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한문 정본)

백범일지(한문 정본)

$32.06
Description
“김구 선생이 자호(自號)하기를 백범(白凡), 즉 백정이나 범부의 신분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독립운동을 하셨듯이, 책 만드는 우리도 스스로 염장이 또는 염꾼의 신분으로 몸을 낮추어, 우리 역사의 말뿌리와 글뿌리를 가다듬고 복원하는 일에 임해야 한다.” ?‘정본 백범일지’ 편찬에 임하는 열화당 이기웅 발행인의 노트에서
저자

김구

9세에한글과한문을배우기시작했고,18세에동학에입문하여접주가되었으며,해주에서동학군을거느리고봉기했으나관군에게진압되자만주로도피했다.이듬해귀국,시해된명성황후의원수를갚고자일본육군중위를살해,사형이확정되었으나고종의특사령으로감형되었다.3/1운동직후에는상해로망명해임시정부를이끌었으며,28년에한국독립당조직에참여,적극적인항일무력활동을전개하였다.39년임시정부주석에취임한후에는광복군특별훈련반을설치,한반도수복군사훈련을적극추진하던중광복을맞이했다.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한국의신탁통치가결의되자반탁운동을전개하였으며,48년남한만의단독총선거를실시한다는UN의결의에반대하여통일정부수립을위한남북협상을제창,평양에서열리는남북협상에참가하였으나실패했다.그후정부수립에가담하지않고민족통일의원칙을계속주창하다가,49년경교장에서육군소위안두희에게암살당해국민장으로효창공원에안장되었다.62년건국공로훈장중장이추서되었다.

목차

인과신두아들에게주는글

상권
조상과가정/출생및유년시대/학동시대/학구시대/동학접주/청국시찰/국모의원수를갚다/
투옥/사형선고를받다/대군주께서형집행을정지하라고/친히전화하다/파옥/치도/예수교와교육자/
두번째투옥/세번째투옥/옥중생활/농부/출국/경무국장/내무총장/상처/국무령/국무위원

하권
자인언/상해도착

계속
통일문제/광복군조직공작의성과

편집자주
「정본백범일지」를펴내며
색인

출판사 서평

왜『백범일지』를다시출간하는가
『백범일지』가초판발행된것은백범선생이돌아가시기두해전인1947년이었다.당시국사원(國士院)내에둔‘김구자서전백범일지출판사무소’에서화보(畵報)와백범선생의서문(序文),『백범일지』의「상권」「하권」「계속」의내용을싣고,부록형식으로「나의소원」을덧붙여‘김구자서전백범일지’라는제목으로출간된것이다.규모는사륙판424면으로,원문이대폭축소간행되었다.이후백범선생의차남김신(金信)선생이좋은뜻으로저작권을스스로해제하였으나,결과적으로는무분별한출판으로이어져지금까지팔십여종의『백범일지』가국내에서출간되는우려스러운상황에이르렀다.
게다가안타깝게도『백범일지』의출간은처음부터단추가잘못꿰어졌다.원본성(原本性)이크게훼손된것이다.첫출간당시원고의윤문을한이는춘원(春園)이광수(李光洙)선생으로알려져있는데,그로인해백범의냄새가많이지워져버렸고,중국상해(上海)와중경(重慶)의긴박했던독립운동현장에서기록한원본의생생함이적잖이희석되었으며,백범특유의투박한듯한문체가윤색되었을뿐아니라,심지어는인명과지명의착오,내용의뒤바뀐서술,원문의대폭생략등,‘원본에서가장멀어진판본’이라는평가를받고있기도하다.
그러나이국사원본이당시로서는백범선생의서문을받아수록했고,또백범선생의발간승인을얻어출간되었기때문에,이를저본(底本)또는대본(臺本)으로하는『백범일지』가이후계속해서출간되어국민들에게널리읽혀왔고,안타깝게도초판의문제점을근본적으로바로잡은책은찾아보기힘들었다.
열화당은오랫동안이러한문제의식에서‘정본백범일지’의출간을계획해오다가실제편찬에착수하여,삼년에걸친작업끝에친필원본을그대로활자화한한문정본『백범일지』,그리고역시친필원본을저본으로삼아오늘의말로풀어쓴한글정본『백범일지』,이렇게두권으로이루어진‘정본백범일지’이백질을2015년12월에제작하였다.그리고삼년여동안시판하지않고,다시금여러차례검토하면서몇몇오기(誤記)나오류를정정하여완성도를높이는숙성의시간을가져오다가,오늘일반에내놓게되었다.
이두권은모두친필본과같은세로쓰기체제로편집하였으며,친필본과같은크기의판형으로제작되었다.올바른원본이존재한연후에이를토대로한주석본,번역본,축약본,교육용도서,아동용도서,그리고영화,연극,오페라,뮤지컬등이나와야함이원칙이라한다면,이러한사실만으로도‘정본백범일지’가출간되어야하는당위는충분할것이다.

어떤책만들기로‘정본’을지향하였는가
‘정본백범일지’의출간은원본성문제에서출발한것만은아니었다.이러한결정을하기까지에는우리의올바른‘말뿌리’와‘글뿌리’를찾고자하는열화당의출판정신이그배경에깊숙이깔려있다.세종임금께서1443년훈민정음(訓民正音)을창제하셨으나,알다시피19세기까지우리의‘글쓰기’는주로한문(漢文)으로이루어져온것이사실이다.우리의올바른말뿌리와글뿌리를찾는일은이런우리언어의태생적역사적운명을소상히이해하는것에서출발해야한다.이기웅발행인은간행사「‘정본백범일지’를펴내며:우리기록문화유산의올바른보존과정립을위하여」에서다음과같이말한다.

“『백범일지』원본의수많은한자,그리고한문투의문장들은한자와한글이함께해온우리말,우리문자의역사적운명의소산이다.한자는‘동아시아문자’이지중국만의글자라고단정해서는안된다.페니키아문자,라틴문자를거쳐오늘에이르게된알파벳이‘서양공용의문자’이듯이,한자(漢字)는그이름이중국한(漢)나라에원연을두고있을뿐이지,엄연히‘동아시아공용의문자’로존재해왔던것이다.그러므로우리의한글과한문은떼려야뗄수없는,떼어서는아니되는언어적숙명관계에놓여있으며,그러한시대적상황에서우리어문을향한백범의글쓰기를그대로받아들이는것이중요하다.”

한편,출판에서‘책의형식’또한우리말뿌리,글뿌리를복원하기위한매우중요한요소이다.동아시아에서‘세로쓰기’는필사(筆寫)나책자(冊子)형식의기본원리로,오늘에맞는세로쓰기의복원을통해우리는『백범일지』원본의형식뿐아니라백범의정신과숨결을가장잘살릴수있다고믿으며,그럼으로써진정한의미의‘정본’이되리라고자부한다.이기웅발행인은“우리가오랜세월지켜오던세로쓰기를이토록철저하게버린것은,컴퓨터가보급되면서알파벳자판에맹목으로무릎을꿇은결과이다.『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에서보다시피,한글창제당시부터세로쓰기원칙을알수있으며,1980년대중반까지우리는세로쓰기를지켜왔던것을기억해야할것이다”라고말하고있다.
그리하여‘정본백범일지’는원본의체제와같은세로쓰기를채택하였는데,특히첫째권‘한문정본’은원본의한자는한자그대로,한글은한글그대로표기하는것을원칙으로삼았고,‘오늘에맞는세로쓰기’가되게하기위해한자마다어깨글자로독음을달아가독성을높였다.
책의형식뿐아니라내용면에서도‘정본’을지향하면서교정과편집에철저함을기하였다.실무작업에앞서우선계획안작성에착수하여『백범김구전집』(전12권,대한매일신문사,1999)과『친필을원색영인한김구자서전백범일지』(집문당,2004)를비롯하여,기존에친필원본을저본으로삼아출간하였거나충실한번역본을지향하여출간한여러판본들을면밀히검토하여,이판본들이범한다수의오류들을바로잡았다.『정본백범일지』의첫째권인‘한문정본’은모두여덟차례의대교(對校)와교정(校訂)작업을,이를토대로조심스럽게우리말로풀어낸‘한글정본’은여섯차례의번역과교정작업을거쳤다.사료적(史料的)활용을위해두권모두책말미에상세한색인을수록하였고,‘한글정본’은내용의이해를돕기위해‘편집자주(註)’약760여개를달았다.
이기웅발행인은이책말미에수록한발간사에서출간의의미를이렇게밝히고있다.

“『백범일지』의간행역사를보면,어떠한기록이라도환경과여건에따라그본의가잘못전달될수있음을알수있다.다만우리는이것이참기록인듯그대로전해질까두려워하면서,백범의체취가살아있는육필원고를정성껏염(殮)하는심정으로이책을간행하였다.『백범일지』의출간에서힘을빌릴최고의솜씨는오로지백범뿐이다.아무도그를대신할수없다.이런생각으로우리는철두철미원본에근거한‘정본백범일지’를지향해왔으며,이같은작업이야말로정녕우리민족의자존이걸린일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