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나는 식물성이다』의 식물들은 동적인 식물들이다. 왜냐하면 이 시집에서 식물들은 시적 화자의 여성적인 자아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표현되는데, ‘자라고’ ‘기어오르고’ ‘덮고’ ‘날아오르는’ 등과 같은 동사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의 속성이 이 시집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남성성(동물)과 여성성(식물)의 대비가 낳는 여성적 자아의 삶이 주축을 이룬다. 그 삶은 능동적인 과시가 아닌 수동적인 보여짐이라는 데서 식물의 한 속성을 닮아 있다.
[시인의 말]
불꽃 같은 한 생애가 둥지를 품고 있다 똑딱단추를 열면 올망졸망한 추억들이 보송보송 날개를 턴다 그 어린것들 남겨놓은 채 다시 나는 떠난다
막막하게 길이 점화된다 -1999년 10월, 김규린
[시인의 산문]
세상을 향해 한 번도 울부짖은 적 없이 이렇게 흘러버린 나를 용서하고 싶다 돌아본 자리에 허망하게 썰물로 키질하는 헝클어진 꽃 하나 너울거린다
너울거린다
나는 안다 꽃이 이토록 청승맞은 물살에 떠밀려가는 이유를 꽃은 언제나 꽃일 뿐이다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을수록 그 이유는 특별하게 가혹하고 가혹한 꽃술을 묻힌 꽃잎들은 진저리쳐지게 아름답다
나는 식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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