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19호실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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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호실로 가다》는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To Room Nineteen: Collected Stories Volume One’(1994)에 실린 11편의 단편을 묶은 것이며, 남은 9편은 《사랑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레싱의 초기 단편으로, 가부장제와 이성중심 등 전통적 사회질서와 사상 등에 담긴 편견과 위선 그리고 그 편견과 사상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레싱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한 것처럼 이 단편들은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일상과 욕망, 때로는 저항을 가감 없이 묘사하여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특히 레싱의 작품들은 전통과 권위에 억압받아 개인의 자유를 잃어버린 여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

도리스레싱

작가도리스레싱은현대의사상·제도·관습·이념속에담긴편견과위선을냉철한비판정신과지적인문체로파헤쳐문명의부조리성을규명함으로써사회성짙은작품세계를보여준영국의여성소설가이자산문작가이다.

본명은도리스메이테일러(DorisMayTayler)이다.1919년페르시아(지금의이란)에서영국인이민자부모의장녀로태어났다.1925년에가족이영국령남로디지아(지금의짐바브...

목차

서문

최종후보명단에서하나빼기
옥상위의여자
내가마침내심장을잃은사연
한남자와두여자

영국대영국
두도공
남자와남자사이
목격자
20년
19호실로가다

작품해설:도리스레싱의1960년대단편소설(민경숙)
도리스레싱연보

출판사 서평

“저는이세상에서철저히혼자였으면좋겠어요.”

억압된여성의일상을잔인하고도다정히그려낸
노벨문학상수상작가도리스레싱의소설들


영국을대표하는노벨문학상수상작가도리스레싱의단편소설을담은《19호실로가다》가출간되었다.《19호실로가다》는1994년다시금출판된‘ToRoomNineteen:CollectedStoriesVolumeOne’을번역한것으로,작품20편가운데11편을묶어출간한것이며,남은9편은《사랑하는습관》이라는제목으로출간될예정이다.

특히《19호실로가다》에담긴단편소설가운데〈최종후보명단에서하나빼기〉〈내가마침내심장을잃은사연〉〈한남자와두여자〉〈방〉〈영국대영국〉〈두도공〉〈남자와남자사이〉〈목격자〉〈20년〉은국내에서는최초번역되는것으로,기묘하고도현실비판적인레싱만의작품세계를잘보여준다.현대페미니즘의고전으로평가받는〈19호실로가다〉와〈옥상위의여자〉도포함되어페미니즘작가로서의레싱의면모또한발견할수있다.

《19호실로가다》에담긴이소설들은대부분레싱의초기단편소설로,전통적인사회질서와체제가붕괴된1960년대전후유럽사회의단면을예리하게포착하고있으며,사회로부터억압받는개인의일상과욕망,때로는저항을레싱만의창의적방식으로담담히그려냈다.

여전히‘19호실’을갖지못한여성들
“원하신다면제삶을가져가세요,미스타운센드.저는당신처럼이세상에서철저히혼자였으면좋겠어요.”(305쪽,〈19호실로가다〉)

표제작〈19호실로가다〉는결혼제도에순응하며자신의독립성을모두포기한전업주부수전이숨쉴틈을찾기위해‘19호실’이라는자신만의공간으로향하는이야기이다.남부러울것없는가정을가꾸던수전이삶의허망함을느끼게된결정적원인은결혼과가정생활이다.수전은가족에게서벗어나혼자이고싶지만,‘집’이라는공간에서수전은온전히혼자일수없다.결국수전은런던의후미진호텔로향하고,호텔의‘19호실’에서야그어떤역할과의미도강요받지않는‘자기자신’을마주할수있다.

버지니아울프가‘자기만의방’을강조했듯,레싱도여성이정체성과독립성을잃지않기위해서는온전히본인에게집중할수있는자신만의공간을만들어야한다고본듯하다.이는다른소설에서도몇차례반복되어나타난다.〈남자와남자사이〉의모린은평생애인을뒷바라지하다가버림받는다.그와헤어지고도생활비가부족해전애인의집을벗어나지못하는모린은자립할수없는현실에굴욕감을느낀다.〈최종후보명단에서하나빼기〉의바버라는수전이나모린과는달리결혼후에도자신의일을포기하지않고직업적으로성공한여성으로,그녀는자신의작업실을갖고있다.그녀와하룻밤을보내기위해바버라의집에간그레이엄은그녀의방을보고‘아내한테이런방이있다면나는싫을것같은데’라고생각한다.그레이엄은바버라가직업적으로성공한여성이기때문에매력을느끼면서도,자신의아내는그렇지않기를바라는이중적태도를보인다.소설속인물들이‘자기만의방’을갖는것은쉽지않았고또평범하지않은일이었다.레싱은자신만의공간을갖지못한여성의상황을이야기에담아결혼,가정,남성에의해객체로머무는그들의현실을극명하게보여주고있다.

중년여성의연대와그들의힘
“나는일어나서그녀가앉아있는곳까지네댓걸음을걸어가알루미늄호일로감싼심장을옆의빈자리에놓았다.그녀가빤히바라보는자리에.”(103쪽,〈내가마침내심장을잃은사연〉)

레싱의소설에서공통적으로발견되는또다른특징은중년여성에대한다양한이미지이다.〈19호실로가다〉의수전,〈최종후보명단에서하나빼기〉의바버라,〈남자와남자사이〉의모린과페기,〈한남자와두여자〉의스텔라,〈두도공〉의‘나’와메리,〈목격자〉의미스아이브스등은모두중년여성으로,이들은다양한직업과성격을가진모습으로등장한다.

레싱이전여성독자를대상으로하거나여성을주인공으로삼은많은소설이“낭만적사랑”을꿈꾸는여성,또는젊은여성에주목했다면레싱은중년여성에집중한다.특히이들을다양한직업과모습,성격을가진주체적인물로구성해내며그들을향해다정한시선을보내고있다.또한소설에등장하는중년의여성들은또다른여성과의우정과연대로위기를극복하거나서로를위로해주는모습을보인다.가령〈남자와남자사이〉의모린과페기는서로한남자를두고경쟁하는정부였지만서로를위로하며경제적·정서적으로연대를꾀하고,〈내가마침내심장을잃은사연〉의주인공‘나’는실연에빠져미쳐버린한여자에게자신의심장을건네기쁨을준다.또〈두도공〉에등장하는‘나’는단호했던메리의사고(思考)를확장시켜그녀의가정문제해결에도움을주는역할을맡기도한다.〈영국대영국〉의찰리는분열과불안증세를보이는데,그의두려움과감정을이해하는것은젊은여성이나남성이아니라,이름모를서민층중년여성뿐이다.이처럼레싱은중년여성들이가진연륜과힘을긍정할뿐아니라다채로운여성간의연대로생겨나는또다른차원의세계를그리고있다.

고독과불안을긍정하는레싱의소설
세상에는두종류의사람이있다.꿈꾸는사람과꿈꾸지않는사람.그런데양쪽모두상대를경멸하거나,간신히참아주는경향이있다.(189쪽,〈두도공〉)

레싱은명료하고이성적인서구중심의사고보다는모호하고불분명하면서도자유로운작품세계를보여준다.이는다른작가와레싱을구별짓는매우중요한특징이다.〈두도공〉은이러한레싱의작품세계를잘보여주는작품이다.아프리카황무지에서그릇을빚는한늙은도공의꿈을꾼‘나’는현실에서알고있는유일한도공인메리에게꿈이야기를전해준다.메리는꿈을단한번도꾸지않았을정도로현실에충실하고단호한사람이지만계속되는‘나’의꿈이야기를듣고,꿈이야기에몰입하게된다.이과정은메리의삶에균열을일으키고그녀가더유연한생활과풍부한감정을갖게하는계기가된다.

그동안‘비이성’‘비합리’‘감성’은명료하고확고한‘이성’의대척점에위치했다.이성은고독과분열,불안감을느끼는것에대해부정적평가를내렸고,감성은비이성,비정상적인것으로격하되어왔다.따라서〈19호실로가다〉의수전은자신의불안감과이상증세를남편매슈에게말하지못한다.지성있고이성적이었던수전의비정상적행동을,남편이납득하지못할뿐아니라두려워한다는것을알기때문이다.그러나레싱은고독과불안의감정,구체적언어로설명할수없는비현실적감성과체험을긍정한다.〈내가마침내심장을잃은사연〉〈방〉〈두도공〉등에서도주인공의초조,불안,환상,비현실적세계가현실과교차되면서그들의상황을바꾸는계기가된다는것을꾸준히그려내고있기때문이다.

레싱의소설에서모호한세계와감정을경험하는것은대부분여성이다.아마도레싱은이른바‘여성적인것’으로폄하되던비현실적이고불완전한감성이실은여성,혹은감성적인남성(〈영국대영국〉의찰리)에게주어지는특권이라고본듯하다.그들은고독을느낄수있고자아를마주할수있으며,내면의적(敵)을통해이해의폭을넓히고또다른세상을만나게된다.즉,레싱은그동안불완전하다고무시되었던비이성,비합리,감성,무의식과상상의세계가현실세계에서발생한문제의해법일수있으며,자신의내면깊은곳에다다른사람이야말로다른이들에게도움을줄수있다고말하고있다.

“생각하는것을말할수만있다면,
우리는자유롭다”

‘19호실’에서야자신의정체성을찾을수있던수전뿐아니라《19호실에가다》에등장하는많은여성인물의이야기는비단레싱의시대,즉1960년대만의이야기가아니다.오늘날에도가부장제는여전히공고하고,많은남성은가정을부양하고많은여성은육아와가사를맡는다.육아와가사로일을그만둔여성은가부장제안의또다른혐오와마주한다.아이를낳은여성은‘위대한어머니’의이미지를뒤집어쓰거나‘맘충’으로전락하고,아이가없는가정주부는육아도경제활동도하지않기때문에죄책감에시달린다.아이를다키운중년여성이나노인여성은경력단절여성이되어낮은급여의일을도맡지만이들에게돌아오는것은‘아줌마’‘김여사’같은혐오와멸시다.도처에혐오가가득하지만이를해결할제도적,구조적차원의조치는묘연하기만하다.가부장제안에서여성은강물로떠간수전처럼무력하고,사회는여성을나락으로몰고있다.

생전레싱은한인터뷰에서“내가생각하는것을말할수만있다면,우리는자유롭다”고말한바있다.그는자유롭기위해작품을통해사회에대해문제를제기하고비판했으며,불완전한여성인물이자신의정체성을찾는과정과고통을여러작품을통해늘이야기해왔다.그리고오늘날많은여성도자유롭기위해자신들이생각하는것을말하기시작했다.미투(#MeToo)와위드유(#WithYou)운동이이어지고,사회에의해대상화된여성의이미지를거부하며,페미니즘의‘대중화’가일어나고있다.지금여성들의행보는레싱의이야기와닿아있다.“행간마다고인것은여성의삶”이므로레싱은여성을위로해준다.모두가자유로울‘19호실’을갖는날이머지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