.
「마장전」은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치광이라 불린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명예와 권세, 이익만을 꾀하며 그것을 군자다운 사귐이라 포장하던 사대부들의 교유를 꼬집었다.
「우상전」은 시인 이언진의 이야기이다. 뛰어난 시로 일본에까지 명성이 알려졌지만 정작 조선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고뇌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언진을 추모하는 글이다.
「김신선전」은 신선이라고 알려진 김홍기의 행적을 추적한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자 신선 같은 삶을 살기를 선택했던 김홍기를 통해 당시 큰 뜻을 품었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울적하게 살다간 인물들의 삶을 대변해 보여 주었다.
「민옹전」은 실존 인물인 민유신의 이야기이다. 민유신은 풍자와 해학에 능했던 전직 무관으로, 연암 선생의 병을 치료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록 자신의 뜻을 펴지 못했지만 항상 세상에 당당하게 맞섰던 민유신의 재치 있고 익살스런 언행을 기록하였다.

책속으로 추가

자네가 천한 일을 한다고 무시하는 엄 행수는 나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았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그를 칭찬하고 싶어 안달이지. 그는 끼니때마다 밥을 든든하게 먹고, 길을 걸을 때는 조심조심 걷고, 졸리면 쿨쿨 편하게 자고, 웃을 때는 시원하게 껄껄 웃는다네. 그러다 가만히 있을 때는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지. 그는 흙으로 벽을 쌓고 짚으로 지붕을 덮은 움막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고 들락거리며 지내지. 들어갈 때는 새우등을 하고 잘 때는 개처럼 웅크리고 잠을 자지만, 아침이면 즐겁게 일어나 삼태기를 메고 마을로 내려와 뒷간을 청소한다네.
구월에 비와 서리가 내리고 시월에 얇은 얼음이 얼면, 뒷간에 말라붙은 사람 똥과 마구간의 말똥, 외양간의 소똥, 홰 밑에 쌓인 닭똥, 개똥, 거위 똥, 돼지 똥 그리고 비둘기 똥, 토끼 똥, 새똥 따위를 보물처럼 여기며 거둬 가지만 그것이 청렴함에 해가 되지 않고, 모든 이익을 혼자 다 갖지만 그것이 의로움에 해가 되지 않는다네. 욕심을 부려 더 많이 얻으려 애써도 어느 누구도 그가 만족할 줄 모른다고 말하지 않지.
ㆍ ㆍ ㆍ
나는 똥을 치우는 엄 행수보다는 훨씬 나은 운명을 타고났다. 그런데도 나는 내 운명을 증오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차별만 받는 삶이 사무치도록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내 운명이 아무리 나를 얽어매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지만 나는 내 삶에서 향기를 내뿜을 것이다. 원망과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나만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ㆍ「오물 속에서도 향기를 발한 사람 예덕선생전」 중에서

그의 말을 들은 민 영감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작은 벌레가 무슨 큰 근심이 되겠나? 내가 보기에는 저 종로 거리에 가득 찬 것들이 모두 황충이라네. 하나같이 키는 칠 척인데 머리는 검고 눈은 반짝거리지. 입은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데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구부정한 모습으로 줄줄이 몰려다니면서 곡식이란 곡식은 죄다 먹어 치운다네.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 데에는 이들 무리보다 더한 것이 없네. 내가 그것들을 잡고자 하였지만 바가지가 작아 잡지 못했네. 큰 바가지가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야.”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민 영감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정말로 그런 벌레가 있나 싶어 두려워하였다.
이렇게 민 영감은 모든 말에 재치 있게 대꾸하고 해학적으로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세상의 잘못을 비판하기도 했다. 민 영감은 나를 찾아온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ㆍ「세상에 당당했던 늙은이 민옹전」 중에서

선생은 함자는 지원趾源이고 자는 미중美仲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일찍이 나의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선친께서 작고하신 후 통 뵙지 못하다가 선생께서 잠시 한양의 옛집에 들르셨을 적에 다시 뵙게 되었다.
당시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방 안에 틀어박힌 채 세상과 벽을 쌓고 내 처지를 비관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다시 만난 연암 선생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며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이끌어 주셨다.
ㆍ ㆍ ㆍ
특히나 잊지 못할 가르침 중 하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 속에 숨어 살며 신선이라 불렸던 김홍기와 해학과 골계로 세상을 조롱하고 풍자하며 당당하게 세상에 맞섰던 민유신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서자로서 느낀 자괴감을 극복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ㆍ「연암 선생을 그리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