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여관 -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눈사람 여관 -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11.37
저자

이병률

1967년충북제천에서태어났다.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과를졸업하고,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좋은사람들」,「그날엔」이당선되어등단했다.시힘’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저서로는시집『당신은어딘가로가려한다』,『바람의사생활』,『찬란』,『눈사람여관』,『바다는잘있습니다』등과여행산문집『끌림』,『바람이분다당신이좋다』,『내옆에있는사람』,산문집『혼자가혼자에게』...

목차

1부
사람
혼자
진동하는사람
시는
사랑
침묵여관
면면
불가능한것들
저녁의운명
어떤궁리
내손목이슬프다고말한다
그자

가늠
알겠지만
저녁을단련함
꽃제비
금과소금
여진(餘震)
눈치의온도
아무한테도아무한테도
2부
북강변
전부
시월의장소
몸살
물의박물관
음력삼월의눈
시의지도
여름감기
맨발의여관
아파도가까이
마음의기차역
애별(愛別)
어떤아름다움을건너는방법
낙화
고름
찬불꽃
행복을바라지않는다
표정
이사
함박눈
3부
그사람은
비정한산책
출렁
그런봄
천사의얼룩
눈사람여관
붉고찬란한당신을
다섯손가락
비행기의실종
나는나만을생각하고
백년
내심
세상의나머지
저녁길
여행의역사
설국

겨울

여지(餘地)
끝맛
발문|조용한거리(距離)?유희경(시인)

출판사 서평

불가능한슬픔을쥐고아낌없는혼자가되는시간,
세상의나머지가세상의모든것이되는순간

찰나에서찬란을발견해내는시인이병률의새시집『눈사람여관』(시인선434,문학과지성사2013)이출간되었다.1995년등단이후세권의시집을통해선보여온특유의바닥없는‘슬픔’과깊고조용한‘응시’,설명할수는없으나생의안팎에새겨져있는특유의‘절박함’이여전한이번시집에서이병률은이러한감정과정서보다더근원적인지점을찾아나선다.자신,어쩌면당신의마음속깊이숨겨진어떤‘현’하나를슬쩍건드리고그진동을통해돌연드러나는‘존재’를고찰하는일,그‘존재’에필연적으로내재된처연(悽然)을묻고또묻는일로시인의행보는정처가없다.그렇게시인은자신에게로향한다.혼자됨을주저하지않는그다.온전히혼자가되는일은자신을확인하고동시에타인을발견하게되는과정이기에.타인에게서오는감정이란지독한그리움이고슬픔이지만,슬픔과정면으로마주하는그일이곧사람의마음을키우는내면의힘이된다.그러니까이병률의슬픔은,힘이다.불가능성앞에서그는슬픔을느끼지만,그것을쥐고,그힘으로서있는사람이되어간다(“그러니마음의마음이여/모든세계는열리는쪽/그러나모든열쇠의할일은입을막는쪽//모든세계는당신을생각하는쪽/모든열쇠의쓰임은당신허망한손에쥐여지는쪽”―「불가능한것들」).그가잠시머무르는곳‘눈사람여관’은모두가객체가되는공간이자타인의삶을온몸으로겪게되는슬픔의처소이며스스로“세상의나머지”가되는그곳이다.이렇게자기자신으로돌입하여다다른이병률의시세계는격렬한감정의파고없이도,무표정한은유와담담한서사만으로도가닿는곳,그에게도혹은우리에게도익숙하고도낯선마음의풍경이다.

가늠

종이를깔고잤다
누우면얼마나뒤척이는지알기위하여

나는처음의맨처음인적있었나
그오래전옛날인적도없었다―「가늠」부분

가늠은목표나기준에맞고안맞음을헤아려보는일을가리킨다.그러므로가늠은오롯하게혼자가되기위한첫번째절차다.시인은자기자신을가늠해본다.자신과자신의시가어디쯤있는지,가고자하는방향과진행되고있는방향이같은지다르다면얼마나다른지알고싶어한다(“말할수없는저녁에/가만가만목메는저녁한가운데다/나비가두장으로펄럭거리며날다가/삶에문득관여하여서/담벼락의장미향들을물러나게하면/그것으로도시는아닌가/그렇다면시는또미안해서오는것인가”―「시는」).그렇기에어떤감정에도휘둘리지않으려고애쓴다(“저녁의바닥을향해서있는것모두를/진창이라여기지않아도되겠다//서서히가려우므로괜찮아진다/하물며최선도지나간다//피하느니/제법지나갈것이다”―「저녁을단련함」).시인은자기자신을조용히성찰하면서자주망연해지기도한다(“깊숙이나를넣고나를열망했지요/불경의좌우는나를붙잡기도/자르고붙이기도했어요//지금으로도그다음으로도그것으로끝이었지요/내가한생을살면서읽고사용하였던세계는/어둠속구석지에서길을잃어/더듬더듬기어오르려했던/엎어놓은계란의반쪽껍데기속”―「알겠지만」).
한편가늠은문득뒤를돌아보는사람에게허락된행위이기도하다(“뒤늦게더듬어서라도다볼수있다면/아무것없이도아름다우리라고/대륙의끝으로자신을끌고가/한없이데리고울다지친이//그가들썩일때마다뒷문이울린다”―「여진(餘震)」).어김없이적절한거리와적당한때를필요로하는이일은말이나각오처럼쉽지않기에육체가허물어지는몸살을수반하기도한다(“한번녹으면영원히얼지못하는얼음처럼/한번아픈것이영원히낫지않는다/낫지않으니축적이다/독을내몰고새독을품으려니갱신이다”―「몸살」).때로고통스런이행위의결과가너무사소하고보잘것없어보일때바라보는이의가슴에차오르는건슬픔이겠다.그러나이순간,차갑고단단한시간속의시인은인간은결국지극한혼자일수밖에없음을깨닫는다.자신에게집중하는것만이(“나는한사코나만생각하는것이고/아무것도정하지않은채/나에게로만가까워지려는것이다”―「나는나만을생각하고」)시인이자신의맨처음으로갈수있는방법이기라도하듯이.

혼자

얼얼하게버려진,깊은밤엔
누구나완전히하나
가볍고여리어
할말로몸을이루는하나

오래혼자일것이므로
비로소영원히스며드는하나―「혼자」부분

왜혼자여야할까.혼자가내포하는의미들은여럿일테지만이시집속에서이병률은사소하다.끊임없이망설이고결국엔모르겠다고백하는시인이다.자신의나약함을고스란히드러냄으로써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자신의모습을감추지않는그때문에여기에는깨달음으로써초자아의영역에다가가는단독자가설자리는없다.또한편으로나르시시스트로서의혼자가있다.이것역시시인이병률과나란히놓기엔적당하지않다.시안에서그는담담하게세상의구석지에자신을가져다놓는다(“시를모른다하더니나조차모르는당신을앞에두고/많은막걸리를마시었다/내얼굴을가리기엔막걸리잔이좋아서였다//넘기려했으나쓴찻물처럼넘겨지지않는시간을넘기고/혼자서다시찾은밤공원”―「시의지도」).여기에애당초성스러움따위는없다.
이번시집전편에가득한‘나’는,그러니까가늠하여드러난시인은맞춰지지않는퍼즐조각처럼문득,남아있는존재이다.사회속에서개인이맺고있는무수한‘관계들’을거둬낸그저‘사람’이다.이는시인이자주떠나는여행과비슷한행위일지도모른다.익숙해지기전에벗어나는것.그럼으로써맨몸의자신을발견하는행위말이다(“가끔당신으로부터사라지는상상을하는/나는불편한사람/불난계절을막진압하고도/어쩌면간절히/어느멀리멀리서살기위해/돌고돌다/나를마주치더라도/나는나여서불편한사람//가끔당신으로부터사라지려는수작을부리는/나는당신한사람으로부터진동을배우려는사람/그리하여그자장으로지구의벽하나를멍들이는사람”―「진동하는사람」).시를통해그는온전히‘한’사람이되는데,그것은세상과불화하는존재가아닌,일치/불일치혹은화해/불화이전의사람을가리킨다.그는혼자서떠난다.떠남으로써,시적으로최초의인간을발견하려는노력을멈추지않는다.무엇이시를쓰게만드는가.무엇이그를온전히시인이게하는가.스스로를외롭게유폐시키면서그는시를쓸수있는힘을만들어낸다(“모든죽음은이생의외로움과결부돼있고/그죽음의사실조차도외로움이지키는것/그러니아무리빚이많더라도나는/세상의나머지를거슬러받아야겠다”―「세상의나머지」).결과의실패와성공을논하는일이그에게는의미가없다.화려한수사나비유가필요치않는까닭이다.중요한것은시의처음,시의씨앗이인식의영토안에심겨처음-그연둣빛싹을틔우는과정이다.
그러므로이병률의새시집『눈사람여관』의시들은시가시로씌어지기전그처음의과정에집중한다.그것은그어떤것보다슬프고,아프며,깨끗하고,황홀하다.그의새롭지않은시쓰기가전혀새로운과정으로탄생하는아름다운순간이다(“최초의나무한그루가우리손발짓과/가리키는곳을관장한다고합시다/손끝을모은한가로운모든것들을흰색으로칩시다//근본이벌어진틈을타/온전히혼자인스스로를설득하고//밥을욱여넣는것처럼사랑할때나/생각의절반을갈아치우게하는달력의일들/모두가흰색이었다합시다”―「흰」).

눈사람여관

내당신이그런것처럼
모든세상의애인은눈사람

여관앞에서
목격이라는말이서운하게느껴지는건그런거지요

눈사람을데리고여관에가요
거짓을생략하고
이별의실패를보러

나흘이면되겠네요
영원을압축하기에는저연한달이독신을그만두기에는―「눈사람여관」부분

시인의발걸음은이제여관으로향한다.이순간그와동행하는이는쉽게녹아없어질눈사람이다.체온이닿는순간녹아내릴,존재하면서존재하지않는모순적인존재인눈사람은어쩌면시인자신일수도있다.객관적거리란논리적인개념에불과하다(“돌이킬수없으려니/너무많은것을몰라라하고온다//그냥사각의방/하지만네각이어서는도저히안되겠다는듯/제마음에따라여섯각이기도한방//어느이름없는별에홀로살러들어가려는것처럼/몰두하여/좀이슬어야겠다는것/그또한불멸의습(習)인것”―「침묵여관」).그토록허무한자신과맺는계약은사라짐을예비한다.이눈사람과함께드는여관에서시인은,사람은누구나혼자라는인식을재확인한다.이것은차갑도록냉철한인식이면서,이렇다할세간이없는여관의방바닥을비추는전구처럼뜨겁고명확한인식이기도하다.
이시집의발문에서시인유희경은“어쩌면관계의맨처음,가장순수한형태인당신을눈사람으로여기는”존재,“시간이지나며사라져버리는존재.그럼으로써나역시휑뎅그렁하니남게만드는존재”를시인으로호명한다.그리고그혹은그들이함께드는여관을“모두가객체가되는공간,타인의삶을온몸으로겪게되는슬픔의처소”라고부른다.이글에따르면여관이란아무도없는혼자여서,모두를‘끔찍하게’인식할수있는공간인것이다(“무엇때문이아니라/자신의속살을위해울때도있음을아는밤//할말이있음은안다/몇몇밤은칠흑같이어두울것이고/내반경은넓게감정을반죽하려들지않겠지만/할말있는사람처럼마지막을맞대야하는것쯤은안다”―「벽」).이곳이야말로온전한자신과마주하게되는,어떠한감정도담지않은채무표정의은유와서사만으로닿을수있는익숙하지만낯선생의이면이다(“손바닥으로쓸면소리가약한것이/손등으로쓸면소리가달라진다는것을안다/그것을삶의이면이라고생각한다”―「면면」).
그러니시인이혼자가되는행위는다시말해무언가혹은누군가를버리는대신그것혹은그와멀어짐으로써가까워진다는관계의역설이자진리가가지고있는근본적인시적행위이고또시적사유에해당한다.너무도명확해보이지만부조리로가득하고,그럼에도일말의가능성을버리지못하는내면의세계,어쩌면시가존재하는이유일수도있겠다.

시집『눈사람여관』에서돌올하게그려지는시인의생각과태도는분명세련된도자기나투박한질그릇은아닐것이다.차라리그것은부드러운무형의선과거친감촉을지닌진흙에가깝다.적어도『눈사람여관』에담긴시들은그러하다.시인이말한것처럼,“그것을세상의나머지라부르겠다”면“세월이나의뺨을후려치더라도건달이며전속시인으로남아있을”요량이라면,그러한시인의각오는이렇게복기된다.“지도위에손가락을올려묻고도싶은겁니다/우리가아프게통과하고있는지금은어디입니까”(「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