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양장본 Hardcover)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양장본 Hardcover)

$14.00
Description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양장본)』는 지난 2008년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일궈놓은 40년 문학의 총체를 보전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새로운 구성과 장정으로 준비한 「이청준 전집」 시리즈의 스물여덟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이청준의 중편소설 세 편과 단편소설 두 편을 싣고 있으며, 모두 작가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쓰고 발표한 작품이다. 이는 작가의 영원한 주제인 말과 삶이 섞이고 길항하는 세계, 그 안에서 발생하는 존재적 삶과 관계적 삶의 문제를 다룬다.
저자

이청준

저자이청준(李淸俊)은1939년전남장흥에서태어나,서울대독문과를졸업했다.1965년『사상계』에단편「퇴원」이당선되어문단에나온이후40여년간수많은작품들을남겼다.대표작으로장편소설『당신들의천국』『낮은데로임하소서』『씌어지지않은자서전』『춤추는사제』『이제우리들의잔을』『흰옷』『축제』『신화를삼킨섬』『신화의시대』등이,소설집『별을보여드립니다』『소문의벽』『가면의꿈』『자서전들쓰십시다』『살아있는늪』『비화밀교』『키작은자유인』『서편제』『꽃지고강물흘러』『잃어버린말을찾아서』『그곳을다시잊어야했다』등이있다.한양대와순천대교수로재직했으며,대한민국예술원회원을지냈다.동인문학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한민국문학상,한국일보창작문학상,이상문학상,이산문학상,21세기문학상,대산문학상,인촌상,호암상등을수상했으며,사후에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이추서되었다.2008년7월,지병으로타계하여고향장흥에안장되었다.

목차

빛과사슬7
오마니!30
시인의시간54
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106
들꽃씨앗하나201

해설_이야기의공전(公轉/空轉)249
자료_텍스트의변모와상호관계/이윤옥278

출판사 서평

삶에감추어진비의와진실을탐색해가는이의시선과고백
이야기의시원(始原)을탐색하는소설들


〈이청준전집〉28권『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문학과지성사,2016)는표제작「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를포함한중편소설세편과단편소설두편을싣고있다.다섯편모두작가가1990년대후반에서2000년대초반에걸쳐쓰고발표한작품들로,이청준문학의영원한주제인말과삶이섞이고길항하는세계,그안에서발생하는존재적삶과관계적삶의문제를다룬다.
작가의목소리를대변하는화자‘나’들은판소리로상징되는예술혼과소리­가락의운명에사슬처럼매인인물들의뒤엉킨관계를들여다보고(「빛과사슬」,「오마니!」),어디서도제대로뿌리내리지못한채사회와갈등하며부박한삶을살아가는개인들의내면을탐색하며(「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들꽃씨앗하나」)이야기의마지막까지복선의삶에대한질문의끈을놓지않는다.여기에개인언어(문학언어,이상)와사회언어(정보언어,현실)가대립하는가운데(「시인의시간」)언어(말)와글쓰기에대한고민을숙명처럼안고가는작가의고뇌역시유장하게전개되는이야기들속에낱낱으로,깊숙이투영되어있다.

「서편제」를비롯한〈남도사람〉연작에서주요하게등장하는소리­가락에들린인물의형상은단편「빛과사슬」(1998)에서세상과고립된마을분교에새로부임한여교사‘은선생’을통해재현된다.정해진학교일과와마을사람들과의불가피한접촉외에는일상과거리를두고틈이날때마다숲으로들어가소리를연창하는그녀를분교장인‘허선생’은남몰래흠모하고있다.여기에학생들을비롯한마을주민대부분이호기심어린탐색의눈으로‘은선생’을바라보면서그녀주위에는소리­가락과함께범접하기힘든그녀만의도도함과신비로움의빛이드리워져간다.아이러니하게도이러한분위기를일거에무너뜨리는계기는본교에서온‘장선생’의출현이다.정확하게는‘장선생’이노래한「옥중가」인셈이다.어느한여름날,북통과손부채를사이에두고창으로건네받는두사람의요령부득이랄밖에달리표현할길없는소리­장이벌어진이후,‘은선생’은돌연학교를사직하고소리를그만둘뿐만아니라‘장선생’의아내로오로지내조하는데만전념한다.심지어자신의소리를“헛꿈속만헤매고”산시간이라치부하고아쉬워하거나후회하기는커녕,한국전쟁과함께종적을감춘남편‘장선생’을기다리며묵묵히늙어가는삶을택한다.

“도대체그남자의소리가그녀의삶을자유롭게해준것인가,노예처럼운명처럼속박하고만것인가?그녀에게그소리는축복인가,저주인가?
나는여전히그것을알수없다”(「빛과사슬」,p.29)

얼핏단순해보이는일화에서간단치않은비의,기성의언어로는표현불가능한본원적/시원적인진실을찾아캐묻는화자‘나’의시선은단편「오마니!」(1999)에서도이어진다.어머니의삶을모티프로영화를제작하는Y감독의연출현장에함께한‘나’는우연히나이든단역배우문예조씨를만나그의망향가와사모곡을듣게된다.그는월남전북쪽의고향에서각각과부가된두사람,노모와형수와함께살아야했다.일제말의징집과전란의북새통은맏아들을잃은노모로하여금홀로된며느리를향해가혹하리만큼매몰차게한풀이를하게했고,결혼직후사별의아픔을삭일짬도없이아비없는자식을품어낳아홀로길러야했던형수의기나긴고행을낳기도했다.그들고부간의갈등과함께어머니의살가움과자애로움은좀처럼기대할수없고,조카를위해형수의젖문을대신빨아주어야했던시동생의아픔과곤혹스러움이함께커왔던것이다.연출된필름의말미에서듣게되는문예조씨의간원의소리,‘오마니!’는지난세월,어머니와형수사이에서단한순간도양자택일할수없었던그의뼈저린고통이표출된한마디였을것이다.

“망연히자신의술잔만들여다보고앉아있던예조씨의어깨가가늘게들먹여지며깊은탄식을깨물듯조용히잇새로흘러나온‘오마니!’소리역시그의형수의다른이름으로들렸으니까.그리자상하고긴언급은없었지만,테이프의목소리에젖어맴도는그형수의아련한젖품내와그것이긴세월어머니의품내로삭아빚어진순연한모성의그림,가슴을저며오듯애툿한그어머니의상념속에우리는새삼서로진저리치듯망연해하고들있었으니까.”(「오마니!」,p.52)

한편지긋지긋한가난을벗기위해고향을떠나K시에서고학하고있는청년‘배진성’의악전고투를그린중편「들꽃씨앗하나」(2002)와철저히자본의언어가지배하는사회에서무직으로살아가는중년가장‘나’의주식투자기를풀어낸중편「시인의시간」(1999)에서이청준은,“인간의자조(自助)를향한기대와의지와희망이란결국아무것도아니다”라는처절한현실인식을보여준다.두작품은“매사가자신의뜻대로되리라는(말과)믿음으로스스로를기만하는이들”은“스스로를정당화했던말과담론의의미부여가한낱허상에지나지않는다는것을깨닫고당혹스러워하는자신을보아야하는위치로떠밀려버린자들의난국에관한이야기”이기도하다.

“그래시인이라,시인의운명이라……아닌게아니라대개의시인들은요즘처럼추호의낭비도용납지않는정밀한시계처럼효율적이고조직적인정보언어시대속에서도부질없이자기시간과삶을낭비하는비효율적비집단적개인언어에매달려지내는경우가허다하지.시인들이란원래현실생활의생산성이나유통적정보마인드엔허약한위인들이니까.하지만당신은그것이시인의희망이아니라저주받은운명의업보라는것을알수있을까.시인들도누구보다그말의허무한낭비를아파한다는것을.그러면서도어쩔수없이그신통치도못한점괘를외우듯그노릇을일삼고밖에지낼수없는그시인들의아픔을.그런뜻에선나도아마한때는시인이었다할수있겠지만,때로는그런남루하고초라한시인노릇조차더이상감당할수없어진참담스런처지를?그래도그걸무슨시를위한패배나비극처럼쉽게말할수있을까……”(「시인의시간」,p.103)

떠남과돌아옴을반복하는일생에걸친귀환.
자아와세계,안과밖이공전(公轉/空轉)하는이야기


표제작인중편「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2000)는유년시절전해들은‘꽃씨할머니’이야기와아버지와이웃아저씨의설명을계기삼아,오로지바깥세상으로나가고픈열망하나만을품고열세살에고향과부모를떠난,한마디로‘말을믿고,말에들려’이야기꾼으로거듭나는무소작씨의일대기를그리고있다.작가이청준이고향의지산인천관산에올랐다가느낀두려움과아득한절망감,그리고언젠가산너머세상으로나아가리란예감과다짐속에초고를마련한것으로알려진소설이기도하다.
주인공‘무소작’의이름은불교용어인‘무소작’의변형으로속세의염이나소소함에연연하지않는다는불교의수행의미를읽어낼수도있겠지만,그보다어디에도집착하지않고계속떠돌고돌아옴을순환-반복하는주인공의인생에대한비유일것이다.고향을떠나서울로,타국으로수십년을떠돈그가문득향수에이끌려고향참나뭇골(이청준의고향진목면이기도한)로돌아오나,이미미지의장소만큼이나낯설어져버린고향은그에게안식처가될수없었다.그리하여이웃한해변마을에자리를잡은그는숙식을해결할요량으로마을주민들앞에서자신의경험과상상을변주한이야기를풀어놓기시작한다.
그가들려주는세상이야기의많은부분이독자인우리가살아가는현실사회의알레고리로도읽히는데,무소작이이야기를거듭하면할수록말하는그자신은이야기속에몰입해가는반면,처음에는낯설고기이하게여기던마을사람이그의이야기에점차흥미를잃어갈뿐만아니라그낯설고기이함자체를익숙함으로받아들이게되면서무소작을외면하기시작한다.너도나도“제속을지니지못해중심을잃고떠도는사람들의삶”“거짓말세상살이”(p.189)라고무소작을손가락질하기시작했을때더는그가설자리가없어져버리고만다.무소작노인은그렇게종적을감춘다.대신그가떠돌며낳았던무수한이야기들속에서,아니그이야기자체가되어종생한다.어릴적어머니가들려주었던‘꽃씨할머니’이야기에서처럼.

“안과밖의경계가사라진이들에게그의이야기는이제어떤일도그경계밖의새롭고신기한바깥이야기가될수없었다.
문제는그경계를다시확실하게하는일이었다.
하지만소작씨는이게그것이불가능했다.세상을떠돌만큼떠돌다보니종내는그의유년의고향고을이가장멀고도알수없었던그였다.그렇듯그는원체제안을지니지못한채바깥세상만떠돌다돌아온떠돌이였다.애초에제안이없는떠돌이,안과밖의경계를지니지못한떠돌이처지였다.안과밖의경계조차분별할수가없었다.그경계를알수없으니그것을다시분명히할수도없었고,그경계선바깥의다른새이야기를찾을수도없었다.”(「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pp.184~85)

■해설
모든천체는저마다의유일무이한궤적을남기며순행한다.그것은무한하며유사한패턴을형성하면서도매순간새로운위치로미끄러져간다.그것이우주라는자연이다.이청준의소설,이야기는그자연의섭리를관통한다.부단히지향하지만근접하는것이가능하지않은,시시각각이동하는어떤중심을공전하는각기다른행성을닮았다.그것이소설이라는우리은하,그리고이야기의우주속을멈추지않고달려간다.그것이형성한여러나선(螺線)의궤적이야말로,대체불가능한것이다.『인문주의자무소작씨의종생기』에수록된소설들만큼이확고부동한진실을환기하는이야기는달리없다.10여년전그별빛이마침내우리곁을떠나소설,이야기의우주속으로사라져갔다는것,아니오히려그거대한자연자체로화(化)했다는사실에대해더없이전율하며또한한편으로지극히애석해하고있을따름이다._조형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