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거친파도이겨낼수있었던이유,사업보국
호암이일군사업력(事業歷)의시작은일제강점기당시식민지백성으로서사회적제약에얽매여방황하던젊은날로거슬러올라간다.경남의령의한학자였던선친밑에서유복한성장기를보내고일본유학까지마쳤지만,인생의뜻을세우지못하고골패노름에빠져늦은밤달그림자를밟으면서귀가하기일쑤였다고호암은그무렵을회고한다.그렇게허송세월하던그에게“각성”의순간은느닷없이찾아왔다.어느날달빛을받은채고요히잠든자녀들을보며무언가해보아야만한다는생각이문득떠올랐다는것이다.그회심의순간,조선인이라괄시받던기억이겹쳐떠오르며그는마침내‘사업을일으켜나라를지킨다’는일생의목표를세운다.이러한사업보국(事業保國)의정신은이후호암만의독특한경영철학으로자리매김한다.
사업을벌이기로마음먹은호암은삼성물산을세워본격적으로창업에뛰어들고,이어제일제당과제일모직등으로큰성공을거두며한국고유의산업자본을건립하는데성공한다.그러나그도항상탄탄대로만을달리지는않았다.남북분단과한국전쟁이후의혼란스럽던정치적상황으로흔들린적또한여러번이었다.그러나처음마음에새긴뜻인‘기업으로스스로를세우고국민복지에공헌한다’라는결심을되새기며활로를모색하고다음단계를위한청사진을그릴수있었다고호암은말한다.즉,정세를가늠하는차가운통찰력과사업을통한사회공헌이라는뜨거운신념이맞물리며삼성이라는거대한배가항해할수있었다는것이다.지금의삼성을만든결정적순간들과그순간을이끌었던지도자의생각이궁금하다면일독을권할만하다.
무에서유를일군창조적창업가가전하는경영비법
호암에게따라붙는수식어는많지만,한국산업구조의지형을여러번뒤바꾼그를가장잘설명하는말은다름아닌‘시대를앞선창조적지략가’라는평가다.독자들역시독립적인산업기반이전무했던일제강점기시절무역상으로출발하여,IT업계를이끄는글로벌기업을일구어낸창업가에게는어떠한특출함이숨어있었는지엿볼수있으리라는기대감으로이책을집어들것이다.
호암은50여년동안자신만의경영비법을벼려온과정을보여주며시대를앞서가는기업가의자질이란무엇인지그려낸다.특히젊은시절정미소와토지투자사업이실패로끝나자,스스로를냉정하게돌아보고부족한점을낱낱이가려냈다는일화는호암식경영철학의뼈대를세우는중요한사건이었다.이때그는평생의지표로삼을큰깨우침을얻는다.사업을벌일때는시기와정세를적확하게꿰뚫어보고,일단판단이서면초기의목표를이룰때까지정진해야한다는큰원칙을발견한것이다.
이른바경영의정도(正度)지만,모두가알아도쉬이실천하기는어려운이대원칙을기업경영의구석구석에도입하고,누구도따라하지못할성과까지이끌어냈다는점에서호암의성공기는시사하는바가크다.지금의삼성그룹을대표하는반도체사업또한호암의뚝심있는경영스타일이결실을거둔대표적인사례다.유례없는성장을이룬1970년대,한국경제의중심축이점차부가가치가높은전자산업으로옮겨갈것이라예측한호암은수많은전문가와기업가,임원들의만류를뿌리치고대대적인반도체사업육성에나선다.그결과는모두가목격했듯전례없는대성공이었다.이처럼뛰어난통찰과이를뒷받침하는의지력으로‘삼성신화’를그려낸인물의이야기를따라가며독자들은현실속에서이상을펼쳐내고야마는뚝심을목격할것이다.
‘삼성신화’에가려진호암의사적인세계
거목은그명성이높을수록그만의사적인세계가가려지기쉽다.‘삼성창업주’라는명성의그늘아래숨어있던호암의인간적면모역시《호암자전》이출간되고나서야세간에조금씩알려지기시작했다.어린시절의한학공부에서비롯된유학자적기질과사소한기호품까지도일류를고집했던취향등을세세하게담아낸만큼,호암이라는인물의결이고스란히느껴지는회고록인덕분이다.그러나무엇보다도이책은그의취미편력뿐만아니라굴곡진생애를장식했던빛과그림자를모두엿볼수있는기록이라는점에서더욱특별하다.
호암은빛나는역사와함께어두웠던순간들까지도진솔하게책속에새겨넣으며스스로의말대로“한인간의삶을,겸허하게사실그대로이야기”한다.그중에서도특히민족자본건립이라는목표를향해쉴새없이달리던1970년대,난데없이‘부정축재자1호’라는꼬리표가붙어검찰조사까지받은사건은이후로도오랜시간깊은회의감을남긴일생일대의고비였다.그러나그는‘호수처럼맑은물을잔잔하게가득채우고큰바위처럼흔들리지않는준엄함을가져라’라는뜻이담긴자신의호‘호암’(湖巖)처럼곧마음을추스르고일어나국가인프라구축이라는목표에새로이정진한다.이흔들림없는마음경영의밑바탕에는오랜시간《논어》등의한문고전을탐독하며길러온단단한내적규범과더불어자신의소명에대한뚜렷한인식이있었다고호암은담담히말한다.확고한신념이신기술과첨단지식보다앞서야한다는호암의이같은믿음은책곳곳에수놓아져있어,불확실성의시대앞에서흔들리는우리들에게도묵직한울림을안긴다.재계의거목으로올라선창업가의경영비법서를기대하며이책을펼쳐든독자들도마지막장을덮으면서는기업경영을넘어마음경영의바른토양이무엇일까하는고민에빠져들지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