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래전 교과서 속에 나란히 등장했던 ‘철수’와 ‘영희’를 기억할 것이다. 그 세대가 아니더라도 광고나 패러디 작품 등을 통해 이름과 해맑은 얼굴은 친숙할 정도이니, 한국의 어린이상을 대표하는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에도 이같은 주인공들이 존재한다. 세계적인 출판사 펭귄 랜덤 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의 브랜드 레이디버드(Ladybird)에서 1964년부터 출간해 인기를 끌었던 클래식 아동 도서 시리즈의 ‘피터’와 ‘제인’으로, 그들의 일상을 통해 아이들이 핵심 낱말들을 배우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미술관에 갑니다(We go to the gallery)』에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이들 ‘존’과 ‘수전’이 등장해, 엄마를 따라 전시를 관람하면서 현대미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모범적이고 단란해 보이는 이 세 가족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섹스, 성기, 페미니즘, 신의 죽음, 벤처 자본가, 서구 문명의 악취, 전쟁과 피 등, 어린이 책에 좀처럼 등장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난무한다. 대체 이 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현대미술을 풍자하는 어린이 책?
이 책은 영국의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방송인 미리엄 엘리아(Miriam Elia)가 세운 쇠똥구리 출판사(Dung Beetle Books)에서 선보이는 ‘배움책 시리즈’ 중 첫번째 권이다. 선명한 색채의 삽화와 짧은 대화체로 구성되었고, 책끝에는 본문에 쓰인 낱말 60개를 수록해 교육용 책의 성격을 살렸다. 분량이 적기 때문에 얼핏 가벼운 그림책이라 판단할 수 있지만, 저자가 꾸려 놓은 은근한 풍자와 블랙 유머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레이디버드 시리즈 형식 자체를 오브제처럼 가져와 하나의 패러디 작품으로 기획했다. 쇠똥구리 로고는 레이디버드의 무당벌레 로고가 연상되고, 책의 장정과 구성 방식, 시리즈 번호,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수채화풍의 삽화 등도 유사하다. 사실 이 책은 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판으로 완성되었다. 처음엔 오리지널 레이디버드 시리즈를 콜라주해 아티스트 에디션(2014)으로 소량 출간했는데, 이를 본 팽귄 랜덤 하우스는 저작권 침해라며 책 판매를 금지했다. 엘리아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그림을 새로 그려 지금 판본을 완성함으로써 이 작업의 권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책의 인기를 지켜본 펭귄에서 유사한 분위기로 자체 성인용 패러디물인 레이디버드 키덜트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이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역으로 도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책의 맨 앞과 끝에 수록된 출판사, 시리즈, 저자에 대한 소개도 실제 정보가 아니라 저자가 설정한 가상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저자의 출생지나 학력 대신 ‘MSC, RAC, AIDS’ 같은 그럴듯해 보이는 약자를 제시하고(각각 이학 석사, 영국의 자동차 보험회사,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약자로, 저자 정보와는 동떨어진 의미이다), 남매 사이이자 공동 저자인 에즈라 엘리아(Ezra Elia)를 “자기혐오와 글쓰기 전문가”로 소개함으로써 학위나 자격 등이 줄줄이 나열되는 세태를 꼬집는다. 또한 5세 미만을 위한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온전하고 행복하고 모순된 삶으로 미래 세대들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시한다. 이처럼 전혀 조화롭지 않지만 천연덕스럽게 위치해 있는 표현들은 어떤 의도일까. 이 작은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이번에 번역 출간된 『미술관에 갑니다(We go to the gallery)』에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이들 ‘존’과 ‘수전’이 등장해, 엄마를 따라 전시를 관람하면서 현대미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모범적이고 단란해 보이는 이 세 가족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섹스, 성기, 페미니즘, 신의 죽음, 벤처 자본가, 서구 문명의 악취, 전쟁과 피 등, 어린이 책에 좀처럼 등장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난무한다. 대체 이 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현대미술을 풍자하는 어린이 책?
이 책은 영국의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방송인 미리엄 엘리아(Miriam Elia)가 세운 쇠똥구리 출판사(Dung Beetle Books)에서 선보이는 ‘배움책 시리즈’ 중 첫번째 권이다. 선명한 색채의 삽화와 짧은 대화체로 구성되었고, 책끝에는 본문에 쓰인 낱말 60개를 수록해 교육용 책의 성격을 살렸다. 분량이 적기 때문에 얼핏 가벼운 그림책이라 판단할 수 있지만, 저자가 꾸려 놓은 은근한 풍자와 블랙 유머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레이디버드 시리즈 형식 자체를 오브제처럼 가져와 하나의 패러디 작품으로 기획했다. 쇠똥구리 로고는 레이디버드의 무당벌레 로고가 연상되고, 책의 장정과 구성 방식, 시리즈 번호,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수채화풍의 삽화 등도 유사하다. 사실 이 책은 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판으로 완성되었다. 처음엔 오리지널 레이디버드 시리즈를 콜라주해 아티스트 에디션(2014)으로 소량 출간했는데, 이를 본 팽귄 랜덤 하우스는 저작권 침해라며 책 판매를 금지했다. 엘리아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그림을 새로 그려 지금 판본을 완성함으로써 이 작업의 권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책의 인기를 지켜본 펭귄에서 유사한 분위기로 자체 성인용 패러디물인 레이디버드 키덜트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이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역으로 도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책의 맨 앞과 끝에 수록된 출판사, 시리즈, 저자에 대한 소개도 실제 정보가 아니라 저자가 설정한 가상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저자의 출생지나 학력 대신 ‘MSC, RAC, AIDS’ 같은 그럴듯해 보이는 약자를 제시하고(각각 이학 석사, 영국의 자동차 보험회사,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약자로, 저자 정보와는 동떨어진 의미이다), 남매 사이이자 공동 저자인 에즈라 엘리아(Ezra Elia)를 “자기혐오와 글쓰기 전문가”로 소개함으로써 학위나 자격 등이 줄줄이 나열되는 세태를 꼬집는다. 또한 5세 미만을 위한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온전하고 행복하고 모순된 삶으로 미래 세대들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시한다. 이처럼 전혀 조화롭지 않지만 천연덕스럽게 위치해 있는 표현들은 어떤 의도일까. 이 작은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미술관에 갑니다 (양장본 Hardcover)
$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