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서법묵예

김종영서법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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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종영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은 경남 창원 출생으로, 부친으로부터 전형적인 동양의 사대부 교육을 받고 향리에서 소학교를 마쳤다. 서울 휘문학교에 입학하여 장발(張勃)을 은사로 만났고, 이쾌대(李快大), 윤승욱(尹承旭) 등과 함께 수학했다. 1936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진학하여 조각을 전공했으며, 1941년 졸업 후에도 연구과(대학원 과정)에 머물면서 제작생활에 몰두했다. 1943년 귀국한 그는 오 년간 고향에 묻혀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8년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장이던 장발의 요청으로 김용준(金瑢俊), 장우성(張遇聖), 김환기(金煥基) 등 당대의 뛰어난 미술가들과 함께 서울대 미대 교수가 되었고, 이후 1980년 정년퇴임하기까지 작품활동과 미술교육에 전념했다. 1953년 봄 영국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주최한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각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조각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59년 장우성과의 2인전에서 작가로서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경북 포항의 〈전몰학생기념탑〉(1957), 서울대 음대의 〈현제명 선생상〉(1960), 서울 탑골공원의 〈3·1 독립선언기념탑〉(1963) 등 기념비적인 조형물들도 많이 남겼으며, 서울대 미술대학장, 국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1975년 신세계미술관에서의 회갑기념 개인전, 1980년 서울대 정년퇴임 기념 현대미술관 초대전 등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목차

서문-최종태(崔鍾泰)

영문해제



작품



인장(印章)

작품목록과 원문

작가약전(作家略傳)

출판사 서평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헛된 노력'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현실적인 이해를 떠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유희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없이는 예술의 진전을 볼 수 없다." ―김종영, 「유희삼매(遊戱三昧)」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 김종영 예술세계의 정수

한국현대미술사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 조각가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 1915-1982). 그가 남긴 작품을 엄선하여 정리하는 작업이 '각도인 김종영 선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동경미술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생을 마칠 때까지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선구자로서 큰 업적을 쌓은 김종영은, 서양미술을 전공했지만 끊임없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미(美)라는 명제와 싸워 온 흔치 않은 예술가였다. 궁극적으로는 추상조각을 통해 절대미를 추구했던 그였지만, 그가 남긴 결실들은 스케치, 데생, 소묘, 먹그림, 서예 등 다양한 미술장르에 관한 끊임없는 연마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조각 외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선보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의 예술의 깊이와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지금까지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김종영 작고 1주기를 기념하며 발행된 유고집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열화당, 1983)에서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유가 드러났고, 2002년 김종영미술관이 건립되어 크고 작은 그의 전시가 열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의 예술세계가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200여 점의 조각작품 외에도 3,000여 점의 소묘작품과 800여 점의 서화작품 등 엄청난 규모다. 이렇듯 광활한 그의 예술지도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한 첫 작업이 바로 '각도인 김종영 선집'이다. 이 시리즈는 엄선된 서화작품을 담은 『김종영 서법묵예』로 시작하여 두번째 권 인물소묘, 세번째 권 풍경소묘, 네번째 권 추상소묘,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권 조각작품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刻人, 刻道人, 不刻道人

처음으로 선보이는 김종영의 서예작품들은 활달하며 자유로운 그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대가의 글씨를 흉내내지도 않으면서, 그야말로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씨들은 불균형 속의 균제, 속기 없는 졸박함을 잘 담고 있다.

그의 서예 이력은 집안내력과 함께 언급되어야 하는데, 191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그는, 시서화(詩書畵)에 능통했던 부친으로부터 전형적인 동양의 사대부 교육을 받고 향리에서 소학교를 마쳤다. 1930년 서울 휘문학교 입학 후 십칠 세 때인 1932년에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전국학생서예실기대회'에서 안진경체(顔眞卿體)로 일등상을 수상하면서 일찍이 뛰어난 예술적 품성을 드러냈다. 서예와 관련한 공식적인 이력은 여기까지이지만, 그 이후로 김종영은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가 글씨를 쓰면서 추구한 바를 글 끝에 적힌 그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우성 김종영'이라는 평범한 표현에서 '각인(刻人) 김종영' '각도인(刻道人) 김종영' '불각도인(不刻道人) 김종영'으로 변천해 갔다. 조각가라는 뜻의 '각인'에서 '조각의 최고 경지(刻道)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각도인'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경지인 '불각도인'으로 옮아간 것이다.

그는 동서미술을 꿰뚫고 동서철학을 수용 조절하고 일찍이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유유자적한 은자(隱者)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그의 붓글씨에 온전히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김종영미술관 관장이자 그의 제자였던 조각가 최종태는 '우성 선생의 붓글씨는 본령(本領)인 조각보다도 더 김종영다운 일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 책은 최종태의 서문을 시작으로 영문 해제, 그리고 본문으로 김종영의 붓글씨 50점과 먹그림 18점이 소개되어 있으며, 말미에 '인장(印章)' '작품목록과 원문' '작가 약전'이 덧붙여져 있다. 출간에 맞추어 김종영미술관에서는 「각도인서(刻道人書): 조각가 김종영의 서화」전이 10월 8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