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 시코쿠

여장남자 시코쿠

$13.00
Description
눈을 감고 싶은 욕구와의 싸움에서부터 시작되는 황병승의 시를 읽는 시간!
한국시에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명샘의 가는 한줄기가 되어주며 옛것의 귀환이라는 사건을 때마다 일으키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제3권 『여장남자 시코쿠』.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당시 독자를 충격했던 새로움을 보존하고 같은 강도의 미지의 새 새로움의 애채를 옛 새로움의 나무 위에 돋아나게 하는 시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3권은 시인 황병승의 낯설고도 수상한 첫 시집으로 문단을 뒤흔들어놓은 시편들을 엿볼 수 있다.

기존의 분석적 틀로는 설명하기 힘든 응시의 주체화가 매우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는 시편들, 시코쿠가 우리에게 날마다 보내는 연애편지로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렬한 거짓으로 위장해 우리에게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표제시 ‘여장남자 시코쿠’부터 ‘똥색 혹은 쥐색’, ‘그 여자의 장례식’, ‘비의 조지아’, ‘부드럽고 딱딱한 토슈즈’ 등의 시편들이 모두 2부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판타스틱 로맨틱 구름

변덕쟁이 여자는 늙도록 이곳저곳을 흘러다니며 구름만큼이나 많은 남나들을 만났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의 이름은 구름이다, 구름만큼이나 시시한 소개를 늘어놓으며 판타스틱 로맨틱 언덕에서 첫아이를 뚝 떼어 만들고 이름 모를 호수와 굴똑을 옮겨 다니며 구름만큼이나 많은 아이들을 남겨둔 채 어디론가 흩어졌다 구름만큼이나 가벼운 짓이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소녀들은 어느새 주먹만 한 유방을 달고 어머니를 쏙 빼닮은 얼굴로 크고 작은 고민에 빠진다 아름다운 것 비극적인 것에 이끌려 진정한 로맨스란 무엇인가 만남과 이별 눈물과 후회 날마다 수다를 떨고 솜털의 소년들은 소녀들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나의 이름은 구름이다, 구름만큼이나 낡아빠진 목소리로 위대한 것 웅장한 것을 노래하느라 정신이 없다 꿈속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짓다 허문 모래성이라는 것 이미 들통났는데…… 창밖의 판타스틱 로맨틱 소년 소녀들은 뭉쳤다 흩어지고 다시 뭉쳤다 흩어지며 오후 내내 구름만큼이나 시시한 짓들을 벌이고 있었다.
저자

황병승

저자황병승은1970년서울에서태어낫다.2003년『파라21』에「주치의h」외5편의시를발표하며문단에나왔고시집으로『여장남자시코쿠』『트랙과들판의별』이있다.박인환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제2부

출판사 서평

역동적상상력과무한한체험의반복Repetition,
몸잃은거룩한말들의부활Resurrection


문학과지성시인선의일련번호가운데새로운기호‘R’이생겨났다.한국시의수준과다양성을동시에측량해한국시의박물관이되어온문지시인선이지만이완전하고자하는노력밖에서일어나는빗발치는망망한말의유랑이있었음을아쉬워할수밖에없었다.하지만이러한거룩한유랑들이출판환경과개인의사정으로독자들에게로가는통로가차단당하는사정이있어,문학과지성시인선은이에내부에작은여백을열고이독립행성들을모시고자했다.‘문학과지성시인선R’.문지시인선번호어깨근처에‘리본’처럼달린R은직접적으로는복간reissue을뜻하며이반복repetition이곧새로태어나는일이기에부활resurrection의뜻을함축한다.문학과지성시인선의일련번호속에서다문다문R을만날때마다그안에숨어있는낱낱의꽃잎이신기한언어의화성으로울리는광경을목격하기를기대한다.그때쯤이면되살아난시집의고유한개성적울림이시집에내재된에너지의분출이면서동시에그것을그렇게수용하고자한독자자신의역동적상상력의작동임을제몸의체험으로느끼게될것이다.가장먼저만날문학과지성시인선R은이성복의『달의이마에는물결무늬자국』,유하의『무림일기』,황병승의『여장남자시코쿠』,김경주의『나는이세상에없는계절이다』다.


R03
여장남자시코쿠

다시발송된시코쿠의연애편지,
세계의비겁함을향한끝없는연민


한국시단에짜릿한멀미를안겨준시인


2005년,황병승의낯설고도수상한첫시집『여장남자시코쿠』가문단을뒤흔들어놓았다.욕망과충동앞에서부끄럼이없고사물과공간이시를통과하며보여주는굴절률이도무지난해하다.시어와화법은어떤가.어디한번감당해보라는듯대놓고부적절하다.『여장남자시코쿠』가나오자마자문단은빠르게황병승을인용하면서도그가만들어놓은이기이한세계에닻을내리는데는조심스러워했다.황병승이일으킨새물결(미래파)의파고와파장에익숙해지기위해서는멀미가가라앉을시간이필요했기때문이다.

시인이성에찰때까지거부하고뒤집고발칙해지려한몸짓은,“기표의놀이를통해우리가잃어버렸던세계의원형을복원하려는,거의불가능에가까운작업을해내고있다”(권혁웅)거나“한국현대시의진정성에대한이념과그지루한표준성을날려버릴강력한뇌관”(이광호)등과같은평가를이끌어냈다.그러나한편으로는‘소통불능의언어’‘해석불가의시’라는비판도받았다.그렇게환호와의심이혼재된상태가지속되는동안어느새황병승은한국시의오늘과내일을논하는데있어필요하고도충분한조건이되어있었다.

(다시꼬리가자라고그대의머리칼을만질수있을때까지나는약속하지않으련다진실을말하려고할수록나의거짓은점점더강렬해지고)

어느날누군가내필통에빨간글씨로똥이라고썼던적이있다

(쥐들은왜가만히달빛을거닐지못하는걸까)

―「여장남자시코쿠」부분

강렬한거짓으로위장된진실의절실함

황병승의시는매섭다.이를테면‘나의진짜는뒤통순가봐요’(「커밍아웃」)라는선언으로독자를잡아챈뒤‘나의또다른진짜는항문이에요’라며뒤집기한판승을따내는식이다.그의시가어렵다면그책임은진실이있어야할자리에관습을박아놓은세상에있고그것을비판없이받아들인우리에게있다.황병승은그런우리앞에서‘얼굴을맨바닥에갈아버리고/뒤로걸을까봐요’라거나‘입술을뜯어버리고’‘뻐끔뻐끔항문으로말할까봐요’하고자조한다.숙연해질수밖에없는대목이다.독자는황병승의시에서어떠한정치적발언도권력에대한항거도찾아볼수없지만어느새바르게앉아있는자신을발견하게된다.

황병승의시에서‘뒤통수’나‘항문’을존재의본질과연결하는전위적탁월함만읽는데그친다면오독일가능성이크다.황병승시는‘시코쿠’가우리에게‘날마다’보내는‘연애편지’(「여장남자시코쿠」)다.그런데우리는시코쿠의필통에빨간글씨로‘똥’이라고써되돌려줬다.그것은시코쿠의편지를구애의행위로오독했기때문이다.그러는사이시코쿠는세상의비겁함을홀로견디고있다.절판되었던첫시집이새표지를입고복간되었으니우리는다시시코쿠의편지를받은셈이다.시코쿠의여장을벗기려해봐야거기우리가기대하는얼굴은없을것이다.시코쿠가‘강렬한거짓’으로위장해우리에게꼭전하고자하는‘진실’에귀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