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과 깃발: 그들의 노동에 3 (반양장)

라일락과 깃발: 그들의 노동에 3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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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70년대 중반, 나이 오십을 앞둔 존 버거는 알프스 자락 산악 마을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1972년 비비시 텔레비전 프로그램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와 동명의 책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같은 해 소설 『G』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미술평론가와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어가던 때였다. 전성기를 누리던 사십대의 작가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 세계 역사의 흐름은 금융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고, 오직 생존을 위해 헌신하는 농민계급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될 위기를 감지한 존 버거는 이에 저항할 대안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 ‘두번째 교육’, ‘나의 대학’이라 불렀던 프랑스 농민 공동체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역사였다. 미술평론가나 작가로 불리기보다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사라져가는 이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사명이었다. 이후 십오 년 동안 이 주제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번역 출간된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Into Their Labours)’는 그 결과물로, 1974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90년에 완성했다. 1부 『끈질긴 땅(Pig Earth)』(1979)은 산악 마을의 전통적인 삶을 묘사하고, 2부 『한때 유로파에서(Once in Europa)』(1987)는 그런 마을의 삶이 사라지고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실향을 그린다. 3부 『라일락과 깃발(Lilac and Flag)』(1990)은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 대도시에 영원히 정착한 농민들의 사랑 이야기다. 배경은 유럽 시골 마을과 도시이지만, 몇몇 세세한 면을 제외하고 보면 세계 여러 대륙에 있는 많은 국가들에 존재하는 보편적 장소들이다.
저자

존버거

(JohnBerger,1926-2017)는미술비평가,사진이론가,소설가,다큐멘터리작가,사회비평가로널리알려져있다.처음미술평론으로시작해점차관심과활동영역을넓혀예술과인문,사회전반에걸쳐깊고명쾌한관점을제시했다.중년이후프랑스동부의알프스산록에위치한시골농촌마을로옮겨가살면서생을마감할때까지농사일과글쓰기를함께했다.저서로『피카소의성공과실패』『예술과혁명』『다른방식으로보기』『본다는것의의미』『말하기의다른방법』『센스오브사이트』『그리고사진처럼덧없는우리들의얼굴,내가슴』『모든것을소중히하라』『백내장』『벤투의스케치북』『아내의빈방』『사진의이해』『스모크』『우리가아는모든언어』『초상들』『풍경들』등이있고,소설로『우리시대의화가』『여기,우리가만나는곳』『G』『A가X에게』『킹』,삼부작‘그들의노동에’『끈질긴땅』『한때유로파에서』『라일락과깃발』이있다.

목차

오래된연애시/탄생/음식/물/불/콘크리트/범죄/하늘/결혼/팔기/수배/
사랑스런몸/취조/여정

출판사 서평

1970년대중반,나이오십을앞둔존버거는알프스자락산악마을로삶의거처를옮긴다.1972년비비시텔레비전프로그램‘다른방식으로보기(WaysofSeeing)’와동명의책이대중적으로성공하고,같은해소설『G』로부커상을받으면서미술평론가와소설가로서명성을얻어가던때였다.전성기를누리던사십대의작가가이런결단을내린이유는무엇이었을까.
1970년대세계역사의흐름은금융자본주의가나아가는방향으로완전히틀어져있었고,오직생존을위해헌신하는농민계급이더이상생존할수없게될위기를감지한존버거는이에저항할대안을찾아야했다.스스로‘두번째교육’,‘나의대학’이라불렀던프랑스농민공동체는그에게거부할수없는역사였다.미술평론가나작가로불리기보다‘이야기꾼’이되고자했던그에게,사라져가는이들의삶을체험하고그이야기를전하는일은사명이었다.이후십오년동안이주제로글쓰기에매달렸고,생을마감할때까지이곳을떠나지않았다.
이번에새로번역출간된삼부작소설‘그들의노동에(IntoTheirLabours)’는그결과물로,1974년부터집필을시작해1990년에완성했다.1부『끈질긴땅(PigEarth)』(1979)은산악마을의전통적인삶을묘사하고,2부『한때유로파에서(OnceinEuropa)』(1987)는그런마을의삶이사라지고현대화하는과정에서펼쳐지는사랑과실향을그린다.3부『라일락과깃발(LilacandFlag)』(1990)은자신들의마을을떠나대도시에영원히정착한농민들의사랑이야기다.배경은유럽시골마을과도시이지만,몇몇세세한면을제외하고보면세계여러대륙에있는많은국가들에존재하는보편적장소들이다.

이삼부작의역사적의미
그렇다면왜농민인가.오늘날농민과경제체계는어떤관계인가.농민들의경험은전세계적차원에서어떤의미인가.존버거는1부머리말에서옛농민들이지녀온시간관,경제관,그리고정치적입장과종교적태도는다른계급이나집단의그것과는전혀달랐음을심도있게분석한다.그들에게미래에대한유일한희망은살아남는일이었다.땅을통해생계를유지하기위해끝없이노동해야하는농민들은자신의삶을미래와과거사이에놓인하나의‘막간’에불과한것으로본다.이는그들이매일익숙하게마주하는탄생,삶,죽음의연속에서깨달은이치다.이점때문에농민들은종교에의지하지만그믿음의기원은정작종교가아니며,지배자나성직자의종교와도일치했던적이없다.또내일의생존이가장큰관심사인만큼,(지주들이생산물을착취해가는부분외에는)자신들이생산한것을경제적잉여로간주하지않는다.임금노동자들은자신이생산한것의가치에속아넘어가기쉬운반면,농민들이맺는경제적관계는언제나투명했기때문이다.정치적으로종종보이는농민들의보수주의는지배층이나아첨하는프티부르주아의그것과는아무공통점이없다.권력이아닌수단의보수주의이고,예측불가한변화의위협에맞서온삶,대를이어내려온가치를지키기위한선택이었다.
이렇게흔들림없이살아남은농민의세계관은19세기들어변화하기시작한다.자본과시장경제에노출되면서그들에게돈을지불하고수확물을사가는이윤체계에종속되었다.농민들의도시이주가시작되고버려진마을이생겼다.농업의대규모상업화와식민지화로농민들의자손은도시임금노동자가되어다른계급에흡수되었다.
이제농민들의꿈은불리한조건이없는삶으로돌아가는것이되었다.부당함이생기기전,존재의근원적인상태로말이다.물론농업이꼭농민을필요로하는것은아니다.하지만그들의경험으로확인된연속적세계관은자본주의의덧없고모순된희망보다는지금우리에게더현실적이다.진보를향한농민들의의심은,오늘날자본주의가대안을찾느라똑같은의심을하고있다는점에서근거없는게아니었다.이삼부작은이같은진실을가르쳐준,여전히시골마을에살거나대도시로떠나야만했던사람들과의연대를위해씌어졌다.

라일락과깃발?살아돌아오지못한사람들
3부『라일락과깃발』은고향을떠나대도시에정착한사람들의사랑이야기로,부제에서알수있듯이이름도배경도모르는한나이든여인이화자로나온다.그녀는(1,2부의마을과같은곳으로추정되는)산악마을에살면서도시로사라져다시는살아돌아오지못한수많은사람들을지켜봐왔다.주인공쥬자와수쿠스는연인이되기위해힘겹게싸우는젊은남녀로,‘라일락’과‘깃발’은그들이서로를부르는애칭이다.수쿠스는어릴때고향을떠나트로이에정착한클레망의아들이다.안정된직장을갖지못한수쿠스는교도소앞에서커피를팔고,크레인이있는공사장인부로일하다가,광장에서사람들의혈압을재고돈을받는다.쥐언덕판잣집에사는쥬자는트로이에서그를만나사랑에빠지고둘은평범한연인들처럼미래를꿈꾼다.그녀의오빠나이시는살아남기위한새로운편법들,살아남는것이더이상문제가아닌사람들에합류할최신계획들을연구한다.“우리는법바깥에서태어났기때문에뭘하든법을어기는셈이야.”그리고쥬자와수쿠스는그가공모한밀매에가담한다.집까지추적해온경찰과의총격전으로나이시는죽고쥬자는사라져버린다.
이들이사는트로이는공항과자동차전용도로와사무실과돈이모이는광장이있는모든현대도시를상징한다.소설의주된배경은대도시이지만,화자를비롯한소설속인물들은자신이살던,또는부모님이살았던시골마을의풍경을기억하고이를매개로하나로연결된다.입에서입으로이어져내려온고향의이야기들은도시에서의황폐한삶을위로하고삶을지탱해주는이미지로각자의가슴에슬프게존재한다.
하지만살아남기위해발버둥칠수록죽음은더가까이다가오기라도하는듯,그들대부분은살아남지못한다.종국엔어느낯설고환상적인장소에다다른다.물위뿐아니라땅위로도다닐수있는,모든것이흰색이고선실전체가일등석인,구명보트나안전벨트따위없이도어떤위험에처하지않을것같은배.쥬자가있어야할이하얀배에정작그녀는없다.그리고배는수쿠스가꿈꾸던아버지의고향아라비스에정박한다.
환상적인끝맺음을하는3부는존버거만의독특한서술방식이가장절정을이루는데,인물들이처한시련과고통을가감없이기술하는동시에그들이나누는연민과사랑을서정적인언어로섬세하게표현한다는점에서그렇다.이는그의다른소설『A가X에게』『킹』등과도연결되며,사회문제에대해투쟁적이면서도거기에는언제나연민과사랑이함께해야한다는것,그래야비로소진정한연대가가능하다는생각이담겨있다.또죽은이들과살아있는이들이하는대화,과거와현재와미래로넘나드는시간,어디에나있을법한장소등,『여기,우리가만나는곳』에서도나타나는서술기법역시발견된다.별개의이야기인듯하지만인물들은생사구분없이연결되고,트로이,부다페스트역,알렉산더광장등익숙하면서도알수없는조합으로장소의이름이차용된다.이로써우리는모든도시의어두운거리,기차역,술집,광장,교도소에서지금의‘라일락’과‘깃발’을알아볼수있게된다.

그들의노동에?공동체적연대
삼부작의제목은『요한복음』4장38절의구절인“다른사람들이노동하였고,너희는그들의노동에들었느니라”에서비롯되었다.예수가사람들에게다른이들이해놓은것을거두어오라고하면서,자신이하지않은일로혜택을누린다는사실을상기시키며하는말이다.여러가지로해석이가능하겠지만,존버거가이를제목으로가져온까닭은오랜인류역사속에서농부들이살아온연속된시간관,공동체적삶의형태를이야기하고싶었기때문일것이다.과거와현재와미래가단절되지않고앞세대의결실이다음세대에게이어지는,이웃간의손길이경계없이오가는삶의방식말이다.그렇다면이삼부작을통해제시하고자한대안은무엇일까.도시를떠나시골로내려가기만하면해결되는일일까.그건너무낭만적이고순진한생각이아닌가.그들이대도시가아닌농촌에서살아남을수있었다면과연이런비참한최후를맞지는않았을까.
근대는성장과진보가역사의목적이자추진력이된시대이다.이원칙은부르주아가부상하는계급으로등장하면서탄생했고,현대의모든혁명이론들을통해계승되었다.이십세기의자본주의와사회주의의대결은,이데올로기의관점에서보자면,그러한진보의내용에대한대결일뿐이었다.자본은좌파와우파를불문하고그렇게자신을끊임없이재생산하는한에서만인정받는다.김종철은『근대문명에서생태문명으로』에서우리에게정말필요한것은“성장없이는존속할수없는근대적방식에대한‘적응’을말할게아니라,성장논리와는무관한질적으로전혀다른삶,즉‘비근대적’방식으로방향전환하려는급진적노력”이라고말한다.그리고그해결책으로소농공동체를제안한다.농민들의자립적생존이라는근원적밑바탕이소멸된다면자본과권력의논리에끝없이휘둘릴수밖에없기때문이다.존버거의제안역시이와같은맥락이며,농경적삶으로돌아가자는막연한몽상이나낭만과는거리가멀다.현실도피가아니라현실을살아가기위한마지막방편인것이다.
그가세계의위기를감지하고삼부작을썼던삼사십년전보다현실은더악화되었다.인권이나평등의차원을뛰어넘어,기후위기,수질오염,쓰레기,기업식대규모축산업에의한구제역과살처분등,전인류와지구생명이위협적상황에직면해있기때문이다.모든환경문제는자본주의시스템과직결되어있다.지금우리가당연시하고있는이체제는사실장구한역사속에서대단히예외적인시스템이다.이제최면에서깨어나성장을향한질주에제동을걸고운전대를돌리는용기가필요하다.이삼부작은그용기들에힘을보태는연대의손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