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조선500년 동안 사용되다 사라진 명유에 대한 복원 연구
경복궁 완공 후 3년 만에 궁궐 재칠을 위해 명유 400말을 사용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이후 순종 황제 장례식 의궤에 이르기까지, 500년 넘게 사용되던 기록을 남기고 돌연 사라져 버린 우리의 전통 유성도료 명유가 있다. 모든 궁궐 건축과 목조건축, 가구, 방수용 우비 등에 무수히 사용되어왔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조선왕조의궤를 바탕으로 하고 임원경제지 등을 참고하여 명유를 복원하였다.
명유는 방수대책이 빠진 채 관리되고 있는 목조건축유산과 옻칠을 사용하지 않은 목제가구의 보존과 복원에 필수 불가결하며, 비오는 날에 입고 쓰는 유삼과 갈모를 복원 할 수 있게 하여 전통문화의 복원에도 요긴한 재료이다. 신하의 장례식에 임금은 유둔과 후유지를 하사했고 길흉사에 유차일을 사용해 비를 막았다. 명유를 사용한 이러한 전통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전통도료는 옻칠과 단청이라는 두가지 방식만 주로 기억되고 있지만, 옻칠은 밝은 색상을 내지 못하고 단청은 수성도료이기 때문에 빗물에 씻겨 나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조선시대에는 모두 명유로 해결해왔다. 임금이 앉는 어탑에도 명유가 사용되었고 궁궐의 그릇과 가구는 대다수 옻칠보다 명유를 도료로 사용한 것임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명유는 방수대책이 빠진 채 관리되고 있는 목조건축유산과 옻칠을 사용하지 않은 목제가구의 보존과 복원에 필수 불가결하며, 비오는 날에 입고 쓰는 유삼과 갈모를 복원 할 수 있게 하여 전통문화의 복원에도 요긴한 재료이다. 신하의 장례식에 임금은 유둔과 후유지를 하사했고 길흉사에 유차일을 사용해 비를 막았다. 명유를 사용한 이러한 전통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전통도료는 옻칠과 단청이라는 두가지 방식만 주로 기억되고 있지만, 옻칠은 밝은 색상을 내지 못하고 단청은 수성도료이기 때문에 빗물에 씻겨 나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조선시대에는 모두 명유로 해결해왔다. 임금이 앉는 어탑에도 명유가 사용되었고 궁궐의 그릇과 가구는 대다수 옻칠보다 명유를 도료로 사용한 것임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명유 (조선시대 천연 유성도료의 전통과 재현 | 양장본 Hardcover)
$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