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을말하기보다침묵을택하는사회,
이대로괜찮을까?
미국에서표현의자유가위기에빠졌다.인종,젠더등예민한주제를다룰때단어하나만잘못말해도경력이끝장나거나격렬한비난의대상이되는일이급증하고있다.대학에서는수업에서인종차별적단어를말하지않기위해‘니그로’를‘n……’으로줄인축약어를사용하기만해도학생들이충격을받을수있다며교수자가징계받는다.수십년간경력을쌓은유능한기자가국민절반이동의하는보수정치인의의견을담은사설을진보매체에실었다는이유만으로해고당한다.미국사회에서흑인의삶을어렵게하는데인종말고다른이유가있을수있다고말하기만해도인종차별주의자로비난받는다.
아이러니한일이다.미국에서표현의자유는언제나진보를위한무기이자약자들이특권층의탄압에맞서자신을방어하는수단이었기때문이다.1920년의여성참정권확보,인종분리를금지한1960년대의민권법,미군의베트남전철수를이끈1970년대의시민운동,동성혼법제화를이끈최근의투쟁등등.주류기득권에맞서변방에서진리와자유를추구한세력에게표현의자유는든든한친구이자유용한도구였다.그러나이제는아니다.‘깨어있다’고자부하는소수의사람이모든정의와진리를독점하고‘정치적으로올바르지않은’의견을제압하기위해표현의자유에딴지를건다.진보를자청하는세력이의견의통로를좁히려애쓰는기이한상황이다.
정치적올바름을주창하는‘깨어있는’급진적소수는
어떻게사회를위험에빠뜨리는가?
독일진보잡지《슈피겔》의워싱턴특파원르네피스터는이를새로운독단주의라고부른다.정치적올바름에어긋나는‘잘못된단어’를공격하는일에사활을거는새로운독단주의가학교,언론,기업,공공기관,문화예술계등미국의일상생활을좌우하는모든곳에스며들었다는것이저자의진단이다.결과는참혹하다.사람들은자기의견을표출해공격받는대신침묵을택했고,트럼프와같은포퓰리스트는침묵하는대중의분노를파고들었다.이제미국은완전히다른두개의우주로쪼개졌다.한쪽에는사회의진보적변화에호의를가진사람조차따라가기어려울만큼빠른속도로‘혐오발언’의기준을갱신하는우주가있다.이우주에서는정치적올바름기준을조금이라도충족하지못하는사람을낙후된자로낙인찍는다.반대편에는첫번째우주에서소외되고무시당했다고느끼는사람들에게‘자유’를선물하는또다른우주가있다.우파포퓰리스트가창조한이두번째우주에서는사회적약자를마음껏조롱하고욕보이는데까지표현의자유를극단적으로확장해첫번째우주에서배제된자에게정치적효능감을선물한다.양극화된두우주는상대진영에분노의연료를공급하여사회를극단적분열과갈등의장으로만든다.악순환이다.
르네피스터는인종,젠더의영역에서진보적변화가필요하다고단언한다.급진주의자들이점진적변화에조급증을느끼는이유를깊이이해하며,그들의목소리에도정당한측면이있다고인정한다.그러나동시에현실감을잃어서는안된다고강조한다.대중의절대다수가별관심도없는문제에서‘정치적으로올바른단어’를두고논쟁하기를멈추지않는다면,진보정치의영역은점차좁아질수밖에없다.
‘잘못된단어’의검열에만몰두하는진보정치가초래한파국은이책곳곳에서확인할수있다.대학은정치적올바름을기준으로모든것을재단하려는자들에맞서표현의자유를옹호하지않는다.논란을피하는데급급하다.다른한편으로‘깨어있음’의가치를설파하는데만매진하는연구자와활동가의산실역할도한다.학계에서살아남으려면늑대처럼울부짖거나아예입을다물어야한다.대학은정치적행동주의의시험장이되어버렸다.언론도마찬가지다.시대요구에발맞춰언론사구성원의성별,인종적구성은점차다양해졌지만의견스펙트럼은점점좁아지고있다.‘진실’을‘깨달은’급진적소수의주장이곧진보언론의목소리로자리매김한다.서로다른의견을견주어건전한공론장을만드는언론의역할은빠르게소멸해가는중이다.그뿐만이아니다.기업은이때다싶어시류에편승해정치적으로올바른이미지를구축하여거대한노동착취의구조적맥락을감춘다.국가는새로운독단주의를실현하기위한수단으로서만그가치를인정받는다.그리고이모든결과로진보정치는축소되고극단적보수우파가득세한다.
독일진보잡지《슈피겔》의워싱턴특파원르네피스터,
동시대의새롭고위험한분위기를명징하게그려내다!
르네피스터는언론인다운명쾌한필치로미국과그영향을받은독일에서어떤일이일어나고있는지를박진감넘치게추적한다.목소리큰소수가다수를침묵시키는일은사회곳곳에서빠르고광범위하게진행중이다.저자가전하는미국과독일사회전반의모습은우리에게도낯설지않다.이미많은사람이어떤문제에자기생각을밝히는데두려움을느낀다.‘차별주의자’라손가락질받는게두렵기때문이다.먹고살기바빠진보담론의최신흐름을미처좇지못한사람을비웃는사람,지금껏누려온기득권과특권을앞다투어고백하는‘참회’행위로자신의정치적위상을높이는사람은미국과독일뿐아니라한국에도있다.사회가극단적분열과갈등으로얼룩져있다는점에서도한국은미국을닮아가고있다.독일이미국처럼되어서는안된다고경고하는이책의메시지는한국의독자에게도유효하다.
‘깨어있는’사람과그렇지못한사람을끊임없이구별하여도덕적위계를매기는시대의분위기는모두에게해롭다.《잘못된단어》는구호로만그치는변화가아닌실질적변화를만들어내고싶은사람,표현의자유에토대를둔자유로운토론의가치를포기하지않은사람,양극단의세계에모두거리를둔채사회를조망하고싶은사람모두가꼭읽어야할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