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보천교의 신국가 건설운동 (양장본 Hardcover)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신국가 건설운동 (양장본 Hardcover)

$44.30
Description
이 책은 권력도 책략도 재력도 없는 일제강점기 민중의 민족운동 사례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을 마땅한 정치적 책략이나 경제적 수단이 없던 민중은 『정감록』이나 강증산의 예언에 의지하여 진인의 출현을 고대하였다. 그리고 고천제나 예언 등을 통해서 민중 중심의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시도하였다. 당시 민중의 집합체인 보천교는 후천선경을 상징하는 중앙본소를 전라북도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다 건설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한국을 독립시킬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그 현실성과는 상관없이 ‘항일’과 ‘민족성’으로 채워져 있는 보천교의 활동을 당시 지식인들은 보지 못하였다.

이 연구는 그동안 흔히 접할 수 있는 ‘민족운동사 연구’와는 다르다. 사소하고 주변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방식들로써 민족운동을 전개한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보천교와 보천교계 신종교들의 민족운동 과정에서 구속, 기소된 자는 424명, 이 가운데 154명이 독립유공자이다. 이들은 타자인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지만, 그 방법은 지극히 토속적이고 전통적이었다. 일부 지식인들은 보천교의 이러한 성향을 보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근대성을 선으로 보천교의 전근대성을 악으로 바라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민중의 민족성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저자

안후상

安厚相, An Hu Sang
원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석사)와 전남대학교(박사)에서 한국근대사 및 한국근대종교운동사를 전공하였다. 목아불교박물관, 조계총림 보조사상연구원, 충남대 유학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였다. 현재 한국신종교학회 이사, 사단법인 노령역사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며, 고창북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근현대사 이야기, 5ㆍ18과 바나나』와 공저 『한국민족운동과 종교』,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조계종사』, 『19세기 사상의 거처』, 『전라북도 근현대 인물이야기』, 『한국독립운동사사전』, 『정읍시사』 외 다수가 있다. 연구논문으로는 「무오년 제주법정사 항일항쟁 연구」, 「보천교와 물산장려운동」, 「식민지시기 보천교의 ‘공개’와 공개 배경」, 「‘보천교의 반일성 연구’를 위한 연구사적 검토」,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독립운동」, 「한국불교 총본사건설과 이종욱」, 「내장사의 유래와 ‘내장산 내장사’ 인식」, 「‘손화중 피체지’ 재고」 외 다수가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서론

제2장 1910년대 보천교와 법정사法井寺 항일운동
1. 보천교의 조직운동과 법정사 항일운동
2. 법정사 항일운동의 주도 세력

제3장 1920년대 보천교의 신정부新政府 건설운동
1. 보천교의 국호國號 선포와 ‘천자 등극’
2. 보천교의 한국 민족운동 참여와 사회운동
3. 보천교의 ‘군자금 모집계획 사건’
4. 지식인들의 공격과 보천교 쇠퇴

제4장 1930, 40년대 보천교계 신종교들의 신국가新國家 건설운동
1. 선도교仙道敎의 ‘조선 독립운동’
2. 황극교黃極敎의 ‘천류天禷’와 ‘수령제受靈祭’
3. 미륵불교彌勒佛敎의 ‘신인동맹神人同盟 사건’

제5장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부록-보천교의 민족운동 관련 통계와 인물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이책은권력도책략도재력도없는일제강점기민중의민족운동사례이다
일제강점기에나라를되찾을마땅한정치적책략이나경제적수단이없던민중은『정감록』이나강증산의예언에의지하여진인의출현을고대하였다.그리고고천제나예언등을통해서민중중심의새로운사회의건설을시도하였다.당시민중의집합체인보천교는후천선경을상징하는중앙본소를전라북도정읍군입암면대흥리에다건설하였다.그리고대한민국임시정부와함께한국을독립시킬것이라고선전하였다.그현실성과는상관없이‘항일’과‘민족성’으로채워져있는보천교의활동을당시지식인들은보지못하였다.

이연구는그동안흔히접할수있는‘민족운동사연구’와는다르다.사소하고주변적인것처럼여겨지는방식들로써민족운동을전개한흔치않은사례이기때문이다.보천교와보천교계신종교들의민족운동과정에서구속,기소된자는424명,이가운데154명이독립유공자이다.이들은타자인일제의식민지배에서벗어나고자하였지만,그방법은지극히토속적이고전통적이었다.일부지식인들은보천교의이러한성향을보지못하였으며,심지어근대성을선으로보천교의전근대성을악으로바라보기까지하였다.그러면서민중의민족성은점차설자리를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