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라는 뼈 - 문학과지성 시인선 369

눈물이라는 뼈 - 문학과지성 시인선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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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생각지 못했던 사물들이 친밀하게 다가오는 서늘한 시간을 노래하다!
김소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눈물이라는 뼈』. 이번 시집에서 김소연 시인은 삶이 품은 진실을 탐색해 마음이 몰랐거나 모르는 척 했던 삶을, 생각지도 못했던 사물을 통하여 드러낸다. 슬프지만 슬픔 안에 생이 있고, 뜨거운 가슴앓이 안에 인생을 담아 낸 김소연 시인의 감각적인 시들 39편을 총 5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이 책에 담긴 시

폭설의 이유


흰 약처럼 쓰디쓴 고백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핏대를 세워 밤새 지르는 고함과도 같다
귀가 찢길 듯하다

차디찬 고백이 생피를 흘린다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는다
나는 우두커니로 확장된다

우리가 흘린 벙어리장갑 한 쌍이 보인다
깍지를 낄 순 없었지만
밑면과 밑면은 情死한 연인처럼
더 바랄 게 없는 표정으로 포개어져 있다
못다 한 고백들이 정전기가 되어
그 사이로 스며든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흠뻑흠뻑 들린다
털이 많은 짐승 하나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스치며 지나간다

유리창을 한 페이지 넘긴다
나는 하얗게로 지워진다
지워진다로 정확해진다
저자

김소연

저자:김소연
1967년경북경주에서태어나가톨릭대국문과와같은과대학원을졸업했으며,1993년『현대시사상』에시「우리는찬양한다」등을발표하면서시단에나왔다.시집으로『극에달하다』(1996)『빛들의피곤이밤을끌어당긴다』(2006)와산문집『마음사전』(2008)등이있다.현재‘21세기전망’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사람이아니기를
폭설의이유
위로
너를이루는말들
이것은사람이할말
한개의여름을위하여
사람이아니기를
눈물이라는뼈
침묵바이러스
그녀의생몰연도를기록하는밤
비밀

제2부경대와창문
이지구가우주의도시락이라면
무슨일이일어난걸까
몬순팰리스
고통을발명하다
개와늑대사이의시간
경대와창문
그리워하면안되나요
너라는나무
유리이마
나자신을기리는노래
너무늦지않은어떤때

제3부투명해지는육체
명왕성에서
뒤척이지말아줘
마음으로안부를묻다
투명해지는육체
거기서도여길얘길하니
노련한손길
그날의일들
명왕성으로

제4부감히우리라고말할수있는자들을위하여
공무도하가
불망(不忘)카페

야만인을기다리며
만족한얼굴로
그녀의눈물사용법
“꽃이지고있으니조용히좀해주세요”
詩人
고독에대한해석

제5부모른다
달랑자가드의여자
바라나시가운다
로컬버스
내가할일
식탐을기리다
타만네가라
꿀벌들의잘난척
계시는아버지
세사람과한집에산다
말과당신이라는이상한액체
위대한감사의송가
모른다

해설|지워지면서정확해지는,진실(신형철)

출판사 서평

차분하고투명하며열렬한눈물의궤적
―“생각지못했던사물들과하루하루친밀해지는서늘한시간들”

세상의중심을향해날것의분노와열기로맞선,젊은시인의고독과소외의자의식으로가득찼던첫시집『극에달하다』(문학과지성사,1996)와“빛과어둠으로직조된삶의비의”를담았던두번째시집『빛들의피곤이밤을끌어당긴다』(민음사,2006)를통해“선명한감각적이미지들의그물망으로포획된존재와사물들의실존을섬세한은유의직물로구성”(문학평론가김진수)한다는평을들어온김소연시인이세번째시집『눈물이라는뼈』(문학과지성사,2009)를펴냈다.첫시집과두번째시집의발간이10년의간격을두고있는데비하면비교적짧은만3년의시간을총5부49편의시에촘촘히새기고있는이번시집에서,김소연은삶이품은진실,이른바마음이몰랐거나마음이모른척했던삶의연유들을적실한한마디한마디로노래한다.슬픔으로시작되었으나슬픔으로끝나지않는노래,때로사람이아니기를원하지만끝내사람으로남아생을살아내는노래,마음의섭생을위해우리가꼭알아야할어떤진실이온전히보존돼있는그런노래(문학평론가신형철)로시집『눈물이라는뼈』는시작한다.

관록만을얻고수줍음을잃어버린
늙은여가수의목소리를움켜쥐노니
부드럽고미끄러운물때
통곡을목전에둔부음
태초부터수억년간오차없이진행되었던
저녁어스름
그래서이것은비로소여자의노래
그래서이것은비로소사람이할말
그래서이것은우리를대신하여우리를우노니
―「이것은사람이할말」부분

투명해진육체가비로소전하는진실
―“마음의섭생”을위해우리가통과해야만하는“우두커니외로워진시간”

눈물을삶에붙박인우리의마음이일렁이다바깥으로흘러넘치는노래라고한다면,시집『눈물이라는뼈』는그마음이저지른일을마음으로들여다보고이해해가는과정을그리는데전력을다하고있다.이는“별이유독뾰족해지는밤”(「위로」)과“귀가백만개의잎사귀로태어나는새벽”(「침묵바이러스」)에깨어있는이시인에게만허락된특별한사유와감각의열전이다.“뜨거운속엣것이고스란히보존된광대한고요”(「한개의여름을위하여」)속에서말의무력함을깨닫고침묵을택한시인은,뜨거운신열을앓는중에도세상을향해온몸의감각을깨워놓고“위로합니다긴밤을꼬박앉아서”(「그녀의생몰연도를기록하는밤」).그리하여시인의귀는,“흰약처럼쓰디쓴고백들”(「폭설의이유」)에금방이라도찢길듯활짝열리고,“밤새흘러내린눈물로마당이파이기시작하면,바람은사라지고,새로운돌부리들이죽순처럼쑥쑥마당을뚫고올라”(「눈물이라는뼈」)올때들리는‘돌의노래’를발견하며,“바람을간호하던암늑대의긴혓바닥”(같은시)이품었을절박한삶의내력과“죽일수도때릴수도없었던/당신의열렬함과통증”(「명왕성으로」)에공명하게된다.이렇게김소연의시/시인은“타인의상처”와놀면서(「유리이마」)한껏장단을맞추다가도“몸가누기고달픈어떤때에/실컷좀울어볼까한다”(「너무늦지않은어떤때」).

버림받은이가버림받은이에게
마음여린이가마음여린이에게내밀었던
덥썩덥썩잡았던손목들이
싹둑싹둑잘려나갈때
[……]
그는집에돌아와
울음이그칠때까지주름상자를접고접어
오로지탄식만으로발성하는
아코디언을발명하게되었으리라
―「고독에대한해석」부분

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신형철이주목하는것처럼,그리하여1부‘사람이아니기를’에서는역설적으로사람으로산다는것의의미를재우쳐묻고(“섭생을위해서살생을해야만하는운명”:「눈물이라는뼈」),2부‘경대와창문’에서는여자로살아가는일의내밀한아픔(“나잇값만큼깊어지는여자의우울과/우울을모독하고싶은악의때문에/[…]/늙어가는몸때문이아니라/나이만큼무한증식하는추억때문에/여자의심장이비만증에걸린오후”:「고통을발명하다」)을치열하게옮긴다.

육포처럼말라버린엄마의발목을만지며
내생이그녀의생을다먹어버린건아닌지
속이더부룩하고신트림이난다
[……]
엄마는딸에게거울이되어주었지만
거울은원하는표정만을비추는공범자를자처했다
딸을엄마는창문이라말하곤했지만
꼭꼭밀봉한채로문풍지를발라주셨다
―「경대와창문」부분

한편3부‘투명해지는육체’에서는만나고헤어지고기억하고잊히는일상의반복이낳은몸의상처와위무의기록들이(“그런꿈을꾼아침은/몸안쪽이환해지곤해/감각들이하나하나옆자리로도착하지/[……]/몸안쪽이몸바깥으로배어나오고/새로태어난얼굴이거울앞에보였어”:「거기서도여기얘길하니」),4부‘감히우리라고말할수있는자들을위하여’에서는앞서의사람으로,여자로,혹은몸으로살아가는모진고통을견딜수있게해주는‘우리’혹은‘우정’이라는명명이발휘하는힘과시인으로살아가는의미들이(“자책을사모하여우린금세후회하고말았지만요후회를자행하는이새벽의만용을우린한뼘더사모하므로,/[……]//만족한얼굴로우린누워있어요엎드린채베개밑에두손을넣어두었죠나란히엎드려이렇게손을가두는것은요부디그누구도껴안지말자는우리만의지령인거예요”:「만족한얼굴로」),마지막으로5부‘모른다’에서는낯선땅의타자가되어경험하는이모든삶의내력들이환생하듯뒤따르고있다.

내뺨에닿자마자
정전기가이는당신의손
겨울밤이라서그렇다는위로따위는하지말아줘
겨울이면
뺨이트는한사람과
겨울이면
손이트는한사람의
접착불가능한해후라고
그리고그밖의모든것이라고
정확하게말해줘
밤새어디있었냐는질문을
이젠좀눈빛이아닌
복수로써해줘
―「뒤척이지말아줘」부분
삶이그리된까닭을묻고충분히대답하지않는일―詩,그섬세하고아름다운유보
―“지워지면서정확해지는,진실”

첫시집『극에달하다』에붙인산문에서김소연은“망가져가는세계에서,무너지고,쏟아지고,흩어지고,사라지는것들,불순하고찰나적인것들”에위로받는다고했다.하여“시대에서얻었던상처들을흔적으로환치”시키기위해시를썼다고도했다.시인으로서의자의식에앞서붉은열정과싱싱한감각으로들끓던시기의그완강하고고집스러운목소리의결집이김소연시의시작(始作)이라고할것이다.그리고10년.두번째시집『빛들의피곤이밤을끌어당긴다』의말미에실은‘그림자論’에서시인은자신의시론과시작법에대해이렇게말한다:“시역시그림자와같지않을까.빛의방향과사물의모서리를제시하고있다는점에서.이세계에현현해있는모든현란한것들의표정을지우고,그자세만을담으려한다는점에서.시쓰는일은그림자와마주하는일이다.”시간의무게를견디며차분하고깊어진시인의눈과목소리는어느덧“내앞의너를보고있으면서도/내뒤를느끼느라하염이없다”(「너의눈」/위의책).
이렇듯삶과존재의‘너머’에본격적으로곡진한눈길을드리우기시작한시인은이번시집의자서와뒤표지의산문을통해,시인으로살아가는일에대해스스로답한다:“(시인은)부재하는능력과존재하는기억이한몸뚱이에서녹슨뼈처럼삐걱대는소리를받아적는사람”이라고.

차디찬고백이생피를흘린다
입김을불어유리창을닦는다
나는우두커니로확장된다
[……]
유리창을한페이지넘긴다
나는하얗게로지워진다
지워진다로정확해진다
―「폭설의이유」부분

그들은없어지는것을선택했다
자기손으로자기얼굴을지우기시작했다
하얀눈위에선연한핏ㅈ국을남기며도망치는일은
친절한길안내에가깝다는걸알고있었다
―「詩人」부분

누구를구원하거나무언가를창조하는거대서사보다자신의몸에새겨지는“차분하고투명하며열렬”한사람들의눈물에귀를기울이는사람이김소연의‘시인’이기에,그의시는한결같이“일상의사소한진실에서부터한시대의급박한진실에이르기까지,이넓은진폭의진실이훼손됨없이머물수있는어렵고옳고아름다운거주공간”(신형철)으로거듭나고자연스럽게제목‘눈물이라는뼈’로흘러든다.하여시집『눈물이라는뼈』는사람으로,여자로,육체를가진존재이자타인과더불어살아가는존재들의영역,그모든삶의격절(激切)을노래한다.때로는“우리가발견한당신이라는/나인것만같은객체에대한찬사”(「이것은사람이할말」)가,때로는존재의비극을고스란히드러내는고집스럽고가차없는목소리가,때로는따뜻한물속을유영하듯다정하고여유로운시선들이“비밀한위트”를동반한채그속에있다.

마음으로안부를묻다
―“말해줄게.나의진짜안부를”

한인터뷰에서김소연은,“(요즘)시를제법많이써요.내가쓴시를읽는일이즐겁고좋아요”라고스스럼없이밝힌바있다.시인의말처럼,김소연의시는묵독이아닌낭독으로만날때그아름답고유려한시어의결과무늬를좀더분명히그릴수있다.언뜻리드미컬한장단에자신도모르게발을굴러박자를치게도만드는몇몇의시들은여기에서연유한다.2008년초,산문집『마음사전』(마음산책)을통해마음의서로다른빛깔들의처소를일러주는독특한낱말모음을열거하면서이미놀라우리만큼예민하고섬세한시인의직감과그만큼의유려한언어감각을독자들에게선보인바있는그다.
다시!김소연의시를소리내어읽는일은,시에담긴눈물의궤적을훔치고,진실한마음의속살에한걸음한걸음근접해가는길위의여행같다.읽는이의마음을어루만지는그노래들에귀를기울이면,스스로깊어져섬세하고아름다운자의울음이전해져올것이다.

꽃들이지는것은
안보는편이좋다
궁둥이에꽃가루를묻힌
나비들의노고가다했으므로
외로운것이나비임을
알필요는없으므로

하늘에서비가오면
돌들도운다
꽃잎이진다고
시끄럽게운다

대화는잊는편이좋다
대화의너머를기억하기위해서는
외롭다고발화할때
그말이어디에서발성되는지를
알아채기위해서는

시는모른다
계절너머에서준비중인
폭풍의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쓴다
아는것을쓰는것은
시가아니므로
―「모른다」전문

시인의말

어떤눈물들은
차분하고투명하며열렬했다.

그런눈물과닮고자했다.
나의문학이.
그리고나의삶이.

내게뼈를보여주신당신께,
고마움과미안함과황홀함을전한다.

2009년11월
김소연

시인산문

누군가내게물었다.시를쓰는힘은도대체어떤거냐고.나는대답했다.이세계에속하지않을수있다는안도감이힘이라고.이세계에속하지않으면서도이세계에서자신있게살아갈수있는꽤괜찮은일이시를쓰는일이라고.그러곤말로뱉진못했지만,나는이말을하고있었다.실은우리는유령이에요.지금보고계시는나는내가아니에요.언제나나는내가아니었고,이런뜬금없고도근원적인질문들이던져졌을때에반가운주인나리의발앞에서고개를조아리는강아지처럼순순히대답을하는지금같은순간만나는내가돼요.그밖의것들엔도무지관심이없는단지유령이에요.오늘하루를어제하루와겹쳐서살고오늘하루를내일하루와포개어서지나가는헛것이에요.과거에도그랬구요.앞으로도그럴거예요.내대답을듣고그사람은어떤생각을했을까.그사람은시인을이해했을까.나는과연시인에대해이제는이해하고있을까.시인은어쩌면,능력은말소되고기억만이보존된신이아닐까.그누구도구원할수없고그누구의기도도경청할수없으며그무엇도창조하지못한다는비애.그러나저만치심원너머에서는어쩌면한번쯤은그래본적이있었을것만같은,이아련한손끝의감촉들.부재하는능력과존재하는기억이한몸뚱이에서녹슨뼈처럼삐걱대는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