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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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단단한 시의 세계
'의미를 유보하는 과정 자체로 자기 시를 만드는 시인' 이제니의 두번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반복을 통해 생생한 리듬감을 획득하여 사물과 의미 사이 공간을 확장하였다는 평을 받은 첫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이후 4년 만의 시집이다. 그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쓰고, 다시 쓰고, 덧붙이고 지우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의미라는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그 믿음들 사이의 균열”에 리듬을 흘러넘치게 한다.

이제니는 반복으로 리듬을 자아낸다. 문장들은 접속사 없이 병렬식으로 나열되다 '돌연, 어느 지점에 이르러, 의미의 연쇄를 끊어'낸다. 이때 노래 속 음의 높낮이처럼 시에 리듬이 생긴다. 이번 시집에서는 또한 구두점을 활용하여 색을 입히고 여백을 만들고 공간을 구성한다. 이제니의 시는 시인 자신의 호흡에 충실하지만 구두점 하나 허투루 들어가지 않는다. 비슷한 연쇄와 단절이 계속 반복되면서, 하나의 시는 끊길 듯 끊기지 않고 단단히 맞물린다. 이제니의 시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좋은 이유다.
저자

이제니

1972년부산에서태어났다.2008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페루」가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아마도아프리카』『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등이있다.제21회편운문학상시부문우수상,제2회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코끼리그늘로부터잔디
기린이그린
가지와앵무
달과부엉이
꽃과재
나무의나무
나선의감각-검은양이있다
나선의감각-잿빛에서잿빛까지
나선의감각-물의호흡을향해
나선의감각-빛이이동한다
수요일의속도
달과돌
구름과개
차와공
사과와감
너울과노을
나선의감각-목소리의여행
너의이마위로흐르는빛이
가지사이
그을음위로그울음이
두루미자리에서마차부자리까지
기적의모나카
음지와양지의판다
개미의심장
분실된기록
수풀로이파리로
거실의모든것
검은개
삶은달걀곁에
계피의맛
착한개는돌아본다
잔디는유일해진다
중국새
고양이는고양이를따른다
작고검은상자
그곳에서그곳으로
구름없는구름속으로
비산의바람
태양에가까이
먼곳으로부터바람
초다면체의시간
흑과백의시간속에앉아
모르는사람모르게
검은것속의검은것
몸소아름다운층위로
빛으로걸어가빛이되었다
어둠과구름
유령의몫
가장큰정사각형이될때까지
마지막은왼손으로
얼굴은보는것
하루에한가지씩
나무는기울어진다
파노라마무한하게
나선의감각-공작의빛
나선의감각-역양
나선의감각-음
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
밤이흐를때우리는
이것이우리의끝은아니야

해설|리듬의프락시스,목소리의여행.조재룡

출판사 서평

“이세계에서분명한것은오직기미와전조뿐”

벌써달아난의미
감각이우리의것이될때
들려오는이것은목소리의시


“의미를유보하는과정자체로자기시를만드는시인”(조재룡)이제니의두번째시집『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가출간되었다.반복을통해생생한리듬감을획득하여사물과의미사이공간을확장하였다는평을받은첫시집『아마도아프리카』이후4년만이다.두번째시집답게,『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에실린60편의시에서이제니특유의리듬감은더욱조밀해졌다.그는사물의본래모습을찾기위해,쓰고,다시쓰고,덧붙이고지우기를끊임없이반복하면서,의미라는“당연하다고믿어왔던그믿음들사이의균열”(「나선의감각―역양」)에리듬을흘러넘치게한다.지금까지이제니의리듬을수식했던‘발랄’은이번시집에서‘의연(毅然)’이라는좀더절실한표현으로대체될필요가있다.

이제니의시가지극한모험의반열에올라설수있는것은의미에붙들리는대신,낱말과낱말,구문과구문이관계를맺어생성된특수한시적언어로,제고유한호흡을길어올릴순간까지기다릴줄알기때문이다.그는삶의수많은결들을문장으로포섭해내고,지금-여기로끌고와우리에게선보인다.그는낱말이항시다르게쓰인다고생각하는시인,언어로명명될때사물과우주의실존이열릴것이라고믿는시인,그렇게해서슬픔과죽음,사라짐과울음,덧없음과고독의출렁거리는한자락을자신의언어로붙잡을수있다고말하는시인이다.그의시를소리내어읽을때,우리는비로소움직이는말이모든것을삼킨,아직경험하지못한저고독하고외로운바다한가운데를떠다니게될것이다.그는시의최전선으로우리를데리고가는리듬의화신이다._조재룡(문학평론가)

리듬과감각―“문장들이흘러간다.찰랑인다.출렁인다.넘실거린다.”

한낱말에해당하는단하나의의미가있을까.그리고우리가하나의의미를밀어붙인다고해서그것이정말사물의본질이자정수라고확신할수있을까.이제니의‘리듬’은,각각의낱말에꼭의미를두어야하는지묻는데서시작한다.이제니의시에서“말은항상속이빈채로맞물려있”(「초다면체의시간」)다.의미를벗은낱말,무효한문장들이서로를붙들어비늘혹은섬유같이촘촘한짜임을만들때생겨나는것이리듬이다.

이제니는그렇게반복으로리듬을자아낸다.문장들은접속사없이병렬식으로나열되다“돌연,어느지점에이르러,의미의연쇄를끊어”낸다.이때노래속음의높낮이처럼시에리듬이생긴다.이번시집에서는또한구두점을활용하여색을입히고여백을만들고공간을구성하는데,“당신은지금슬픔의안쪽에있어요./슬픔의안에.슬픔의안의안에.”(「분실된기록」)에서슬픔이두께를,공간을가질수있는것은마침표가만드는여백때문이다.이제니의시는시인자신의호흡에충실하지만구두점하나허투루들어가지않는다.비슷한연쇄와단절이계속반복되면서,하나의시는끊길듯끊기지않고단단히맞물린다.이제니의시가소리내어읽을때더좋은이유는이때문일것이다.

다시한번두손을맞잡을수있겠습니까.다시한번당신자신을읽을수있겠습니까.한낱말위에한낱말이겹치면서.한목소리위에한목소리가흐르면서.달아나는말위로스며드는물.스며드는물위로내려앉는말.얼음과구름.죽음과묵음.결국헤매다가죽게될것이다.모르는사람모르게살아가듯이.모르는사람모르게죽어가듯이.커튼은잿빛으로흔들리고있었다.탁자는흑백으로움직이지않았다.이것을빛이라고부를수있다면이어둠이야말로내마음이다.눈을감는다.다시눈을감는다.내눈속의어둠과함께.너의어둠과함께.어둠속에서어둠속으로.어둠속에서어둠을향해.
―「모르는사람모르게」부분

이해와오해―“이해할수없는것은이해하지않기로한다”

이제니는“우리와우리사이에는거리가있고.거리와거리사이에는오해가있”(「검은것속의검은것」)음을이미인정하였다.말그대로“우리는우리를모르고”있기때문에이제니의호흡과리듬을완벽히따라가거나이해하기는쉽지않다.

호흡과리듬을이해하는건어쩌면감각을공유하는일일지도모른다.호흡이란,리듬이란“저마다의속도로각자유일하게”“하나하나고유하게”(「잔디는유일해진다」)지니고있는것이므로,이제니는영영온전히이해받지못할지도모른다는외로움을무릅쓰고,또한독자는밑줄그은문장을시인의의도와다르게이해할지도모른다는불안을안고시집안에서마주한다.그러나잠시나마호흡이겹치는지점에도달한다면소리와색깔과공간으로채워진페이지를만날수있을것이다.

우리는서로를모르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이제니의시에서는줄곧‘우리’를상정한다.그의시는‘어차피’우리는우리를모르고,라며포기하는게아니라‘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그러니까……로이어져말줄임표안에수없이시도들을담는다.이해는의미의해석이아니라감각의공유에가깝다.『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속이제니가꺼내놓은무수한진심을따라읽으며,‘우리’가오해보다더많은이해에가닿을수있기를.“믿을수없게도모두함께시를쓰고있었다/저마다의낱말속에서저마다아름답게흐르고있었다”(「몸소아름다운층위로」).

매일매일슬픈것을본다.매일매일얼굴을씻는다.모르는사이피어나는꽃.나는꽃을모르고꽃도나를모르겠지.우리는우리만의입술을가지고있다.우리는우리만의눈동자를가지고있다.모르는사이지는꽃.꽃들은자꾸만바닥으로떨어졌다.사물이거울에보이는것보다가까이있습니다.그거리에서너는희미하게서있었다.감정이있는무언가가될때까지.굳건함이란움직이지않는다는말인가.움직이지않는다는것은오래오래믿는다는뜻인가.꽃이있던자리에는무성한녹색의잎.녹색의잎이사라지면녹색의빈가지가.잊는다는것은잃는다는것인가.잃는다는것은원래자리로되돌려준다는것인가.흙으로돌아가듯잿빛에기대어섰을때사물은제목소리를내듯흑백을뒤집어썼다.내가죽으면사물도죽는다.내가끝나면사물도끝난다.다시멀어지는것은꽃인가나인가.다시다가오는것은나인가바람인가.사람을믿지못한다는것은자신을믿지못한다는것이다.거짓말하는사람은꽃을숨기고있는사람이다.이제우리는영영아프게되었다.이제우리는영영슬프게되었다.
―「왜냐하면우리는우리를모르고」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