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어떤 그림 :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13.00
Description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 성취하지 못한 희망과 헌신의 이야기
존 버거(John Berger)는 2013년 아내 베벌리의 사망 이후 알프스 산록 미유시에 있는 시골집보다는 파리 외곽에 있는 집에 더 자주 머물렀고, 2017년 1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책 『어떤 그림(Over to You)』은 말년의 존 버거가 시골집에 있는 아들 이브 버거(Yves Berger)와 나눈 편지 모음으로,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근원적 질문과 불완전한 응답들이다. 때론 느긋하게 때론 날카롭게 오가는 이들의 대화는 영원과 무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예술이 보여주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015-2016년경에 쓴 글이기에 그의 마지막 생각들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

존버거,이브버거

존버거(JohnBerger,1926-2017)는미술비평가,사진이론가,소설가,다큐멘터리작가,사회비평가로널리알려져있다.처음미술평론으로시작해점차관심과활동영역을넓혀예술과인문,사회전반에걸쳐깊고명쾌한관점을제시했다.중년이후프랑스동부의알프스산록에위치한시골농촌마을로옮겨가살면서생을마감할때까지농사일과글쓰기를함께했다.주요저서로『다른방식으로보기』『제7의인간』『행운아』『그리고사진처럼덧없는우리들의얼굴,내가슴』『벤투의스케치북』『우리가아는모든언어』등이있고,소설로『우리시대의화가』『G』,삼부작‘그들의노동에’『끈질긴땅』『한때유로파에서』『라일락과깃발』,『결혼식가는길』『킹』『여기,우리가만나는곳』『A가X에게』등이있다.

출판사 서평

편지가된그림
둘은그림엽서에인쇄되거나화집에실린그림,또는직접그린드로잉을병치하며이야기를끌어간다.마치한장의그림이우리에게남겨진한통의편지인것처럼,그림끼리서로말을건네는것처럼무대위로작품을하나씩올려놓는다.존이먼저로히어르판데르베이던의〈수태고지〉와고야의〈옷을입은마하〉,고흐의〈성경이있는정물〉을등장시킨다.“성경과여자는초대장이야.둘다깔개위에펼쳐져있어.둘이그림속공간을차지하는방식이얼마나비슷한지보렴.공개적인초대장이지!”그러자이브는이를육체와내면이라는주제로받아뜻밖의그림을꺼내든다.“카임수틴이속을읽는일에얼마나빠져있었는지보세요!〈소의사체〉도펼친책처럼자신을내놓고있어요.”이번엔이브가막스베크만의〈카니발가면,녹색,보라그리고분홍〉을보내자존은뒤러의〈작은올빼미〉를바로떠올린다.“뒤러의〈작은올빼미〉를베크만이그린카니발가면을쓴여자옆에두었더니볼때마다웃음이나는구나.둘의얼굴과배가서로눈짓을주고받는것같거든.그리고둘다하나의종(種)을보여주지.저녀석은과거와현재,미래의모든올빼미이고,저여자는카니발가면을쓴모든여자야!”두그림에서본질적인것,변하지않는것을담아내려했던화가의의지,확고한형태를얻기위한윤곽선과검은색의사용을공통적으로발견해낸것이다.그리고베크만과동시대를살았지만그와는정반대로덧없고무상한순간을그렸던코코슈카로옮겨간다.
이처럼다음에어떤그림이등장하게될지도무지가늠하기어려운즉흥적인전개사이사이,예술과세계에관한질문들을무겁지않게툭툭던져놓는다.내면에닿고자하는인간의욕망,과거와현재와미래의모든시간,자연에대한사랑과매혹,세계를측정하는방식,보이는것과보이지않는것의간극….그리고자코메티와셰르프벡,푸생과주탑,사이트웜블리와조안미첼,콜드스트림과보나르등그에화답해줄화가들의그림사이를자유로이유영한다.

보이지않는것들의복원
그림을갖고하는놀이처럼짧고가볍게주고받던편지는뒤로갈수록점점길어지고,예술의본질,화가의소명과같은진지한주제로대화가무르익는다.과연그림이란무엇이며,화가들은왜그림을그리는걸까?존버거는우리가속한거대한세계를보여주려는것이예술이고,그림은이수수께끼같은세계를전해주는전령들이라고말한다.그들의몸짓은우리가어렴풋이알고있는무언가를보여주거나일깨워주는데,연대와나눔의행위를통해거대한전체를이해하고인식할수있게되는것이다.또한그림이이야기하는것이무엇이든그그림은존재를감싸는원형질이며,결국그림이란보이지않는것들의복원이라는데까지도달한다.이브는존의예리한통찰에동의하면서‘보이지않는것들의복원’이그림에게부여된무거운짐이긴하지만동시에화가들이앞으로나아가게하는힘이된다고답한다.경계너머보기,외양을뚫고내면보기,시간을그뼛속까지드러내려는결심은,일생의헌신을각오하게할가치가있기때문이다.그것은끝내충족시킬수도없지만거부할수도없는희망인셈이다.

화가들의신념과희망
아직젊은화가로서한창작업을해나가야하는이브는좀더구체적인응답에목말라한다.이십세기를관통해살았던존버거는수많은예술가들을직접만나고그들에관한글을남겼다.이브는미술관이나책에서만본옛화가들에대해,그들의신념과본보기가무엇이었는지존에게묻는다.화가인그에게는‘작품’보다그들이보여준‘추진력’이훨씬큰힘이되기때문이다.존은윌리엄콜드스트림과함께모델을앞에놓고나란히그림을그렸던때를떠올리며그의원동력은‘창조적인의심’이었다고확인해준다.동료로서지켜본스벤블롬베리는남에게보여주려고그림을그리지않았고,그에게그림은‘자연에입맞춤하는행위’였다고말한다.옛화가들의경험은아버지의증언을통해아들에게전해지고그안에서되살아나이어진다.
이브는‘그림을그린다는것’에대해끊임없이회의하고갈등한다.“이건진리또는실재의문제가아니에요.그보다는우리가스스로어떻게합의에이를수있는가의문제죠.살기위해서요.아니,더정확하게말하자면,살아있기위해서요.”존은이에나름의조언을한다.“무엇이도움이될까?아마도‘질문하기’겠지.그리고질문은말로만하는게아니야.그림을그리는것도하나씩계속해서질문을하는거야.질문하기의역설은질문하는사람이답을찾거나답과마주칠수있다고믿는다는사실에있어.일종의신념이지.”이십년이넘게그림을그려온이브는긴고민의시간을거쳐마지막편지에서희망을이야기한다.“가끔절망이자라희망을누를때,제의지가눈앞의현실을직면하고굴복할때,모든야심이깨지고남은하나는완전히바보같을때,너무나드물지만이모든조건이만났을때,그때비로소간직할가치가있는그림이깨어나요.뭐라고설명할수없는마법같은거예요.”그리고세상에남겨질가치가있는것은어떤그림인가를알기위해,잠시캔버스에서벗어나현실을보는새로운눈을찾아야하겠다고다짐한다.

이름없는것들의통역자
마지막편지뒤로또한번의대화가계속된다.2016년존이이브에게그려준야생수영잎사귀드로잉을계기로둘은각자그린그림을교환해보기로하는데,문자가아닌그림만으로하는대화다.1950년대부터2010년대까지육십여년에걸친드로잉중열여섯장즉여덟쌍의그림을골라놓았다.왼손과오른손,암소와죽은송아지,이브의갓난아들과마편초꽃,런던의공사장인부와팔레스타인난민등이양쪽에놓여각기다른시간과공간을넘어조응한다.이런대화방식은존버거가생의끝자락에드로잉을‘말없는언어로씌어진텍스트’라고여겼던것과연결되며,글을쓰거나읽기가쉽지않아진말년의노구에겐한결편안한말하기였으리라짐작한다.
존버거는많은글에서자신이존경하는옛작가들이나사상가들을바로옆에있는동지처럼불러내곤했다.그에게물리적인부재는문제되지않는다.이브역시사라지는것은이어지는것에비하면아주작다며,아버지의죽음을받아들인다.몸은사라졌어도그가남긴작품,그가보여준지향점과강한추진력은남아있고,그의생이다른생으로이어져갈라지고뻗어나가는모습은헤아릴수없이많기때문이다.이브버거가아버지의사망직후이편지와그림들을모아책을엮었던것은이런이유에서였을것이다.평생동안‘이름없는것들의통역자’가되고자했던존버거의마지막시간들,그리고그의생각들이죽음뒤에도이어지고있음을다시금확신시켜주기위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