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비 최익현

마지막 선비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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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면암 최익현, 조선 말기 위정척사파의 대표 격으로 알려진 그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침략해 들어오는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 전통사상과 질서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저자 이승하는 최익현의 인간적인 면모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무엇이 그를 위정척사파와 의병장 활동으로 이끌었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최익현의 초지일관한 자세에 주목한다. 단발령에 반대하며 외친 “내 목을 자를지언정 상투를 자를 수는 없다!”는 말, 의병활동 끝에 붙잡혀 일본 대마도로 끌려가자 일본 땅에서 난 쌀로 지은 밥, 일본 땅에서 난 야채로 만든 반찬은 먹지 않겠다며 단식투쟁 끝에 맞은 죽음이 바로 최익현의 한결같음을 잘 드러낸다.
저자

이승하

저자이승하는경북의성에서태어나김천에서성장하였으며,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와동교대학원을졸업했다(문학박사).현재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이자한국문예창작학회회장으로활동하고있다.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시가,1989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소설이당선되었으며,대한민국문학상신인상,서라벌문학상신인상,지훈문학상,중앙문학상,시와시학상작품상등을수상했다.시집으로《인간의마을에밤이온다》,《천상의바람,지상의길》,《감시와처벌의나날》등이있고,소설집으로는《길위에서의죽음》이있다.

목차

·머리말:고지식한인물최익현을위한한시인의변론4

·들어가며:대마도에서크게실망하다17

제1장올곧은선비의길을가다
귀신이아니고기남이라29
이항로의제자가되다36
기해박해와병인양요41
이항로의위정척사사상50
출세가도를달리다56

제2장대원군을몰아내고제주도로귀양가다
상소문을처음으로올리다65
대원군의개혁과막강한권력71
대원군과명성황후의대결76
신미양요승리와서원의철폐80
계유상소와대원군의몰락93

제3장도끼들고상소문올리다
유배지제주도로가는길103
운요호사건111
정한론과구로다의생떼118
도끼들고가상소문을올리다124

제4장흑산도유배와단발령반대
흑산도에서의고통137
긴침묵의세월144
또한번의상소문155
내목을자를지언정상투는자를수없다159
임오군란과대원군의복귀168

제5장마지막애국
선유대원을거절하다181
12조의시무책을올리다193
이질로고생한뒤고종을만나다207
두차례강제송환되다215
을사오적을처단하라221
상소가안되면깃발을들자235

제6장마침내깃발을들다
의병의깃발을높이들다239
일본군의앞잡이순창군수246
깃발,너무일찍꺾이다251
홍주의병장민종식의활약261

제7장크나큰별,대마도에서지다
대마도로간최익현269
일본땅에서난음식을거부하다274
대마도에서순국하다282
전국방방곡곡에서선생의뜻을기리다295

·면암최익현연보303

출판사 서평

내목을자를지언정상투를자를수는없다!
일제에맞서싸운조선의마지막선비면암최익현의삶


면암최익현,조선말기위정척사파의대표격으로알려진그는제국주의열강들이침략해들어오는혼란한시대상황속에서우리전통사상과질서를지키고자노력했다.이과정에서외국문물의적극도입을통한발전을주장하는개화파와대립하고흥선대원군의쇄국정책을지지한그에게우리나라의근대화와발전을가로막은시대착오적인물이라는평가또한뒤따른다.그러나이는어디까지나현대의관점에서바라본결과론일뿐이다.평생을왕조와유교사상속에서살고공부한선비들,특히최익현과같은위정척사파에게왕조와유교사상그리고국가란서로분리될수없는관계였다.
저자이승하는최익현의인간적인면모를중점적으로다루면서무엇이그를위정척사파와의병장활동으로이끌었는지를묘사한다.특히최익현의초지일관(初志一貫)한자세에주목한다.지식인이라면‘권력과영광’앞에서초심을잃어버릴수있으며,더구나일제의총칼앞에서는아무리유학자라해도기존의왕조와사상에대한충절을지키기가쉽지않았다.그러나최익현은변심이나변절은커녕자신의굳은신념에대해의심하거나회의하지않고한결같이고지식하게‘우국충절’의정신을지켰다.단발령에반대하며외친“내목을자를지언정상투를자를수는없다!”는말,의병활동끝에붙잡혀일본대마도로끌려가자일본땅에서난쌀로지은밥,일본땅에서난야채로만든반찬은먹지않겠다며단식투쟁끝에맞은죽음이바로최익현의한결같음을잘드러낸다.
이책에서특히흥미있는부분은여러차례에걸쳐장문으로소개된최익현의상소문(上疏文)내용이다.최익현은젊은시절부터장장50여년에걸쳐고종임금과상소문과답서(答書)를주고받았다.그는이를통해누구보다도고지식하게임금의잘못을지적하였으며,그때문에고종과주변신하들의노여움을사2번이나귀향을다녀오고서도바른소리를멈추지않았다.이를통해우리왕조와사상을단지유지하려고만한것이아니라,힘없는백성들을위한정치를펴고자한최익현의우국충절을확인할수있다.
1905년,결국을사조약이체결되어우리나라는일본제국주의의식민지가되고,최익현은이제는일어나싸울수밖에없다고결심한다.의병을일으키기위해격문을돌리고모병활동을하던중,하루는어떤양반이찾아와최익현에게이번거사가과연성공할수있겠느냐고물었다.최익현은이렇게대답했다.

“나도성공하지못할것을잘압니다.그러나우리나라의역사500년이여기서종지부를찍으려하는데백성들중힘을합쳐적을토벌하고국권을회복함을의(義)로삼는사람이한사람도없으면후손들보기에얼마나부끄럽겠소?내나이가일흔넷이지만신하의직분을다할따름이요,죽고사는것에연연하고싶지않소이다.”

일본과싸워서이길수없음을잘알지만싸우지않을수없으니싸우겠다는각오.이것이바로대쪽같은선비최익현이택한나라구하기해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