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5.52
Description
우리 현대 문학 100년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고 우리 문학의 고전을 동시대의 작품처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기 위해 기획된 '한국문학전집' 15권.
 
한국 소설사상 가장 두드러진 모더니즘 작품으로 인정받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비롯한 박태원의 대표 단편 13편을 수록하였다. 한글로 씌어진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 작품을 쓴 것으로 평가되는 박태원은 동시대에 활동한 이상과는 또 다른, 서울 주변부 중산층의 삶이라는 자기만의 튼실한 현실 공간을 구축하여 새로운 소설 기법을 선보였다.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표제작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을 비롯하여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한 「성탄제」, 「골목 안」등, 예술가소설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

박태원

박태원
190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에 <동명>의 '소년칼럼'에 <달맞이>가 뽑혔으며, 춘원 이광수에게 개인적으로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일본 동경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33년에는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에 반기를 든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5년 첫 장편소설 <청춘송>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1936년에는 <조광>에 <천변풍경>을 연재했다. 1946년에 남로당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했으나, 1948년에는 좌익 인사를 감시, 관리하던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중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53년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취임했으나,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면서 창작 금지 조처를 받았다. 1960년에 창작 금지 조처가 풀려 작가로 복귀하면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였지만 당뇨병으로 인한 안질환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는 등 시련을 겪는 가운데 1977년과 1980년에 <갑오농민전쟁> 1,2부를 출간한 후,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3부가 출간되었다.

책임 편집 천정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대, 홍익대 강사
저서로는 <근대의 책 읽기-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박태원 소설의 서사 기법에 대한 연구>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근대화의 문제> <계몽주의와 '재미'의 근대화>등이 있음.

목차

일러두기
 
수염
낙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애욕
길은 어둡고
거리
방란장 주인
비량
진통
성탄제
골목 안
음우
재운
 
주
작품 해설
식민지 모더니즘의 성취와 운명 / 천정환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참고 문헌
기획의 말

출판사 서평

한국 소설사상 가장 두드러진 모더니즘 작품으로 인정받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비롯한 박태원의 대표 단편 13편 수록. 한글로 씌워진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쓴 것으로 평가받는 작가 박태원. 동시대에 활동한 이상과는 또 다른, 서울 주변부 중산층의 삶이라는 자기만의 튼실한 현실 공간을 구축하여 새로운 소설 기법과 예술가소설로서의 보평성을 획득한 그의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