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16.00
Description
촘촘한 문장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 여기, 우리의 치부를 마주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저자 구병모의 두 번째 단편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집요한 현실 관찰자이자 방대한 이야기 수집가인 저자는 우리가 겪은 재난 이전과 이후, 생각의 과정들을 에둘러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무엇이 틀렸다고 호통을 치거나 서로 도우라는 교훈을 던지기보다 떠넘기고 외면하며 방임하고 자기합리화를 일삼는 지금의 우리를 생생하게 그려 보이는 여덟 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언젠가 정말 이 세상을 떠나면 ‘나’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던 친구의 부고를 듣게 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아파트 단지 구조가 엉망으로 설계된 바람에 대각선 집의 내부가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여 당장 다른 아파트를 알아보리라 벼르던 때, 이웃의 아동학대를 목격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창裏窓》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구병모

저자:구병모
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편집자로활동하였다.현재는집필활동에몰두하고있다.제2회창비청소년문학상을수상한'위저드베이커리'는신인답지않은안정된문장력과매끄러운전개,흡인력있는줄거리가높은평가를받았다.

목차

여기말고저기,그래어쩌면거기
파르마코스
관통貫通
이창裏窓
식우蝕雨
이물異物
덩굴손증후군의내력
어디까지를묻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방임하고외면하는보통사람들
그것이부디,나만은아니기를

당신,몸은여기살면서정작버릴수있는거이중한가지도없는주제에,그빚갚음하느라고혼자깨어있는척치열한척하지마.사람사는거다똑같으니까._「이창裏窓」에서

온갖사건사고들속에서우리의삶은문자그대로재난같았다.『그것이나만은아니기를』은우리가겪은재난이전과이후,생각의과정을에둘러보여준다.서로떠넘기니문제가생긴다.나는용케코앞의재난을피했으나아닌사람도있다.잠시반성하고함께슬퍼한다.다만애도와공감엔조건이있다.하나,내가피해입지않는선에서,둘,정해진기간안에끝낼것.제몫의삶을살아내야하는우리는산뜻하고비정하게생각을끊고기원할것이다.어쨌든,“그것이나만은아니기를”.구병모의소설에서타인의고통과인류적재난을맞닥뜨린인물들이그리는패턴과사고방식은지금우리의것과닮아있다.
피로한삶을소중하게붙들고살아가는사람들이있다.이들의일상에균열이생긴다.그것은친구의부고를듣거나(「여기말고저기,그래어쩌면거기」)지독하게가난한데홀로아이를키운다거나(「관통」)아동학대를우연히목격하는(「이창」)등현실에서운나쁘면겪을법한일이다.모든걸녹이는산성비가내린다든지(「식우」),감정을착취당하던‘을’들이덩굴식물로변해버리는전염병이마침내창궐하는(「덩굴손증후군의내력」)것처럼비현실적인일일수도있다.
『그것이나만은아니기를』에서구병모특유의묵시록적배경은,현실과거리를두기위해서라기보다사람들의어쩔수없는졸렬함을증폭시켜드러내기위해설정한장치같아보인다.자기변호와합리화는묵시록적설정이두드러지는두소설,「식우」와「덩굴손증후군의내력」에이르러비정한문장을토해낸다.사람도녹이는빗속에서“한순간의충동으로하해와같은베풂과나눔을실천한들”“나중가면피차난처해질뿐”“품속에몰티즈한마리나무사히지켜내는게정신적으로남는장사이며,이순간의외면은누구의잘못도아니”니,“다만불가능한행운과안녕을비는것이서로에게최선이라믿”는다.한편자신역시언제고덩굴이되어도이상하지않을만큼모멸과착취를당하는사람들조차“보기에좀불편해그렇지,못본척하고가만있으면지낼만은합니다”라며한때사람이었던덩굴들을말라죽게내버려두고심지어베어버린다.아이러니한지점은을과을의사슬이맞물려있다는것이다.과거에상대가나를돕지않았기때문에,나역시상대를구하지않는다.설령돕더라도진짜도움인지알수없어자기변호에그친다거나(「이창」)도우나마나더비참한결말을맞을수도있기때문(「파르마코스」)이라는것조차실은현실적이다.
그러니까『그것이나만은아니기를』에수록된소설들은무엇이틀렸다고호통을치거나서로도우라,고빛좋은교훈을던지지는않는다.떠넘기고외면하며방임하는,자기합리화를일삼는지금의우리를너무나잘보여줄뿐이다.치부를살살건드려결국터뜨려버리는견고한문장들을지켜보는일은묘하게통쾌하기까지하다.

유모차밀어다커피숍에서죽때리는여자들이당신눈에는한심해보이지?지금처럼남의집일에있는대로오지랖떨면서의식있는인간인척배운티나내는당신보다는낫다고생각해.똑같은뒷담화라도그들의말은그나마가볍고털어버리기쉬운비산성이나신축성이있고,감각적이며즉자적인욕망에충실한솔직함이있지.당신은개인적인관심사를자꾸있어보이게포장하려들어.행위의본질은대동소이한데거기자꾸논리와이유를부여함으로써자신이정치적으로올바른인간이라자위하고싶은거지.
_「이창裏窓」에서

고개를든U의눈앞에신원불명의눈감은푸른얼굴이보인다.
옆에도얼굴,그옆에도얼굴.성별과나이는다양하고모두익명이다.첫눈에는모든얼굴들이얼핏평화로이잠든신생아의그것같았고더이상삶에그려넣을무늬가없음을익히안다는듯한저마다의표정들은피안의세계로넘어간것처럼보여서생물학적감관을비롯한오온을모두상실한줄알았으나,잘려나갈때마다그들은이세상것이라고는볼수없는비명을지르면서부릅뜬눈과주름진뺨을일그러뜨리고몸부림친다.[...]U는자신이그들을따라비명을지르고있다고생각하나실상은자신의피부를타고몸속까지전해져뼈를울리는진동과뒤섞인마음의외침일뿐이다.저소리가,당신은들리지않아요?아니면들리지않는척할뿐입니까?저팔들,다리들,아니그러니까저줄기,라고불러야하나,하여간육체의기억을고스란히간직하고있을지도모를저인면수(人面樹)들의절규가.
_「덩굴손증후군의내력」에서

우리는인간인데어째서오랜지배와구속에길들여진짐승처럼어느새나를때리는이들에게우선적으로반응하고꼬리를흔들거나내리게되었을까.그러니너희들은더더욱짐승취급을당해도당연하다며누군가들은의기양양하게돌을던질텐데.
_「어디까지를묻다」에서

세상모든이야기를잇는알레고리들
오늘의문장,어제의이야기를만나다

우리가구병모의책속에서보는것은궁극적으로는책이다.한권의책에묶인종잇장들사이에서다른수많은책,수많은이야기,수많은텍스트파편들의환영이나타난다.아동학대,교육불평등,계급격차,노동착취,빈곤등정의롭지않고비참한현실의서사들틈에서급작스럽게.신화속괴물처럼,경전의우화인듯,철학개념으로,전설과민담의형태소로,신화소로.또한예술양식의명칭과예술가들의이름으로이야기는불쑥돌출한다.그리하여비일상적이고기괴한사건위에보편적민담형태소들의망이배치되고비루한일상의묘사에실존화가의구멍뚫린화폭이덧발라진구병모만의누빔소설이발생한다._윤경희(문학평론가)

짧은문장이주류인요즘이지만,구병모의소설에서한문장의호흡은꽤길다.구병모의길고정확한문장을채우는것은앞서이야기했던치밀한현실묘사만은아니다.구병모의소설을읽다보면,그리스신화와철학(「파르마코스」),그림속으로들어간다는옛설화와현대예술(「관통」),대중문화와동시대사람들의시시콜콜한수다(「이창」「어디까지를묻다」)까지온갖‘다른이야기’들이표현이나구성으로불쑥돌출된다.“잊힌목소리와버려진말들”이현실을드러내는디테일을만나구병모특유의화법이완성하는것이다.꾸준히“인간의내면에혼재된선과악의문제를탐구해”(허윤진)오면서도,‘자기복제없이,늘새로운스타일을시도할’(권여선)수있었던것은분야를가리지않고읽은,‘제대로만나분노하고고민하며여러방식으로고통’(<채널예스인터뷰>)을주었던책들,텍스트들덕분이아닐까.
구병모는현실을집요하게관찰하고허기진듯동서고금무엇이든읽어낸뒤,제안에서소화시켜소설로써낸다.그것이작가이기이전에동시대사람으로서현실반영적이야기를한다해도,구병모의소설이차별성을획득하는지점이다.먼지와시간이쌓인옛이야기들은“마치체처럼현실과언어를까불어현대서사를정제”(윤경희)한다.언뜻지극히현실반영적이면서도다시보면가장본래적인‘누빔소설’,『그것이나만은아니기를』.말맛에감탄하며한번,멈추어숨은의미를새기며다시한번읽을필요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