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기억 (사진가 김근원의 산과 사람들 | 양장본 Hardcover)

산의 기억 (사진가 김근원의 산과 사람들 | 양장본 Hardcover)

$45.00
Description
이 책은 네 명이 오붓하게 떠난 가벼운 산행에서부터 이백여 명의 인원이 참가한 훈련 등반까지 산악운동의 다양한 규모를 다루고 있는데, 산악인들의 모험심과 도전정신은 어디를 가든 돋보인다. 1950-1960년대엔 그 시대적 특성상 등반을 위해서는 군(軍)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원들은 군용기와 군함을 동원해 바다를 건넜고, 폭설이 세상을 뒤덮은 때에도 군 트럭을 이용해 막힌 길을 뚫고 나아갔다. 궂은 날씨에 산 중턱에서 발이 묶이기도 했고, 조난되었다는 오해를 받는 웃지 못할 순간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히말라야를 꿈꾸며 현지에서 사용되는 극지법 방식의 등반 훈련도 해냈고, 에코클럽이 국내 최초로 설악산 토왕성폭포 빙벽의 하단 등반을 시도하면서 빙벽등반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1969년 설악산 눈사태로 등반대원들이 세상을 뜬 십동지(十同志)의 조난사고는 한국 산악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김근원은 이희성 대장을 비롯한 이들과 인연이 깊었기에 비통한 마음이 더했다. 이 책에는 조난자 발굴의 현장부터 장례식과 묘비 제막식까지의 아픈 기록이 담겨 있다.
저자

김근원

김근원(金槿原,1922-2000)은경남진주출생의산악사진가로,소년시절에상경해줄곧서울에서살았다.1930년대초카메라를갖게되면서처음사진을접했고,1954년북한산등반,1955년지리산등반을계기로사진작업에몰입,1956년부터한국산악회와함께하면서본격적인산악사진을시작했다.이후슈타인만클럽,에코클럽같은산악모임,이화여대사대산악부및등산부등반,대한스키협회개최스키대회,한국산악회주최등행대회,산악훈련등에참가해1950-1980년대한국산악사및스키역사의소중한기록들을남겼다.그결과물로「울릉도·독도보고전」(1956)을비롯해총6회의산악관련기록보고전을주도했고,개인전으로「북한산」(1976)외총16회의사진전을열었다.일본산악사진협회의해외사진가상(1967)과서울시장표창(1986)등을수상했으며,사진집으로는『한국의산』(1987),『명산』(1987),『산,그숭고한아름다움』(2005)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산의영혼에탁본된불멸의순간들
박인식

엮은이의말
디지털로되살린산의기억

천상의화원에서짙은안개속으로
두얼굴을지닌여름지리산종주

부드러운능선과다채로운암벽
네남자의설악산가을산행

해군함을타고떠난울릉도와독도
하계학생해양훈련

순백의절경을선사한백록담
역사적인적설기한라산등반

그대는아는가,저눈의나라를
대관령스키대회

스키불모지에서의가능성발견
평창발왕산답사

눈을찾아백두대간의마지막마을로
진부령흘리

두려움과즐거움이교차한모험
슈타인만클럽의설악산천불동스키등반

여성산악활동의효시
이화여대사대산악부

대학생들과함께한새로운경험
이대등산부의지리산과한라산등반

산악강국을위하여
산악운동의모체한국산악회

산악사진의개념을터득한순간
일본북알프스등반

일본산악인들과의합동등반
북한산,설악산,그리고한라산까지

히말라야를꿈꾸며
극지법방식의지리산훈련등반

산악선배에관한소회
김정태선생과일본인이이야마

등산대중화를위한노력
등행경기와경보대회

산에서만난인연들
함께한시간을추억하며

사진활동에힘을보태준동료들
에코클럽과의깊은인연

십동지를떠나보내며
설악산조난사고현장

제주의폭우와바람을헤치고
한라산학생해양산악훈련

국민체력향상을위한대규모행사
전국학생특수체육대회등산대회

알피니즘의요람,북한산과도봉산
산악사진의출발지

거대한산속에파묻힌민족의비극
지리산반야봉에얽힌추억

나의산,나의사진
산처럼너른산사람의마음

산언저리의기록
아쉬움이남는사진들김상훈

김근원(金槿原)연보

출판사 서평

예부터자연을신앙해온한국인들에게산(山)은특별한존재였다.국토의칠할이산지인한반도에서사람들은산에기대어,산과교감하며살았고삶이다한뒤에는그곳으로되돌아갔다.수천년간한국산은단순한자연이라기보다한민족의가슴속에자리잡은정신그자체였고,역사와문화가깃든‘영혼의집’이었다.1950년대중반,근현대사의비극이국토를휩쓸고간후사람들은주요산하를탐사하며우리네땅과정신을회생하기위해뜨겁게움직였다.이번에출간된『산의기억』은그운동에동참해우리산의아름다움과역사적현장들을기록한산악사진가김근원(金槿原,1922-2000)의시점에서그시간들을돌아본다.그가남긴수많은필름중한국산악사및스키사의주요시기인1950-1980년대사진들을엄선해글과함께엮은것으로,옛필름의디지털복원과관련인물들의증언기록이되살려낸역사다.

평생을산과함께한사진가
경남진주출생의김근원은소년시절상경하기전까지사방이산으로둘러싸인곳에서살았다.하지만산은멀리서바라보고마는대상이었을뿐,결혼해아이까지둔삼십대초반이되어서야처음발을들이게되었다.1954년가을,육이오전쟁으로서울의집을잃고황망해있을때운명처럼북한산이시야에들어왔고,카메라를들고홀연히찾았다가한평생산과함께하게되었다.어릴적삼촌에게선물받은장난감같은카메라로사진을처음접했던그는한번도전문적인사진교육을받은적이없었다.일본의사진관련서적을읽었던것이이론의전부였던대신,카메라를들고부단히전국의산을오르고몸소부딪히며터득했다.천부적인재능이라고할수밖에없게,그의사진에는웅대하고수려한풍경뿐아니라산과사람이교감해온시간들이녹아들어있다.그것은돌담불,불타버린고사목,빨치산의흔적처럼쉽게눈여겨보지않는것에담겨있으며,사람들을맞아주던산장이나한라산백록담에서의야영등지금은찾아볼수없는장면에서도드러난다.또한그의카메라아이(camera-eye)는산중의숲이나암벽,얼어붙은폭포처럼위험한장소를가리지않았고아슬하게로프에의지한클라이머의한순간까지놓치지않았다.작가박인식은서문「산의영혼에탁본된불멸의순간들」에이렇게썼다.“그의작업은사람의산사랑이인간사회의질서와는다른,보다깊고보다높은차원의질서로연결되기를꿈꾸는기도행위였다.그의산은산을사유하게하지않는다.오히려인간에대한산의사랑을체험하게한다.사유로는도달할수없고,오직체험할수있는산의무한이영원으로이어지고있음을일깨운다.”
김근원의사진이한국산악사에서이룬업적은자명함에도불구하고그의활동을심도있게다룬연구나매체는찾아보기어려웠다.이책은그가평생매달렸던사진에대한깊은성찰과산악활동의기록을함께담은첫결과물이다.마지막장을제외한모든글들은김근원자신이1980-1990년대에옛날을회고하는일인칭시점으로서술되어있으나,사실그의아들김상훈이아버지로부터들었던이야기와관련인물들과의인터뷰를재구성한것이다.김상훈은처음엔아들이아버지의기억을전하는방식으로써보았다가,현장의생생한느낌이도무지살아나지않아과감하게아버지의시점으로바꿔쓰기시작했다고고백한다.이러한서술방식은어쩌면다소무모하게여겨질지모르지만,옛인물과기록을지금세대에게전달하는하나의도전적인사례로주목할만하다.사진속인물들을한명씩찾아가사실확인과교차증언의과정을거쳤고,이책을보게될독자들의추가증언도기다린다.
독립된장으로구성하기에는애매하지만제외하긴아쉬운사진이십여점은마지막장「산언저리의기록」에서엮은이김상훈의시점으로소개했다.아버지김근원이사진을찍고서도미처발견하지못했던독도등대에적힌동도최고봉의이름에서부터,과거번성했던태백산채광산업의현장,세검정닥종이공장,지금은보존문제로이전된진흥왕순수비까지,역사와함께번영했다가세월이흐르며소멸된풍경들이이어진다.


한국산악운동의선구자들
‘산과사람들’이라는부제답게,이책은자연풍광뿐만아니라그동안만나보기어려웠던산악계인물들과의일화가많은부분을차지한다.김근원은한국산악회를중심으로에코클럽,슈타인만클럽,이화여대사대산악부등의산악모임과함께하면서한국산악운동의선구적역할을한이들을만나게된다.특히산악활동에서사진의중요성을강조했던김정태선생,한국산악회홍종인회장,스키협회신업재회장을비롯해,윤두선,유창서,함태식과같은평생의인연들이눈에띈다.한국산악회는백령회(일제강점기에결성되었던유일한한국인산악단체)를모체로해방직후창설되어산악계의발전에많은기여를한단체다.서울근교위주로개인적인산행을다니던김근원은1957년울릉도와독도탐방을시작으로한국산악회가주최한행사에는빠짐없이참석했고,이를토대로자신이추구하는산악사진을만들어갔다.이책에는학생해양훈련과더불어등산의대중화와국민체력향상을목적으로한시민행사,국토구명운동,국제적인행사까지실려있어한국산악사의크고작은면면들을확인할수있다.
이책은네명이오붓하게떠난가벼운산행에서부터이백여명의인원이참가한훈련등반까지산악운동의다양한규모를다루고있는데,산악인들의모험심과도전정신은어디를가든돋보인다.1950-1960년대엔그시대적특성상등반을위해서는군(軍)의지원을받아야하는경우가잦았다.지금은상상하기어렵지만대원들은군용기와군함을동원해바다를건넜고,폭설이세상을뒤덮은때에도군트럭을이용해막힌길을뚫고나아갔다.궂은날씨에산중턱에서발이묶이기도했고,조난되었다는오해를받는웃지못할순간들도있었다.한편으로는히말라야를꿈꾸며현지에서사용되는극지법방식의등반훈련도해냈고,에코클럽이국내최초로설악산토왕성폭포빙벽의하단등반을시도하면서빙벽등반의새로운바람을일으키기도했다.
그러나항상성공적인결과를얻었던것은아니다.1969년설악산눈사태로등반대원들이세상을뜬십동지(十同志)의조난사고는한국산악사의가장큰비극으로,김근원은이희성대장을비롯한이들과인연이깊었기에비통한마음이더했다.이책에는조난자발굴의현장부터장례식과묘비제막식까지의아픈기록이담겨있다.

귀중한유산으로서의사진기록
그의작업은산에서만이루어진게아니었다.등반이끝나면산악보고전까지책임지고열었는데,대원들곁에서묵묵히카메라를들고한순간한순간을기록했던그의존재감이증명되는순간이었다.이처럼단순히산을‘오른다’는등행적차원을넘어,준비단계에서부터다양한진행방식,하산이후전시를열기까지가산악활동에포함되었다.이것이훗날귀중한유산으로남게되리라고예감이라도한것일까.박인식의말처럼,“산을우리고유의문화유산이축적된공간으로인식하고기록해나간학자나예술가는드물”기에김근원의사진작업은더욱소중하고작가로서반드시재평가되어야한다.
1955년김근원은아버지와함께처음으로지리산을올랐을때,조개골과평촌리일대에서빨치산을감시하던망대와유골등육이오전쟁의참상이남긴흔적들과생업을되찾으려노력하는주민들을목도하고기록했다.그것이본격적인사진작업의시작이었다.설악산에도오세암이나봉정암처럼유서깊은절들이폐허가되었고,포탄을실어나르던통과유골이나뒹굴었다.우리산의아름다움이면에존재하는민족의비극이었다.그런가하면기념비적인현장도있었다.‘눈의나라’대관령에서스키대회가개최되면마을잔치처럼많은주민들이몰려들었고,스키자국이선명한설원에서선수들의박진감넘치는경기가이루어졌다.지금은철거되었으나,시인이자국회의장을지냈던이효상선생의글이적힌요산요수비가설악산대청봉에설치된모습도확인할수있다.더불어김근원은산악인들이새로운암벽코스를개척할때면그모든장면을찍었다.클라이머들의복장과동작들이진화해가는과정이오롯이남게된셈이다.
당시여성산악인들의활약도컸다.그런점에서이화여대사대산악부와등산부에대한기록은이책에서중요한부분을차지한다.여성산악활동은일제강점기때경성대학에존재하긴했으나,진정한효시는이대사대산악부였다.이들은‘등반’이라는거창한말대신‘원행(遠行)’이라는말을썼는데,졸업후교직생활에필요한학술답사의목적이컸기때문이다.이후사범대와별도로이대등산부가결성되면서김근원은1966-1969년동안지도위원을맡는다.이렇게남겨진관련사진들속에는,모든게군대식이었던남성들의훈련에비해탐구하고단합하는사뭇다른분위기가엿보인다.

산악사진의진수를발견한여정
김근원자신은늘작품사진에대한압박감에시달렸다고한다.그냥산이좋아산을올랐고,카메라를들이댔지만산다운산을표현하지못한채시간만흘려보냈다고자책한다.그러다운명처럼다시금북한산에서해답을찾았다.가냘픈구름이길게띠를이루며백운대정점에걸려있었고,칠흑으로짙게깔린봉우리들이보였다.뒤쪽의북쪽하늘은마지막빛을토해내고있었다.여기에서그는흑백사진의명확한콘트라스트,즉색감에대해새롭게발견했다.북한산은도봉산과함께손꼽히는우리나라등산운동의발상지로,김근원은‘한국의산악인을만들고길러준곳’이라여겼다.앞선시기에일본북알프스에서산악사진에대한새로운개념을터득하기는했지만,그가처음산에발을디뎠던북한산에서의순간이그의사진활동에서가장결정적이었다.필름수급이어려웠던시기에여러실험을거쳐항공필름을사용함으로써선예도가좋은사진을만들어낼수있었던과정도이야기한다.이처럼이책에는산과사람들의사연뿐만아니라사진가로서의고민과기술적인경험담등산악사진과관련된세밀한기록들이담겨있다.
글의흐름은연대순은아니며등반기록의계절과주제에따라자연스럽게배치했다.책끝에는김근원연보를수록해그의생애와함께산악활동의흐름을시간순으로살펴볼수있도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