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손바닥 -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사라진 손바닥 -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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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따뜻함'과 '단정함'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나희덕 시인의 시집. <재로 지어진 옷>의 '흰 재로 지어진' 날개를 단 이 나비의 상징은 이번 시집속에 하나의 핵심적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 시는 누에의 눈물겨운 노동으로서의 동시에, 아름다움을 향한 영혼의 비상이라는 양 측면을 동시에 상징한다. 나희덕 시인 시의 모성적 따뜻함은 복합적인 삶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는데서 온다. 감각적 이미지의 언어적 현실성을 토대로 나희덕 시의 간결하고도 절제된 형식 구조적 측면이 두드러지는 이 시집은 내안의 어둠과 내 밖의 밝음 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립된 두세계의 긴장 속에 자리잡고 있다.
저자

나희덕

저자:나희덕
1989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뿌리에게』『그말이잎을물들였다』『그곳이멀지않다』『어두워진다는것』『사라진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돌아오는시간』『파일명서정시』『가능주의자』,시론집『보랏빛은어디에서오는가』『한접시의시』,산문집『반통의물』『저불빛들을기억해』『한걸음씩걸어서거기도착하려네』『예술의주름들』등이있다.현재서울과학기술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사라진손바닥
입김
여,라는말
마른물고기처럼
풍장의습관
朝餐
겨울아침
그는먹구름속에들어계셨다
방을얻다
한삽의흙
옆구리의절벽
門이열리고
초승달
만년설아래

제2부
가을이었다
실려가는나무
재로지어진옷
극랑강역
누가우는가
그림자는어디로갔을까
비에도그림자가
갈증
천개의손
탑이기러기처럼많은
그날의山有花
붉디붉은그꽃을
걸음을멈추고
빛은얼마나멀리서

제3부
연두에울다
어떤出士
북향집
저물결하나
행복재활원지나배고픈다리지나
국밥한그릇
엘리베이터
흰구름
진흙눈동자
斷指
소풍
붉은만다라
수족관너머의눈동자
상수리나무아래

제4부
草墳
북극성처럼빛나는
그섬의햇빛속에는
담배꽃을본것은
소나무의옆구리
골짜기보다도깊은
소나기
낯선고향
圖門가는길
또나뭇잎하나가
聖느티나무
검은점이있는누에
땅속의꽃

-해설:직조술로서의시학/김진수

출판사 서평

『사라진손바닥』은망각되어잊혀져간것들을기억속으로소환함으로써그것들에게재생의삶을부여한다.그러니그시의언어속에사라져간것들에대한애달픔과연민의감정들이절실하게스며들어있음은자명하다.나희덕의시세계에서는자식의주검을앞에둔어미의심정같은이크나큰슬픔과사랑의감정이이미사라져버린것들을망각의무덤속에서불러내어새로운생명을부여하는동력으로작용한다.

흰나비가소매도걷지않고
봄비를건너간다
비를맞으며맞지않으며

그고요한날갯짓속에는
보이지않는격렬함이깃들어있어
날개를둘러싼고운가루가
천배나무거운빗방울을튕겨내고있다
모든날개는몸을태우고남은재이니

마음에무거운돌덩이를굴려올리면서도
걸음이가볍고가벼운저사람
슬픔을물리치는힘고요해
봄비건너는나비처럼고요해

비를건너가면서마른발자국을남기는
그는남몰래가졌을까
옷한벌,흰재로지어진―「재로지어진옷」전문

“흰재로지어진”날개를단이나비의상징은이번시집을관통하는하나의핵심적이미지를구성한다.저날개는,“비를맞으며맞지않으며”라는모순어법의구절이암시하는바와같이,한편으로는누에의눈물겨운노동으로서의직조술의산물인동시에,다른한편으로는아름다움을향한영혼의비상이라는양측면을동시에상징하는것이다.사실상이같은영혼과육체,빛과어둠,삶과죽음의동시성을갖는모순형용의시적긴장속에나희덕시의언어적특성이똬리를틀고있다.“죽음의소식을듣고가장먼저느낀것이시장기”(「국밥한그릇」)라는이처절한모순속에존재들의삶이자리하는것이다.

그러나나희덕시의진정한면모는그자체로빛이자어둠인이모순형용의삶을통째로부둥켜안고등을다독이는어미의시선과손길같은그시적태도속에자리한다.이러한시적태도는‘이것이냐저것이냐’혹은‘전부아니면전무’라는단순한이분법적도식속에삶의복합성을구겨넣음으로써그어느한쪽의억압과희생을전제로다른한쪽의손을들어주는태도와는정면으로배치된다.나희덕시의모성적따뜻함은바로이러한복합적인삶의실상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껴안으려는눈물겨운노력에서기원하는것이다.

처음엔흰연꽃열어보이더니
다음엔빈손바닥만푸르게흔들더니
그다음엔더운연밥한그릇들고서있더니
이제는마른손목마저꺾인채
거꾸로처박히고말았네
수많은槍을가슴에꽂고연못은
거대한폐선처럼가라앉고있네

바닥에처박혀그는무엇을하나
말건네려해도
손잡으려해도보이지않네
발밑에떨어진밥알들주워서
진흙속에심고있는지고개들지않네

백년쯤지나다시오면
그가지은연밥한그릇얻어먹을수있으려나
그보다일찍오면빈손이라도잡으려나
그보다일찍오면흰꽃도볼수있으려나

회산에회산에다시온다면―「사라진손바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