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없는슬픔을응시하는깊고담박한시선
서서히차올라기어이무릎을꺾게하는이병률의詩
정체되어있지않은감각으로“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노래를부르는바람”(신형철)이병률이세번째시집『찬란』(문학과지성사,2010)을펴냈다.전작『바람의사생활』(창비,2006)이후3년3개월만에발간되는이번시집속에는‘살아있음’을통해만난생의떨림으로가득하다.지극히투명하고눈부신모든생,그‘찬란’의순간을시인의눈으로손끝으로,귀와입으로더듬어감각해낸『찬란』의총4부55편의시들은읽는이를“차가운물의명백함,물이들어지워지지않는그격렬한시간들”과마주할수있게한다.
찬란이아니면다그만이다
죽음앞에서모든목숨은
찬란의끝에서걸쇠를건져올려마음에걸것이니
지금껏으로도많이살았다싶은것은찬란을배웠기때문
그러고도겨우일년을조금넘게살았다는기분이드는것도
다찬란이다─「찬란」에서
‘찬란’은무엇일까.시인은말한다.“살고자하는일이찬란이었”다고.살고자하는모든것은,그러므로찬란하다.빛이번쩍거리거나수많은불빛이빛나는상태이다.또는그빛이매우밝고강렬하여매우화려하고아름다운상태다.이병률의새시집『찬란』은이처럼살아있음에대한감탄이자,의지를노래한다.그렇기에이병률의언어는말을갓배운아이의그것처럼,절박하고순결하다.이순도높은언어로여민생의속내들.
이꽃다발은할머니한테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한사코가져가라고나를부르고
나는애써돌아보지않는데
또오기나하라는말에
온다는말없이간다는말없이
꽃향은두고
술향은데리고간다
좁은골목은
식물의줄기속같아서
골목끝에할머니를서있게한다
다른데가지말고
집에가라는할머니의말─「온다는말없이간다는말없이」에서
생의속내들은결코단순하지않다.우리네삶이그러하듯그것은이따금슬프고이따금아프다.이병률은이를지나치지도,무화시키지도않는다.쓰린상처마저그대로두고본다.그렇게유심히들여다보는통증에는온전한치유는없더라도진실한위로는있을수있다.위로는이해하는자의것이다.이해는머리로하는것이아닌가슴의것이기에감정도온도도아니다.내미는손의온도가좋은것일리없다.그저내미는마음.그마음의씀.처연한생을파고드는영혼의다씀이있는것이다.마음의결을모두겪고나서야할수있는일을이병률은시집『찬란』을통해하고있다.들여다보고말없이위로하는손의한끝을통해그는자신의존재를,드러낸다.그존재에는사물의근원이있다.공부를통해습관을통해아는것이아니라길을떠나무릎절어가며그린궤적안에서,그마음과성찰을통해얻어내는이과정은그야말로시인의것이다.이번시집『찬란』의해설을맡은이는1990년대초우리의가슴을지독한쓸쓸함으로몰아넣었던,그렇게위로해주던시인허수경이다.그녀는이병률의이‘찬란’한시들을“영혼의두극지사이에서있는사과나무”라고명명한다:
만유인력이라는것을우주의질서를세우는기본질서라고가정할수있을때,사과나무밑에가방이사과처럼떨어져있는것은,세계의모든가방이사과나무밑에있는것은‘끌림’때문이다.끌림이야말로이우주를지탱하는완벽한질서이다.그완벽한질서속에서시는생산되고삶은먹힌다.삶은어누누구에게가아니라삶자체가먹어버리는것이다.삶이삶의위장에갇힐때모든불빛은꺼질것이나,“조각은날카롭기보다푸르렀다.박히기는좋으나찌르기엔부족한조각은턱으로밝기를받치고있었다.여태까지본모든것을기억하겠다는것은살아온것보다본것이더단단하리란것을믿기때문일것이나”(「내가본것」)의세계만이남는다.시다.이병률이쓴“모호하게나마마음이간절해”지는시다.그리고그것이‘찬란’이었고‘찬란’일것이다.
-허수경,해설「영혼의두극지사이에서있는사과나무」에서
화살나무가방안으로자라기시작한다
너도나도며칠째먹지않았으니
이모든환영은늘어만간다
이리도무언가에스며드는건
이마에이야기가부딪히는것과같다
묶어둔
너를들여다보는동안
나는엎드려있다
나는너에게속해있었다-「울기좋은방」에서
영혼의극지에서돌아보는아스라한생의통증
그러므로,타인이타인이아니게될때,너의눈물을내가울수있을때그리고무엇보다그것이진심일때이병률의시는마치가려져있던보석이한줄기빛을통해찬란하게빛나는그순간처럼드러난다.그럴때보석처럼빛나는그시는이병률의것인동시에타인,즉우리의것이다.이병률을둘러싼그모든것들.이병률의시가우리에게다가오는이방법을시인은이렇게이야기말한다.“불편하지않은것은/살고있는것이아니리니/마음에/휘몰아치는눈발을만나지않는다면/살고있는것이아니리니.”(「시인의말」에서)
살고있음은그런것이다.밖에서안으로끼치는불편이거나,휘몰아치는눈발같은것.그불편함과눈보라속에서우리는눈물겹게쓸쓸해지고,그리워지는것이다.누군가의근처가.그근처에있는안심이.차가움이아닌따뜻함이.그렇게『찬란』의시들은나의마음으로존재한다.그것은당신이기도하고.그리고우리이기도하다.그것이‘찬란’한생이아니겠는가.눈부신살아있음의힘이아니겠는가.그리고아직도시와시인이있는이유가아니겠는가.
시인이병률의세번째시집『찬란』의시들은처연하고오롯하다.여전히불분명하며그윽한순간들을여미고여며아주오랫동안달인듯한그의시에는설명할수없는생의절박함,그피치못할영혼의일이새겨져있다.내속에있는또다른나를인식하며,바닥없는슬픔을응시하는시인의깊고조용한시선에어느틈엔가우리마음역시흔들리게된다.
시인의말
불편하지않은것은
살고있는것이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눈발을만나지않는다면
살고있는것이아니리니
2010년2월
이병률
시인의산문
조금일찍쓰련다.찬란했다고.
금을잘못밟고들어선이섬뜩한세계는살기보다는팽창하기를요구했다.버젓한한세계로의도착이아닌것같아너무많은것을헤매며사용했다.감정까지도.
빛이들지않는자리의눈은좀처럼녹지않고눈길이닿지않는곳의먼지는둘레를키운다.이모두내가저지른일만같다.안쪽의사건들을이해하겠노라고바깥은나를받쳐냈다.바닥에끌리는것들만힘껏받쳐야할게아니라명치에도착하고남은,이모르는것들까지도받쳐야한다는사실을가르쳐준자상한시간들.
차가운물의명백함을,물이들어지워지지않는그격렬한시간들을차마어떻게마주한것인지.균형이었는지.전부였는지.그러므로조금미리쓰련다.당신도찬란했다면당신덕분에찬란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