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저자:김행숙 1970년서울에서태어났으며,1999년『현대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사춘기』『이별의능력』『타인의의미』와산문집『에로스와아우라』등이있다.노작문학상을수상했다.현재강남대학교국어국문과교수로재직중이다.
시인의말1부인간의시간존재의집누구를위하여종은울리나낮아담의농담밤에연못의관능유리창에의매혹산책하는72가지방법새의위치상형문자같은1인용식탁아,서사극타워두개의바퀴공원의취향소몇번의장례식새의존재젊은이를위하여노인의미래도시가스공사의메아리물방울시계이름모를바닷가아담의잠옷잠의방언샹들리에소리의악마저사람철길차이와동일성이사타일의규칙K청년의희망밤의고속도로좁은문비누의맛실종자커튼이없는집지팡이와우산두사람섹스센스좋은말2박3일트럭같은사랑허공의성어딘가,어딘가에는어느머리카락광대의회상2부공감각의시간천사에게半個빛타인의창모르는목소리눈의위치저녁의감정뒤에서오는사람옥도정기찾기이웃사람창과방패조용한지구문지기생각을할때마른번개들사랑하는……잃어버려지지않는/찾아지지않는8時가없어진다면에코의초상해설존재바깥에서물결치는‘인간의시간’박진
김행숙,타자를향한오랜실험의역사1999년『현대문학』으로등단해올해로등단15년차를맞는김행숙의시집『에코의초상』(문학과지성사,2014)이출간되었다.시인은종래의서정적자아와결별하고완전히새로운시적실험을감행하며2000년대뉴웨이브를가져온시단의대표아이콘이다.2003년첫시집『사춘기』(문학과지성사,2003)로“서정에서일탈하여다른서정에도달한”김행숙은“현대시의어떤징후”가되었고,이첫시집을통해그녀는“시를쓴다는것은윤리학과온전히무관한사춘기적‘경계’에머문다는뜻”임을보여주었다(문학평론가이장욱).이시집을단초로김행숙은비슷한시기에첫시집을출간한황병승,김경주,김민정,하재연등과함께이른바‘미래파’로묶이며시단과대중모두의주목을받았다.이들은전통적인독법에따라어떤의미나이미지를포착하려는시도조차무의미하게만드는낯설고모호한시들을각자의방식으로선보이며한국현대시의변화를주도했다.김행숙은이어두번째시집『이별의능력』(문학과지성사,2007)을출간하며“직관이아니라프로그램으로쓰는시인”이며“어떤특정한느낌의세계에입장할수있는능력,그리고그느낌의세계로독자를초대할수있는능력”을가진시인임을보여주었다(문학평론가신형철).2010년김행숙은세번째시집『타인의의미』(민음사)를출간하며일정부분변화된면모를보여주는데,이전시들이세계를느낌의조각들로분해하고나를해체하는미시적인세계를그렸다면,이시집은그느낌의세계안에서‘나’와‘타인’이만나는관계속에싹트는감각이두드러졌다.문학평론가이광호는시집의해설에서“김행숙은지금시각적인것너머의세계로다시움직이고있”으며이는“내면성의시학을거슬러나아가는숨과표피의모험.가령너무가까운세계의초대같은것”이라고표현하였다.그간김행숙시의행보를요약하자면,타자를향한낯설고위험한모험이라할수있다.관심의대상과표현방식은조금씩달라져왔지만,그시선은항상자신안에웅성거리는다른‘나’들에게머물렀고동시에타인을이해하기위한관심으로벋어나갔다.이번시집은제목에서의미하듯자기모습을드러내지못한채다른사람의마지막말을되풀이해야만하는‘에코’의운명을시적자아의초상으로받아들인다.외부의목소리가되울려서나의몸과말,생각이되는경험을통해,화자는타인의불행을‘나’의일로겪어내며한그루덤불을껴안고활활타오른다.그러면서끝내가닿을수없는타자의경지,오로지자신으로돌아올수밖에없는존재의경계에서서자책한다.회피하고자애써도회피할수없는,지극한슬픔의공동체안에서우리는또다른시간,또다른관계의가능성을발견할수있을것이다.위태롭지만무한한‘사랑’의가능성우리를밟으면사랑에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깊고부서지기쉬운시간은언제나한가운데처럼-「인간의시간」전문이번시집전반에는인간이살아가며통과하는시간에대한사유가녹아있다.시인에게시간은밟으면그대로빠져버리는‘깊고부서지기쉬운물결’과같다.언제나한가운데처럼기원도종말도없이일렁인다.무엇보다그시간은홀로외롭게경험하는존재의행적이아니라인간을공동의“우리”로엮는‘관계의사건’으로나타난다.“인간의시간”은결국타자들과의관계속에서이뤄지는주체성의얽힘을가리킨다.그속에는위태롭지만무한한“사랑”의가능성이깊이잠재돼있다.메아리로만든포용의몸언젠가나는크게화를낸적이있다.누구에게?혼자잠을깬너에게?혼자잠을잔나에게?가끔나는나의감정으로부터분리되는것같다.나는나의기쁨의솜털을모르며.나는나의고통의소용돌이를모르며.나는나의사랑의부리로쪼아대는검은바위를모르며.[……]너는또발을쥐고웅크리고있다.톡,톡,손톱깎이가내는소리에중독된너는세상에서가장짧은손톱과발톱을가진다.너는안경을벗었다,썼다,벗었다.네가또안경을쓸때.또안경을벗을때.너는변하는것에중독됐는가.변하지않는것에중독됐는가.너의죽음은언제부터네주변을어슬렁거렸는가.-「차이와동일성」부분김행숙시의화자들은여전히다양한존재들이며세계의경계에서있는자들이고,또한하나의몸에서여러목소리를내는부글거리는‘나’들이다.이들의목소리는안과바깥,나와나아닌것,내저편이면서동시에내안에있는것들을호출한다.목소리들은서로를억압하지않고그자체로유연하게생동하며흐리마리한형태로찾아오는메아리처럼시의몸이된다.이몸의정체는바로인간의시간이궁극적으로닿는곳,바로죽음을근거로확보된다.공동의인간,익명의공동체별이못이라면길이를잴수없이긴못,누구의가슴에도깊이를알수없이깊은못입니다[……]빛을비추며아이를찾아야했습니다서로서로빛을비추며죽은아이를찾아야했습니다어디서날이밝아온다고아무도말하지못했습니다-「빛」부분죽음/죽어감은인간에게부여된공동적인운명으로서,‘나’를자신을그연속성안에기입하여모두에게속한자로만드는연결고리가된다.우리는지난몇달간전사회적인비극적죽음을경험하며몸에각인된기억을가진이들로서이공동의영역에대해슬프게도조금더쉽게이해할수있게되었다.(실제로이시집의말미에배치된시편중일부는세월호침몰이후에씌어진시다.)인간존재로서의공통지평인죽음을기반으로,우리는잃어버린아이들의이름을물밖에서부르며,일정의공감이나애도에서더나아가그타인의이름들이나의자식이나친구혹은나자신의것과분간할수없게되는경험을했다.김행숙의이번시집은인간존재가까이에위치한죽음을계속해서자각시키며,동시에낯모르는타인의죽음들을‘옆집’에서일어난‘이웃’의일로받아들인다.이러한태도는문학평론가박진의해설로이해될수있다.그것은죽을수밖에없는자가죽을수밖에없는자에게갖는,면제되지않는책임일것이다.[……]물론이책임속에는어떤실패가있다.감당할수있는것이상을견디는수동적인참을성은그속에‘인내하지못함’의속성을지니고있어서,“나는나를,나는나를,나는나를,또덮”(「밤에」)으며존재안으로돌아가고자한다.박진이지적한대로익명의공동체로서피할수없는책임을갖는화자는결국자기자신으로존재하는데대한절망적인규탄과자책으로타인의불행을‘나’의일로겪어내게된다.김행숙의시들은그녀가지닌‘회피할수없음’의흔적,불가능한회피의‘고유한’흔적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