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미터

오십 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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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연

1966년서울에서태어났다.집다락방과학교근처도서관에서손때묻은고전들을꺼내읽으며어른이됐다.고전을만나면서세상이두려운것만은아니라는진리를깨달았고,지금도‘독서는유일한세속적초월’이라는말을책상머리에붙여놓고있다.연세대학교에서「단행본도서의베스트셀러유발요인에관한연구」로석사학위를,추계예술대학교에서「시창작에서의영화이미지수용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일본...

출판사 서평

오십미터도못가서떠올리고야마는
당신이라는운명,영원히불화할사랑


“가슴밑바닥에깊이가라앉아있던슬픔의앙금같은것을휘저어놓는느낌,그런묘한공감의순간이있었다.”(현대문학상심사평)

“소멸해가는것을감싸안으면서사랑의형식을치열하게탐색하는작품.”(시작작품상심사평)

1991년『현대시세계』로등단하여올해로등단25년을맞은시인허연의네번째시집『오십미터』가출간되었다.이번시집에는2013년현대문학상수상작「북회귀선에서온소포」외6편과,시작작품상수상작「장마의나날」등이수록되어있다.1995년첫시집『불온한검은피』로“자기부정을통한자기긍정의정공법으로‘무의미의의미’라는두려우리만치아름다운미학을창출해냈다”(문학평론가황병하)라는극찬을받았던시인허연은,13년만에두번째시집『나쁜소년이서있다』를묶으며도시화이트칼라의자조와우울을내비치며독한자기규정과세계포착으로독자들을사로잡았다.이어2012년세번째시집『내가원하는천사』에서삶의허망하고무기력한면면을담담히응시하며부정성내부에숨쉬는온전한긍정의가능성을찾아나갔던허연은,이번시집『오십미터』로세월속에찌든슬픔,마모되어소멸해가는존재들에시선을보내며일상속에안주하지않고하루하루를날선타자로견뎌나가는시인의사투,그만의업(業)을완성하려는치열한자세를보여주고있다.여전히나쁜소년같고,상처받은나비같은시인허연.시인으로살아온25년의세월동안예민한감각으로도시의쓸쓸한풍경을포착하고거침없이고통을가로지르며삶의노예가되지않고자몸부림친절실함의기록이이번시집에고스란히녹아있다.

벗어날수없는그리움,혹은숙명

마음이가난한자는소년으로살고,늘그리워하는병에걸린다

오십미터도못가서네생각이났다.오십미터도못참고내후회는너를복원해낸다.소문에돌아서면잊어버리는축복이있다고들었지만,내게그런축복은없었다.불행하게도오십미터도못가서죄책감으로남은것들에대해생각한다.무슨수로그리움을털겠는가.엎어지면코닿는오십미터가중독자에겐호락호락하지않다.[……]잊고싶었지만그립지않은날은없었다.어떤불운속에서도너는미치도록환했고,고통스러웠다.-「오십미터」부분

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양경언은표제작「오십미터」를두고세가지의감상포인트를짚어본다.첫번째로이시를한편의절절한연시(戀詩)로읽는방법,즉‘너’와나사이에오십미터이상의거리가존재할수없다는고통스러운그리움으로읽는것이다.두번째로중요한무언가를두고온,혹은상실한사람의심정이담긴시로확장하여읽는방법을꼽는다.그리고세번째독법으로‘너’를‘시’로치환하여읽어도맥락이통한다는점을든다.“멀리도망을가려하다가도오십미터를벗어나지못해다시시로돌아올수밖에없는이가차라리제몸에흐르는시의피를결코사라질수없는것으로받아들이는과정에대한기록”으로읽는것이다.앞서시인은현대문학상수상소감에서이런말을한적이있다.“시인이라는호칭이자랑스럽기보다는민망한적이더많았다.그저살면서나는시를만났고,시는나를만났다.[……]중요한건지금나는시를쓰지않고는살수없는숙주가되어버렸다는사실이다.그래서나는자주불행하고가끔행복하다.”한순간도시를잊을수없는,시를향한사무치는그리움.허연은이그리움속에서자꾸만시에게로회귀하는중독자다.

모든공화국으로부터의아나키스트,시인

찌그러지고때묻은트럭은세월을등에업고생의마지막질주를했다.낙오한사람들은어느새세월의등에올라타있었고.

도시는어두웠고트럭은주저앉았다.

낙오자들은뿔뿔이골판지같은골목으로사라졌다.주저앉은트럭은도시와아주잘어울렸다.그렇게밤이왔다.이미어두웠지만트럭은어두워지지않았다.안녕,트럭.
-「아나키스트트럭1」부분

트럭의비명은이따금씩저기압이몰려오는날아주작게들린다.진한사투리와마른기침.알아듣기힘들지만주제는분명생이다.이별만이번성했던생.나귀처럼인내했던생.자살자의마지막짐을실었던생.수몰지의폐허를실었던생.이제는단종된생.
-「아나키스트트럭2」부분

너는모든걸실었지만믿지는않았다.버려진꿈을싣고도울지않았고,적을태우고도분노하지않았다.비틀대며비틀대며모욕당했을뿐.

네가흘린신성한웃음이검은강물위에마지막으로반사됐다.
-「아나키스트트럭3」부분

이시집에실린세편의연작시「아나키스트트럭」에는종래의공화국,일상의세계와영원히불화하며자기자신을서슴없이아슬아슬한경계에두고,기어이거기에새로운기운,다른언어,다른존재를불어넣으려는시인의존재가상징적으로드러난다.“생은가끔씩끔찍하고,/아주자주평범”(시인의말)하지만트럭은“버려진꿈을싣고도울지않았고,적을태우고도분노하지않았다.”트럭은“찌그러지고때묻은세월”의슬픔과이별,낙오,죽음을거치며비틀거리고주저앉을뿐이다.하지만생의환멸과모욕을견디면서도어두워지지않을수있는것,끊임없이불화를인내하면서도지치지않는것은“시인이종래의공화국소속이아니기때문.오지않는자멸에대해먼저생각하고,남겨질잔해에대해앞서생각하는,자신만의공화국의시원(始原)”(양경언)으로존재하기때문이다.시인의언어는낡을줄도사라질줄도모르며,세계와타협하지도바깥으로탈주하지도않는다.여전히그경계에서서내밀한삶의노래를계속할뿐.

빠르게흘러가버리는강물의일처럼

사람의일에도눈물이나지않는데강물의일에는눈물이난다.

사람들이강물을보고기겁을하는이유는분명하다.총구를떠난총알처럼,다시돌아오지않기때문이다.강물은어떤것과도몸을섞지만어떤것에도지분을주지않는다.고백을듣는대신,황급히자리를피하는강물의그일은오늘도계속된다.강물은상처가많아서아름답고,또강물은고질적으로무심해서아름답다.강물은여전히여름날이도시의대세다.
-「강물의일」부분

강물은무심하게이지지부진한보호구역을
지나쳐갑니다.강물에게묻습니다.

“사랑했던거맞죠?”
“네”
“그런데사랑이식었죠?”
“네”

[……]

강물에게기록같은건없습니다
사랑은다시시작될것입니다
-「장마의나날」부분

허연의노래는자연스럽게강물로향한다.인간사에완전히무심한듯,불가항력으로이동중인생,결국소멸로이어지는결말을허연은강물을빌려건조하고담담하게이야기한다.슬픔도기쁨도없이쓸려갈것과남은것만으로지속되는것,시작과끝도없이그저이동중인것,이미쓸려가는중이라서기록으로남겨지지않지만,매일같은자리에서다시시작되는것.이것은강물의일이며,또한삶의과정이지만,사랑을잃은자리에서사랑은생의일부로다시시작되는것이다.언뜻초연의경지에이른듯하지만,강물을자세히들여다보면상처가넘쳐흐른다.“깨끗한것도더러운것도”“슬픔도기쁨도없”이“쓸려갈것과남은것”(「제의(祭儀)」)만이가능한강,“많은것을섞고,많은것을안고가지만,아무것도토해내지않”(「장마의나날」)는강은하루하루부대끼면서도부러거리를두고꾸준히불화하는시인의생과닮아있다.바로이날선고통안에서시인의사랑은숙명처럼시작된다.여전히,영원히.

■뒤표지글

구름은신비스러운사상이다
구름의이름을지은사람
자신보다구름이주목받기를원한사람
구름을가져다이야기를만든그사람생각을해봤다

그런말을하고싶었다
설명되지않았으므로무한할수있었고
학습되지않았으므로소멸하지않았던말
그말을꺼내고싶었다