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발달

그늘의 발달

$12.00
Description
잠시 꿔온 빛으로 쓰여진 문태준 시인의 일기!
문태준 시집『그늘의 발달』. 2006년 시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시집 〈가재미〉 이후 2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이다. 이전 시집보다 깊이 있고 아름다운 71편의 시를 4부에 나누어 담았다. 시인은 느리지만 힘 있는 문체로, 현대적 인식을 전통적인 문법과 가락으로 귀향시킨다. 전통에 현대적인 시적 자아를 개입시켜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이전 시집들에서도 만나온 자연의 모습과 시인의 유년 시절의 소박하고 평화롭고 정감이 가득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삶의 감각, 사물의 감각, 언어의 감각이 어우러져 빚어낸 그 세계는 사소하고 숨어 있는 섬세한 감각이 얼마나 우리 삶의 깊은 곳을 관통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표제작 〈그늘의 발달〉은 시인의 아버지가 고향 집의 감나무를 베는 것을 보면서 쓴 작품이다. 여기서 그늘은 '눈물'과 같은 의미로 그려지고 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픈 감정은 그늘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살아가는 일이란 그늘의 발달을 부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고 없애려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그늘의 발달〉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 같은 구름
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한 몸의 그늘
그늘의 발달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눈물은 웃음을 젖게 하고
그늘은 또 펼쳐 보이고
나는 엎드린 그늘이 되어
밤을 다 감고
나의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
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
저자

문태준

시인문태준은1970년경북김천에서태어나고려대국문과를졸업했다.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시「處暑」외9편이당선되어문단에나왔다.시집으로『수런거리는뒤란』(2000),『맨발』(2004),『가재미』(2006)가있다.동서문학상(2004),노작문학상(2004),유심작품상(2004),미당문학상(2005),소월시문학상(2006)등을수상했다.현재‘시힘’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

한송이꽃곁에온
당신에게미루어놓은말이있어
귀1
귀2
그물
혼동
염소
두꺼비에빗댐

햇무덤
아무까닭도없이
百年
문병
화분
장님
그늘의발달

2부
물끄러미
손수레인나를
풀의신앙
나와아버지의폐원(廢園)
공일(空日)
동산
꽃잎지는시간
늦가을을살아도늦가을을
평생(平生)
이별의말이생겨나기전
이제오느냐
목련
추운옆생각
공작이꽁지무늬를바꾸는사이
숨골생각
흔들리다

3부
사랑
목욕신발
저저녁연기는
공과아이
아이와눈사람
가시가박혔다고우는아이
조금씩자꾸웃는아이
내일1
내일2
살얼음아래같은데1
살얼음아래같은데2
능금혹은돌배
경쾌한우체부
나와거북1
나와거북2
나와거북3
물린값으로
바람의일
봄볕
극빈3

4부
눈물에대하여
마른비늘에쓴편지
거리(距離)
넷이서눈길을걸어갔네
덜컥도없이너는슬금슬금
크고오래쓴채반을인사람처럼
뻘구멍
이별이오면
온탕에서
구겨진셔츠
겨울강에서
새벽못가
우레
우산의은유
작심
주먹눈이내리는해변을걸어가오
사랑의외각
엎드린개처럼

해설|의뭉스러운,느린걸음의노래-김주연

출판사 서평

잠시꿔온빛으로써내려간슬픈시간의기록

문단과평단,그리고독자들의호평으로2006년시단을뜨겁게달구었던시집『가재미』이후,2년만에문태준시인이새시집『그늘의발달』을펴냈다.등단14년만에펴낸네번째시집이다.문태준시인은1994년에등단하여6년뒤에첫시집『수런거리는뒤란』을출간하였고,다시4년뒤에두번째시집『맨발』을내었으며,그후불과2년만에세번째시집『가재미』를펴냈다.언론에서는이렇듯6년,4년,2년으로점점가속화되는그의시집발간속도를두고이것이그의시단내비중이증가하는것을숫자로써보여주는셈이라고지적하기도했다.그리고다시2년이지났다.문태준시인은자신의확고한궤도를왕성한창작욕과,그와동시에기대를저버리지않는아름다운작품으로증명이라도하듯또한권의시집을묶어내었다.이전시집에비해좀더깊고,그래서좀더아름다운71편의시가총4부에걸쳐실렸다.

“최근주목받고있는젊은시인들이‘고양이’과라면그는비슷한연배인데도‘소’과에가깝다.그는소처럼‘마실’다니며끔뻑끔뻑쓴다.그런데그게너무아름답다.”

문태준시인을두고“멀게는백석,가깝게는장석남과시적혈연관계다.그는서정시가문의적자다”라고말한바있는문학평론가신형철의표현대로,시인의마음안에있는눈은소처럼크고맑다.이것은화려한도시의뒷골목에서날카로운두눈을형형하게뜨고있는최근젊은시인들의모습과는사뭇다르다.고양이과의최근젊은시인들이문명의이기와폭력에짓눌린개인의상처혹은그것들을철저히무시하는개인의욕망을탈문법,탈서정으로그려낸다면,소과의문태준은느리지만힘있는걸음으로귀향길에오른다.
이러한그의느린걸음걸이는「물끄러미」「덜컥도없이너는슬금슬금」등의제목에서도잘드러난다.뿐만아니라그의시에서자주드러나며그분위기를강하게전달하는“어룽어룽”“조촘조촘”“물렁물렁”“슬금슬금”“들썽들썽”“끔벅끔벅”등의의성어/의태어등도이것을뒷받침한다.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김주연은문태준시인의작품에서느껴지는이러한특징을바탕으로그의시가“둥글고의뭉스럽다”고단언한다.이것은다시말해시인이둥글게인식하는세계의모습을드러내는방법이,“그러면서도그렇지않고,그렇잖으면서도그런숨김의미학”에있다는이야기이다.그리고이의뭉스러움은무엇보다현대적인식을전통적인문법과가락으로귀향시키는일에효과가있다고그는덧붙인다.“의뭉스러움은느슨한길위에서승리가된다.”
문태준은또한“서정시가문의적자”라는표현답게전통을귀히여기고문법을존중한다.그러나현명한아들이그러하듯,그는그길을그대로따라가지않는다.그길위를천천히걸으면서,훨씬현대적일수밖에없는자신의시적자아를개입시켜서,그길을심심하지않게하고,나아가재미를주는것이다.그의시가더욱매력적인이유는여기에있다.

한편이번시집의표제작「그늘의발달」은시인의아버지가고향집의감나무를베는것을보며쓴시이다.이번시집에서‘그늘’은‘눈물’과같은의미로그려진다.시집뒤표지에실린산문에서시인은“나의하루가또그늘을짓고말았다고나는어제나에게말했다.눈물도그늘이라며눈물로얼굴을덮으면서말했다”고고백한다.살아가면서느끼는슬픈감정,그래서어쩌면하루하루살아가는그자체가시인에겐그늘일지도모른다.그러니살아가는일이란결국그늘의발달을부르는일.그러나그것을외면하고없애려노력할필요는없다.“눈물을감출수는없”는일이기때문이다.시인은그늘을만드는감나무를베는일대신“엎드린그늘이되어/밤을다감고/나의슬픈시간을기록”한다.그래서이시는“잠시꿔온빛”으로씌인시인의일기이다.

이외에도독자들은문태준의이전시집에서익히만나온자연의모습과시인의유년시절의그소박하고평화롭고정감이가득한세계를다시만날수있다.어떤감정도넘치게드러내는법없이단지그것이거기에있다고만말하는그의시는다시한번독자들의마음에아름다운그림을새겨넣는다.문태준의시속에드러난세계는우리가살아가고있는곳이지만,시인의조명이없었다면잃어버렸을세계이기때문이다.삶의감각,사물의감각,언어의감각이절묘하게어우러진그의시를읽다보면,독자들은사소하고숨어있는섬세한감각이얼마나우리삶의깊은곳을관통하고있는지를새삼깨닫게될것이다.

■시집소개

시집『그늘의발달』에는소박하고평화롭고정감이가득한세계가있다.그세계는우리가살아가고있는세계이지만,시인의조명이없었다면잃어버렸을세계이다.삶의감각,사물의감각,언어의감각이절묘하게어우러져빚어내는이세계는사소하고숨어있는섬세한감각이얼마나우리삶의깊은곳을관통하고있는지를새삼깨닫게해준다.소용돌이치는세상살이의급류속에서이감각들은조용히가라앉아따뜻하게위무하는보드라운언어들을솟아나게한다.시의깊이는감각의깊이이고삶의깊이이다.

■시인이쓰는산문(뒤표지글)

날이밝아오는것을조용히바라보고있다.부엌은가만히앉아있고,이불은누워있다.엷은안개가걷히면서빛이들어서고있다.조금씩들어서는빛처럼사람들이세상을움직이는소리가나의창문으로들어선다.오동나무의윤곽이살아나고,새소리는큰공중을오가며반짝인다.숲으로가는젖고좁은길이보인다.나는왼손을오른손목에얹고맥박을짚는다.세상이이처럼미동으로막시작하는때가가장황홀하다.이세계를또새롭게,최초로,충분히느끼는때.이것은무언가젖는느낌이라고할수있지않을까.이것은무언가낯선곳을호흡한다고할수있지않을까.

나의하루가또그늘을짓고말았다고나는어제나에게말했다.눈물도그늘이라며눈물로얼굴을덮으면서말했다.당신과의이별도,그보다좀더큰당신인세계와의이별도어제는있었다.황망했다.예상하지도못한채큰일을당하고만때처럼.나와나의세계를오로지설명할수있는둘레로서의그늘.나는발달하는그늘을보았다.그리고지금어제의일을잊은듯앉아있는나에게날이다시밝아오고있다.어두움과환함의교차가이시간에어김없이일어난다는사실에감사하다.나의시는물러나는빛과물러나는어둠,그시간에태어났다.당신의감정과생각이대체로살고있는그곳.그곳을떠나고싶지도,떠날수도없다.그곳은우리에게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