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解放 前後) (양장본 Hardcover)

해방 전후(解放 前後)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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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33년 『신여성』에 발표한 「법은 그렇지만」, 월북 직전 1946년 8월 『문학』에 발표한 「해방 전후」 등 중편소설 5편, 희곡 2편, 시 9편, 아동문학 35편, 총 51편을 모았다. 중편과 희곡에서는 단편소설 속 인물상들이 확장 전개되면서 장편소설의 통속성과 대중성도 엿보인다. 특히 「해방 전후」는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해방공간의 혼돈과 자기반성을 반영한 자전적 작품이다. 한편 그에게 시는 슬픔, 애도, 환희, 연대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했던 상허는 『학생』 『어린이』 같은 잡지 편집에 관여하고 소년물을 발표하면서 1930년대에 어린이를 위한 많은 글을 남겼다.
저자

이태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24년 학교 신문 〈휘문 2호〉에 단편동화 〈물고기 이야기〉를 처음 발표했습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목차

‘상허 이태준 전집’을 펴내며
감사의 글

중편소설
법은 그렇지만 / 방물장수 늙은이 / 애욕(愛慾)의 금렵구(禁獵區) / 코스모스 피는 정원 / 해방 전후

희곡
어머니 / 산사람들

시
누나야 달 좀 보렴 / 한강(漢江) 꿈 / 믿음과 사랑 / 죽는 너야 / 묘지(墓地)에서 / 지진(地震) / 차창(車窓)에서 / 팔월 십오일에 부른 노래 / 너

아동문학
물고기 이야기 / 어린 수문장(守門將) / 불쌍한 소년 미술가 / 슬픈 명일 추석 / 쓸쓸한 밤길 / 참외와 수박 / 불쌍한 삼형제 / 눈! 눈! 눈 자미 / 눈물의 입학 / 인형 / 내 봄 자미 / 유월의 하느님 / 무지개 / 과꽃 / 외로운 아이 / 몰라쟁이 엄마 / 유월과 구름 / 슬퍼하는 나무 / 길에서 얻은 연필 / 돈 가져간 사슴이 / 집 없는 아이야 / 겨울 꽃 / 꽃 장수 / 바지 셋 / 엄마 마중 / 엄마 얼굴 / 아가 / 이 해를 보내며 / 아기들아! 우리는 ‘종달새처럼, 기차처럼’ 활발하고 기운 세자 / 호랑이 / 길에 그린 사람 / 바람 / 혼자 자는 아가 / 약 / 동무를 사랑합시다

상허 이태준 연보
장정과 삽화

출판사 서평

계속 살아가는 고전의 힘
우리 근대기 문학에서 입시나 연구 목적이 아닌, 무목적의 읽기만으로 즐거움과 울림을 주는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흔히 고전은 직접 읽기보다 관련 강연이나 비평을 경유해 접하게 되곤 한다. 서사와 어휘의 현재성이 약해지면서 능동적 독서가 아닌 이론에 기댄 수동적 학습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고전은 인간 보편의 모습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 여전히 유효한 감동을 직관적으로 전해 준다.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의 글이 바로 그러함을 그의 단편이나 수필을 읽어 본 이라면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허 이태준 전집’을 새롭게 펴내게 된 동기 역시, 연구자들을 위한 일차 문헌의 확립 목적도 있었지만, 독자 개개인의 경험들이 저변에서부터 축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래야만 작품은 비로소 진정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외형은 매우 고전적인 반면 현대 독자들에게 필요한 편집 장치를 다각도로 갖추려 애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의 근대문학 출판
당대 최고의 단편소설과 미문을 남긴 상허 이태준은 1925년 등단해 20여 년 동안 활발히 작업했고, 1946년 8월경 월북해 활동하다가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 남한에서도 1957년 월북 작가 작품의 교과서 수록 및 출판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니,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남과 북 양쪽 모두에게 외면당한 셈이다. 해금 직후 몇몇 전집들이 발행되었지만 서둘러 출판해야 했던 탓에 오류와 누락 내용이 적지 않았고, 이마저도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 절판되거나 새로 나온 전집은 주요 작품을 선별한 선집에 가깝다. 단행본으로는 수없이 많은 판본들이 나오고 있으나, 주로 단편소설선, 수필 『무서록』, 문장론 『문장강화』, 아동문학 그림책에 국한해 중복 출판되는 실정이다.
상허가 창작의 전성기를 누리던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30년, 출판금지와 숙청으로 남과 북에서 잊혀졌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0년, 해금 후 그의 복권을 위한 노력들이 산발적으로 이어진 현재까지 다시 30여 년이 흘렀다. 세대로 치면 대략 삼대(三代)의 시간인데, 짧다면 짧지만 막상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간극이다. 읽을 수 있는 한글이라도 세대간의 어휘력과 문해력에서 차이가 적지 않다. 따라서 근대문학 출판은 ‘원본성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적어도 한 세대마다 일종의 업데이트된 주해(注解)가 필요하며, 이 전집은 바로 그러한 시점에서 기획되었다. 우리 다음 세대가 그 시대에 맞는 갱신을 해야 할 때 이 판본이 하나의 준거이자 가교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정본 전집의 필요성
상허는 단편소설뿐만 아니라 중·장편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 수필, 문장론, 평론, 번역 등 다양한 방면의 글을 남겼는데, 그것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상허는 문학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간 사회를 반영하는 데 따르는 통속성도 긍정했으며, 골동취미와 우리말에 대한 감식안을 지닌 예술가적 면모와,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향한 비판, 계몽성 강한 메시지를 표출하는 사회참여자로서의 자세가 공존한다. 이는 장르에 따라 달리 구현되기도 하고 시기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격변의 한국 근대사를 관통해 남겨진 이 작품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오늘에 다시 읽는 일은, 그렇기에 인간과 역사와 언어를 다층적이자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상허가 글쓰기를 통해 실천하고자 했던 궁극의 의도에 다가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에 열화당은 상허의 생질(여동생의 아들) 서울대 김명열 명예교수와 함께 ‘상허 이태준 전집’을 새롭게 기획, 발간한다. 남한에 상허의 직계가족이 전혀 없게 된 상황에서 김 교수는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던 친연성으로 인해 상허의 자손을 대신해서 그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책무감을 갖게 되었다. 상허 작품의 본문을 확정하는 것은 곧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므로 창작에 버금가게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어, 정년 후 2015년 초부터 본격적인 원고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상허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본문을 확정하고, 원본을 존중하며, 월북 전 상허의 글은 모두 모은다는 세 가지 원칙 아래, 본문과 초벌 주석 원고를 이 년 반 동안 작업, 2017년 중반 원고의 1차 정리를 마쳤다. 이후 출판을 위한 적임자를 찾던 중에 ‘근원 김용준 전집’, ‘우현 고유섭 전집’ 등 우리 근대기 문헌 복간 작업을 여러 차례 완수했던 열화당에 연락을 해 오게 된다. 상허의 작품들을 일관된 기준으로 정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한 열화당은 이 원고를 기초로 2020년부터 전집 구성, 원문 대조를 다시 하고,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본문과 편자주를 꼼꼼히 손보았다. 최신 정보를 반영한 연보의 작성, 화보 자료 수집, 디자인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이러한 몇 년간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전집의 일차분 네 권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전집의 구성과 저본 선택 기준
이 전집은 해금 직후 나온 전집들이나 주요 작품만 모은 선집들의 미흡한 점을 최대한 보완하고, 월북 전에 발표한 상허의 모든 작품을 망라한다. 그 결과 단편소설 한 편을 비롯해, 중편과 장편에서 누락되었던 연재분, 일문(日文)으로 쓴 글 두 편, 번역과 명작 개요 각 한 편, 아동문학 십여 편, 다수의 산문과 평론이 이 전집에 처음 소개된다. 월북 이후에 발표한 글은 제외되었는데, 이는 시각에 따라 불완전한 전집일지 모르나, 우리는 작가의 의지가 순수하게 발현되었느냐 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전집 만들기에 집중했다. 월북 후의 작품도 상허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이기에 추가로 정리할 기회를 모색하려 한다.
이렇게 기획한 ‘상허 이태준 전집’은 전14권으로 구성된다. 제1권은 상허의 단편소설을 모은 『달밤』, 제2권은 중편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 작품을 엮은 『해방 전후』이다. 제3권부터 제10권까지는 장편소설들로서 『구원의 여상 · 화관』 『제이의 운명』 『불멸의 함성』 『성모』 『황진이·왕자 호동』 『딸 삼형제 · 신혼일기』 『청춘무성 · 불사조』 『사상의 월야 · 별은 창마다』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제11권은 상허의 모든 수필과 기행문을 모은 산문집 『무서록』, 제12권은 문장론을 담은 『문장강화』, 제13권은 『평론 · 설문 · 좌담 · 번역』, 제14권은 상허의 어휘들을 예문과 함께 정리하고 상허 관련 자료를 취합한 『상허 어휘 풀이집』으로 계획했다.
상허는 최초 발표본 이후 단행본 수록본, 선집 수록본 등 재발표본에 따라 개작을 많이 했는데, 1946년 8월경 월북 이전 마지막 판본이 작가의 최종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의 검열이 극심해진 후기에 개고된 작품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정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발견되었고, 이 경우는 최초본에 따라 복원한 뒤 편자주를 달았다.

원본성과 가독성을 고려한 편집 원칙
작품이 씌어진 지 어느새 한 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상허의 글들은 여전히 낡지 않은 현재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활자화된 우리말 표기법이나 용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작품의 의미와 표현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독자에게 ‘읽힐 수 있게’ 복간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선 본문을 확정하는 세부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했다. 원본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저본 원문과의 꼼꼼한 대조를 선행하고, 서술문과 대화문 모두 현행 표기법을 따르되, 대화문, 편지글, 인용문에서는 방언이나 당대의 표현, 인물의 독특한 입말은 그대로 살렸다. 서술문에서도 표기법에 맞지는 않지만 예스러운 분위기를 전하는 어휘는 살렸다. 오식, 오자, 탈자로 의심되는 부분은 여러 판본을 참조하거나 추정해 수정했다. 외래어나 외국어는 현행 표기법을 따랐으나, 일본식 외래어로 굳어져 사용되던 말이나 대화문에 나오는 것은 그대로 두고 주석에 풀이했다.
이 전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요소는 편자주인데, 그 적절함과 정확성에서 염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각 권마다 적게는 500여 개에서 많게는 1,400여 개에 이르는 주석이 각주 형식으로 들어가 있으며, 생소한 옛 어휘, 외래어, 일본어, 한시, 인물, 장소, 사건에 풀이나 간략 정보를 맨 처음 나오는 곳에 한 번 넣었다. 의미가 모호하여 ‘추정’이라 밝히고 풀이한 곳도 있고, 정확한 뜻을 찾을 수 없어 넘어간 곳도 있으며, 젊은 독자를 고려하여 난이도를 약간 낮춰 달았다. 그밖의 자세한 편집 원칙들은 책 앞에 실린 「‘상허 이태준 전집’을 펴내며」에 밝혀져 있다.

연보, 문헌 시각자료, 전집 디자인
작가 연보는 상허의 출생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기로 하고, 월북 이전과 이후의 국내외 제반 자료를 포괄해 작성했다. 기존에 불확실하게 전해지던 사항들은 반영하지 않았고 새로 확인된 사항들을 추가했으며, 사실 확인이 어려운 월북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증언자 이름을 밝혔다. 연보는 전집 완간까지 지속적으로 보완과 확인을 병행하며 완성해 갈 계획이다.
끝으로 최초 발표 지면과 단행본 표지를 화보로 덧붙여, 김용준, 정현웅, 안석주, 김규택, 길진섭, 노수현, 이주홍, 김환기, 최영수 같은 화가들의 장정(裝幀) 및 삽화뿐만 아니라, 표기법, 활자, 조판, 편집 등 당대의 출판 환경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상허의 사진 및 관련 자료는 전집이 완간될 시점까지 모인 것을 종합하여 작품 목록 및 작가 연보와 함께 마지막 권에 공개할 예정이다.
방대한 규모의 전집 디자인은 각 권의 개별성과 통일성을 두루 갖추어야 하고 오랜 시간을 견뎌 존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열화당은 평소 그러한 조건에 맞는 정갈한 디자인을 추구해 왔으며, 이 전집 역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오래 두고 보기에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재킷, 권두 삽지(fly leaf), 화보 용지를 한국적 질감으로 선택해 소장본의 가치를 높였으며, 수록 작품의 발췌 문장을 넓은 띠지 위에 세로짜기로 흘려, 한글 활자와 상허 문장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디자인적 요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