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없는 사람 -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눈앞에 없는 사람 -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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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부재하는 연인에 대한 예찬!
대중의 사랑과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시인 심보선이 펴낸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쁨과 슬픔 사이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로 사랑을 제시한다. 여기서 시인이 연모하는 대상은 앞에 없는 사람, 즉 부재하는 연인이며, 그는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노동 대신 쓸모 없는 것을 만드는 이 사랑의 활동에 골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고독이 아니라 타인의 손을 맞잡는 것임을, 침묵이 아닌 소요와 동반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일임을 역설한다. 49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에서는 시를 대하는, 시 쓰기로 영혼과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입장과 고백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편!

<사랑은 나의 약점> 중에서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저자

심보선

시인,사회학자.서울대학교사회학과와같은과대학원을졸업하고미국컬럼비아대학교에서사회학박사학위를받았다.1994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풍경’이당선되어문단에나왔다.15년만에첫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2008)를출간,시를사랑하는독자들에게큰화제가되었다.이후출간된시집들『눈앞에없는사람』(2011),『오늘은잘모르겠어』(2017)도독자들의큰사랑을받았다.전...

목차

시인의말
제1부들
말들
인중을긁적거리며
의문들
나의친해하는단어들에게
나날들
필요한것들
좋은일들
외국인들
TheHumorofExclusion
텅빈우정
나무로된고요함
호시절
도시적고독?에관한가설

거기나지막한돌하나라도있다면
낙화
소년자문자답하다
찬란하지않은돌
시초
지금여기
영혼은나무와나무사이에
심장은미래를탄생시킨다
첫줄
제2부둘
이별의일
Mundi에게
'나'라는말
매혹

잎사-귀로듣다
늦잠
잃어버린선물

붉은산과토끼에관한아버지의이야기
노스탤지어
이상하게말하기
무화과꿈
음력
변신의시간
속물의방
그라나다
홀로여관에서보내는하룻밤
체념(體念)
4월
운명의중력
H.A.에게보내는편지
StephenHaggard의죽음
무명작가
연보(年譜)
사랑은나의약점
발문|나의아름답고가난한게니우스,
너는말이야·진은영

출판사 서평

지금우리에게필요한당신의전언
‘기쁨과슬픔사이의빈공간에딱들어맞는단어하나,사랑’

등단14년만에묶어낸첫시집『슬픔이없는십오초』(문학과지성사,2008)로대중의폭넓은사랑과문단의뜨거운주목을한몸에받아온시인심보선이두번째시집『눈앞에없는사람』(문학과지성사,2011)을펴냈다.이번시집에서그는“기쁨과슬픔사이의빈공간에/딱들어맞는단어하나”를만들겠노라고선언한다.바로사랑이다.여기서시인이연모하는대상은부재하는연인,‘문디Mundi’라불리는세상이며,시인은쓸모있는것을만드는노동이아니라쓸모없는것을만드는이사랑의활동에골몰한다.그리하여우리에게필요한것은예술의적요한고독이아니라타인의손을맞잡는것임을,침묵이아닌소요와동반으로나를변화시키는일임을역설한다.

지금이순간부터는심장박동을셀필요가없다
한번심장이뛸때마다
한개의기념비적미래가태어나고있다-「심장은미래를탄생시킨다」부분

1부‘들’과2부‘둘’로나누어마흔아홉편의시를묶고있는이번시집에서우리는시를대하는,시쓰기로영혼과세상을대하는시인의입장―단언과고백을자주접하게된다.이고백은시인이즐겨하는의문들혹은질문들과늘함께한다.

나는즐긴다/장례식장의커피처럼무겁고은은한의문들을:/누군가를정성들여쓰다듬을때/그누군가의입장이되어본다면서글플까/언제나누군가를환영할준비가된고독은가짜고독일까/일촉즉발의순간들로이루어진삶은/전체적으로는왜지루할까?-「의문들」부분

저의문과호기심은홀로있어얻어질수있는것들이아니다.“이사실을홀로깨달을수없다./언제나누군가와함께”(「인중을긁적거리며」)있을때성립하는질문이고,시인은이질문에답하고자“언제나설명할수없는일들투성이”(「좋은일들」)인이세상의밤공기와단단한대지의틈바구니에놓이는것을마다하지않는다.하여“선행과상관없는동행”(「외국인들」)이라불리는그의발걸음은지난3년간용산으로,홍대두리반으로,85호크레인희망버스로,명동제3개발구역카페마리로,가볍게,자발적으로옮겨다녔다.너와나,그들과나,세상과나라는이들관계속에서그가“불현듯하나의영혼을넘쳐/다른영혼으로흘러간무모한책임감에대하여”(「거기나지막한돌하나라도있다면」)질문하고답하기를계속해서반복하는이유는어디에있을까?어쩌면그것은“인간과인간은도리없이/도리없이끌어안는다”(「지금여기」)라는절대명제가시인의가슴에별처럼빛나고있기때문일수도있겠다.“머나먼별/휘날리는깃발/적의없는입술/삶에던져졌던은밀한영향력들”(「소년자문자답하다」)을깨달아버린탓일수도있겠다.

“나는어떤영혼들에게감동받고배우고그위에내영혼을겹쳐본다.감동을주는영혼이있고아닌영혼이있다.나도호오가있다.하지만누구나그런특별한영혼이될수있는잠재성이있다는것이다.그런전제가나에게는매우중요하다.”(심보선,좌담<호모와쿠우스,호명될수없는삶에대하여>,『현대문학』2011년7월호)

“영혼위에생긴주름이/자신의늙음이아니라타인의슬픔탓이라는/사실”(「인중을긁적거리며」)을목도한시인은태어난이래줄곧잊고지냈던“뱃사람의울음,이방인의탄식,내가나인이유,내가그들에게이끌리는이유,무엇보다내가그녀를사랑하는이유”(「인중을긁적거리며」)를곱씹어본다.“우리가영혼을가졌다는증거는셀수없이많다”(「말들」)는시인의신념은바로이러한골몰의결과일것이다.그리하여세상의모든것이접사‘들’이붙어복수로존재하는바로이때,“모든것이이해되는/단한순간”(「필요한것들」)에절실히요구되는것역시“너의손”일수밖에없다.바로고요에서소요로옮아가는변화를부르는,태도와실천을부르는‘손잡기’말이다.

침묵은나의잘못,그것이나쁘고
슬프다는것도잘안다
영혼은오로지한순간에만눈에띈다는사실도
나무와나무사이를날아가는새처럼―「영혼은나무와나무사이에」부분

한편,유독2부‘둘’에서자주등장하는멸망,죽음,이별모두지나간과거이거나아직당도하지않은미래에속한‘사정’으로그의단어와문장으로말해지는이것들은모두진지하나경쾌하게,낯설지만명랑하게호명되곤한다.짐짓결연한다짐과엄숙한선언으로,“인간사에대한경탄과절규”(「Mundi에게」)로비칠수도있는심보선의시들이“신비의작은놀이터”안의놀이마냥사소하고가벼워질수이유는슬픔과기쁨,이별과재회,두려움과행복그사이에‘희망’이라는끈을놓고있어서가아닐는지.여기서시인은다시‘희망’을‘사랑’이라고고쳐말한다.

나의문디여,
나는세계를죽도록증오한다,그러나그것은결국
내가세계를한없이사랑한다는뜻이기도하다-「Mundi에게」부분

시인이여,노래해달라.
누구나짐작할수있는
나의머지않은죽음이아니라
누구도모르는나의일생에대해.
나의슬픈사랑과아픈좌절에대해.
그러나내가희망을버리지않았음에대해.
모든것을극복하고생존하여바로오늘
쪽동백나무아래에서당신과우연히눈이마주쳤음에대해.
―「사랑은나의약점」부분

이렇게“당신영혼의아침”(「H.A.에게보내는편지」)의안부가궁금하고“나에게운명을바꿀수있는능력”(「운명의중력」)이있는지자문하는심보선은“지극히평범하고직설적인말”(「사랑은나의약점」)“로세상을향해묻고,”때로는환멸에대해서때로는치욕에대해서”(「붉은산과토끼에관한아버지의이야기」)쓰고말한다.그리고벌건대낮에법과질서가유린되는시대,불편한진실에가까이다가가면다가갈수록그의말들은“투명한입술이하염없이”(「텅빈우정」)떨리는새로스며나오는따듯한입김처럼울림과집중을일으킨다.
“평범하고유한한인간이무한한시도속에서자아의종말을감수하면서그시도를격정적으로이어나가는행위”로서‘사랑’과‘시쓰기’는동일하다고시인은말한다.그리하여시집『눈앞에없는사람』을펼쳐든순간,당신에게도“한개의기념비적미래”가탄생할것이다.당신의영혼을세상으로이끄는말,“목구멍에서소용돌이치며솟구치는진실”,우리에게영혼이있음을증거하는그런말,말들.이시집에담긴“옳기도하고나쁘기도하고/아름답기도하고처절하기도한”(「찬란하지않은돌」)단어와문장들은어떤누구에게는“연서의첫줄”일수도있을것이고,또다른누구에는“선언문의첫줄”일수도있을것이다.분명한것은,이말들은모두당신에게로흘러가“어떤불로도녹일수없는얼음의첫줄/어떤얼음으로도식힐수없는/불의화환”(「첫줄」)으로피어나리란사실이다.

[발문]
시인은떨어져다친이들의손을잡는다.붉은피와슬픔으로그의손가락을타고흐르며그의몸과영혼을적시는다른이의손을잡고떨어지면서그는쓴다.추락하는이가결국다다르며상처입고다치게되는어두운바닥어디께에서마치영감이떠올랐다는듯이.[……]
그들의손을놓지않는한그는함께떨어질테고다치고죽을것이다.그죽음은“내가누구인지모르는죽음”이아니기에시인에게“가장두려워하는죽음”이될수없다.그죽음은나를,나도너도아닌“누군가”로죽게하는비인칭의죽음일것이다.이죽음은내가홀로결단하여온전히나의것으로소유할수있는것이아니며언제나다른이의손바닥을필요로한다.그들각자는이죽음속에서자기자신과다른누군가로태어나는것임을시인은알고있기에“내가가장두려워하는죽음일랑잊고서/인중을긁적거리며/제발나와함께영원히살아요”라고사랑하는친구들에게제안하고연인에게청혼할수있는것이다.[……]
우리는사랑이시작되기전의오랜과거동안우리가무슨보물이라도되듯간직해왔던고유한자신의특성들을분실하고또망가뜨리면서존재한다.자신을잃어버리는신비하고서정적인놀이터에도착하는일이그리어렵지는않다.그저추락하는,어느바닥의심연으로불시착하는너의손을잡으면된다.그때내손안에있는존재는도구가아니라그저너의따뜻한손바닥이다.이손의유일한쓸모는나를변화시킨다는것.그런데그런이유로너의손바닥은안전하지도친밀하지도않다.오히려너의손을잡으며나는계속스스로에게낯설어지고상처입으며도저한공포를느낀다.그러나이러한손-잡기는격정적이면서도가벼운것이다.연인의흰손,친구의거친손,혹은한권의책을잡으면서우리는가벼워져야한다.
-진은영(시인),발문「나의아름답고가난한게니우스,너는말이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