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감정

레바논 감정

$9.00
저자

최정례

저자최정례는1955년경기도화성에서출생하였으며,고려대국문과및동대학원에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1990년'현대시학'으로등단하여현대문학상(2007),이수문학상(2003),김달진문학상(1999)등을수상하였다.시집'내귓속의장대나무숲'(1994),'햇빛속에호랑이'(1998),'붉은밭'(2001),'레바논감정'(2006)등이있으며시평집으로'시여,살아있다면실컷실패하라'(2007)를펴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냇물에철조망
냇물에철조망/껌벅이다가/칼과칸나꽃/찔레가시덤불/웅덩이호텔캘리포니아/비스듬히/헤이,나팔꽃/레바논감정/경국지색/길에누운화살표/오리발과물안경/잠깐반짝였는데/눈발휙휙

2부뿌리칠수없는사기꾼의蜜語들아
수족관식당에서의식사/햇살스튜디오/발자국/달려가는꽃나무/뾰족구두생각/게들은구멍속에한쪽다리를걸치고/파뿌리같이/南天의눈/슬픔의자루/토끼/잠속의뽕나무그늘/11월/도깨비방망이열두개/쇳대

3부스타킹을신는동안
스타킹을신는동안/그녀의입술은따스하고당신의것은차거든/아라베스크/사라진강/털많은손이불쑥/그늘/태양의잎사귀들/봄밤에늑대이빨/참이슬삼만병/폭탄에숨다/첩첩의꽃/화물기차/자기시집읽는밤/겨울딸기

4부낙화암은옆구리에삼천궁녀를거느리고
초승달,밤배,가족사진/하산/검은구두/나무가있던자리/성냥공장아가씨/이불차버리는소리/봄날이간다/내부순환도로/뻐꾸기들닽다/겨울유리창/온몸을잊으려고/개구리메뚜기말똥구리야

해설-시간의주름과존재의착색/최현식

출판사 서평

비극적현실앞에서도앞으로나아갈수밖에없는희망
기억과시간을통해자아의존재론을담아내는최정례시인의네번째시집



‘밀도높은언어를구사하는시인가운데한사람’(이남호)이라는평가를받아온최정례시인의네번째시집『레바논감정』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2003년이수문학상을수상한『붉은밭』(창작과비평사)의2001년출간이후,햇수로5년만에나온시집이다.이짧지않은시간동안더욱농익은시어들은한편한편의시를견고하게완성시키며,새시집의깊이를더한다.

시인이‘시간과기억으로부터관심을돌릴수없었다’라고말한이전시집에서문학평론가이광호는,그의시를‘시간의파편들을통해생의모순에관한실감을구체화한다’고평한바있다.이와마찬가지로새시집역시시간과기억의연장선에서그려진다.또한시간을운명적폭력성을가진물리적실체가아닌,영혼과육체,역사등존재의고유성을기억하는주름으로보고,이러한시간의주름을통해자아의‘결핍’과‘얼룩’을치유하는존재론을담아냈다는점에서도이전시집과같은맥락을유지한다.따라서우리는이미경험한바있는,세계와자아의현실에따라그모습을달리하는시간의주름을최정례시인만의뛰어난감각으로언어화한시들을다시한번만나게되는것이다.하지만이전의시집과는확연히다른새롭고낯선느낌을새시집은담고있다.그것이바로『레바논감정』을주목하는이유다.

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최현식은,‘나’를개방함으로써‘결핍’과‘얼룩’을치유하고의미있는세계로내려앉기위한작업으로,새시집이열린주체가지니고있는,혹은그것이지향하는무늬와촉감의표현에힘을쏟고있다고이야기한다.이를통해비로소자아의존재감이표상된다는것이다.그는동시에따뜻하지않은시인의언어에도초점을맞춘다.새시집에서자아를둘러싼삶은현실이든상상속이든“찢어버린사진들”과“모멸의시간”에휩싸여있다고지적한것이다.이처럼최정례시인의시는“뿌리칠수없는이사기꾼의蜜語들”을내면화하기위해“울면서노래”해야하는현실과자아의이중성을포획하고있다.새시집이이전어느시집보다정조의슬픔과능청스러움,이미지의추상성과구체성,리듬의느림과빠름이교묘하게엇물려진느낌으로새로우면서도낯설게다가오는이유는이때문이다.

그걸믿어야하나
깜빡이는순간에넘어가고마는
사기꾼의
사기꾼의침발린아양같은
먼지속에부유하는그말

화계동사거리먼지골목의입구
사진관햇살스튜디오
백일사진,돌사진,증명사진위로
햇살떨어지며
옛날사진합성!훼손사진복원!이라는말
찢어진사랑도감쪽같이기워줄듯한그말

찢어버린사진들아,모멸의시간아,
울면서노래하지않았었니
이몸은흘러가니옛터야잘있거라고

남북통일그날이라도온것처럼
남남북녀부둥켜들러붙은것처럼
옛사랑옛노래붙잡고

영정사진도훼손사진도
그곳에벗어두면
햇살속먼지의꿈속에서
깨어나춤추게되는거니?

목덜미에아양떨며파고드는햇살아
뿌리칠수없는이사기꾼의蜜語들아
─「햇살스튜디오」전문


앞에서언급한바와같이최정례시에서시간이란기억속에떠도는파편화된체험이다.바로그체험의조각들을재구성하여,과거와현재를넘나드는시인의노련함으로시적정서의생생한부조를이루고있는것은새시집이가진매력중하나이다.그런의미에서표제작「레바논감정」은시간이흘러서도여전히내면의의식속에흐르고있는옛사랑에대한감정을담담하고담백하게담아낸수작이라할수있다.
이렇듯홀리는감정의출처와향방을묘사해나가는묘미를지닌새시집은,매혹과매혹의틈새에서우리의힘으로어쩔수없는대상의빠름,무게감등과연관된시어들을적절하게골라쓰며,순간의묘사에도의식적인노력을기울였다.

수박은가게에쌓여서도익지요
익다못해늙지요
검은줄무늬에갇혀
수박은
속은타서붉고씨는검고
말은안하지요결국못하지요
그걸
레바논감정이라할까봐요

나귀가수박을싣고갔어요
방울을절렁이며타클라마칸사막오아시스
백양나무가로수사이로거긴아직도
나귀가교통수단이지요
시장엔은반지금반지세공사들이
무언가되고싶어엎드려있지요

될수없는무엇이되고싶어
그들은거기서나는여기서죽지요
그들은거기서살았고나는여기서살았지요
살았던가요,나?사막에서?
레바논에서?

폭탄구멍뚫린집들을배경으로
베일쓴여자들이지나가지요
퀭한눈을번득이며오락가락갈매기처럼
그게바로나였는지도모르지요

내가쓴편지가갈가리찢겨져
답장대신돌아왔을때
꿈이현실같아서
그때는현실이아니라고우겼는데
그것도레바논감정이라할까요?

세상의모든애인은옛애인이되지요*
옛애인은다금의환향하고옛애인은번쩍이는차를타고
옛애인은레바논으로가왕이되지요
레바논으로가외국어로떠들고또결혼을하지요

옛애인은아빠가되고옛애인은씨익웃지요
검은입술에하얀이빨
옛애인들은왜죽지않는걸까요
죽어도왜흐르지않는걸까요

사막건너에서바람처럼불어오지요
잊을만하면바람은구름을불러띄우지요
구름은뜨고구름은흐르고구름은붉게울지요
얼굴을감싸쥐고징징거리다
눈을흘기고결국

오늘은종일비가왔어요
그걸레바논감정이라할까봐요
그걸레바논구름이라할까봐요
떴다내리는
그걸레바논이라합시다그럽시다

박정대의시「이세상의모든애인은옛애인이지요」중에서

─「레바논감정」전문

새시집은또한,채현실화되지않은미래의이중성을절묘하게표상하며,성취에대한기대와좌절에대한불안을동시에안고있다.그러나이둘은극복의관계가아니라서로를채우며함께나아가는상보적관계이다.이처럼주체와대상의공존과분열,지움과생성의병립을통해온몸이지워진,그러나꽉찬세계에닿으려는시인의의지는시편곳곳에서엿볼수있다.

시인이느끼는매혹의감정이흘러가닿는곳은결국희망이다.그러나그것은이룰수있는미래의일이아니다.도달할수없다는것을알면서도그러나그끈을놓지않는것,거기에서시인은희망의진정한의미를찾는다.
저자의산문에서시인이말한‘구운밤닷되를심는일을포기하지않는희망’으로‘철조망에싹이나고잎이날때까지밤나무에주렁주렁수박덩이가매달릴때까지시에몸대고’가는모습을최정례시인은이미걷고있는듯하다.

너개구리야
그힘으로
콩튀듯팥튀듯뛰는메뚜기야
네사랑의힘으로말똥구리야
우리말똥을굴리며
엎어지며고꾸라지며가자
저들판을지붕을건너
개구리메뚜기말똥구리야
대문걸어잠그고두문불출한다해도
느닷없이따귀맞고욕설은듣게된다
빚갚고갚으며
철조망에싹이나고잎이날때까지
꽃피고꽃지고
밤나무에주렁주렁수박덩이가매달릴때까지
복사씨도살구씨도미쳐날뛸때까지*
가자
말똥을굴리며굴리며

으으개구리메뚜기말똥구리야
세간에세간에출세간에
그너머로우리
말똥을소똥을굴리며가자

김수영시「사랑의變奏曲」에서
─「개구리메뚜기말똥구리야」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