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적 체질 -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상처적 체질 -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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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통속미로 우리 존재와 세계의 희비극을 가로지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제375권 『상처적 체질』.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으나 18년간이나 침묵을 지켜온 저자의 첫 번째 시집이다. 저속한 흥미와 취미 중심의 마음과 행동을 일컫는 통속미로, 우리 존재와 세계의 희비극을 가로지르는 70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우리가 멀리하거나 모른 척 해온 '감상'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삶을 점령해 버렸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감상의 힘을 대중의 감각에 의지한 통속미뿐 아니라, 기우뚱하게 균형을 잡은 채 인간사의 본질을 통찰하는 희비극에서 발견해내고 있다.
『상처적 체질』에 실린 시는 통속의 재현이 아니라, 통속미의 표현으로 완성되었다. 누구나 견디고 즐길 만한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희비극을 연출해냄으로써 우리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쓰다듬게 만든다. 희망과 사랑을 향한 절실한 노래도 들을 수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편!
상처적 체질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저자

류근

낭만주의자.경북문경에서태어나충북충주에서자랐다.서울에서가장오래살았다.중앙대문예창작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2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등단했으며,대학재학중에쓴노랫말<너무아픈사랑은사랑이아니었음을>이김광석에의해노래로불리기도했다.

등단후18년간공식적인작품발표를하지않다가2010년첫시집『상처적체질』을,2016년두번째시집『어떻게든이별』을출간했다.산문집『함부로사랑에속아주는버릇』,『사랑이다시내게말을거네』,카툰픽션(스토리툰)『싸나희순정』,공동으로엮은한국서정시선집『당신에게시가있다면당신은혼자가아닙니다』를세상에내놨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달나라
獨酌
빈숲
법칙
벌레처럼울다
그리운우체국
바다로가는진흙소
폭설
무늬
어떤흐린가을비
내이름의꽃말
첫사랑
지도에없는마을
파적
퇴근
칠판
두물머리보리밭끝
편지를쓴다
상처적체질
독백
위독한사랑의찬가

제2부


황사
중독
안쪽
평화로운산책
도망간여자붙잡는법
홍길동뎐
햇살,저찬란한햇살
추억에는온종일비가내리네
남겨진것
시인의근황
86학번,일몰학과
86학번,황사학과
낮은여름이고밤부터가을
친절한연애
분교마을에서
니들이내외로움을
만다라다방
極地
이력

3부
집에가는길
풍경
전술보행
머나먼술집
반성
공무도하가
두번째나무아래
둥근저녁
난독증
유부남
셀라비
반가사유
거룩한화해
너무아픈사랑
치타
사람의나날
계급의발견
생존법
聖삶
겨울의변방
가족의힘
구멍經
나무들은살아남기위해잎사귀를버린다
탐색
당신의처음인마지막냄새의자세
쉽고깊은
더나은삶
과거를()하는능력

해설통속미혹은존재의희비극_최현식

출판사 서평

존재와세계의희비극을가로지르는통속미,
희망과사랑을향한절실한노래

1992년문화일보신춘문예로등단하였으나,이후한편의작품도발표하지않았던시인,류근이등단18년만에첫시집『상처적체질』을펴냈다.지면에서한번도만나볼수없었기에그의이름은독자들에게낯설것이다.하지만우리는그의노래를이미들은바있다.고김광석의「너무아픈사랑은사랑이아니었음을」의노랫말은원래그가쓴시였다.그러나이번시집엔익숙한그노랫말은물론이고,그를문단에들어서게한신춘문예당선작도실리지않았다.시인은그렇게세상에한번도그모습을드러내지않은시70편을담은한권의시집으로처음,독자들을만난다.그러나독자들은금세알아차릴것이다.자신의가슴이익숙한감정으로두근거린다는것을.

아무리어려운책을읽고심도있는생각을하더라도어디선가흘러나오는노랫말이더욱가슴을치고갔던경험을누구나한번쯤은해보았을것이다.체질적으로약해서조금만건드려도울컥,마음이흔들리는부분은누구에게나있을테니까말이다.잊고있거나감추어둘수는있지만부정할수없는그런것.제목에서느껴지는것처럼,류근의시에는이처럼익숙한상처와슬픔이배어있다.

그의시를읽는일은슬픔과상처를들여다보는일과같다.쓸쓸한영혼들의상처는타자에의해가감될수없는고유한것이므로철저히단독자의형식이지만,체질이비슷한우리는,타인의상처에서나의상처를보게된다.“모든슬픔은함부로눈이마주치는순간/삼류가”되고,하여“내슬픔은삼류다”(「어떤흐린가을비」)라는,감상투에선언적이기까지한이고백이힘을가지는것은바로이런이유일것이다.

그의시에서‘통속(通俗)’의의미를되새겨보게되는것도그때문이다.“클래식과정통의지위에서늘미끄러지고추방될수밖에없는주변부의삶에들러붙는클리셰의하나”인통속은“세상에널리통하는일반적인풍속”이라는한자그대로의의미를벗어나“비전문적이고대체로저속하며일반대중에게쉽게통할수있는일”이라는새로운의미로이미굳어져버렸지만,정말그것뿐일까?

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최현식은“저속한흥미와취미위주의행동과정서를일컫는,아니비꼬고야유하는말로흘러온”통속이라는말은거의예외없이비극이나희극어느한쪽으로기울지않고,누구나견디고즐길만한‘달콤쌉싸름한’희비극을연출하는데,류근의첫시집『상처적체질』이바로이런“통속성의전면화와이것의지연적(遲延的)잠재화를통해존재와세계의희비극을가로지르고있다”고역설한다.“이런의미에서류근의시는통속의재현이아니라통속미의표현이며,절망과패배의서글픈유희가아니라희망과사랑의절실한되찾음에가깝다”는것이다.하여시인에게“통속미는가장진지하고도가장가볍게타자와새로운세계를향해스며드는일종의방법적사랑”이라할수있다.

최현식은또한“과연유희의대상이지만삶의모델이어서는안된다는금지의냉랭함은우리들에게통속의추악성을부단히증강시켜왔다”고지적하고,“최근통속성이위반의상상력을실현하는주요지점의하나로떠오르는추세는아마도이런억압적왜곡적단면에대한집단적거부및반발과도밀접히연관되어있을것이”라고설파한다.그리고이러한위반의상상력을이시집의서시인「달나라」를통해보여준다.“추와통속을세계의파괴와절멸에접속시키는대신열락과통합의원리로전유한다는것,그것을비정상적이며병리적인포르노그래피로은유한다는것은무엇보다기존의세계이해및관념에대한거부이”며,“세계와존재에대한말그대로의통속적인지를가장치욕스럽고불결한통속물로초극한다”는것이다.

또하나,이번시집에서주목하여야할것은회한이짙게잦아든기억의문법이다.이것은시인의사랑의추억과그리움의밀도를제대로측정할수있는열쇠가된다.충만보다는상실과결락,별리로가득찬기억의성질이야말로그의시세계를낭만적경향으로흐르게하거니와,그에따른애수와그리움을‘누구나’경험했을법한공동의통속미로심화하는진정한힘이기때문이다.

■시집소개
미학적사회적귀환을공식화한『상처적체질』은처량하게용도폐기한‘감상’이오히려힘이었고앞으로도그럴수있음을고지하는역설적텍스트이다.류근은‘감상’의힘을대중의감각에의지한통속미와,비극과희극의기우뚱한균형속에서인간사의본질을통찰하는희비극에서발견한듯싶다.

■시인이쓰는산문
문을열고들어가면아직아픈사람이있어내청단풍잎같은손바닥으로그의이마를짚어줄수있으면좋으리.문득겨울을맞은나무처럼삶의지붕이쓰라린사람일때엔낮은데서빛나는종소리한줌의무게로다가가그의가슴을쓰다듬을수있으면좋으리.조금은가난하고조금은깊어진음성으로먼눈나라의이야기를들려줄수있으면좋으리.손금이마주치는순간의평화와안식을얹어줄수있으면좋으리.그러나아아,그아프고쓰라린사람이영원히나여서단하루라도돌아가그의손아래내이마와어깨눕힐수있으면좋으리.멀고깊은눈나라에고요히갇힐수있으면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