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와 학문 (문화민족주의자의 민낯을 보다 | 양장본 Hardcover)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와 학문 (문화민족주의자의 민낯을 보다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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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민속학의 태두로 공인받는 송석하
송석하는 식민지 시기에 ‘계몽적인’ 글을 발표한 민속학자로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식민지배에 대한 문화적 저항으로 재조명되면서 한국 민속학의 태두로 공인받게 된다. 정부에서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고, 국립민속박물관은 그가 관장으로 재직했던 국립민족박물관을 뿌리라고 공언하고 있다. 민속학계의 영웅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계와 행적을 보면 이러한 평가와는 거리 가 멀다.

문화민족주의자의 실체
아버지 송태관은 일본 천황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던 인물이다. 1920년대에 사업가로 실패했으나 조선 총독을 만나고 간척허가 등으로 재기한다. 일본 영향 때문인지, 그가 조성한 묘역의 석물과 재실은 전통양식과는 크게 다르다. 민속자였던 아들 송석하의 글은 대부분 식민지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그가 극찬한 봉산탈춤은 총독부에서 ‘보급할 전통 예술’로 우선 지정되면서 총독이 참관한 가운데 공연을 했다. 1943년에는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백두산 천지에 배를 띄우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에 참여했다. 해방 후에는 인류학자로 변신한 그는 ‘인류학’ 박물관장으로 임명되었다.
저자

오석민

吳碩珉,OhSeokMin
제주출생
충남역사박물관장역임
(현)지역문화연구소소장,세종시무형문화재위원
『기지시줄다리기』,『당진안섬당제』,『부강포구의뱃길,철도그리고상인』,『철도도시조치원의역사와장시』등

목차

들어가면서

제1부아버지송태관의권력과부

1장가계가불명확한집안에서태어나다

2장하위관료가2년만에황제측근이되다
1.송태관의출생과일본유학과정
2.송태관의관료생활

3장고종황제가퇴위당하고송태관은유배를가다

4장고향으로돌아가서사업가로변신하다
1.서울에서의기업참여경험
2.진도유배후고향에서의경제활동

5장조선총독과만나면서간척사업을시작하다
1.지금은서산공군비행장으로편입된첫간척지
2.태안고성이씨집안의자염전을간척한사업

6장만리포를불하받아해수욕장으로지정받다

7장일본풍재실을짓고선대묘역을단장하다

제2부아들송석하의학문

1장일본유학을포기하고귀국후방황하다

2장민속논문발표후민속학회를창립하다

3장총독부에호응하여민속부흥에앞장서다
1.송석하와민속학그리고조선민속학회
2.식민지정책에호응한민속예술부흥주도

4장봉산탈춤을총독부의건전오락으로지정받다

5장백두산천지의승전기원행사에참여하다

6장임시정부를비판하면서정치단체에참여하다
1.해방후송석하의첫정치적행보:조소문화협회와조선연극인대회
2.한국민주당과조선민족청년단,그리고송석하

7장미군정이제안한좌우합작에동조하다
1.한미문화협회와송석하
2.좌우합작운동과송석하

8장미군정하에서인류학자로변신하다
1.국립민족박물관과송석하
2.조선인류학회와송석하
3.1946년‘국립대학교(안)’과인류학과,그리고인류학연구실

9장1990년대송석하를‘민족주의자’로조명하다

나가면서
1.송태관-송석하가계의계급적성격은?
2.송태관-송석하에대한기존의연구방법은적절했을까?

부록줄풍류를후원했던향리집안과통혼하다
1.송석하의처가정읍광산김씨가계
2.송석하의처조부김상태의정치적행보
3.정읍의광산김씨와풍류방의전통

저자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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