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에서의 한 달 (양장)

시에나에서의 한 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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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간을 요구하는 그림
너무나 많은 전시와 관련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자신의 눈으로 차분히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우 틈을 내 미술관에 가서도 그 오랜 시간을 견뎌 우리 앞에 당도한 그림들을 잠깐씩 훑어보고 나올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은 예술도 빠르고 많이 경험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림은 왜 그려져 왔으며,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일까.
리비아계 영국 작가인 히샴 마타르(Hisham Matar)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찾아간다. 그는 하나의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는데, 서너 달은 기본이고 일 년이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버지의 행방은 단서조차 찾지 못한 채 사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한 번에 하나씩 그림을 본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서 많은 이득을 얻었다. 바라보다 보면 그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달라지곤 했다. 나는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림은 점차 그에게 삶의 물리적인 거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거처가 되었다.
저자

히샴마타르

저자:히샴마타르
리비아계영국작가로,1970년뉴욕에서태어나리비아트리폴리에서유년시절을보냈다.1979년카다피독재정권의반체제인사였던아버지를따라가족과함께이집트카이로로망명했다가1986년런던으로이주해정착했다.런던골드스미스대학에서건축전공으로석사학위를받았으며,현재런던과뉴욕을오가며컬럼비아대학교바너드칼리지에서문학을가르치고있다.카다피정권의정치적폭력을바탕으로한장편소설『남자들의나라에서(IntheCountryofMen)』(2006)로데뷔해맨부커상과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최종후보에올랐다.카이로에서납치실종된아버지의흔적과그진실을좇는회고록『귀환(TheReturn)』(2016)으로퓰리처상(논픽션부문)을수상했다.그밖의작품으로소설『실종의해부학(AnatomyofaDisappearance)』(2011),『나의친구들(MyFriends)』(2024)등이있다.

역자:신해경
서울대학교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재학중이다.생태와환경,사회,예술,노동등다방면에관심을가지고있으며,옮긴책으로『플로트』『투명한힘』『글쓰기사다리의세칸』『저는이곳에있지않을거예요』『어떤그림』『미술관에갑니다』『풍경들:존버거의예술론』등이있다.

목차

두초의문
방의형태
머무는곳
다윗과골리앗
갑옷?무슨갑옷?
벤치
『흔적』
미술관경비원들
푸른리본
앉기
신앙의문제

〈터키식목욕탕〉
천사의곤경
〈낙원〉

옮긴이주
도판목록

출판사 서평

시간을요구하는그림
너무나많은전시와관련정보가쏟아지고있는요즘,우리는하나의그림을자신의눈으로차분히들여다볼엄두가나지않는다.겨우틈을내미술관에가서도그오랜시간을견뎌우리앞에당도한그림들을잠깐씩훑어보고나올수밖에없다.현대인들은예술도빠르고많이경험하고소비해야한다는강박에사로잡혀있는듯하다.하지만그림은왜그려져왔으며,우리는왜그림을보는것일까.
리비아계영국작가인히샴마타르(HishamMatar)는이질문에대한답을자신의상처를치유하는과정속에서찾아간다.그는하나의그림을오래들여다보는데,서너달은기본이고일년이걸리는경우도적지않다.“아버지의행방은단서조차찾지못한채사반세기가훌쩍지난지금도나는계속이런방식으로,한번에하나씩그림을본다.이런방식으로보면서많은이득을얻었다.바라보다보면그림은전혀예상하지못한방식으로달라지곤했다.나는그림이시간을요구한다는걸알게되었다.”그렇게그림은점차그에게삶의물리적인거처뿐만아니라정신적인거처가되었다.

묘지없는애도자
마타르의아버지자발라마타르(JaballaMatar,1939)는리비아의군인이자외교관으로,카다피정권에반대하는반체제인물로지목되면서1979년부터가족과함께이집트에서망명생활을했다.그러던중1990년3월카이로에서납치되어리비아아부살림교도소에수감되었고,1996년6월29일이곳정치범들이대량학살되는사건이벌어진후생사불명상태로소식이끊겼다.아버지가납치되었을때마타르는열아홉이었다.어떤이유에선지그때부터시에나파그림들은그에게피난처이자외부세계와만나는통로가되어주었다.아버지의행방을모른채삼십년가까이흐른뒤그는마침내이그림들의고향을찾는다.
그가시에나에가기로마음먹은것은아버지의행방을추적하는과정을기록한『귀환(TheReturn)』의집필을마친즈음이었다.그가하필시에나파그림에빠져든이유는무엇일까.시에나화파는13-15세기이탈리아시에나에서번성한화파로,그시조라불리는두초디부오닌세냐,고딕양식을접목한피에트로와암브로조로렌체티형제,타데오디바르톨로,마테오디조반니등이대표적화가이다.비잔틴도아니고르네상스도아니며,피렌체화파처럼극적인느낌도없는그그림들은,어딘가어색하지만인간적이고세밀하면서도정서적인묘법으로마치변종처럼홀로존재한다.마타르도처음에는그그림들에어떻게다가가야할지몰랐다.그림들에서흔히보이는대칭적인구도와노골적인시선이무례하고적대적으로느껴졌고,기독교적관례와상징이라는은둔세계에속하는것같았다.그럼에도계속해서보러갔다.그리고그그림들의색,섬세한형태,정지된드라마가점점없어서는안될것이되었다.
런던에서대학을다니던때부터지금까지마타르는몇달에한번씩내셔널갤러리로두초의〈수태고지〉나〈눈먼사람을치유하다〉를보러간다.시에나로떠나기에앞서마타르는‘진정으로본다는것이무슨의미인지반어적으로질문하는’그림인〈눈먼사람을치유하다〉로이야기의문을연다.완성된것을보여주기보다보는이에게무엇을기대하는듯한시에나파그림들은명확한답을주지않는다.그림의완성에는감상자의해석이필요하다는그런예술의초기사례라고나할까.“그림이보는사람의감정상태에얼마나크게좌우되는지,인간이공통으로겪는경험이예술가와보는사람,예술가와대상간의계약을어떻게바꾸는지이새로운협업형태가어떤창작의가능성을주는지그그림들이묻고있음을우리는간파할수있다.”

시에나의알레고리속으로
시에나에온마타르는캄포광장의푸블리코궁전으로향한다.이탈리아가통일된국가가되기전에는세습군주가지배하는여러도시국가로나뉘어있었는데,시에나는시민통치를선호했다는점에서독특하다.이도시는교회의권위에서벗어나시에나정부가주축이되어스스로세금을결정해거두고법을만들어강제했다.부유하고잘통치되는,당시기준으로는민주적인곳이었다.13세기에시에나공화국의정부청사로지어진푸블리코궁전은그행정의중심이었다.현재는시청과시립미술관으로사용되고있는데,내부에는많은프레스코화가그려져있다.마타르가이곳을여정의첫장소로택한이유는시에나의남다른근원부터시작하고싶었기때문일것이다.
이곳의살라데이노베(SaladeiNove),즉‘아홉의방’에는암브로조로렌체티가완성한‘알레고리’와그결실의풍경들이세벽면을채우고있다.중앙에위치한〈좋은정치의알레고리〉는세속화중에서가장중요하고단호한작품으로,정의에대한찬가이자시민통치란무엇인지를보여준다.여기에는지배적인신과같은존재는볼수없다.“그림속활동들이분포된방식은유일한권위를찾으려는욕구를좌절시킨다.대신에그그림은어떤정치적선언의시각적행진을보여준다.”양쪽의긴벽에는‘알레고리’의충고대로따랐을때세상이어떻게될지를보여주는〈좋은정치의결과〉와그러지않았을때를보여주는〈나쁜정치의결과〉가그려져있다.무언가를부정하려면그것이가진의미를분명하게말해주어야하는데,이역설은로렌체티의프레스코화를읽는한방법이다.그의그림은칭송하고또비난한다.‘알레고리’는여러덕목들의위계와권력과의관계를가르치면서대놓고명확하게만들고싶어하고,그결실인풍경들은단정적이다.그것은시에나를닮았고또모든도시를닮았다.마타르는악마로묘사된‘폭정’에서리비아의독재자무아마르카다피를풍자한트리폴리담벼락의낙서들을떠올린다.“지극히당연한일이겠지만이는시에나에있으면시에나가유일한도시이거나모든도시인도시로,혹은사실은도시가아니라도시의알레고리로보이게되는그느낌을강조해준다.”

끊임없이움직이는도시로서의자아
마타르는그림을보는것이상으로시에나라는장소에깊이스며든다.키자나음악원,캄포광장,푸블리코궁전,시에나대성당,피나코테카미술관,산베르나르디노기도원미술관등여행객들이한번쯤가볼만한곳도가지만,숙소인오래된팔라초에서의시간,도시공동묘지의벤치에앉아있거나시에나를둘러싼도시방벽까지걷는시간도만끽한다.어느날은이도시를접하는감각을새롭게유지할수있도록도시의한쪽끝까지걸어가서여러관문중하나를통해도시가보이지않는지점까지갔다가다시시에나로돌아오기도한다.“그처럼결연하고그처럼의도가충만하고그처럼나의존재에관심이많은곳은일찍이가본적이없었다.어느길로접어들든,내걸음의속도와방향은시에나가결정하는듯했다.그때기분으로는,알수없는이유로그처럼오랫동안가고싶어했던그낯선도시에서평생이라도살수있을것같았다.”
그는온전히혼자만의시간을지키기위해노력하면서도이도시에서마주친사람들에게서뜻밖의위로를얻는다.두오모광장에서는점잖은나이지리아여인과인사를나누고,도시방벽이있는언덕에서는요르단에서이민온아담과그의아들카림을알게되어집으로초대를받는다.모두이방인이다른이방인에게보여주는관대한태도를지닌이들이었다.금세친해져‘사브리’라는애칭으로부르게된이탈리아어강사사브리나,종일서서그림을보는그에게의자를건네는피나코테카미술관경비원,아흔번째생일을맞이한오래된이탈리아인친구베아트리체,그리고휴대폰에녹음되어있던아내다이애나의목소리까지,타지에서마주친낯설거나친숙한이존재들은그와적절한거리를유지한채동행한다.

내밀한순례의길
시에나에머무는동안마타르는그간마음에담아둔그림들을보러다닌다.신보다인간의삶에훨씬큰관심을두고있는듯보이는두초의〈프란치스코회수도사들의성모〉,이보다더심란한성모와성자의재현을생각하기도힘들로렌체티의〈젖을주는성모〉,보면볼수록가슴깊이고통이자리하게되는사노디피에트로의〈수태를알리는천사〉등,모두어딘가조금씩이상하면서도보는이의생각과감정이들어갈틈을열어놓는묘한그림들이다.물론시에나가중심에있지만,런던,트리폴리,로마,뉴욕등여러장소와그곳의그림들이실제로또는기억속에서소환되어등장하기도한다.“그모두가한장의천으로만든세월의손풍금처럼차곡차곡접히는듯했다.여기우리는동시에시에나와로마와트리폴리에있었다.”그리고묘지벤치에앉아있던어느날,그는자신이시에나에그림을보러온것만이아니라,홀로애도하러,새로운지형을살피며여기서부터앞으로어떻게살아나가야할지알아내러온것이었음을깨닫는다.
한달의여정을마치고일상으로돌아온마타르는바쁜일정에지쳐가던뉴욕출장길에서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방문한다.그리고조반니디파올로가흑사병발발로부터거의한세기가지난1445년경에그린〈낙원〉앞에다시선다.내세의재회를상상하는이그림속사람들처럼아버지와의재회에서서로를알아볼수있기를간절히기원하며.그는그렇게자기만의내밀한순례의길을찾아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