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몸’과‘달의입’을빌려부르는도시의비가
“찰나의기억으로가득차있는그의시집은그가그자신으로서존재하기위해서가까스로긁어모아내뱉은그의핏자국이다.”(허윤진/문학평론가)
1994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시「풍경」이당선되며등단한심보선이데뷔14년만에첫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문학과지성사,2008)를펴냈다.당시심사를맡았던황동규,김주연이평한바,“기성시단의어떤흐름과도무관하며,시를지망하는사람들이곧잘사용하는상투어들이나빈말과는전혀다른세계”를그려온심보선은등단작「풍경」을비롯,14년간이땅에서혹은바다건너도시에서쓰고발표해온총58편의시를이번시집에묶었다.심보선의시는,“현실을면밀히관찰하는투시력,그현실가운데를스스로지나가는푹젖은체험,그러면서도거기에이른바시적거리를만들어놓는객관화의힘,번뜩이지않으면서도눅눅히녹아있는달관의표현력,때로는미소를흐르게하는유머”들이서로적당한거리와긴장감으로조응하며이제껏쉽게만날수없었던시적공간을우리에게선사한다.근대자본주의의도래기에한없는도시의우울과그늘을산책자로관찰자로부유했던보들레르나벤야민의사유가그러했듯이,이제더이상의극단을예단하기도두려운후기자본주의의사회에서심보선의철학적사유와삶의노래또한전범없는독창성을띤다.
등단후열네해동안이나시집의침묵을지켜온데는,물론그의한쪽삶은오롯이대학에서문화?예술사회학과관련한공부와강의를하는데할애된탓도있겠지만그보다,현기증나는자본주의사회에서의심과고뇌를‘밥알’삼아언어의“불완전성속을배회하며불안과슬픔만을완벽하게중얼거”(「아이의신화」)릴수밖에없었던,그리하여그에게허락된단어,‘분열’과‘명멸’을거듭하며시를쓸수밖에없었던그만의사정이있었노라고짐작해본다.의자위에서“환상과지식이만나면고통뿐”이라는,“심하게훼손된인생”(「천년묵은형이상학자」)에미혹된이상누구라도옴짝달싹할수없었을테니말이다.“내향적이고감정적인기질로속으로고민을하다결론을내리면평소와는다르게단호”(「먼지혹은폐허」)해지는시인은,늘“폐허의가면”을벗지못한채로시간과기억이겹치고훼절하며만들어내는“주름과울림과빛깔”에골몰한다.이골몰과상념의시간이오랜꿈에서막깨어난시인의말/언어를낳고노래와시로거듭난다.때문에심보선의시는“생의균형을찾을때까지족히수십번은흔들”(「대물림」)리고나서야얻은울음같은것이다.
총3부로나뉜시집의전반부에는세계와나,타자와의관계혹은거리에대해“볕좋은이른봄”(「장보러가는길」)풍경을읽듯짐짓가볍고담담하게이야기하고있다.그러다가중반부로넘어오면이내,냉혹하고복잡한이거리에서나-시인은“스스로를견딜수없다는것만큼/견딜수없는일이있겠는가/그리하여나는전락했고/이순간에도한없이전락”(「전락」)한다.이쯤에서시의모습은보다내면고백적이고격정적이며시인의꺾이는무릎을감추기위한흥얼거림도군데군데한몫한다.
때로는우울과슬픔,절망과냉소에붙들린시인의그것으로는적이낯선,‘장르화된삶의고통’을꼬집는짓궂은유머가정색의고백과명명보다더크게우리의마음을휘젓는다.그와더불어“씨익,웃을운명을타고난”(「편지」)“유일무이한시인이요심장이큰소리로뛰는가수”(「너」)인그와함께흥얼거리고엉거주춤춤춰도되지않을까,하는마음을추동한다.
심보선의첫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는이렇게우리앞에멈춰있다.“오랜세월간직한일기장”에서나옴직한“무수하고미세하고사소한말들”(「떠다니는말」)이,또가장구체적이고내밀한개인의경험―삶과죽음,개인과사회,사랑과이별,찰나의환희와영원의불안,유한성과무한성,거짓과진실―들이나와너,우리를둘러싼사회적멍울로점증화하는과정속에서태어난심보선의‘시(쓰기)-말(하기)-노래(하기)’가우리앞에와있다.
“치욕에관한한멸망한지오래인세상”(「슬픔이없는십오초」),“이미사라진것들뒤에”(「오늘나는」)숨은시인은“누추하게구겨진생”(「아주잠깐빛나는폐허」)을앞에두고꺾인허리로슬픔을곱씹고몸에새긴다.그에게각인된슬픔의무늬는부지불식간에우리의그림자로목덜미에딱붙어그만떨어지지않는다.심보선의첫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에담긴총쉰여덟개의독한바이러스가이렇게우리몸에감염된다.그감염의속도는“봄날이등뒤에서산불처럼크게웃으며”(「18세기이후자연과나의관계」)덮치듯가히전복적이다.
“완벽한전락”이후의더“완벽한부활”을꿈꾸는“고독한아크로바트”
-“그에게종교란궁극적으로타인을향한동경,곧사랑이고,사랑은반복된다.[…]심보선의시집은그자체로슬픔을저축해가는과정이다.언어의광장에서일어나는사회적행위이다.”(허윤진/문학평론가)
아버지를잃은소년,아내와연인에게서멀어진남자,세상의환멸과우울한미래를흘낏보아버린‘아이어른,’절대적진리와종교의불확실성,진실보다더진실다운거짓,뒤집힌추억속새카만추문으로상처입은자,‘노동과여가를오가는성실한인생의주기’를회의하고포기한자,폭력과자본을숭배하는사회의시스템에적응하지못한낙오자,해서어쩔수없이운명앞에‘어색하게’고개숙이는자의목소리가이시집을지배한다.
피붙이의그리움에대해,빗나간화살과함께떠나버린사랑에대해,미망처럼맴도는이별에대해,그리고불확실한운명과이상에대해노래하는그-시인은현재“어두운침묵의시간”과“난해한미래의독법을궁리하는시간”(「빵,외투,심장」)속에있다.이것은비단시인만의처지가아니다.꿈꾸듯고백하는시인의목소리가결코감상과푸념에매몰되지않는이유가여기에있다.그는후기자본주의사회의“인간은어떤종류의가구로진화할것인가?”“밤새고심”(「슬픔의진화」)한다.이것은개인의일기가아니라시대의우울이자도시문화의병리적현상으로우리모두에게그혐의를묻는다.시를쓰는동안시인의책상위에놓인벗들은지식과이념,신화와종교라고이름불리는것들이고,그는기꺼이이시간을“아무도없는고요한평일의성전”이라부르며그속에서"치유되고고양”된다.그리고“유일무이해지는동시에비밀”(뒤표지시인산문)을저축해간다.시를쓰게된동기,계속해서시를써야하는이유,그리고우리가시를읽는이유,이모두에대한명쾌한결론이다.
밤거리마저눈시리게빛나는꽃들로불밝혀진봄날이다.시대의우울과암담한미래는잠시내려놓고,순간의환희에몸맡긴다한들한올죄책감느끼지않아도되는그런계절이왔다.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는사소한인간의사랑과지독한이별후의시간에대한노래들로가득하다.마른바람이휑한시멘트골목을돌아나갈때,우리는좀더자주이구절구절들을떠올릴지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