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돌과 어떤 것

나무와 돌과 어떤 것

$18.00
Description
식물학을 전공해 책 짓는 일을 하는 이갑수의 산문집 『나무와 돌과 어떤 것』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사계절을 테마로 하는 13편의 긴 산문과 사계절을 이십사절기로 들여다보는 79편의 짧은 산문이 실려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에 걸친 기록 중에는 친숙한 이름과 낯선 이름이 공존한다. 벚나무나 목련, 개나리, 살구나무, 대나무같이 익숙한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말오줌때, 귀룽나무, 덜꿩나무, 물박달나무, 까마귀쪽나무같이 흔히 알려지지 않은 나무들도 있다. 책의 짧은 산문들은 저마다 한 그루씩 모두 79가지 나무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다. 긴 산문은 식물을 우회하여 저자의 삶의 곡절을 이야기하고, 짧은 산문은 제목으로 삼은 나무와 관련된 관찰 기록을 전한다. 길고 짧은 글을 거치며 책 속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것은 비단 식물에 대한 탐사 기록만이 아니다. 책은 이갑수가 처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날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의 시간까지를 두루 살피며 그가 지닌 삶과 식물에의 태도를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저자

이갑수

이갑수(李甲洙)는1959년부산에서태어나고거창에서자랐다.서울대학교식물학과를졸업한뒤,여러우회로를거쳐출판에입문,현재궁리출판대표로있다.인왕산을오르내리다가뒤늦게풀과나무를발견했다.꽃앞에서자주몸을구부리며사진도찍지만갈길이멀다.식물은지구의특별한피부라고생각하며,자연과의접촉면에비례하여자족의크기가결정된다고믿는다.지은책으로『신인왕제색도』『인왕산일기』『꽃산행꽃시』『내게꼭맞는꽃』『오십의발견』이있다.

목차

봄,산문
나뭇잎한장에서알수있는것들
솔방울의활연대오
매화마을의더디고느린시간들
양양매운탕집처마밑제비집

입춘(立春)에서곡우(穀雨)까지
작살나무/육박나무/벚나무/목련/오동나무/생강나무/사스레피나무/진달래/올괴불나무/야광나무/말오줌때/대팻집나무/개나리/복사나무/바위말발도리/수양버들/천선과나무

여름,산문
완도터미널에서만난수박
나의,나의『논어』
해변의메뚜기를기억함

입하(立夏)에서대서(大暑)까지
매화말발도리/느티나무/양버즘나무/말채나무/모감주나무/귀룽나무/물참대/신나무/시로미/칡/돌가시나무/살구나무/백리향/나무수국/모새나무/덜꿩나무/산딸나무/영산홍/당단풍나무/장구밥나무

가을,산문
지리산꼭대기의물맛
마라도끝창문
어머니의보자기

입추(立秋)에서상강(霜降)까지
물푸레나무/상수리나무/마가목/초피나무/등칡/전나무/청미래덩굴/담쟁이덩굴/참회나무/겨우살이/갈매나무/물박달나무/참나무겨우살이/계수나무/노각나무/멀구슬나무/개암나무/잣나무/사철나무

겨울,산문
북한산에서눈을밟으며
곡(哭),소나무,소나무,소나무
무덤가의할미꽃

입동(立冬)에서대한(大寒)까지
아까시나무/수양버들/회화나무/물오리나무/무환자나무/나도밤나무/소사나무/먼나무/백서향/비목나무/으름덩굴/산개벚지나무/대나무/노간주나무/호두나무/황벽나무/사위질빵/주목/화살나무/거제수나무/측백나무/까마귀쪽나무/참식나무

책끝에―파주(坡州)에서

출판사 서평

입춘(立春)부터대한(大寒)까지
이갑수는1월부터12월로나뉘는월의표기방식대신,입춘을한해의첫관문으로삼는이십사절기로시간의흐름을제시한다.1월과2월사이에자리하는것은1에1을더해2가된다는수학적인계산법이다.반면이십사절기는서로누가더크거나작지않은관계를맺으며스물네번의관문에저마다의가치를부여한다.한해의첫절기인입춘은‘立春’으로,입춘이란이름을대하는저자의태도는일상속온갖존재의이름을풀이해들여다보며그뜻을곰곰이살피는그의자세를담아낸다.

“입춘이다.이십사절기에는입하,입추,입동도있지만입춘은어쩐지그들과격을달리하는것같다.봄에서여름으로,여름에서가을로,가을에서겨울로가는것보다겨울에서봄으로가는변화는체감의정도가확연히다르다.입춘은세상이라는꽃이제대로확벌어지는변곡점이다.입춘을그저‘入春’이겠거니했다가‘立春’임을알고놀랐던적이있다.봄이있어그안으로우리가들어가는것이라고여겼던얄팍한생각을일거에무너뜨리는표기,‘立春’이다.”―「작살나무」중에서

‘入春’이봄을나의밖에두고내가봄으로들어서는듯한개념이라면,‘立春’은봄과자기가하나되어함께세상에서는개념이다.봄을대하는저자의태도는식물을비롯한다른모두에게도적용된다.나와식물,나와자연,나아가나와타자사이에는틀림없는거리가있지만,‘立春’이함께서는봄에대해말하듯이갑수에게살아가는일이란수시로그거리를허무는일이다.저자는사람이식물의한종이라면어떻게동정(同定)될수있을지상상해보고,“물리학자들에겐참으로허무맹랑해보일지도모를그런상상”(p.83)이라는것을알면서도“파동이기도하면서동시에입자의성질을가진다는”(p.83)빛의이중성과자기의삶사이에유비적인관계를그려본다.책속에서이갑수가스스로‘허무맹랑’하다고말하는이상상들은거듭같은방향을가리킨다.‘과학’의층위에서사람은식물이아니고,빛의성질과삶의성질은서로상상적으로만유비될수있을따름이다.그러나이갑수는‘허무맹랑’이라는범박하고자조적인웃음을곁들이며서로다른것들사이의경계를가로지른다.

식물로되살아나는한방편
길고짧은글을거치며책속에서서서히밝혀지는것은비단식물에대한탐사기록만이아니다.“시쳇말로이름이좀거시기하고가지를꺾으면고약한냄새가진동하는”(p.38)말오줌때같은나무이야기가등장하는가하면삶의여러순간들에대한이야기도다뤄진다.책은이갑수가처음식물에관심을갖게된날부터어머니가돌아가신이후의시간까지를두루살피며그가지닌삶과식물에의태도를다층적으로조명한다.식물에서출발해죽음에대해말하는일은사람과식물,빛과삶을유비시키는도약을무릅쓴다.
저자가이런도약과비약의출발점으로삼고있는것은,처음으로식물과내가별반다르지않을지도모른다는깨달음을얻던과거의한순간이다.저자는「곡(哭),소나무,소나무,소나무」에서출판사를차리고사무실을수차례이전하며주위로부터번번이축하화분을받던일을회상한다.헌책방과호프집을오가며“바보같은생각”에빠져살았던그때,그는사무실에우두커니선화분속식물들에변변한관심을준적이없었다.그러나어느날사무실입구에풀죽은행운목을본그는마음을고쳐먹고간만에물을주고화분들을돌본다.

“다음날사무실에출근하니그간시들시들했던식물들이생생하게반짝거리는모습이눈에확들어왔다.그것은한공간에같이있어도나와는아무런접점이없던식물들의사생활에내가구체적으로개입했다는뜻이었다.그때문득목석같던마음한구석에서식물과내가서로별반다를것없다는생각이강하게일어나는게아닌가.꺼칠꺼칠한나무의줄기와띵띵한내다리가근본적으로같은성분으로이루어진게아닌가하는과감한관점의확장으로까지치달았다.둘다태우면재만남기마련이다.”―「곡(哭),소나무,소나무,소나무」중에서

식물과내가서로다르지않다는생각에전제된것은,그모두가언젠가죽음에이르러소멸할수있는존재라는사실이다.이갑수의식물관찰이언제나한편으로는죽음을떠올려보는일인까닭은여기에있다.이갑수에게죽음이란‘나무밑’,‘나무아래’로들어가는일이다.그는“사람이란언젠가그누구도예외없이나무밑으로들어가야한다”(p.68)고말한다.동시에그것은동물로살아가다가식물로,자연으로되돌아가는일이기도하다.식물과동물은자연속에서서로형태를넘나들며순환한다.“동물의모든몸부림은결국뿌리근처에몸을뉘어식물로되살아나려는한방편이다”라는책첫머리의문장은저자의그러한관점을함축한다.
그의글속에서죽음은결국서로달라보이는것들의경계를허무는힘이다.죽음은그가처음식물에게마음을주던날부터꾸준히,식물과내가서로그리다르지않다는생각을떠올리게만드는동력으로자리한다.죽음과어우러지는식물의존재역시그러하다.식물을우회해삶에대해말하는13편의긴산문에서는이런저자의관점이한층뚜렷하게제시된다.예컨대가야금명인무송(舞松)박병천의타계10주년무대에서대나무는음악과더불어이승과저승의경계를넘나드는지표가된다.이승에서펼쳐지는박병천명인의추모공연,무대위차려진제사상의병풍옆에는대나무한그루가서있다.이갑수는대나무를보며“실내에우뚝솟아있는대나무를보니저승에뿌리를두고이승으로건너온나무같아서신령스럽다”(p.170)고말한다.이승과저승을넘나드는나무는,나와타자의구분을흐리고자하는이갑수의시도가화분속식물과나로부터이승과저승으로까지확장되었음을보여준다.
한편으로이갑수의관점이지니는의의는,이런경계가로지르기가어디까지나과학적인합리의층위가아닌일상성을전면화하며실천된다는점이다.그는“소소하다면소소하달수있는이렇고저런일들”(p.145)같은범박한자조를통해합리에종속되기를슬그머니거부한다.그대신이책이들추는것은일상이라불리는사적영역이다.책은객관성이라는타자의관점을상정하는대신‘나’의‘주관’에서의일상을고백한다.

식물과죽음사이를가로지르는수년의기록
그는식물에기대어어머니의죽음이라는,결코타인의시선으로객관화될수없는체험을진술한다.삶의황혼기에서체감하는죽음의과정은어느날산에올라그곳이“몇해전어머니에게가져다드린산딸기를딴곳이바로이산의정상”(p.118)이라는잊고있던사실을떠올리는일이자,“그때황금산에서딴산딸기를잡수시고먼고향하늘을그리워했던어머니는흐르는세월을이기지못하고지금몹시아프시다”(p.118)는사실또한떠올리고마는일이다.수년에걸친기록을담고있는『나무와돌과어떤것』은이런담담한슬픔과병,기억의시간을거쳐,어머니가죽음이후에남기고가신기물들을마주치는장면까지를이야기한다.
산딸기따던산에서과거의기억을회상하던저자는,책속시간의흐름을타고「어머니의보자기」에이르러어머니의죽음이후남겨진어머니의방으로이동한다.방에남겨진것은안쪽에“서늘한침묵”을담은채이제는내용물을비운흰봉투를닮은기물들이다.저자는이제는시간이맞지않게된시계들을들여다보다가어머니의반지에자기손가락을끼워넣어본다.그로써이승과저승의경계를넘어어머니의시공에가닿아보기를시도한다.반지는박병천명인의대나무와같이이것과저것,이곳과저곳의경계를허무는화자의관점을그려보인다.

“어머니의저반지는내가사다드린게확실히맞다.대만으로출장갔다가구한호박반지였다.무슨할말을아끼고있는듯한반지를껴보았더니내새끼손가락의첫째마디에겨우걸렸다.반지란,반지자체는물론그안팎의허공을포함하는말이다.얼마전까지생시의어머니가꼈던반지에내손가락을넣었으니이제이반지를중심으로시공간을넘어나와어머니가포개진것일까.”―「어머니의보자기」중에서

죽음을동력으로나와타자사이의거리를허물던저자의작업은객관화될수없는슬픔의체험속에서‘나’와저승을포갠다.태우면모두재만남기기마련이라는깨달음을불러일으킨식물과의관계맺기는,“시공간을넘어나와어머니가포개진”듯한순간으로확장된다.『나무와돌과어떤것』의제목이나무에도,돌에도,어떤것에도한정되지않고그모두를아우르고자하는것은저자의이러한입장을반영한다.이갑수는나무와내가별반다르지않을지도모른다는일상적인깨달음을‘돌’이라는단단함으로,‘어떤것’이라지시되는이승과저승의흐린교차점으로확장시키고있는것이다.

이책은『경향신문』에‘이굴기(필명)의꽃산꽃글’이란제목으로2014년부터2021년까지연재했던글중나무산문을고르고새로쓴긴산문을보태꾸민것이다.맞춤법에는맞지않지만저자의뜻에따라그가어릴적쓰던사투리를그대로살렸고‘나뭇’으로쓰이는나무학명의사이시옷을탈락시켜‘나무’라는이름을보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