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팔공산은 우리민족의 성산이며, 문화와 역사의 발원지이고, 빼어난 경관과 희귀한 생태자원의 보고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의 우리는 오랜 세월 우리민족이 이 산을 얼마나 성스럽게 여겼는지, 어떤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데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미 출판된 팔공산을 다룬 책자들도 대부분 현상나열식으로 서술했거나 지명과 지리를 중심으로 엮은 것이어서 팔공산의 진면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팔공산의 역사자료와 고문헌들을 섭렵하고 현장을 답사해보면 팔공산에 대한 최고의 찬사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체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팔공산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 첫 통일국가인 통일신라를 상징하는 산이다. 이곳에서 김유신장군이 삼한일통의 검을 받는 신화가 탄생했고, 통일 후에는 이 산이 국토의 영역을 상징하는 오악 가운데 가장 중심 되는 중악으로 불려졌고 다른 이름으로는 아버지산(부악)이라 했다. 고려시대엔 몽골병란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극복을 위해 민심을 모아 조성한 초조대장경을 이곳 부인사에 봉안했다. 이 대장경이 몽골병란으로 소실되고 다시 조성한 팔만대장경의 낙성회가 이 곳 은해사에서 열렸다. 임란당시 전국의 승병을 지휘한 총본부가 여기에 있었고, 조선병력에 의한 국토수복전투에 첫 승리를 거둔 영천성대첩도 이 팔공산을 거점으로 한 의병활동의 성과였다.
정신사적으로는 한국불교사의 가장 큰 봉우리를 이룬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득도를 했고, 아직도 원효의 수행길이 팔공산의 골짝들과 바위굴에 전설로 남아 있다. 삼국유사를 이곳에서 완성했던 일연스님의 그 업적은 중국에도 흔치 않은 왕희지 글씨를 집자한 비문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조의 지눌스님은 이곳에서 정혜결사를 통해 한국불교를 중흥시켰고 현 조계종단의 원류를 만들었다. 지금도 이 팔공산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산에 두 개의 조계종 교구본사가 소재하고 있어 팔공산의 종교적 위상을 말해준다. 이밖에도 한국 최초의 석굴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참배객이 많다는 갓바위 부처는 너무나 유명하다. 특히 이곳의 한티마을은 한말 천주교박해 당시 숱한 순교자가 나왔고 여기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다. 이렇게 팔공산은 불교와 천주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신라와 조선의 왕들이 원찰을 지어 아직도 숱한 유물을 간직하고 있고 왕의 태실이 2개소나 조성되는 등 왕들의 성산으로 대우를 받아왔다.
화강암과 변성암이 빚은 기암괴석과 만학천봉은 계곡과 숨바꼭질하며 송림과 폭포, 사찰과 암자를 천년세월로 수놓고 있다. 이곳을 답사한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와 답사기는 지금도 우리를 선계로 손짓한다. 이처럼 국내의 다른 산들이 넘보지 못할 역사와 문화, 경승을 지닌 팔공산은 아직 세상에 참모습을 드러내지 못해 신라오악 중에서도 유독 이 산만 국립공원에서 빠져있다. 팔공산 진면목을 두루 알리기 위해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팔공산문화포럼의 고문인 필자와 조명래 포럼부회장이 공동집필했고 사진가 강위원씨가 사진을 찍어 대구일보에 연재한 원고를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을 출판해주신 민속원의 홍종화대표와 관계자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팔공산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 첫 통일국가인 통일신라를 상징하는 산이다. 이곳에서 김유신장군이 삼한일통의 검을 받는 신화가 탄생했고, 통일 후에는 이 산이 국토의 영역을 상징하는 오악 가운데 가장 중심 되는 중악으로 불려졌고 다른 이름으로는 아버지산(부악)이라 했다. 고려시대엔 몽골병란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극복을 위해 민심을 모아 조성한 초조대장경을 이곳 부인사에 봉안했다. 이 대장경이 몽골병란으로 소실되고 다시 조성한 팔만대장경의 낙성회가 이 곳 은해사에서 열렸다. 임란당시 전국의 승병을 지휘한 총본부가 여기에 있었고, 조선병력에 의한 국토수복전투에 첫 승리를 거둔 영천성대첩도 이 팔공산을 거점으로 한 의병활동의 성과였다.
정신사적으로는 한국불교사의 가장 큰 봉우리를 이룬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득도를 했고, 아직도 원효의 수행길이 팔공산의 골짝들과 바위굴에 전설로 남아 있다. 삼국유사를 이곳에서 완성했던 일연스님의 그 업적은 중국에도 흔치 않은 왕희지 글씨를 집자한 비문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조의 지눌스님은 이곳에서 정혜결사를 통해 한국불교를 중흥시켰고 현 조계종단의 원류를 만들었다. 지금도 이 팔공산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산에 두 개의 조계종 교구본사가 소재하고 있어 팔공산의 종교적 위상을 말해준다. 이밖에도 한국 최초의 석굴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참배객이 많다는 갓바위 부처는 너무나 유명하다. 특히 이곳의 한티마을은 한말 천주교박해 당시 숱한 순교자가 나왔고 여기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다. 이렇게 팔공산은 불교와 천주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신라와 조선의 왕들이 원찰을 지어 아직도 숱한 유물을 간직하고 있고 왕의 태실이 2개소나 조성되는 등 왕들의 성산으로 대우를 받아왔다.
화강암과 변성암이 빚은 기암괴석과 만학천봉은 계곡과 숨바꼭질하며 송림과 폭포, 사찰과 암자를 천년세월로 수놓고 있다. 이곳을 답사한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와 답사기는 지금도 우리를 선계로 손짓한다. 이처럼 국내의 다른 산들이 넘보지 못할 역사와 문화, 경승을 지닌 팔공산은 아직 세상에 참모습을 드러내지 못해 신라오악 중에서도 유독 이 산만 국립공원에서 빠져있다. 팔공산 진면목을 두루 알리기 위해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팔공산문화포럼의 고문인 필자와 조명래 포럼부회장이 공동집필했고 사진가 강위원씨가 사진을 찍어 대구일보에 연재한 원고를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을 출판해주신 민속원의 홍종화대표와 관계자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팔공산, 그 짙은 역사와 경승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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