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춤을 살았더라 (유익서가 만난 십오 인의 우리 명인명창)

소리와 춤을 살았더라 (유익서가 만난 십오 인의 우리 명인명창)

$17.50
Description
해방과 전쟁 후, 급격한 산업 발전이 부른 변화 속에서 이십세기가 저물 무렵이었다. 시대의 큰 흐름이 용납하지 않았던 우리 전통음악의 예맥은 하염없이 시들어 갔으나, 그 끝자락을 장려하게 수놓았던 마지막 예인들이 있었다.
가야금산조 김난초(金蘭草, 1911-1989), 대금정악 김성진(金星振, 1916-1996), 승무 한영숙(韓英淑, 1920-1989), 판소리 김소희(金素姬, 1917-1995), 가곡 홍원기(洪元基, 1922-1997), 가사 정경태(鄭坰兌, 1916-2003), 서도소리 오복녀(吳福女, 1913-2001), 선소리산타령 정득만(鄭得晩, 1907-1992), 범패 박송암(朴松巖, 1915-2000), 강령탈춤 박동신(朴東信, 1909-1992),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창희(李昌熙, 1913-1996), 통영오광대 이기숙(李基淑, 1922-2008), 고성농요 유영례(柳英禮, 1923-2007), 임실필봉농악 양순용(梁順龍, 1941-1995),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안사인(安仕仁, 1928-1990). 이렇게 열다섯 장르에서 소위 ‘인간문화재’라 불린 국가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삼십여 년 전 이들과 소설가 유익서(劉翼叙)가 나눈 인터뷰 기록들이 『소리와 춤을 살았더라: 유익서가 만난 십오 인의 우리 명인명창』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산문 형식으로 된 이 글들은, 예인들과 작가가 인터뷰한 시점, 그리고 예인들이 자신의 먼 과거를 다시 회고하는 시점이 겹겹이 교차되어 있어, 한결 다채로운 음률을 만들어낸다.
저자

유익서

유익서(劉翼叙)는1945년부산출생으로,중앙대학교국문학과에입학해문학을공부하다동아대학교법학과로옮겨법학을전공했으며,중앙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1974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입선하고1978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소설이당선되었다.1980년대중반월간『음악동아』에연재되었던‘명인명창을찾아서’의필자로참여했다.장편소설로『민꽃소리』『세발까마귀』『노래항아리』『소설진달래꽃』등이,소설집으로『비철이야기』『표류하는소금』『한산수첩』『고래그림비(碑)』등이있다.단국대학교대학원,동의대학교등에출강했으며동아대학교한국어문학부초빙교수를지냈다.

목차

가야금산조 김난초
대금정악 김성진
승무 한영숙
판소리 김소희
가곡 홍원기
가사 정경태
서도소리 오복녀
선소리산타령 정득만
범패 박송암
강령탈춤 박동신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창희
통영오광대 이기숙
고성농요 유영례
임실필봉농악 양순용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안사인

끝맺으며
명인명창소개
사진설명

출판사 서평

전통음악을향한한작가의집념
무릇전통음악이란그것이뿌리내린땅에서사람들과함께생성과소멸의역사를거듭해온수목(樹木)과같다고할수있다.그러나지난백여년동안우리가겪어온격심한변화들로전통음악은우리에게서너무나동떨어진존재가되었다.일제강점기에는일제의국가통치제도및일본을통해들어온서양문화에의해생활환경과인식을전환하도록재촉받았고,이로써가치관은물론지향하는삶의방편마저달라졌다.육이오전쟁후에는산업중심의서양문화를중심으로삶을도모하는경향이일반적이었다.
전통음악을현대적으로재해석하거나서양음악과접목시키는반가운사례들도늘고있지만,그럼에도정작그근본인‘정통’에대한우선적인이해나관심은아쉬운편이다.1988년케이비에스(KBS)와월간『음악동아』가국민들을대상으로실시한음악선호도조사에서서양음악이99퍼센트,한국음악이1퍼센트를기록한결과는이러한무심함이오늘날의일만이아니라오랜세월이어져온것임을보여준다.저자는판소리를처음접했던일화를들어“노래가마땅히갖추어야할박자나선율을갖추고있는것같지않았다”며,그것이젊은시절자신에게도낯선경험이었음을고백한다.그후전통음악에대한의문을풀기위해발품을팔아공연을섭렵하던중,우연한기회로1980년대중반월간『음악동아』‘명인명창을찾아서’연재기사의필진으로참여하게된다.그렇게사년간전국의‘인간문화재’들과직접마주하며전통음악에관한관심과지식을넓혀간저자는,지금까지판소리,대금,전통미학등을소재로한문학작품들을집필해오고있다.

한결같지않은삶과그성음(聲音)들
이예인들이행한소리와춤은구슬프고애절했고,은은하고안온했으며,때로는흥겹고박진감넘쳤다.그처지와상황도장르적특성만큼이나가지각색이었다.어떤이는뱃놀이가성행한서빙고에서나고자라자연스럽게손에소고를쥐었고,어떤이는전쟁의참화로자식들을셋이나잃는아픔을겪어야했다.열다섯에탈춤하나를바라보고집을등진이도,생계를위해야채전이며정미소를꾸린이도있었다.이들이활발히활동을펼쳤던시기는크게1920년대에서1970년대까지로,노년에든시기에진행한인터뷰에는한평생그흐름에따라살고난후에야말할수있었던여러감회와감정들이배어있다.
‘죽파(竹坡)’라는호로잘알려진김난초는가야금산조의중시조인김창조(金昌祖)의손녀로,“갓난아이때부터귀동냥해온가락이그녀의몸속에흐르고있었다”고표현할수있을만큼정식수업을받기전부터그두각을나타냈다.‘손재주로는음은곱게낼수있다해도마음을흔드는힘에는미치지못하는것’이라는할아버지의가르침덕분에,기예뿐아니라인생살이며예인의정신등을두루익힐수있었다.비록연주활동을하지않고평범한‘아녀자’의길을걷기원하는주변사람들의압박에부딪히기도했지만,결국무대로돌아가그기예를펼치고제자를양성했다.한편김소희는어릴적명창이화중선(李花仲仙)의노래를듣고소리공부를시작한경우로,일찍이한성준(韓成俊)을비롯한당대명인명창들의눈에띄어활약할수있었다.평생을인생의희로애락이녹아있다는판소리에매달려살아온그는,순탄하지만은않은세월을보냈음에도도리어보람과긍지로충만한생애였음을이야기한다.
그시작에꼭특별한사연이있었던것만은아니다.김성진은가정형편이어려워관비가지급되는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에입학하면서대금과인연을맺은경우로,평생대금연주에전념하며‘몸을잔뜩뒤로젖힌채바람을견뎌온소나무처럼’비스듬히굳어진자세를갖게되었다.그의발자취를증명하는임명장이며훈장,상장들과내로라하는제자들이여럿임에도불구하고인생과예술을향한그의깊은회한은계속되고있었다.이기숙은오십이가까운나이에고향이아닌통영에정착해우연히오광대놀이에참여한경우로,독학으로「춘향전」과「흥보전」을떼고명창대우를받았을뿐소리를정식으로배운적은없었다.
사람사는방편은여러갈래라해도이들에게는모두보통을능가하는열성이있었음은분명하다.그런의미에서,이들과의인터뷰를통해저자에게“가진재능과정성을다쏟아야만가까스로그인사의세상살이가하늘의뜻에합당하게영위되는것인가”하는물음이생겨난것도자연스러워보인다.

우리에게남은음악적자산
상층사회에서정서적중용을중요시하며행했던‘바른음악’인정악(正樂),서민사회에서희로애락의감정을여실히나타낸민속악만비교해도전혀다른특성을지니고있다.아리랑한가지만해도이백오십여곡에이를만큼,지방마다의향토색짙은노래가존재한다.그러나저자는이를비롯한춤,연희등의예술이“생활의긴장을풀어주고휴식과함께재도약할수있는활력소를제공한다”는공통분모를가졌음을언급한다.그리고“인간이나고죽는세상어느곳이나음률없는곳은없다.인간의생득적인음률욕구는노래를지어널리부르도록충동했다”며,그것이일정한체계를갖춘음악으로자리하기까지의긴시간에대해이야기한다.
이책에서다루고있는예인들의노력과그결실도각장르에서주요한발자취를남겼는데,그중박동신은황해도강령지방에서연희되어오던강령탈춤을피란시절동향인들과함께복원한주역이다.양순용은법칙이엄격한마을공동체농악을이끌어간상쇠답게지도자적면모가엿보인다.그는정통호남좌도농악(임실필봉농악이속한농악)을전승시킨인물로,임실필봉농악을대외로널리알리는데공헌했다.이인터뷰는임실필봉농악이국가무형문화재로되기일년전의일로,“요새서울에서유행하고있는유사농악을저는‘포장농악’이라고부릅니다.그리고설장구놀이는농악과는실로거리가먼것으로그냥‘놀이’에불과합니다.농악기로서양음악연주하는것처럼흉내내는것은농악을개선하는게아니라죽이는행위라생각합니다”라는말에서그가짊어진무게가생생히전해진다.
그런가하면예술을이론화학술화하려는노력들도눈에띈다.정경태는전국을순유하는풍류객으로서‘정삿갓’이라는별명을갖고있기도하지만,높은학구열로각종연구성과를남기기도했다.특히지방마다달리유포된시조가락의체계를통일한시조창법인‘석암제(石菴制)’를만들어풍류객과유림들사이에서높이평가받았다.그밖에도1948년『조선창악보』를비롯한여러저술을남겼는데,특히십여년동안채보한율음보를정리한『국악보』는열여덟가지악기의율음을나름연구끝에부호로만들어그율명(律名)으로곡보(曲譜)를만든독특한성과였다.한편,손에신칼과요령을들고굿을하는심방안사인이민속학자현용준(玄容駿)과약팔년간연구에몰두했던이야기도인상깊다.그는민간에전승된무속에지나지않았던영등굿을학문적대상으로서체계화하고정립해나갔고,심방이물려받은대로진행되던굿이일정한체계를갖추어나가자그바탕에깔려있던신앙의틀이확연하게드러나게되었다.

이책에수록된인터뷰기록들은월간『음악동아』의‘명인명창을찾아서’연재기사중장르별로엄선한열네편(1984,1986-1988)과월간『케이블TV』‘인물다큐멘터리’연재기사중필자로참여한‘김소희’편(1994)에해당한다.글은각예인들의장르와글의성격등을고려해배치했으며,인터뷰가이루어진시점을기준으로서술되어있다.연재당시지면과시간의한계로부족했던부분들은다시취재하고,대화만으로는알기어려운이론적내용들은연구자료를찾아보완했다.더불어전통예술의최전성기라할수있는원각사(圓覺社)에서부터국립국악원의전신인국악사양성소및그의전신인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등음악사적으로주요한갈래들이등장해이해를돕는다.명인명창들의농익은모습을가까이에서포착했던사진가김수남,이의택등의초상사진들도함께실려있다.
무엇보다모두세상을떠나이제는만날수없는예인들이기에그들의생활과성품,인간적면모를중점에두고자했음을저자는강조한다.한편,생생한묘사에서느껴지는현장감은그순간순간들이소설가로서마주한문학적경험이기도했음을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