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집 3 (양장본 Hardcover)

구봉집 3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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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전기의 학자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문집이다. 송익필은 이이(李珥)나 성혼(成渾)이 우러러볼 정도로 학문이 높았으며, 제갈량(諸葛亮)에 비견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과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뉜 붕당의 폐해로 인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채 각지를 떠돌며 곤궁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어 평생 동안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을 연구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예학을 창도하여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꾀하였고, 문학적으로는 이산해, 최경창, 백광훈, 최립, 이순인, 윤탁연, 하응림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으로 칭송되었다. 이 책을 통해 송익필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며, 더 나아가 16세기 정치와 사상 및 예학과 문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송익필

宋翼弼
1534(중종29)~1599(선조32).자는운장(雲長),호는구봉(龜峯),시호는문경(文敬)이다.본관은여산(礪山)이며,아버지는판관(判官)송사련(宋祀連)이고어머니는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어렸을때부터신동으로이름나젊은나이에향시(鄕試)에합격하였다.그러나할머니가노비출신이었던관계로금고(禁錮)를당해더이상과거를보지못하고고양(高陽)의구봉산(龜峰山)아래로옮겨가살았다.21세때이이(李珥),성혼(成渾),정철(鄭澈)을만나도의지교(道義之交)를맺었으며,학식과인품이뛰어나다는소문을듣고찾아오는제자들과함께학문을연구하면서지냈다.1586년(선조19)동인들로부터‘서인의모주(謀主)’라는무함을받아노비신세로전락하게되자성과이름을바꾼채도망쳐숨어살았다.1589년정여립(鄭汝立)의모반사건이일어난뒤정철의도움으로천인신분에서벗어났으나,정철이실각한뒤에는다시도피생활을하다가자수하여평안도희천(熙川)으로유배되었다.임진왜란이일어난뒤에석방되어이곳저곳을떠돌았으며,1596년충청남도당진(唐津)의마양촌(馬羊村)에우거하면서학문을강론하다가1599년66세를일기로졸하였다.그뒤1625년(인조3)천적(賤籍)을씻었으며,1751년(영조27)지평(持平)에추증되었다.송익필은노비출신이라는신분적제약과동인과서인이대립하는붕당의폐해로인해,자신의경륜을펴지못한채도망자신세로떠돌다가일생을마쳤다.그런가운데서도송익필은좌절하지않고학문에몰두하여성리학(性理學)과예학(禮學)분야에큰업적을이루었을뿐만아니라,문학에도큰성취를이루었다.이로인해송익필은이이ㆍ성혼과함께‘파주삼현(坡州三賢)’으로,최경창(崔慶昌)ㆍ백광홍(白光弘)등과함께‘팔문장(八文章)’으로,김시습(金時習)ㆍ남효온(南孝溫)과함께‘산림삼걸(山林三傑)’로칭해졌다.

목차

제6권
예문답禮問答
계함의물음에대한답答季涵問|호원의물음에대한답答浩原問|김희원에게답한편지答金希元|숙헌이서모를대하는예에대해논하여성호원에게보낸편지與浩原論叔獻待庶母禮|숙헌의물음에답한편지答叔獻問|숙헌에게답한편지答叔獻書|숙헌에게거듭해서답한편지重答叔獻書|호원에게답한편지答浩原書

제7권
가례주설1家禮註說一
서序|사당祠堂|심의深衣|거가잡의居家雜儀|관례冠禮|혼례昏禮

제8권
가례주설2家禮註說二
상례喪禮|거상잡의居喪雜儀

제9권
가례주설3家禮註說三
제례祭禮

제10권
부록附錄
신원소을축년伸冤疏乙丑|행장行狀|병술소丙戌疏|정해소丁亥疏|갑자신원소甲子伸冤疏|묘갈문墓碣文|묘표음기墓表陰記|제문경자년祭文庚子|제문계묘년祭文癸卯|포증해주기를요청하는서장경오년6월15일請褒贈狀庚午六月十五日|신미년12월12일의경연설辛未十二月十二日筵說|예조의복달신미년12월15일禮曹覆達辛未十二月十五日|이조정사의망단자임신년1월11일吏曹政事望壬申正月十一日|시집후서1詩集後序|시집후서2|시집후서3|운장의시에차운하다次雲長韻|송구봉의〈현승편〉뒤에쓰다書宋龜峯玄繩編後|장계곡이〈현승편〉에대해논박한것에대해변론하는글張谿谷駁玄繩編辨

《구봉집》의지龜峯集識|김상성(金相聖)ㆍ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