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성 - 문학과지성 시인선 365

생물성 - 문학과지성 시인선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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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해욱

저자:신해욱
시인신해욱은1974년춘천에서태어났으며,1998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통해시를발표하며문단에나왔다.시집으로『간결한배치』(2005)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축,생일
끝나지않는것에대한생각
금자의미용실
호밀밭의파수꾼
따로또같이
레일로드
헨질의집
화이트

마리이야기
천사
보고싶은친구에게
비밀과거짓말
나와?는다른이야기
굿모닝
나의길이
스톱모션
클로즈업
눈이야기
물의가족
정각
구구단
100%의집


제2부

점심시간
얼굴外
물감이마르지않는날
형제자매
지구의끝
과거의느낌


바지의문제
체육시간
화석의세계
부활절전야
목도리
손님
Tecture
생물성
젖은머리의시간
줄속에서
소리
반+
물과피
밀크
부줏간주인
자루

방명록
발문|헬륨풍선처럼떠오르는시점과시제ㆍ김소연

출판사 서평


타임캡슐에서꺼낸시간의조각들과무수한1인칭들

“간결한구도와건조한문체로고독과절망으로일그러진우리시대의기이한자화상”(이혜원)을그려낸다는평가와함께2000년대젊은시인들가운데서단연최소화한언어와견고한구조의시세계로주목받은바있는신해욱이첫시집『간결한배치』(2005)이후4년만에두번째시집『생물성』(문학과지성사,2009)을펴냈다.
첫시집이지극히건조하고단정한언어로인간과세계의관계,사물의안팎을묘사하고분석하여세계와풍경의선명한이미지의연쇄를낳았다면,이번시집에서신해욱은말하는‘나-자신’에게온신경을집중한다.그리고분열된‘나’와온전한‘나’사이의간극,매일아침변신을거듭하는순간의‘나’를빠짐없이기록하기위해독특한“1인칭의변신술”을감행하고,“늘부족한시간을메우기위해”과거와미래를넘나드는시간여행을선택한다.1부과2부로나뉜이번시집에서시인은“몇번씩얼굴을바꾸며/내가속한시간과/나를벗어난시간을/생각한다.”그리하여어제와조금씩다른모습,다른속도로기우는‘나,’“피와살을가진생물처럼./실감나게”말하고싶은‘나’에대한,혹은‘나와는다른’이야기들을하고있다.이를테면,평소에는‘당신의나’혹은‘그들의나’로불리다가문득오롯한‘나’로존재할수있는순간에오히려“어색”해지고마는아이러니에대해서.

이목구비는대부분의시간을제멋대로존재하다가
오늘은나를위해제자리로돌아온다.

그렇지만나는정돈하는법을배운적이없다.
나는내가되어가고
나는나를
좋아하고싶어지지만
이런어색한시간은도대체어디서오는것일까.─「축,생일」부분

자,클로즈업!―단련되어가는얼굴혹은표정,그러나상상불가능한

여기누군가의쉰한번에이르는고백이있다.흔히상대방에게근접하여직접적으로발화하는고백이라불리는목소리는공감과동조를얻기가쉽다고들하는데,늘그런것은아닌모양이다.시집『생물성』에실린총51편의시들은,대부분담담한고백체와간명하고도평이한일상어로직조되어있지만,단번에그“말의방향을짐작”하기란쉽지않다.전시집에이어이번시집에도자주등장하는‘흰색’의그차갑고빳빳한인상과“영혼”을젖게하는‘물/물빛’의형형한질감과소리속에서신해욱의‘나’는다른시간,이른바과거인듯한현재,현재인듯한미래에걸쳐여러개의얼굴과표정으로존재한다.

춥다.

나는열거되고싶지않아.

심장은하나뿐인데

나의얼굴은눈처럼하얗고
눈송이처럼많다.─「화이트」부분

그날나는물같은시선과약속을했다.
[……]
물이아니라면내영혼은외로움에젖겠지.
[……]
지워지지않는종이와
투명한믿음이필요했다.─「물감이마르지않는날」부분

시인김소연은이를두고“신해욱의시는늦게온다.연과연사이가아득하기때문이다.그아득한틈을우리는천천히,너무나도천천히이동해야한다”라고말한다.그리고“행과행사이,연과연사이,그사이에는시인이인칭과시제를넘나들며남겨놓은투명한구멍이있다”고덧붙인다.김소연에의해“신해욱의웜홀”이란새이름을얻은이‘투명한틈’은,극단의언어실험과파괴의미학을선보이고있는2000년대젊은시인들가운데서유독신해욱의것이라불리기에충분하다.하여낡은영사기를돌려보는흑백영화의추억처럼나른한오후의여백으로,작동과정지를답습하지만결국에는목적한바를이루는어수룩한로봇의스톱모션으로,신해욱의시는읽어내야제맛이다.

생물성,나-인간이되어가는슬픔

신해욱의이번시집에서가장빈번하게등장하는단어들로‘생각,얼굴,웃음’등을추릴수있다.

생각들이전부뼈로만들어진것처럼/그는완전한사람이되어간다(「Texture」)
생각속에는/내가있지.//생각속에는또조금씩나에게접근하는것이있지./조금씩(「스톱모션」)
나는중심이되었다./숨을쉬면/뼈에살이붙는느낌이난다./생각을하면/침착하게피가돈다//[……]//나는내바깥으로튀어나가버릴것처럼/많은것들이이해된다.(「정각」)
나의웃음과함께/시간이분해되고있다//그런데왜나는나로/사람은사람으로/환원될수없는것일까.(「레일로드」)
보라색립스틱을바르고나는두배로커진입술.//두배의웃음도가능하다네.(「헨젤의집」)
마리를대신해서/내얼굴로웃는일을하고싶어진다.(「마리이야기」)
냉동실에삼년쯤얼어붙어있던웃음으로/웃는얼굴을잘만드는사람이되고싶구나.(「보고싶은친구에게」)

하나같이오래오래곱씹어야만화자의그투명한호흡과정제된의도를따라잡을것만같은위시행들은모두,‘생각하는생물성’이란표현으로수렴된다.시집전반에걸쳐하얗게명멸하는언어와시간,그속에서잉태되는새로운표정들역시웃음지어보이는‘생물성’을지향하고있는듯하다.얼핏보면유기적이지않은듯한시행의배치,급히기우는감정의낙차대신가볍게점프하는시선,최소화한수식의건조한시어들모두,‘나’가‘다른나’로거듭나는순간의기억을포착하고‘나’의존재를확장하여,‘연민’과‘공감’그리고‘사랑’이란이름과떳떳하게마주할수있는생명의존재로거듭나기위해반드시집어삼켜야하는슬픔인지도모르겠다.

그러고보니이번시집에서신해욱은훨씬더따뜻한포즈와접촉의순간을많이그려놓고있다.“입술위에/입술을”포개듯,“옆에있는나무가/사람의마음을흘린다면/눈코입을환하게그려줄것.”그리고“누구니,라고묻는다면/나야,라고대답할것”(「100%의집」).그러면누가아는가.“아무도모르는/무척아름답고투명한일”이이시집을들고있는당신에게벌어질지도.

다시한번.“신해욱의시는늦게온다.”곳곳의여백에남겨놓은시인의투명한발자국은천사의것과같아서도무지질량이느껴지지않는다.그러니그은은한속삭임에귀를기울여보자.간절함보다더고요하고,정성보다더아련하며,사려보다더신중한,그의곡진한언어에……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