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민 (양장본 Hardcover)

시, 최민 (양장본 Hardcover)

$25.00
Description
미술평론가, 학자, 번역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영상원장이자 교육자,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최민(崔旻, 1944-2018)이라는 인물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아주 많지만, 최민을 ‘시인’으로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69년 『창작과 비평』에 시를 발표해 등단한 뒤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또한 여러 직책을 맡던 와중에도 틈틈이 시를 읽고 그에 대해 평을 썼으며 무엇보다도 계속해서 시를 썼다. 이 책은 앞서 출간된 시집 『상실(喪失)』(1975), 『어느날 꿈에』(2005)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써 내려간 미발표 시(2012-2015)를 모은 최민의 시 전집으로, 한 해 전 출간된 『글, 최민』(2021)과 더불어 그가 남긴 모든 텍스트를 망라하는 아카이브 작업의 일환이다.
저자

최민

(崔旻,1944–2018)은서울대고고인류학과와동대학원미학과를졸업했다.1993년파리제1대학에서예술학박사학위를받았고,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원명예교수를지냈다.산문집으로『글,최민』이,역서로『서양미술사』『미술비평의역사』『인상주의』『다른방식으로보기』등이있다.

목차

상실
서시(序詩)/나의조각(彫刻)/나는모른다/비의방(房)/광대/저녁식사중의확인/입신(立身)/배화(拜火)/구애(求愛)/환멸/성년(成年)의봄/매립(埋立)/출발/바람/첫수업/불꽃/부랑(浮浪)/포옹/서명(署名)/연옥(煉獄)1970/빛의해안(海岸)/물방울/상실(喪失)/밤의서울/초조/여행/아우슈비츠/추수/회복/잔인한꿈/벽/깊은꿈/끝장/노예/벽/녹슨문/소생(蘇生)/별부(別賦)/새벽/역전(驛前)/친구에게/떠나는이에게/예감/영등포길/다리/소문/사월십구일/노래/여름/외침/마을

어느날꿈에
푸념/방에들어서면두렵다/현기증/별안간/신원미상/어느날꿈에/이민/우울/도망자/어떤날/변용(變容)/점괘(占卦)/간판/지복천국(至福天國)/무지개/대화/붉은약속/빤한법칙/천형(天刑)/시인/이아침/넋/그리고꿈에/폭포/사건/이런생각/수다/유행가/그런날/그대만허락한다면/쪽지/훈수안받고/이야기처럼/희망/낭패/웃는구름/결론/역설/약속/플랫폼/역광(逆光)/미친동화(童話)/교훈/테러/신비/아픔/큰별자리/먼지처럼/미련/그냥간다/반쪽세상/망연(茫然)/언어연습

미발표시
“어제그많던”/“헤어지자고”/오늘/불가능하다면/사막의그늘을보며/불가능철학/쓸데없는시들/마지막긍지일는지/표지없는책/표지없는앨범/평등사회/무심하게/마음이라는것이/죽은친구에게/불가능은없는것같아도/계급투쟁의사본/시는아니야/다시확인/“꿈은사막이에요”/굳이헤어지자고/거짓말을안해요/상상할수있는것보다/잠깐나가줄래/사람은제각기/우주설계/쪽지/보이지않는것은/이세상엔/정기운행/68을거꾸로보니/꿈을꾸다가/추상개념/내가다니는절/그림자들은/잠은큰강물같이/몰라/메트로놈/하늘도거울이될수있어/잘몰라/거울을보지않아요/나또이사할거야/우울증/까만표지의책/뭔지알아?/깨진거울/유령

출판사 서평

‘시인최민’을기억하다
미술평론가,학자,번역가,한국예술종합학교초대영상원장이자교육자,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등최민(崔旻,1944-2018)이라는인물에따라붙는수식어는아주많지만,그를‘시인’으로기억하는이는많지않을것이다.하지만그는이십대이던1969년『창작과비평』에「나는모른다」외다섯편의시를발표해등단한뒤,시집『부랑(浮浪)』(1972)과이를개정증보한『상실(喪失)』(1975)을비롯해『어느날꿈에』(2005)등의시집을낸시인이었다.또한여러직책을맡던와중에도틈틈이시를읽고그에대해평을썼으며무엇보다도시를썼다.이책『시,최민』은앞서출간된두권의시집과그가세상을떠나기전까지써내려간미발표원고를모은최민의시전집이다.
공교롭게최민이발표한마지막글이김원호의시선집『비밀의집』에부치는발문「작은것들의아름다움」(2018)이었다.이글에서그는보들레르의말에기대어,시집에서시한편한편이지닌특수한개성과매력도있지만,개별시가모인시집전체가형성하는분위기와정신을비중있게언급한다.즉시인들이란시집을출판할때시를선정하고그것들의순서와배열을중요하게여겨야한다는말인데,최민역시생전미발표원고에서직접작품을골라내고순서를수립해놓았다.『시,최민』도이기준에따라구성했고,오류로보이는내용은최소한으로수정하면서초고를가급적존중했다.이로써그가품었던시인이라는자의식과더불어40여년동안변화하는‘시인최민’을한자리에서재조명할수있게됐다.
이책에는기존의두시집과미발표원고,이렇게3개의장으로구성된총150편의시가실려있다.1972년월간문학사에서시집『부랑』이처음출간됐고,이후여기에15편을추가하고제목을『상실』로바꾸어1975년개정증보판으로민음사에서출간되었다.그러나이내‘불온서적’으로분류되는바람에한동안역사에서잊혔다가2006년문학동네에서복간하며현대문학사의빈서가를채우게됐다.그리고2005년,약30년의침묵을깨고창비에서『어느날꿈에』를출간했다.2012년에서2015년사이에씌어진미발표시는,휴대용기기에빠르게써내려간흔적이나,작가노트혹은일기와같이정제되지못한부분이보이는게사실이다.그러나그가평생학자로서배우고터득한깨달음,혹은한개인이소소하게세상을관찰한기록,시라는장르에관한고민,병마(病魔)와씨름하는인간으로서의모습등다양한글이담겨있어최민의내밀한모습을엿본다는데의미가있다.

인간최민과그의시대를만나다
『상실』에서시적화자는역사의흐름과불화하며자신의정처를어디에둘지모르고방황하는그시대청년의자화상의일면을그려낸다.시적화자의목소리는시대가저지른과오를묵과하지않고자하는의지의표현(“이공화국의두터운두터운벽눈먼담벼락에/기대어통곡하고있는그림자들이여/두드려라열릴지도모르니저주받은/벽메아리없는기나긴신음소리신음소리의벽”,「벽」)으로나타나기도하고,때로는자기자신을향한알수없는불안이나부끄러움〔“해질녘초라한부끄러움따위를/감추고돌아가는나를갑자기/낯선바람들이에워싸고말을건넨다/이름없는아우성들나지막하게다그친다”,「역전(驛前)」〕으로나타나기도한다.한편화자는시대와등지고자기자신과도거리를두었지만,그상태에정주하지않고자신이나아갈방향을분명히알고,그여정에독자를초대하는듯하다(“맹세한다낮은바람소리에까지맹세한다/우리헐벗은두발옮겨디딜곳조차없지만/일어서자쓰러지면또일어서자내가선/자리에마다성난불꽃이되어일어서자”,「친구에게」).
『어느날꿈에』에서화자는『상실』에비해세상을냉소적으로바라보지만,그것은최민이꾸준히축적해온지식과깊어진고뇌에서비롯된시선일지도모른다.즉세상만사어떤것이라도‘나’로서는정확하게판단할수없기에판단을유예하고‘모른다’고고백한다.이러한화자의회의감또는세상을향한불가지가시집전반에깔려있다.가령“그렇다진실은모두싸구려/외설에다야비하고통속적이니/눈물없이못봐준다/(…)/인생은껍데기일뿐/아무깊이가없으니까”〔「천형(天刑)」〕라든지또는“방에갇히는것이다시두렵다/드러누워/방밖에서이른바/역사가소리치고지나가는걸듣기도/민망하다”고말하면서도“죽고사는게뭔지모르니까/믿고자시고없다”(「방에들어서면두렵다」)고고백하는것에서이를살펴볼수있다.
미발표시는인간으로서의최민을있는그대로더가까이대면하게해준다.퇴임후씌어진이시들은그가젊은시절,왕성하게활동하던때쓴작품에비해소탈하고뭉툭하다.이시기의시쓰기는,그동안학자로서날카롭고명민하게글을쓰며알게모르게겪은긴장감을완화하는수단이자(“뭣하러시간들여/시를만들려고하지?/나도잘모르겠어/그냥심심해서그냥심심할때언어갖고놀수있는방법이니까”,「시는아니야」),세상을향한답답함을토로하고(“바깥에서는혐오스러운/군중의정치가/여전히우리삶의/윤리학이라고/일러주느라/변덕스럽게바람부는/2014년초겨울”,「마지막긍지일는지」)노병(老病)의고통을잠시나마잊으려고(“아팠다는기억은있고/잘모르겠어/몸이아픈지/마음이그런건지”,「잘몰라」)했던것으로보인다.

최민글쓰기의모든것
이책은『글,최민』(2021)과더불어그가남긴모든텍스트를망라하는아카이브작업의일환으로,열화당초창기부터이어져온최민과의특별한인연이이를완수하는원동력이되었다.단순히시집을넘어서한인물의역사,한개인의내밀한고백을정갈하게담아낸기록물인셈이다.
이런맥락에서『시,최민』은『글,최민』과‘따로또같이’존재하도록디자인의방향역시잡아나갔다.책제목자체가서로의연결고리를충분히드러내주고있기때문에,판형과본문레이아웃은시작품에가장적합하게설정했다.대신표지를활자로만단정하게디자인하고회색톤의용지를사용함으로써두책의분위기가이어지도록했다.또한1970년대활판인쇄의느낌을살린서체를적용해,옛작업을복간하는의미를부여하고,거칠고다듬어지지않은모습을있는그대로보여주고자했다.
또한여기에는우리나라시집에대부분들어가는발문이나해설이전혀없다.시인이언어의몸을빌려잠시머물렀다갔던흔적을독자들이가감없이느꼈으면하는뜻에서모두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