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1901년9월12일,노량진현수도국자리에서조상숭배관념이철저한아버지심상정과어머니파평윤씨사이에서3남1년중막내로태어났다.그의어머니는조선조말중류가정출신으로온후한성품과뛰어난재질을지닌여인이었다고전해진다.심훈의본명은대섭이고소년시절에는금강생,중국유학때는백랑,1920년이후에는훈이라고썼다.
1915년심훈은경성제일고보에입학하였으며,1917년3월왕족인전주이씨와혼인하였다.제일고보4학년재학중(19세)에3·1만세운동에가담했다가3월5일피검되어7월에집행유예로풀려나왔다.이어중국망명길에올라남경과상해를거쳐향주에이르러지강대학국문학과에입학했다.여기에서안석주와교유하여후일'극문회'를만들기도했다고한다.
1942년이후[동아일보]기자로활동하였으며,아내이해영과이별하였다.1930년,심훈은19세의무희인안정옥과결혼하여,『독백』『그날이오면』등의시를발표했다.그후장남재건과같이충남당진에내려가창작에전념하였다.
1933년심훈은장편『영원의미소』를탈고하여[중앙일보]에연재하고,이해영에대한회고적작품『직녀성』을발표하여그고료로부곡리에자택을짓고'필경사'라고불렀다.이필경사에서심훈은『상록수』를쓰고또그것이[동아일보]현상모집에당선되어일약명성을떨치게되었다.『상록수』는1935년[동아일보]창간15주년현상모집에당선되어상금500원을탄작품으로,농촌계몽운동을일으킨큰조카심재영과최용신을모델로쓰여졌다.가난한농촌의현실을배경으로한그의작품들은대개애향심과민족의식을고취시키는계몽주의문학의전형을이루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